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
001화
싸늘하다.
습하고 퀴퀴한 지하 석실의 공기가 호흡을 타고 전해진다.
사방이 막혀 있는 이곳에, 빛이라고는 벽에 붙은 야광석들과 굳게 닫힌 석문(石門)을 밝히고 있는 두 개의 횃불 정도가 전부.
외부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차단된 이 지하실은, 저들이 제물이라 부르는 희생자들이 흘린 비릿한 혈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마재림…….”
촤좍!
털썩.
“……만마앙복.”
이것으로 열둘…… 아니, 셋인가?
어느 순간 숫자를 세는 것조차 잊었으니, 그조차도 확실치는 않다.
또 하나의 희생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 낸 후, 저들 사이에서 ‘장로’라고 불리는 사내가 천천히 바닥에 엎드려 경건하게 양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를 갖추려는 듯, 부드럽고 천천히.
‘미친것들.’
그래, 미친것들이다.
소위 말하는 광신도.
죽은 지 백 년도 훌쩍 넘었다고 알려진 그 천마라는 것을 되살려 내겠다고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미쳤다는 말 이외에 달리 무어라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저 광기 어린 모습에 질려서라도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싶지만, 한철인지 뭔지로 만들어진 이 사슬은 너무도 완벽하게 내 몸을 결박하고 있다.
‘쓸데없이 철저하네, 개같은 것들.’
하기야,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몸에 갖은 괴이한 짓거리들을 행하면서도 단 한 번도 탈출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렇게 반쯤 포기한 채 저들의 괴기한 짓거리를 지켜보던 그때, 완벽한 밀실이어야 할 석실 안에 서늘한 바람이 일더니 입구를 지키고 있던 횃불이 꺼졌다.
휘잉.
훅.
‘……바람?’
그것이 어떤 신호 같은 것이었을까?
지금까지 묵묵히 의식을 행하던 사내가, 돌연 의식을 멈추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 눈빛이 어째…….
꿀꺽.
‘이거…… 좀 불안…….’
쩌저정!
사내의 손바닥이 내 이마에 얹어지더니, 벼락이 번쩍하는 듯 눈앞이 환해졌다가 이내 어두워진다.
그리고 곧이어,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감각이 들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 지금 죽는 거구나.
***
“이게…… 대체 어찌 된……?”
“설마, 의식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모든 의식이 끝나고 몸을 결박하고 있던 사슬을 풀어냈음에도, 의식을 마친 실험체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혼절해 있다.
그들의 예상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결과에, 의식을 주관했던 임시 교주 조암(助暗)과 화상장로가 당혹스러운 시선을 교환한다.
“분명 혼령은 강림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육체의 의식 또한 끊어 놓았고요. 화상장로께서도 함께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분명 그런 것처럼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의식은 성공했네, 적어도 영혼을 부르는 단계까지는 말이지.”
“……태상장로님?”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실험체의 앞에 놓여 있던 묵색 태도(太刀)를 살피고 있던 태상장로가 신중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한순간이기는 하지만…… 천마도가 흔들렸었네. 그분과 이백여 년을 함께한 신병이니, 필시 그분의 기를 느끼고 공명한 것일 터.”
“하면, 대체 왜 눈을 뜨지 못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글쎄……. 어쩌면 의식은 성공했으나, 아직 영혼이 육체를 장악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고는 하나, 어쨌거나 생전과는 전혀 다른 육체가 아닌가?”
“하오나…… 일전에 진행했을 때에는 이런 반응이…….”
“속단하지 말게. 초대 천마 때부터 금기시되어 오던 술법이야. 의식이 성공했다고 한들, 그 결과가 항상 같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태상장로의 나무람에,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인정하는 화상장로.
이에 임시 교주 조암이 태상장로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하면, 이제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우선…… 처음과 같이 몸을 결박해, 뇌옥으로 옮기도록 하게나.”
“예, 예?”
“영혼을 부르는 의식이 성공했다고 한들, 최종적인 결과마저 성공했으리라고는 보장할 수 없네. 물론 천마께서 깨어나신다면 크게 노하실지는 모르나……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떤 변수도 남겨 둘 수 없네.”
