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0
010화
“……그래, 칠 대 천마께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는가?”
“예. 다소 이른 일정에 의아해하는 듯했으나, 큰 의혹을 가지지는 않는 듯 보였습니다.”
“흐음…….”
칠대 천마를 만나고 온 화상장로의 보고에,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며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는 태상장로.
그런 그의 눈치를 흘깃 살핀 화상장로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한데…… 역시 저는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무엇이 말인가?”
“‘그분’을 제외한 두 분께서는, 아직 현재 교의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하십니다. 한평생을 천마신교의 절대자로 살아온 두 분께서, 갑작스레 직면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실지…….”
“직면하지 못한다면?”
“…….”
“‘그분’ 앞에서 유혈사태라도 벌어질까 걱정되는가?”
화상장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꼬집어 질문을 던지는 태상장로.
이에 화상장로가 차마 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자, 그의 옆에 있던 조암장로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보충했다.
“사실 그 걱정을 하는 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암장로, 자네도 말인가?”
설마 조암까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태상장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분을 가까이서 모신 적이 없는 화상장로라면 이해하는 바이지만, 자네마저 그런 걱정을 할 줄은 몰랐군.”
“…….”
“……괜한 염려일세. 다른 두 천마 모두를 낮잡아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분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할 수밖에 없음이니.”
“오해하셨군요. 저는 그 반대의 의미를 걱정한 것입니다.”
“……음?”
조암의 한마디에, 태상장로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간다.
“……그분께서 두 천마를 숙청하실까 걱정한다는 말인가?”
“두 분 천마가 살아 계셨을 때의 무위를 지니고 계셨다면 말이 달랐을지 모르지요. 아무리 ‘그분’이시라도, 탈마의 무위를 가치 없다 평하시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지금은 아니라는 말인가?”
“당장은 무리시겠지만, 그분은 언젠가 능히 독보천하(獨步天下)를 이룩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 분께서 당장에 눈에 차지 않는, 자신에게 반기를 들 여지가 있는 두 분을 그냥 내버려 두실 것이라 장담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흐음…….”
조암의 논리정연한 물음에, 태상장로가 잠시 말을 멈추고 찻잔을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한참동안 골똘히 찻잔만을 내려다보다, 이윽고 마음을 다잡았는지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연다.
“……그 또한 그분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만 하겠지.”
“하, 하오나…….”
“판단하려 들지 말게!”
“…….”
“그분의 뜻이 곧 천마신교의 뜻. 우리가 그분을 위해 준비한 패를 어찌 쓰실지는, 결국 그분께서 결정할 일이라네.”
그 말을 마친 후, 빈 찻잔에 습관적으로 차를 따르는 태상장로.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평온하지 못한 심리를 대변이라도 하듯, 찻잔을 채워 나가는 물줄기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그날의 일은 당장은 묻어 두겠다. 그러니 다음번에 본좌를 조우하게 될 그날, 오늘의 선택을 본좌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잘 준비해 보도록.”
입가에 머금어진 부드러운 미소와, 그에 상반되는 서늘한 눈빛.
흥미로움 이외에는 그 어떤 감정도 읽어 낼 수 없는 음성에서는, 왠지 모를 광기와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듯한…….
“쯧쯧, 그런 식으로 퍽이나 먹혀들겠구나.”
“……젠장, 그래서 말했잖아. 괜한 짓 말고, 그냥 없던 일처럼 무시해 버리자니까?”
사무현이 발끈하며 반박하고 나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천마가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래. 아무래도 본좌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다. 작전을 바꾸자. 그냥 그놈을 다시 만나면 모르는 척하는 쪽으로.”
“하아……. 젠장. 괜한 짓에 힘만 뺐네.”
되도 않는 연기를 하느라 지친 사무현이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마디를 던진다.
“약하다는 것은 실로 피곤한 일이구나. 살아생전의 본좌 같았더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죽여 버리면 그뿐이거늘.”
……아무리 강해도, 마음에 안 든다고 사람 죽이는 건 따라 할 마음 없다, 이 천마 새끼야.
‘뭐…… 그래도 저놈이 저렇게 초조해하는 모습은 또 처음이네.’
항상 여유만만하고 오만방자하던 모습만을 보다가, 무언가를 걱정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녀석 답지 않다.
하기야, 천마의 말대로 만약 사무현에게 힘이 있었다면 구태여 그 ‘미친놈’에 대한 대응책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강해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일지도 의문이기는 하지만…….’
