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순수한 실력 차이에 적월이 고개 숙이자, 그의 목선에서 검을 떼어 낸 살암이 사무현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보았느냐? 굳이 독이 없어도 나는……”
“알았으니까 들어가 있어.”
“……그러지.”
터덜터덜 살암이 자리로 돌아가자, 사무현은 오십일 기 조장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다들 고생했다. 익패랑 적사, 청사는 평소처럼 대련 시작하고, 막휘랑 살암은 오늘부터 한동안 둘이 대련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그러지.”
“그리고 오늘부터는 너희 모두에게 무기의 사용을 허락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첫날이니, 서로 지나친 살수는 자제하도록 하고.”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특히 살암, 쉽게 이겨 보겠다고 검강 쓰지 마라.”
“…….”
그렇게 지시를 받은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자, 사무현이 한쪽에 서 있는 적월 일행에게로 손짓을 해 보인다.
“거기서 뭐 하세요? 선배들도 이쪽으로 오세요.”
사무현의 손짓에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로 다가가는 적월.
막 정신을 차린 만패도 나혼수의 부축을 받으며 그 뒤를 따른다.
자신의 앞에 모인 그들을 빙 둘러보며 사무현이 입을 열었다.
“애들이랑 붙어 본 소감은 어떠세요?”
“……강하더군. 하나같이.”
“음…….”
“예상외의 실력들이었다.”
적월이 인정하자, 만패와 나혼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의를 표한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음?”
“쟤들이랑 선배들이랑, 알고 보면 딱 한 걸음 차이인 거.”
“……한 걸음이라고?”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적월이 반문하자, 사무현이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대로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한 걸음이죠.”
“…….”
“선배들도 지금까지 열심히 한다고 했을 거예요. 십중팔구 정파 녀석들의 방식을 따라 수련했겠지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명상하고, 심법 수련에 매달려서 내력을 상승시키고, 혼자 어디 틀어박혀 초식을 연마하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 낸 사무현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그거 다 헛짓거리에요.”
“뭐, 뭐라고?”
“적어도 지금 선배들 수준에서는.”
사무현의 단언에 적월의 눈빛이 흔들린다.
“대체 어째서…….”
“그런 건 그런 것만으로도 강해질 수 있는 녀석들이나 하는 거에요. 남들보다 빠르게 정순한 내력을 쌓을 수 있는 심법, 초식을 이해하기만 해도 실력이 쫙쫙 오르는 상승무공을 익힌 인간들.”
“……구파나, 오대세가 녀석들을 말하는 것이구나.”
“그렇죠. 하지만 선배들이 가진 건 그 녀석들이 가진 것에 한참 모자라잖아요. 그런데 같은 방식으로 수련을 한다? 그래서 어느 세월에 그놈들을 넘어서겠어요? 오히려 차이만 계속 벌어지지.”
“……무슨 말인지 알겠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했던 노력이 헛짓거리라는 사무현의 말에, 잠시 입술을 깨물던 적월이 그의 얼굴을 응시한다.
“하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수련을 해야 한다는 말이냐?”
“딸리는 내력을 뒷받침해 줄 강인한 몸.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초식들. 이것들을 기반으로 쌓은 많은 실전 경험.”
“…….”
“지금부터라도 선배들이 죽어라 쌓아 나가야 할 것들이지요. 이제부터 그걸 제가 도와드릴 거고.”
“……과연.”
사무현의 말에 적월을 포함한 모두가 눈빛을 빛낸다.
이제야 사무현의 이 무식한 수련 방법들이 납득이 간다.
혹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육체를 단련시키고, 매일같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대련으로 초식과 실전 경험을 몸에 익힌다.
어찌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방법들이지만, 이를 통해 저토록 강해진 이들을 체감했으니 그 어떤 의문이나 불만도 생겨나지 않았다.
“자아…… 알아들으셨으면 바로 시작할 테니, 한 분씩 준비하세요.”
“음? 준비?”
“예. 세 분이 돌아가면서 저랑 쉬지 않고 대련입니다. 무기 없이, 맨손으로.”
“너, 너랑? 무기도 없이?”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아까 다 설명해 드렸는데. 일단 육체 단련이 먼저 돼야 다음 단계를 밟던지 할 거 아니에요?”
퉁명스레 대꾸한 사무현이, 고개를 좌우로 꺾고 양팔과 어깨 관절을 돌리며 몸을 풀기 시작한다.
“자…… 이해하셨으면 한 분씩 들어오세요. 진짜 죽이겠다는 각오로.”
“…….”
“아, 물론 죽을 각오도 하시고.”
