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자, 그럼 우선 여기에 서명부터 시작합시다.”
“……이게 대체 뭐냐?”
얼떨떨한 얼굴로 서지를 받아든 적월이 그곳에 쓰인 글귀를 읽어 내린다.
“이곳에 서명한 상기 본인은, 연무학관을 졸업하는 시점까지 사도관의 대표 사무현의 지도를 따르며 그의 명에 절대 복종……. 이게 무슨……!”
“아, 그건 기본으로 하시는 거고 따로 하나 더 하셔야 될 거 있어요.”
“기본? 하나 더?”
“그건 저랑 우리 애들 사이의 계약인데, 선배들도 같은 조건으로 계약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더니 어느새 새롭게 꺼내 든 빈 서지에 빠르게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사무현.
멍하니 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이 어느덧 서지에는 빼곡한 글자가 쓰였다.
“자, 여기에도 서명하세요.”
사무현이 건넨 두 번째 서지를 받아든 적월의 얼굴이, 잠시 후 더더욱 절망으로 물든다.
“이곳에 서명한 상기 본인은, 사무현이 원하는 시점부터 삼 년간 그의 수하가 될 것을 맹세한다. 이를 어길 시 어떠한 후환도……. 아니! 이건 말도 안 되지 않느냐!”
결국 참지 못하고 버럭 언성을 높이는 적월.
하지만 사무현은 태연하게 귀를 후비적거리며 그를 바라볼 뿐이다.
“뭐, 문제 있나요?”
“있지! 이건 나더러 네 수하가 되라는 말이 아니냐!”
“그 정도는 돼야 정당한 거래죠.”
“뭐, 뭐라고?”
“지금 제가 훈련시키는 애들은 앞으로 육 년 동안 충실한 제 손발이 되어 줄 애들이에요. 하지만 선배들은 아니잖아요?”
“…….”
“육 년도 아니고, 졸업 이후에 삼 년만 수하가 되는 건데 뭐가 그리 어려워요? 그것도 본인을 포함해서 본인 기수들을 모두 강하게 만들어 주는 조건인데.”
“그, 그래도…….”
“아, 싫으시면 계약하지 마시든가.”
선을 그은 사무현이 서지를 빼앗으려 하자 적월이 다급히 그의 손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누, 누가 싫다고 했느냐?”
“그럼 빨리해요, 기다리게 하지 말고.”
“끄으응…….”
이게 진짜 맞는 건가?
나중에 저 녀석의 계약직 부하가 되는 조건을 허락할 만큼, 저놈이 그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수많은 의혹이 머릿속을 떠돌았지만 적월은 곧 잡념을 정리했다.
어차피 졸업을 하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는 다른 세력의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
약육강식의 강호에서, 강해질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저 정도 괴물의 밑에 들어간다는 건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니다.
“좋아…… 서명하겠다. 단!”
“단?”
“강하게 해 준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라.”
“그거야 선배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렸죠.”
“강해지기 위한 것이라면 죽을힘을 다하겠다.”
“뭐…… 그렇다면야 이쪽도 이거 하난 약속드릴게요.”
적월의 다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현이 미소 지었다.
“지금의 선배 정도는 나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련시켜 드리죠.”
“좋아, 믿겠다.”
사무현이 건넨 붓을 받아 거침없이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가는 적월.
그렇게 사도관의 오십 기 대표, 하남혈귀 적월이 사무현의 아래에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시각, 혈무관의 뒤편에는 오십일 기 사도관도 전체가 집합해 있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지만 그 분위기는 어쩐지 좀 미묘했다.
“크…… 크흠…….”
“흐음…….”
헛기침을 하며 낯선 이들의 모습을 힐끔거리는 사도관도들.
막휘와 살암의 눈에도 날선 경계의 빛이 어려 있다.
혈무관 뒤편에 그들과 함께 집합해 있는, 적월과 만패, 나혼수가 바로 그 원인이었다.
저벅저벅.
“흐아아암…….”
“오셨습니까! 형님!”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등장하는 사무현의 모습에 사도관도 전체가 허리를 숙인다.
한쪽 손을 들어 그들의 인사를 받은 사무현이 평소와 다름없이 주위를 빙 둘러본다.
“다들 잘 잤냐?”
“예! 형님!”
“자, 그럼 오늘은 하체 훈련부터…….”
“자, 잠시만요, 형님.”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곧장 수련을 시작하려 하자, 선두에 서 있던 막휘가 다급히 한쪽 손을 들었다.