그날 천마고에서 만났던 그 녀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이한 섬뜩함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강해 보이고 약해 보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다른 무언가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그놈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기는 한데…….’
그날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감에 이런 부분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지만, 약간의 여유를 되찾고 그 얼굴을 떠올려 보니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다.
그렇다면, 그의 실험을 주관했던 간수들 중 하나였을까?
아니면 천마가 강림하던 의식을 주관했던 이들 중 한 명?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억을 더듬고 있는 그때, 이윽고 저 멀리서 기다렸던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우뚝.
“장로 화상이, 칠대 천마를 모시러 왔습니다.”
“……알겠다.”
이제 출발인가?
그 미친놈에 대한 완전한 대비책이 준비된 것은 아니라 다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놈 또한 오늘부로 사무현의 존재를 확실히 인지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래, 그놈이 아무리 강해 봐야 천마보다는 아래겠지.’
그렇게 일말의 불안감을 완전히 지워 버리며, 사무현은 처소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화상장로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교주전(敎主殿)이라 적힌 거대한 전각이었다.
사무현이 묶고 있는 전각도 나름대로 큰 축에 속했지만, 눈앞의 교주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호화로운 것 보소.”
“후후, 놀랬느냐? 저곳이 과거 본좌가 지내던 거처다. 보거라. 그 긴 세월이 실로 무색하게 느껴지지 않느냐?”
“……그래? 그런데 왜 여태껏 엉뚱한 곳에서 지내게 했지?”
“글쎄……. 본좌를 맞이하기 위해, 내부 단장이나 수리 따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잘되었다. 교주전이 온전한 것을 확인했으니, 오늘 만남이 끝나면 거처를 이곳으로 옮기도록 해야겠구나.”
‘……새끼, 좋아하기는.’
평소와는 달리,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아련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천마의 모습.
이곳이 저놈에게 고향은 고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교주전 안에 들어서자, 유달리 높은 계단 끝에 위치한 황금빛 의자가 사무현의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천마의 자린가?’
황금빛 의자로 향하는 계단에는 천(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흰색 비단이, 의자의 등받이를 장식한 붉은 비단에는 마(魔)라는 검은 글자가 보란 듯이 새겨져 있다.
‘……엄청난 장면이네.’
하늘 위에 마가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광신도들의 놀음이겠지만, 막상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실로 숭고하고 거룩하게까지 느껴진다.
대체 저들에게 천마가 어떤 존재이기에…….
“뭘 하고 서 있느냐? 가서 앉아라. 네 자리다.”
모두를 내려다보는 황금 의자를 향해 턱짓을 한 뒤, 느긋하게 앞장서 발걸음을 옮기는 천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럴 때면 저놈이 수백 년 전 이 마교를 지배하던 녀석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여 본 적이 없는 오만한 자세와 천하를 오시하는 듯한 거침없는 발걸음.
한때 저놈이 저 자리에 앉아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모습을 떠올리니, 우습게도 그 모습이 너무도 잘 어울리지 않는가?
‘……어떤 모습이 더 녀석의 본질에 가까운 모습일까?’
사무현 자신에게 보여 주고 있는 소탈한 모습과, 사무현을 통해 그의 후손들에게 보이고 있는 광폭한 지도자의 모습.
그 두 모습을 가만히 저울질하며 사무현이 계단에 발을 올려놓는데, 그 순간 그의 뒤쪽에서 낯선 사내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음?’
예기치 못한 사내의 음성에,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사무현.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천마 역시도, 어느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삐딱하게 가로로 꺾고 있다.
“그 계단에 오를 수 있는 이는 이 천마신교 내에 오직 한 명뿐. 설마 그것을 모르는 것이더냐?”
두 손을 뒷짐 진 채 다가오며,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오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이십 대 초반의 사내.
상대를 자신의 밑으로 내리 깔아보는 듯한 저 눈빛과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천마의 얼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네놈은 무엇이냐?”
천마를 대신해, 오만함 속에 불쾌함을 담아 질문을 던지는 사무현.
이에 한순간 눈썹을 꿈틀한 사내가 곧 짧은 냉소를 흘리며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놈이라……. 이거 꽤나 생소한 경험이로구나. 감히 교내에서 본좌를 그리 부르는 이를 보게 될 줄이야.”
“뭐……? 본좌?”
“내게 이런 생소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으니 답례를 하는 것이 도리일 터.”
