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쓰윽.
사무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익패가 천수신공을 운용하며 자세를 낮춘다.
날이 갈수록 야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제어해야 하는지 감을 잡아 가고 있는 손익패다.
천천히 호흡을 하며 오롯이 감각에만 정신을 집중하자,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생생한 오감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꿀꺽.
‘……생각보다 만만치는 않은 것 같군.’
손익패와 대치하며 나혼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싸움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만만하게 느껴졌던 녀석인데, 막상 대치를 시작하니 알 수 없는 무게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괜히 양보해서 좋을 게 없겠어.’
일반적인 비무였다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후배인 그에게 삼 초를 양보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자칫 패하기라도 한다면, 아침 수련으로 잃어버린 선배로서의 위엄은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나혼수가, 호조에 기를 불어 넣으며 손익패를 향해 몸을 날린다.
파밧!
호조가 현란한 궤도를 그리며 손익패의 안면으로 날아든다.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는 나혼수의 장기였지만, 손익패는 상체를 뒤로 젖혀 덤덤히 그의 공격을 피해 냈다.
“칫!”
부웅.
나름대로 자신했던 첫 공격이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가자, 나혼수가 곧바로 반대편 손을 이용해 손익패의 허벅지를 노린다.
상체가 뒤로 젖혀진 상황이니, 두 다리만큼은 움직일 도리가 없을……!
스륵.
쾅!
날아드는 호조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혼수의 안면으로 일각을 내뻗는 손익패.
다급히 팔꿈치를 이용해 공격을 막았지만,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한 나혼수의 신형이 뒤쪽으로 밀려난다.
촤좍!
“익……!”
힘겹게 균형을 잡고 자세를 갖추려는데, 어느새 그의 바로 앞까지 달려온 손익패의 모습이 나혼수의 눈에 들어온다.
“이 자식!”
방어는 생각도 없다는 듯 두 팔을 펼치고 있는 그 모습에,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낀 나혼수가 그의 흉부로 호조를 휘두른다.
살수에 준하는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공격이 닿기 전 그의 손목이 먼저 손익패의 손에 붙잡힌다.
덥석.
“익……!”
부웅.
그의 한쪽 팔을 봉쇄하고 크게 일수를 휘두르는 손익패.
손가락을 구부려 갈고리 모양으로 만든 손익패의 공격이 나혼수의 상체를 찢어발긴다.
촤좌좌좍!
나혼수의 무복이 네 갈래로 길게 찢어지며 그 사이로 붉은 피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이 정도로 항복할 마음은 없다는 듯, 호신기를 끌어 올리며 그의 공격을 버텨 낸 나혼수가 반대편 호조를 휘둘러 손익패의 흉부를 베어 낸다.
촤좌좍!
“크흐……!”
이번에는 손익패의 무복 사이에서 피가 튀어나왔지만, 도리어 그는 미소를 보인다.
짐승과도 같은 그 모습에 나혼수가 몸을 움찔하자 그의 턱으로 손익패의 일각이 날아들었다.
쾅!
“크헉!”
“크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며 나혼수의 목젖으로 일수를 내뻗는 손익패.
그 순간, 내력이 실린 사무현의 음성이 그들의 시합을 중지시킨다.
“거기까지!”
우뚝.
나혼수의 목젖과 일 촌 정도의 거리를 남겨둔 채 손익패가 손끝을 멈춰 세운다.
반쯤 충혈된 눈으로 나혼수를 노려보던 그가, 잠시 후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천천히 숨을 고른다.
“후…… 후우…….”
“잘했다. 가서 좀 식혀.”
“예, 감사합니다. 형님.”
온몸을 휘젓고 있는 천수신공의 기운을 억누르며 손익패가 흐르는 땀과 피를 닦아 낸다.
이런 일은 흔한 듯, 대충 지혈을 마친 손익패가 싸움을 지켜보던 이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정말 많이 늘었구나, 익패야.”
“헤헤, 다 형님들 덕분이지요.”
“흐음……. 이거 놀랍군. 조만간 적사 혼자서는 당해 내지 못하겠어.”
“……내가 못 당하면 너도 못 당해.”
자신을 걸고넘어지는 청사의 말에 적사가 눈을 흘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청사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니, 손익패의 실력이 그들과 비슷한 수준에 올랐음을 인정한 모양이었다.
시끌벅적한 저들을 나혼수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곁으로 다가온 만패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일어나라, 보는 눈이 많으니.”