“……이해했습니다.”
“하면, 어서 서두르도록 하시게.”
“존명.”
***
메스껍다.
당장 뭐라도 토해 내고 싶을 만큼, 속이 울렁거린다.
온몸의 피가 차가워진 느낌이고, 내 몸이 내 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이건 마치…….
‘……그때랑 똑같네.’
사당 근처에서 놀다 장군귀인지 뭔지에 씌어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그때와.
듣기로는 당대에 고명하다는 도사님들도 모셔오며 별별 수를 다 써 보았지만, 워낙에 급이 있는 귀신이다 보니 쫓아내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장군귀를 쫓아내는 것을 포기한 도사님들이 택한 마지막 방법은, 그냥 내 몸에 장군귀를 봉인해 두는 것.
그러고는 혹시라도 봉인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라던 것이, 도망치듯 내빼 버린 도사님들의 마지막 한마디였다고 한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때의 한기가 느껴지는……’
‘……음?’
“……흐억!”
난데없이 머리에 울려 퍼지는 섬뜩한 사내의 음성에, 나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쉬며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뜬 내게 가장 먼저 들어온 풍경은 지긋지긋한 잿빛 천장.
그리고 벽면 한쪽에 박혀 있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빛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개의 야광석.
이곳이 평소 감금되어 생활하던 뇌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내 손발에 채워진 만년한철 족쇄가 눈에 들어왔다.
쩔그렁.
‘……아니, 내가 왜 여기에?’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결국엔 나도 죽어 나가고.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던 그 끔찍했던 의식들이 모두 다 꿈이었나?
“……하.”
살아 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우습게도 몸에 온기가 돌며 실소가 흘러나왔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 왔는데, 살아 있다는 사실에 이렇게나 안도하는 모습이라니.
그렇게 바보처럼 혼자 웃음을 흘리고 있는 그때, 예상치 못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큽…… 크큽…….”
“……!”
아무도 없어야 할 석실 구석에서 들려온, 예상치 못한 이의 인기척.
이에 당황한 내가 고개를 돌리자,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음을 흘리고 있는 웬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나이는 대략 삼십 대 후반?
천마신교를 상징하는 붉은 자수가 새겨진 검은 무복에, 나와는 달리 족쇄 하나 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모습.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마교의 무사 같기는 한데, 특이하게도 저놈에게서는 지금까지 봐 온 마교 놈들 특유의 마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숨을 죽여 웃음을 흘리고 있던 사내가 조금씩 웃음을 멈추며 헛기침을 흘린다.
“큼……. 아, 본의 아니게 실례를 했군. 설마 그런 멍청한 반응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해서 말이다.”
……보통은 초면에 그런 말을 하는 걸 더 실례라고 하지 않냐? 이 덜 배워먹은 마교도 새끼야.
반쯤 어이가 없어진 얼굴로 놈을 올려다보는 나와는 달리, 놈은 흥미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위아래로 나를 쓸어 보고 있다.
“아무튼 다행히 내가 보이기는 하는 모양이로구나. 혹여나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시간들이 꽤나 따분할 것 같아 걱정하던 차였거늘.”
……앞으로의 시간들?
설마 이놈이, 앞으로 나를 담당하게 될 새로운 간수라도 되는 걸까?
경계심과 의아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내 모습에도, 놈은 태연히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잘되었다. 마침 궁금한 것들이 많았는데…… 우선 네 정체가 무엇이냐?”
……그건 이쪽에서 던져야 할 질문 아닌가?
아무튼 삼 년간 영문도 모를 고문만 자행하던 놈들이 이런 것을 물어오니, 새삼스러움을 넘어서 의외이기는 하다.
마음 같아서는 네놈들에게 알려 줄 이름 따위 없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실로 오랜만에 받아 본 사람대접 때문인지 내 입에서는 곧 순순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사무현(思無玄).”
오랜만에 튀어나온 내 이름이, 마치 타인의 것처럼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하기야, 귀(鬼)를 품고 있는 아이라며 집에서 버려진 이후로는 불릴 일이 없었던 이름이다.