“저기…… 저분들은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누구……. 아하.”
막휘가 바라보는 곳에 어색하게 서 있는 세 사람을 확인한 사무현이, 시큰둥하게 그들을 소개한다.
“얼굴들은 알지? 오늘부터 너희와 함께 수련할 선배님들이다.”
“하, 함께 수련을요?”
“저분들이랑 같이요?”
“뭐, 계속 같이할 건 아니고. 대충 우리 수련이 어떤 건지 감을 잡으실 때까지만이다. 아마 대충…… 한 달 정도?”
아침 수련은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이곳에서 이백이나 되는 숫자가 다 같이 수련할 수는 없으니, 체력의 기반이 되는 아침 수련은 자기들끼리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체험(?)시켜 줄 예정이었다.
개개인에 대한 섬세한 지도는 저녁 수련으로 대체하면 되니까.
“자, 오늘 수련은 천마보다! 선배님들은 이 수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실 테니, 너희가 성심성의껏 가르쳐 드리도록. 막휘, 네가 좀 챙겨 드려라.”
“예, 형님. 야! 남는 사낭 좀 가져와라!”
“남는 사낭 없는데요?”
“없으면 하나씩 빼서라도 가져와! 선배님들 쓰실 건데!”
“예! 형님!”
……기분 탓일까?
선배들이 쓸 훈련 도구를 준비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어쩐지 묘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세상에,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오는 인간들이 다 있네.’
‘크으…… 이렇게 동료가 늘었구나. 어디 한번 죽어 봐라.’
그렇게, 사도관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
“자…… 오늘은 몇몇 ‘부족한’ 사람들 때문에 다 같이 고생 많았다.”
“…….”
사무현의 한 마디에, 오십일 기 사도관도 전체의 시선이 한데로 쏠린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하는 적월과 만패, 나혼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내공 쓰지 말라니까 왜 자꾸 내공을 쓰는 거지?”
“쓰려면 걸리지나 말든가.”
대놓고 들으라고 투덜거리는 몇몇 사도관도들의 음성에 만패와 나혼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젠장, 안 쓰고는 도저히 못 하겠는데 어떻게 하라고!’
‘쪽팔리게 후배들 앞에서 쓰러질 수도 없고.’
그나마 적월은 내공을 쓰지 않고 수련을 버텨 냈지만, 아무래도 한 무리로 묶이다 보니 모두의 눈총을 함께 받을 수밖에 없다.
쓰윽.
“……대표?”
“…….”
조용히 한 걸음을 옮겨 그들과 거리를 두는 적월의 모습을 만패와 나혼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본다.
“자,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이제 밥 먹자.”
“수고하셨습니다!”
우렁찬 인사와 함께 수련을 마무리 지은 사도관도들이, 훈련에 쓴 사낭들을 한데 쌓아 두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우르르르.
그렇게 오십일 기 전원이 자리를 비우고 나자,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만패와 나혼수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털썩.
풀썩.
“큭……! 이런 빌어먹을.”
“내, 내 다리…….”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저들과는 달리, 적월은 짐짓 태연히 서서 그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괜찮으냐?”
“괜찮지 않습니다.”
“다리에 감각이 없습니다. 팔도 후들거리고요. 식당까지 갈 수나 있을 런지 모르겠습니다.”
만패와 나혼수가 기다렸다는 듯 우는 소리를 내뱉자, 적월이 쓴웃음을 머금는다.
“힘내거라. 명색에 선배가 되어서, 실력으로는 뒤질지 모르지만 근성으로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할 게 아니냐?”
“끄응……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적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만패와 나혼수가 새삼스레 적월을 올려다보았다.
그들과는 달리 조금의 내공도 쓰지 않은 적월이다.
딱히 외공을 수련한 이도 아닌데,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순수한 근성으로 버텨 내다니.
“대표께서는 어찌 버티실 수 있었습니까?”
“이 정도는 힘들지 않다.”
“예?”
“정도관에게 매번 패하던 그때를 떠올려 보거라. 수련을 통해 느끼는 육체의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지.”
“……대표.”
그간의 무거운 짐을 홀로 이고 있었을 그를 떠올리자 만패와 나혼수의 얼굴이 숙연해진다.
“이만 가자. 이제 또 평소의 일과로 돌아갈 시간이니. 그래야 석식 이후의 수련들도 버텨 낼 수 있지 않겠느냐?”
“예! 대표.”
적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손으로 체중을 지탱하며 몸을 일으키는 만패와 나혼수.