“내가…… 내가 졌다고……? 저 녀석한테……?”
“저 녀석은 강했다.”
“…….”
만패의 말에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나혼수.
상대가 강했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사파의 유망한 후기지수였던 자신이, 아무런 이름도 없던 후배에게 패했다는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조용히 고개 숙인 나혼수를 응시하던 만패가, 한 걸음 걸어 나오며 사무현을 응시한다.
“내 상대는 누군가?”
“어디 보자……. 막휘, 네 차례다.”
“크흠……! 제 차례입니까?”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앞으로 나서는 막휘.
한눈에 보아도 손익패와 격을 달리하는 위압감에 만패가 두 눈을 가늘게 뜬다.
“……부족한 상대는 아닌 것 같군.”
“동감입니다.”
만패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는지, 막휘도 진지하게 말하며 방어 자세를 취한다.
“좋아 그럼…… 시작.”
쾅!
사무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수 필승의 기세로 만패가 먼저 몸을 날렸다.
파밧!
쾅! 쩌정! 쾅!
“흐음…….”
순수하게 체술 대 체술.
시작부터 화끈하게 맞붙는 그들의 비무를 바라보며 사무현이 팔짱을 낀다.
‘이건 좀 예상외네?’
영단의 내력까지 흡수했으니, 만패는 막휘와 호각지세를 다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몸에 갈무리된 기도가 막휘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사무현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상대가 안 되는구나.”
“……그러게.”
자신의 생각을 대변한 천마의 한마디에 사무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스륵.
쩡!
“크헉……!”
촤지직!
막휘의 일 장에 복부를 공격당한 만패가 침음을 흘리며 밀려난다.
하지만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막휘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만패와의 거리를 다시 좁혔다.
“이익!”
팡!
높게 뻗어진 만패의 주먹이 또다시 허공을 갈랐다.
고개를 가로 꺾어 그의 주먹을 회피한 막휘가, 그대로 만패의 안면에 자신의 주먹을 꽂아 넣는다.
쾅!
“컥……!”
쿵!
비틀거리는 만패의 대퇴부를 걷어차 균형을 무너뜨리는 막휘.
곧장 그의 얼굴을 한 손으로 붙잡은 막휘가, 힘을 실어 머리를 바닥에 짓이겨 버린다.
쩡!
“…….”
풀썩.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만패가 기절하자, 막휘가 두 눈을 깜빡이며 사무현을 돌아본다.
“……끝난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런 것 같네.”
“아니…… 왜지? 대체 왜 이렇게……?”
너무도 손쉽게 상대를 쓰러뜨린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막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는 사이, 나혼수가 쓰러진 만패를 부축해 자리를 비켜 준다.
“막휘, 너도 자리로 돌아와라. 이제 다음은…….”
“내 차례군.”
사무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월이 자발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두 눈에는 결코 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쪽은 내가 나서면 되나?”
흥미로운 미소를 머금은 살암이 장신구를 짤랑이며 발걸음을 옮기자, 사무현이 한쪽 손을 들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잠깐.”
“뭐지?”
“이번에는 독 쓰지 마라.”
예상치 못한 사무현의 한 마디에, 일그러진 얼굴로 살암이 돌아본다.
그리고…….
스릉.
……쓱쓱.
“……이 새끼 또 발랐네, 이거.”
“아니…… 이건 그냥 습관 같은…….”
“닥치고, 한 번만 더 검에 독 바르고 다니면 가만 안 둔다.”
“……그러지.”
품속에서 꺼낸 천으로 검신을 닦아 낸 살암이 잠시 후 적월의 앞에 마주 선다.
다섯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선 이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각자의 자세를 취한다.
쓰윽.
“그럼 시…….”
스팟!
사무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살암의 검이 적월을 향해 날아든다.
쩡!
“……큭!”
“……아니, 저 새끼가 뒈지려고.”
사무현의 눈에 불길이 일자, 그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아 낸 적월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괜찮다, 계속하겠다!”
“아니, 내가 안 괜찮은…….”
“부탁이다! 이대로 실전처럼 맞붙어 보고 싶다!”
전의(戰意)가 느껴지는 적월의 음성에, 잠시 고민하면 사무현이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난다.
쓰윽.
“너 이 새끼, 비무 끝나면 따로 한번 보자.”
……물론 경고는 잊지 않았다.
“핫!”
