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225
225
수교빈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음양조화는 완벽하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괴소를 터트린다. 웃을 일이 없는데도 ‘크크크!’하는 괴소를 흘려댄다. 비정상적인 몸의 반응을 보인다.
그녀의 몸은 완벽한 조화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침습하는 음 혹은 양의 기운을 끊임없이 내뱉는다.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 속에 음의 기운이 있다. 혹은 양기가 있다.
음식을 취한다. 이속에도 양기가 있다. 혹은 음기가 있다.
몸이 생명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물질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것은 음양의 균형을 깨트린다.
그녀가 웃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녀의 몸은 불완전한 상태다.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그녀가 정작 무서울 때는 괴소마저 그쳤을 때다. 하지만 괴소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완벽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절대로 완벽하지 않다.
– 이 세상은 완전하지 않아. 불완전해. 그래서 살만 한 거야
비비에게 해준 말이 그런 뜻이었다.
지금도 완벽하게 설명해 줄 수 없지만, 요체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수의 깨달음…… 이제야 알 것 같아.’
그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씩 웃었다.
5-1
“크크크! 크크크크!”
수교빈은 잔혹한 웃음을 터트렸다.
“교빈.”
“크크크크!”
“그게 염사검인가?”
“크크크!”
“그 검에 교군이가 죽었다. 알고 있나?”
“크크크크!”
수교빈은 괴소만 흘렸다.
괴소를 흘리려고 흘린 게 아니다. 어린아이가 침을 흘리듯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몸의 반응이다. 아마도 그녀 자신조차도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몸의 반응이다.
그녀가 수련한 혼천음양마공은 그녀를 끊임없이 완벽한 상태로 유지시킨다. 하지만 세상은 불완전하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것들을 받아들여서 완전한 상태로 만들려고 하니, 이런 거부반응이 나타나는 게다.
해과월은 수교빈이 흘리는 괴소의 원인을 파악해냈다.
이것이 그녀를 완벽하게 만들지만, 또 이것이 그녀의 불완전함이다. 유일한 허점이다.
“그 검은 마물이야. 검을 놓아.”
해과월은 염사검을 쳐다봤다.
염사검, 염사검, 염사검…… 염사검에 대한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정작 두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염사검은 잔혹하다.
검 자체에 마기가 실렸다.
검은 만들 때는 쇠의 본질을 살려야 한다. 이게 제일 근본이다. 하지만 염사검은 쇠의 특성을 죽이고 마령을 살렸다. 그 때문에 날카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섬뜩하게 보인다.
그렇다. 염사검은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는다. 단지 죽음을 환상처럼 그려내 보여준다.
그는 염사검의 특성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렇군. 네가 이런 검이었군.’
염사검은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아주 나쁜 검이다. 사람을 억울하게 죽인 것까지는 괜찮다. 죽음은 공평하지 않으니 억울한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영혼까지 끌어내어서 괴롭히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염사검의 영혼은 잠들고 싶어 한다.
악마가 되어서 날뛰는 것처럼 보이나? 편히 쉬지 못하니, 편히 쉴 가망이 없으니 발악을 하는 게다.
스읏!
해과월은 망치를 꺼냈다.
“교빈…… 너도, 검도 그만 쉬는 게 좋겠다.”
“크크크!”
쒜액!
수교빈이 신형을 쏘아냈다.
그 순간, 해과월도 움직였다.
만수의 일초를 전개하지는 않았다. 만수의 진전은 온전히 이은 지금, 만수의 일초는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남긴 것은 만수의 일초가 아니라 죽기 직전의 심득, 어둠은 존재 자체로 완벽하다는 깨달음이다.
찾을 게 없다.
할 게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망치질을 하면 된다. 그것이 최고의 장인이다.
망치 잡은 손을 축 늘어트렸다. 수교빈의 검을 고스란히 맞겠다는 듯이 전신을 내줬다. 하지만 그는 검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수교빈이 내뱉는 숨결도 느끼고 있었다.
쒜엑!
검이 파고든다.
수교빈의 얼굴을 봤다.