그런 그들을 가만히 돌아보던 적월도, 식당을 향해 무심히 한 걸음을 내디딘다.
휘청.
털썩.
내디딘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휘청이더니 적월이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당황한 듯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는 그의 노력에, 나혼수와 만패는 말없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주었다.
***
“……아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사무현이 입을 열었다.
“수련하러 오신 분들 아니에요?”
“그렇다.”
“……그 꼴로요?”
“워낙에 오랜만에 생긴 근육통이다 보니…….”
적월이 조심스레 변명을 해 보았다.
하지만…….
“오랜마아아안?”
상대는 사무현이다.
“아니, 무인이라는 분들이 근육통이 오랜만이라고요? 세상에, 평소에 얼마나 단련들을 안 하시면.”
“무, 물론 평소에도 단련이야 하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일은 드물지 않으냐?”
“……드물다고요?”
적월의 변명에 고개를 갸우뚱해 보이는 사무현.
그러더니 뒤쪽에서 정렬해 있는 이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설마 아침 수련을 가지고 하신 말입니까? 족쇄도 안 찼는데, 그 정도는 준비 운동이죠, 준비 운동.”
“아침 수련 때문에 하신 말씀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석식 전에 따로 수련을 하신 것이겠지요.”
“……표정 보니 아닌 것 같은데?”
막휘, 손익패, 살암이 차례대로 각자의 의견을 내자 사무현이 다시 적월 일행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들었죠?”
……그래, 우리가 잘못했다.
그래도 쟤들은 좀 빼야 하는 거 아니니?
너 때문에 싫어도 아침마다 한 시진씩은 하는 애들이잖아, 쟤들은…….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을 내뱉을 수도 없었기에 적월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매일같이 단련하겠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아침 수련은 한 달 내에 완벽히 적응하셔야 돼요. 그래야 그때부터 오십 기 선배들한테 적용시키실 수 있을 테니까요.”
“명심하마.”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세 분 실력부터 좀 볼까요?”
히죽 웃어 보인 사무현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다 손익패에게 손가락을 까닥인다.
“익패, 네가 좋겠다.”
“저 말씀이십니까?”
“네가 저기 저 선배님이랑 한번 붙어 봐라.”
“……나혼수와 저 녀석이 말이냐?”
사무현의 말에 적월이 반신반의한 듯 되묻는다.
손익패라는 녀석도 제 나이대 사파 중에서는 밀리지 않는 수준이긴 하겠지만, 기가 갈무리된 수준은 나혼수와 극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 실력대도 가장 비슷해 보이고. 뭣보다도 지금부터 할 수련이 어떤 건지 맛보기로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지금부터 할 수련?”
“나혼수 선배라고 했지요? 준비하세요.”
“……그러지.”
사무현의 말에 나혼수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앞으로 나선다.
다리가 불편하긴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이 정도는 금세 무뎌질 것이다.
“바로 시작하면 되나?”
“예. 공간은 넉넉히 쓰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모두 물러나라.”
“예, 형님.”
사무현의 손짓과 함께 모두가 널찍이 공간을 만들어 주자, 손익패가 긴장된 듯 긴 숨을 내쉰다.
“후우…….”
“긴장할 것 없다. 그리 오래 끌지는 않을 테니.”
자신만만해 하는 나혼수의 귓가로 사무현의 설명이 뒤를 잇는다.
“이건 실전 비무예요. 명백한 살수만 아니라면 다소 과격한 수단이 모두 허용되니, 마음껏 싸우시면 됩니다.”
“그거 재밌겠군.”
나혼수가 허리춤에 두른 호조를 꺼내 들자, 당황한 손익패가 사무현을 향해 물었다.
“무, 무기를 사용해도 되는 겁니까?”
“뭐…… 안 될 것 없지. 정도관 놈들도 한번 꺾었으니, 언제까지고 맨손만 상대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 그럼 저도 부월을 가져와야…….”
“어설픈 짓거리 마.”
“……예?”
“아직 야성을 자유롭게 제어하지도 못하는 네가, 날붙이를 들고 싸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냐?”
사무현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한 손익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천수신공에는 맨몸이 더 잘 맞아. 앞으로 네 무기는 스스로의 육체라고 생각해라.”
“예, 형님.”
적어도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뼛속 깊이 사무현을 신뢰 하고 있는 손익패다.
교관들을 제외한다면 최고수나 다름없는 사무현인데, 그가 옳다고 말하는 길을 걷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 시작!”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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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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