그렇게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린 사내가 한순간 표정을 굳히는가 싶더니, 느닷없는 붉은 섬광이 사무현의 눈앞에 번쩍였다.
콰광!
휘리릭.
쿵!
“……크헉!”
……아프다.
명치를 제대로 얻어맞은 것처럼 숨 쉬기가 갑갑하고 몸을 일으키기도 버겁다.
지금 스스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무현의 귓가로, 당황한 듯한 천마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저, 저런 정신 나간……! 이, 일단 일어나 보거라! 어서!”
……네가 한번 맞아 봐라, 이 새끼야.
“정신 바짝 차려라! 최대한 의연하게,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일어서야 한다!”
……개새끼.
주문 한번 더럽게 쉽게 하네.
하지만, 사실 천마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사무현도 알고 있다.
이곳은 약육강식의 세계.
만약 저들이 강림시킨 칠대 천마가 예상보다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를 향한 저들의 믿음은 무너져 내리고 순식간에 그는 저들의 먹잇감으로 취급될 것이다.
“……큭. 이거…… 꽤나…… 재미있는 답례로군.”
급하게 몰아쉬고 싶은 숨을 최대한 천천히 내어 쉬며, 사무현이 애써 느긋이 몸을 일으켰다.
허세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가급적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날카로운 두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는 사무현.
이에 그를 향해 공격을 펼친 사내의 얼굴에 한순간 의외라는 듯한 빛이 스쳐 지나간다.
“……이건 예상외로군. 그다지 쓸만한 기도는 느껴지지 않는데, 본좌의 역류혈마장을 맞고도 살아 있다는 말이냐?”
“…….”
“큭, 재미있는 일이군. 아직 본좌의 힘이 미천하다고는 하나, 제법 면을 구기게 만들어 주었구나.”
스윽.
그 말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진 분위기로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사내.
그 순간, 전신에 오싹한 소름이 끼치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공포감이 사무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이 느낌은……?’
“이, 이런……! 제정신인가? 감히 모두의 앞에서 본좌에게 살기를 뿌린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급히 고개를 돌려 이 상황을 지켜보는 교의 무사들을 둘러보는 천마.
하지만 이곳까지 그들을 안내했던 화상장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사들은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심하는 사무현의 귓가로, 마치 구원과도 같은 태상장로의 외침이 들려왔다.
“두 분 모두, 멈추십시오!”
‘사, 살았다.’
“하…… 이거 참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지금 본좌에게 명을 내리는 것이냐, 태상장로?”
사무현에게 향하던 살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두 눈을 희번덕이며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내.
이에 그들을 향해 다가오던 태상장로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명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어찌 제게, 십삼 대(十三代) 천마께 명을 내릴 권한이 있겠습니까?”
“하면 물러나 있으라.”
“그저 저는…… 두 분께서, 천마의 앞에서 무례를 행하는 것을 만류하기 위해 나섰을 뿐입니다.”
“……뭐라? 지금 무어라 했느냐?”
‘……뭐?’
내가 잘못 들었나?
천마라고?
……저놈도?
그리고 또 천마가 있다고……?
‘……그런!’
그 순간, 무언가를 떠올리고 두 눈을 부릅뜨는 사무현.
……그랬다.
이제야 기억났다.
워낙에 드문드문한 기억이라 확실치 않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저놈도 천마고에서 봤던 그놈도 분명 사무현의 기억에 있는 얼굴들이었다.
비록 그때와는 다른……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새로운 얼굴이 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이…… 미친 새끼들이 정말……!’
자신도 모르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왜 여태껏 의심하지 못했을까?
실험에 성공한 생존자는 셋.
한데 왜 그들 중 사무현 자신만이 저놈들의 빌어먹을 의식의 그릇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왜 그 의식이…… 세 번이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일까?
칠 대 천마의 말대로…… 천마라는 이름을 가졌던 존재는 여럿이 존재했었는데 말이다.
‘그…… 그럼…… 저놈은 정말…….’
이제야 모든 상황을 깨달은 사무현이 멍하니 저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태상장로의 뒤에서 귀에 익은 무심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런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태상장로.”
“하오면…….”
“비켜서라. 저들은 본좌에게, 본좌는 저들에게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
“……명 받들겠습니다.”
뒤쪽에서 들려온 사내, 천마의 음성에,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한쪽으로 물러서는 태상장로.
잠시 후 그를 지나쳐 앞으로 나서는 사내의 모습에,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십삼 대 천마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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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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