덧붙여진 사무현의 한 마디에 나혼수와 만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그리고 그때.
쓰윽.
“내가 먼저 하겠다.”
“오호.”
어느새 앞으로 걸어 나와 방어 자세를 취하는 적월.
사무현이 빈말을 할 성격이 아니란 걸 알 텐데도, 먼저 나선 그의 얼굴에는 열의와 투지가 일렁이고 있다.
‘……기회가 생겼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상관없다.
어떤 방법을 써도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정도관이라는 벽.
그 벽을 허물 수 있는 길이 생겼으니, 설령 그 앞에 펼쳐진 길이 가시밭길이라 하더라도 웃으며 걸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절대 봐주지 마라.”
“크으……. 그건 또 제 특기지요.”
적월의 한 마디에 사악하게 웃어 보인 사무현이 순식간에 폭발적인 위압감을 내뿜는다.
“자, 들어오세요. 소원대로 죽여 드릴게.”
아니…… 소원이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언제 죽여 달라고 했냐? 그냥 봐주지 말라고 했지.
‘……입 아프게 따져 본들.’
어차피 먹힐 녀석도 아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적월은 꺼지려는 투지를 다시 불태우며 온몸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간다! 하아아앗!”
“으라아!”
쾅!
휘리리리리릭.
풀썩.
“다음!”
“…….”
“다음! 왜 계속 안 와요?”
……단 일격에 적월이 나가떨어지자, 나혼수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봐.”
“왜요?”
“이 대련……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지?”
“아, 제가 말 안 했었나요? 술시까지 계속인데.”
“…….”
“괜찮아요, 못 일어나면 깨워 드릴게.”
티 없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사무현의 모습에, 나혼수와 만패의 얼굴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머금어진다.
‘순서는 상관없겠구나.’
어차피 결국엔 다 뒈져 나갈 텐데, 뭐.
그렇게, 오늘도 사명관의 비명 소리는 밤늦게까지 끊이지 않았다.
***
하남의 숭산(嵩山).
강호의 북두라 불리는 소림사(少林寺)가 위치한 곳이다.
매일 같이 무술승들의 기합 소리가 반복되는 그곳에, 이른 아침부터 작은 소란이 일고 있었다.
타다다닷.
“방장! 안에 계십니까?”
소림 내에 방장이 거주하는 인불각(仁佛閣)의 문 앞에서,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노승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잠시 후, 전각 안에서 인자함이 느껴지는 중저음이 들려온다.
“아미타불……. 무슨 일인가?”
“예, 연무학관에 계신 혜명 스님께서 금자를 동봉한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혜명에게서? 음……. 이리 가져와 보거라.”
“예, 방장.”
안에서 들려온 대답에 황급히 전각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직 노승(老僧)이라고 불릴 정도는 안 되어 보이는 승려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림의 방장이자 무림의 살아 있는 전설 중 하나인 파마불제(破魔佛帝) 신불(神佛).
이백 살은 훌쩍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백이 느껴지는 그 모습에, 새삼스러운 감탄을 한 노승이 그에게 다가가 서신을 전달한다.
“혜명 스님의 서신입니다.”
“으음…….”
쓰윽.
노승에게서 서신을 받아 들어 그것을 펼쳐 드는 신불.
그 순간, 그의 새하얀 눈썹이 추켜 올라간다.
“……아니?”
“무, 무슨 일입니까?”
“……어디 있느냐?”
“예?”
어디에 있냐니?
대체 무엇을…….
“금자.”
“…….”
“금자는 어디에 있느냐?”
예상치 못한 방장, 신불의 물음에 노승의 얼굴이 슬며시 굳어진다.
“……재경각에 보냈습니다.”
“벌써?”
“…….”
“끄응……. 고지식하기는. 시주받은 돈도 아닌데, 그냥 우리끼리 회식이나 한번…….”
“방장!”
노승이 언성을 높여 그를 부르자, 신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쪽 손을 들어 보인다.
“에잉……. 되었다. 어렸을 때는 농을 하면 곧잘 받아 주더니, 어째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점점 팍팍해지는 구나.”
“……팍팍해지는 게 아니라 철이 드는 것이겠지요.”
노승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입술을 삐죽이며 항변했으나, 신불은 서신을 이어 읽어 가며 그를 못 본 척했다.
“흐음……?”
“서찰에 무어라 적혀 있습니까?”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신불의 눈에 흥미로운 기색이 반짝이자, 노승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묻는다.
“오호라, 이거…… 연무학관에서 꽤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나 보구나.”
“예?”