조금 전 기습을 당한 것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지, 적월이 다소 거칠게 검기를 전개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검기를 느긋하게 바라보던 살암이 부드럽게 일 검을 휘두른다.
쩌저정!
지익.
“흠……?”
검기에 실린 힘이 예사롭지 않았는지, 살짝 뒤로 밀려난 살암의 눈이 가늘어진다.
순간 그의 앞으로 두 눈을 번득이던 적월이 확 거리를 좁혀 왔다.
“하앗!”
콰광!
머리를 쪼갤 듯한 기세로 날아드는 적월의 검과 살암의 검이 맞부딪친다.
작은 충격파를 동반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곧이어 치열한 접근전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콰광! 쾅! 쩌저정!
“이제야 좀 구경할 만한 비무가 펼쳐지는구나.”
“음.”
흡족한 천마의 음성에 사무현도 고개를 끄덕인다.
살암과 적월은 호각지세를 다투고 있다.
근소하게나마 살암 쪽이 우세한 공방이지만, 일방적이었던 이전의 비무와는 분명 그 양상을 달리한다.
‘……한때는 사도관의 희망으로 불렸다더니.’
일방적으로 두들겨 팰 때는 몰랐는데, 살암과 저렇게 붙여 놓고 나니 그 진가가 드러난다.
크게 깊이 있는 검술을 익힌 것 같지도 않은데, 수많은 변화를 머금고 있는 살암의 초식들을 순간순간의 임기응변으로 받아 내고 반격까지 시도하고 있다.
순수한 재능만을 놓고 본다면, 살암을 넘어서는 재목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네.’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팽팽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살암이 전력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적월이 사용하는 어정쩡한 검법으로는 살암의 환검을 당해 낼 수 없다.
콰광!
촤좍!
스륵.
적월과 살암의 검이 붙었다 떨어지자, 적월의 어깨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살암의 무복 앞섶이 잘려 떨어진다.
이 한 합만으로도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명확했지만 적월은 투지를 굽히지 않았다.
“으아아!”
쾅!
우렁찬 기합과 함께 적월이 검을 밀쳐내자, 살암의 신형이 허공으로 붕 떠서 뒤쪽으로 밀려난다.
“이……!”
까득.
밀려났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살암의 두 눈에 한순간 날카로운 살기가 번뜩인다.
스스스.
촤좌좌좌!
발을 박차고 밀려났던 거리를 되돌아온 살암이 검초를 전개하자, 얽힌 그물 같은 복잡한 형태의 검기가 허공에서 적월에게로 쏟아져 내린다.
피할 곳을 찾지 못한 적월이 푸른 검강을 끌어 올린다.
“흡!”
콰광!
스스스.
검강을 머금은 적월의 검이 그물처럼 날아드는 검기를 베어 낸다.
짧은 폭음과 함께 검기가 소멸하고 나자, 적월의 등골에 오싹한 소름이 끼친다.
“……흐억!”
촤좍!
몸을 비틀어 자신의 어깨를 관통할 뻔한 검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는 적월.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그가 고개를 치켜들자 허공을 뒤덮은 수많은 검영(劍影)이 적월의 눈에 들어온다.
“이런……!”
촤좌좍! 쩡! 쩌저정!
“크으읍……!”
검영을 받아 내는 적월의 무복 곳곳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잘려 나간 옷자락과 머리칼이 사방에 흩날린다.
온 정신을 방어에만 집중하고 있음에도, 상대의 검초는 따라가지 못할 만큼 기괴망측하다.
어떻게든 거리를 벌려 전열을 정비해야 할 텐데, 한번 기회를 잡은 살암의 공세는 점점 더 거칠어지기만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당한다!’
차라리 방어를 무시하고 공격을 펼쳐야 할까?
어떤 게 실체인지 알 수 없는 저 지독한 환영을 뚫고?
한순간의 갈등.
그 짧은 순간 움직임이 둔해진 적월의 복부로, 난데없는 살암의 일각이 날아들었다.
쩡!
“크헉……!”
말 그대로 불시에 당한 일격.
숨조차 쉬기 힘든 통증에 방어를 흐트러뜨린 적월이 두어 걸음 물러나자, 어느새 그의 목선으로 살암의 서늘한 검신이 놓여 있었다.
“끝난 것 같군.”
“큭…….”
냉랭한 살암의 한 마디에 적월이 침음성을 흘리며 눈을 감는다.
“……졌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패였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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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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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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