그녀의 안면 근육이 미미하게 뒤틀리고 있다. 그녀의 완벽함이 해과월의 머릿속에서 아무 것도 읽어내지 못했다. 염사검의 검령이 앞으로 벌어질 공격을 예견하지 못했다.
염사검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다짜고짜 목덜미를 쳐온다.
해과월은 신발끈을 묶을 때처럼 허리를 굽히면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꽈앙!
손에 든 망치가 수교빈의 발등을 찍었다.
“켁!”
수교빈이 비명을 쏟아냈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기운을 읽어낼 수 있다. 진기의 흐름을 파악한다. 기운이 응축되고, 흐트러지는 것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하지만 해과월에게서는 아무 것도 읽어내지 못했다.
해과월은 없다. 그는 존재가 없다.
그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있다. 허나 아무런 기운도 흘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가 어떤 공격을 취할지 알지 못한다.
공격을 취하면 반응이 나오겠지.
반응은 나왔다. 그리고 그 반응 또한 그녀가 전혀 감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퍼억!
발등을 찍은 망치가 복부를 가격했다.
“커억!”
그녀는 또다시 비명을 쏟아냈다.
그녀의 초감각이 해과월을 찾고자 한다. 해과월의 움직임을 감지하고자 한다. 염사검의 검령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고자 한다.
해과월은 없다. 그는 철저한 무기(無氣)다.
‘교빈, 그만 쉬어라. 편히 살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 이렇게 살기보다는 죽음을……’
해과월이 생각을 했다. 지극히 인간다운 감정을 쏟아냈다.
그 순간, 염사검이 해과월을 읽었다. 수교빈이 해과월을 찾았다. 그는 바로 코앞에 있었다.
“키키키키킥!”
쒜엑!
검이 쏟아진다.
꽈앙!
망치도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
세상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용하다.
은거에 들어간 무인도 있고, 긴 여행을 떠난 무인도 있다. 또 실종된 무인들도 있다. 하지만 무림사에 소식 끊긴 무인들이 어디 한두 명이던가.
무림은 변함이 없다.
청천맹 맹주들이 한 자리에서 죽을 때는 마치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았는데…… 그 사건 또한 많은 궁금증을 남기고 조용히 묻혀버렸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도 평온한 무림을 반긴다.
그래도 세상이 시끄러운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은가.
해가 뜬다. 그리고 해가 진다.
5-2
저벅! 저벅! 저벅!
그는 굵은 땀을 흘리면서 깊고 깊은 산속을 헤맸다.
“여기 어디쯤이라고 들었는데……”
고개를 들어서 산봉을 쳐다봤다.
“저기가 정상이고…… 올빼미 바위. 맞는데. 잘못 알았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그의 귀에 산곡을 텅텅 울리는 망치 소리가 들렸다.
따앙! 탕! 타앙! 깡!
망치 소리는 아름다운 음률처럼 두 귀에 쏙쏙 틀어박혔다.
“음.”
그의 얼굴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드디어 찾았다는 표정이 단숨에 읽혔다. 하지만 그는 즉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도 감미롭지 않은가. 너무 아름답지 않나.
그는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타앙! 탕탕! 타앙!
망치 소리를 감상한다.
아니다. 그는 이미 대장간에서 망치를 휘두르고 있다. 망치 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의 손도 보이지 않는 실에 연결된 것처럼 저절로 움직여진다.
까앙! 스슷! 탕! 툭!
소리가 울리고, 손이 움직인다.
까앙!
‘치고 올리고, 다시 치고……’
툭! 까앙!
멀리서 들리는 망치 소리와 그의 손짓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손에 망치만 쥐어졌다면 그가 망치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딱 맞았다.
그러던 한 순간, 망치소리가 뚝 멎었다.
“휴우!”
그는 아쉬운 듯 눈을 떴다.
그러고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망치 소리에 심취해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잠시 듣는다던 게 아예 눈까지 감고 심상(心象)을 떠올렸다. 마음으로 제련까지 해버렸다.
그들 같은 사람은 심상조차도 현실처럼 자각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전신은 굵은 땀으로 가득했다. 팔은 심하게 쓴 다음처럼 묵직했다. 귀로 듣고,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손짓으로 따라한 것에 불과한데 실제로 온 몸이 자극을 받았다.