밥벌이를 위해 산적들의 노예로 들어갔을 때에는 ‘막내’로, 저 마교 놈들에게 붙잡힌 이후로는 실험체, 혹은 ‘그릇’이라고만 불렸으니까.
그것을 떠올리자, 내 입에는 곧 저들을 향한 적대적인 미소가 머금어졌다.
“삼 년간 나에 대해 물어 온 이는 아무도 없었는데, 마교에도 별종이 있나 보군. 이제 와 이러는 이유가 뭐지? 회유?”
“하하, 회유라니? 본좌를 이곳에 강림시킨 것이 바로 네놈들이 아니더냐?”
“……강림?”
……잠깐만.
설마, 조금 전 꿈이라고 생각했던 의식이 진짜였나?
서서히 변해 가는 내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던 사내가, 무언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가로 꺾으며 두 눈썹을 추켜올렸다.
“뭐냐, 그 반응은? 설마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냐?”
“…….”
“이런……. 이놈은 단순한 ‘그릇’이었나? 하기야, 그러지 않고서야 봉혼술이 걸린 몸뚱이에 본좌를 강림시킬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대체 어떤 머저리가 저딴 것(?)을 그릇으로 정한 것인지 얼굴이나 보고 싶다는 사내의 중얼거림.
하지만,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위해 애쓰는 내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소리들에 불과했다.
‘……천마라고?’
진짜?
이백 년쯤 전에 중원을 지배했다는 그 전설적인 괴물, 천마?
……그런데 뭐 저리 무게감이 안 느껴지지?
저놈이 정말로 천마라면, 적어도 이렇게 내 눈앞에서 새하얀 손을 흔들고 있지는 않을……?
“……뭐야?”
“아, 의식이 있었느냐? 혹시나 뒤늦게 영혼이 소멸한 것이 아닌가 했다.”
……이 귀신 놈이 지금 누구 몸을 빼앗으려고?
그나저나 역시나, 하는 짓을 보니 조금 전까지 하고 있던 의심에 한층 힘이 실린다.
‘실패했네.’
의식이 실패하지 않고야, 이런 잡귀(?) 같은 놈이 내 눈앞을 돌아다닐 수 있을 리가 있나.
“너 뭐냐?”
“음?”
“아무리 봐도 그것들이 강림시키려던 천마는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정체가 뭐냐고?”
조금 전 자신이 했던 질문이 스스로에게 돌아오자, 돌연 녀석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묘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글쎄……. 어떤 부분에서 내가 천마일 리 없다고 판단했는지는 모르지만, 본좌는 분명 살아생전 수많은 이들에게 천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진짜 네가 천마라고?”
“그래. 물론 나 이외에도, 역사상 천마라고 불렸거나 불릴 존재들이 더 있기는 하겠지만……. 잠깐. 그런데 생각해 보니 괘씸하군. 까마득한 후손 주제에, 감히 어디서 본좌에게 반말을 지껄이는…….”
그렇게 확 인상을 찌푸린 천마가 막 열을 올리는 그 순간, 난데없이 뇌옥의 문밖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철컹.
쿠구구구.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전부였던 석실 내부가 횃불로 환히 밝혀진다.
그리고 곧이어, 석실 안으로 세 명의 흑의인이 들어섰다.
‘……저자들은?’
석실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각각 사무현을 평소 관리하던 간수, 저들에게 장로라고 불리는 중년 사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상장로라 불리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그리고 저들 중 간수를 제외한 둘은, 조금 전 그 ‘의식’을 주관했던 이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들이 찾아왔다는 것은 곧…….
‘……의식의 실패를 확인하러 온 건가?’
그렇게 애써 덤덤한 얼굴로 저들을 올려보는 사무현을 향해, 그들의 가장 앞쪽에 선 태상장로가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해 보인다.
“……천마의 강림을 감축드립니다. 본 교의 태상장로를 맡고 있는 고극혈(高極血)이라 합니다.”
……어?
뭐야.
얘들 설마 지금, 조금 전 의식이 성공한 줄 아는 거야?
실패한 줄 알고 온게 아니고?
……가만. 그럼 저놈들은 내가 천마인 줄 알고 있다는 말인데…….
허허…… 그럼 이제 어쩌지?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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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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