“후후, 암천막과 녹림의 후계자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 흥미가 생겼었는데…… 이거 아무래도, 오랜만에 산보를 나설 기회가 생긴 모양이다.”
“사, 산보요? 방장님께서?”
서신을 접으며 신불이 몸을 일으키자 노승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러고는 이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표정을 굳히며 결사적인 기세로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절대 안 됩니다.”
“무슨 짓이냐? 평운(平雲).”
신불이 짐짓 엄한 얼굴로 입을 열자, 평운이라 불린 노승이 두 눈에 힘을 주며 말을 잇는다.
“방장께서는 제게 한 약조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약조……?”
“오십 년 전, 바람이나 쐬러 가시겠다 하고 칠 년이나 자리를 비워 두셨던 일!”
움찔.
한이 느껴지는 평운의 음성에 신불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때 제게 무어라 말하셨지요? 다시는 명확한 사유 없이 소림을 떠나지 않겠노라 약조하셨지요?”
“그…… 랬나……?”
“그리고 또 이십오 년 전! 인근 양민들의 삶을 돌아보셔야겠다고 나가, 낙양성의 기루에서 사흘 만에 발견되신 일!”
“……아미타불.”
“십삼 년 전에는 무천검제 어르신을 뵈러 나가셔서는, 반년 만에 무당파 장문인의 서신을 받은 저희가 직접 모시러 가지 않았습니까!”
“이런 괘씸한……! 그때 고자질한 녀석이 장문인 놈이었다는 말이냐? 내가 주는 곡차를 넙죽넙죽 받아 마실 때는 언제고……!”
“방장!”
반들반들한 머리에 굵은 힘줄이 돋아 있는 신불을 향해, 평운이 답답하다는 듯 다시 그를 부른다.
“이건 제가 기억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읊은 것이지, 작은 일까지 헤아리면 정말로 끝이 없습니다. 이제 큰일이 아니면 소림사를 나가지 않겠노라, 저희에게 그리 약조를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큰일이면 보내 주겠다는 말이로구나?”
“물론입니다. 하지만 서신을 보여 주십시오. 반드시 가셔야 하는 큰일이라는 것을 납득시켜 주셔야겠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해도 모자랍니다! 돌아오실 일자까지 약조를 받아 놓겠습니다! 그러기 전에는 절대 못 나가십니다!”
결연함이 느껴지는 평운의 눈빛에, 신불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만약 내가 일자에 늦으면 어찌하려 그러느냐?”
“하루라도 늦으시면, 소림의 모든 승려들을 모아서라도 방장을 참회동으로 보내겠습니다!”
“뭐, 뭐라? 나를 참회동에?”
“그만한 각오가 아니라면 절대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밟고 가십시오!”
“……밟고?”
“마,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밟으시면 정말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끄응…….”
평운의 말에 앓는 소리를 내며 민머리를 긁적인 신불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낸다.
“혜명이 말하길, 사도관의 후기지수들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 나타났다더구나.”
“……그게 뭐가 큰일 입니까?”
“그 아이가…… 검성의 제자와 무상검제의 제자를 꺾었다고 하더구나.”
“예에? 사실입니까? 사도관의 아이가 그분들의 제자를?”
신불의 말에 평운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신불이 말을 이었다.
“심지어 그냥 꺾은 것도 아니고, 일대 다수로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더구나.”
“세, 세상에…….”
어찌나 놀랐는지 입을 떡 하니 벌린 평운.
검성의 제자와 무상검제의 제자라면 굳이 그가 확인해 보지 않아도 그 자질과 실력을 알만하다.
한데 무명의 사도관 후기지수가, 그들 둘을 ‘두들겨 패듯이’ 꺾었다는 것은 분명 강호를 떠들썩하게 할 만한 일이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한데…… 그것이 방장께서 학관에 가셔야 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음…… 서신의 내용을 보니, 무언가 좀 걸리는 구석이 있어서 말이다.”
“예?”
“혜명이 보기에 녀석은 상당한 수준의 외공을 익히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젊은 나이에 외공으로 대성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그…… 렇겠지요.”
그 말대로다.
외공이란 내공과는 달리, 처음의 성취는 빠르지만 갈수록 그 속도가 더뎌지니까.
금강불괴에 이를 수 있다는 소림의 미륵신공마저도, 대성에 이르기까지는 백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방법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 하나 있지.”
“예?”
“흐음…….”
대답 대신 천천히 평운을 지나쳐 전각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신불.
그러고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는다.
“……좋구나.”
홀로 마시는 곡차를 벗 삼아 그렇게 늙어 갈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하늘이 그에게 조금은 더 즐겨도 좋다고 허락을 해 주는 모양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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