“옳게 찾아온 것 같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스읏!
그의 목에 검이 드리워졌다.
“누구냐!”
그는 놀라지 않았다. 해과월 곁에 귀신같은 무인들이 늘어서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왔다.
“하일, 하일이라고 합니다.”
“뭐하는 놈이냐!”
“대장장이입니다.”
“대장장이?”
“천수장 어르신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해과월…… 아니, 해공자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하일. 그렇군. 들어본 기억이 있어. 네놈이 천수장의 십제자 중에 가장 멍청하다는 놈이군.”
“하하! 소문처럼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은 뎁쇼.”
“들어가 봐라. 기다리고 계신다.”
“기, 기다려요? 저를요?”
대답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검은 어느새 치워졌고, 검을 들이댔던 무인도 사라지고 없었다.
“연통도 취하지 않았는데…… 날 기다려?”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일입니다.”
그는 해과월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포권지례를 취했다.
해과월은 웃통을 벗어부친 채 쇠를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느 대장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경외심이 생겼다. 자신보다 훨씬 젊은 청년인데, 나이를 떠나서 아주 존귀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검을 갈아달라고요?”
해과월은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사부님의 간절한 부탁이셨습니다. 녹영철로 검을 만들기는 했는데…… 이 검에 생명을 불어넣을 분은 공자님밖에 안 계시다고. 부탁드립니다.”
하일은 품에 안고 있던 검을 내밀었다.
해과월은 낮이 밤으로 변할 때까지 천수장이 만든 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검신을 받쳐들고……
그 모습 그대로 반나절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도,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조각해 놓은 석상처럼 숨결조차 흘리지 않고 검만 쳐다봤다.
‘아름답다!’
그는 장인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천수장이 만든 검은 완벽하다. 그 자신, 검을 품고 중원만리를 헤맸기 때문에 검에 대한 자부심은 있다. 해과월이 많은 검을 만들었지만 사부의 검보다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헌데…… 지금 해과월이 검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자, 더 손 댈 곳이 없어 보인다.
이 모습, 이대로가 가장 완벽하다.
천수장의 검은 해과월의 손에 들려있기에 완벽할 수 있다.
“아! 아!”
하일은 치밀어 오르는 격동을 참지 못하고 굵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해과월이 말했다.
“이 검은 이대로 좋습니다.”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래도 어르신은 검을 갈고 싶어 하셨습니다. 공자님이 이 검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래요? 그럼 마지막으로 잘 보세요. 이 검의 지금 모습은 이제 영원히 사라질 겁니다.”
그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 검을 품에 끼고 중원 천하를 유랑했습니다. 그 검이 어떤지는 눈 감고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갈고 싶습니까?”
“화룡점정(畵龍點睛). 생명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해과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스윽! 스윽!
해과월은 숫돌에 검을 갈기 시작했다.
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천수장이 혼신을 다해서 만든 검에 기를 불어넣는다.
하일은 그 앞에 조용히 무릎 꿇고 앉았다. 그리고 검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스읏! 슷!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로운 날이 선다.
마출성이 지녔던 천살검이 사라졌다. 누군가가 집어갔을 것이다. 수교빈과 소문주가 지녔던 무검도 사라졌다. 그 검들 역시 욕심 많은 사람들이 가져갔을 게다.
사마소는 단철장에 의문의 사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곡의 누군가가 해망에게 염사검의 제련법을 알려주었다고.
그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존재 역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어디서 제 삼의 염사검을 만드는 것은 아닐지.
비성검문, 음살문……
그들은 여전히 무림을 장악하고 있다.
인검이 실패를 분석하고, 더욱 완벽한 인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무림의 걱정거리들이다.
하지만 하일은 지금 이 순간 모든 걱정을 내려놓았다. 검을 차분히 갈고 있는 해과월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진다.
바람이 불어와 봉창을 두들긴다.
바람 소리가 정처 없이 중원을 유랑하고 있을 사부의 소식을 안겨다 준다.
아마 사부도 어디선가 자신처럼 편한 마음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지 않을까?
스읏! 슥!
검이 갈린다.
하일은 검가는 소리를 자장가삼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편하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