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약재의 쓴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운 병실.
한쪽 팔에 두꺼운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사내. 황보악의 모습을, 도월검 허량이 심각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긴 침묵을 깨고 던진 첫 마디치고는 꽤나 평범한 질문이었다.
허량의 물음에, 고개를 반쯤 돌리고 그의 시선을 회피하던 황보악이 반문했다.
“……자네가 알아 무엇 하려는가?”
“…….”
“어차피 자네와는 관련도 없는 일인 것을.”
“지금 관련이 없다 했는가?”
황보악의 말에 허량이 미간을 찌푸린다.
“자네를 포함하여 정도관도 스물이 폭행을 당했네. 그것도 다름 아닌 사도관의 후배에게! 어찌 내게 관련 없다고 말하는…….”
“누구에게 들었나?”
허량의 말을 끊은 황보악이 어느새 그의 눈을 노려보며 어금니를 악문다.
“감히 누가 그따위 소문을……!”
“그럼 아니라는 말인가?”
분노로 일그러진 황보악과는 달리, 그저 덤덤한 허량의 얼굴.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 모습에, 가만히 그를 노려보던 황보악이 곧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 낸다.
“……돌아가게. 이만하면 이번에도 충분히 우습게 보였을 테니.”
“자네를 우습게 본 적은 맹세컨대 단 한 순간도…….”
“제발 좀 닥치게, 허량!”
“…….”
“처음 보았을 때부터 자네는 그랬지! 혼자만 다른 척, 고고한 척!”
감정이 격해졌는지, 멀쩡한 왼 주먹을 움켜쥔 채 황보악이 악쓰듯 언성을 높인다.
“모두가 자네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네는 그 모두를 경쟁 상대로 취급조차 하지 않았어! 나를 포함해서!”
“…….”
“비무 대회 때도 그랬지! 자네를 이겨 보겠다고 열의에 불타던 나를 쓰러뜨린 후, 조금도 기뻐하지 않던 그 얼굴!”
“그건…… 나와 자네가 같은…….”
“같은 정도관도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네가 역겨운 것일세! 그 모든 행동이 진심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파르르 몸을 떨며 거친 숨을 고르는 황보악.
이윽고 감정을 가라앉힌 그가, 곧 천천히 눈을 감으며 냉담히 한 마디를 흘린다.
“……가게. 자네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알겠네.”
황보악의 말에 어렵게 고개를 끄덕인 허량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병실 문 쪽으로 걸어간다.
저벅저벅.
우뚝.
“……그 아이를 찾아갈 것이네.”
“…….”
“가서 이번에 벌어진 일에 대한 정황을 들을 것이네. 그리고 과한 손속을 책망할 것이네.”
“큭……. 어지간한 명분 없이는 움직이지도 않는 자네가 무슨 이유로?”
눈을 감은 채 흘러나오는 황보악의 비웃음에, 허량이 조용히 두 주먹을 움켜쥔다.
“내 동료가 다쳤으니까.”
“…….”
“찾아갈 명분은 그것이면 되었네.”
쿵.
그 말과 함께 병실 문을 닫고 나서는 허량.
그가 떠났음을 인지하자, 감고 있던 눈을 뜬 황보악의 얼굴에 쓴웃음이 머금어진다.
“……자네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걸세.”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듯한 황보악의 한 마디.
하지만 그의 말은 어두운 병실에서 공허하게 맴돌 뿐이었다.
***
“지, 진짜 죽겠다.”
“다리가…… 다리가 안 움직여…… 다리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나혼수와 만패.
그런 그들을, 거의 넝마나 다름없는 꼴이 된 다섯 명의 조장들이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 형님이랑 꼬박 한 시진을 대련했으니, 살아 있는 게 신기하지.’
‘그것도 겨우 셋이서 돌아가면서 말입니다.’
‘그게 대련이냐? 그냥 처맞은 거지, 처맞은 거.’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속닥거림이 연이어 들려왔지만, 만패와 나혼수는 거기에 대응할 어떤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반 시체처럼 숙소까지 걸어가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대표, 대표는 괜찮으십니까?”
다 죽어 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그들과는 달리 아무 말 없이 덤덤히 앞장서 걷고 있는 적월.
그 모습에 나혼수가 무어라 더 말을 꺼내려 하자, 돌연 적월의 고개가 천천히 그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런데…….
“……아?”
비쩍 마른 입술, 잠깐 사이에 퀭해진 얼굴.
심지어 눈의 초점마저 흐리멍덩한 적월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더니…….
저벅저벅.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린 채 그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구나.’
잠깐 사이 생기를 잃어버린 적월의 모습에, 나혼수와 만패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말할 힘도 없으시구나…….’
그에 비해 앓는 소리라도 내고 있는 그들은 얼마나 배부른 이들인가!
그렇게 희로애락을 모두 느끼고 있던 그때, 가장 앞쪽에서 걸어가던 사무현이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우뚝.
“왜 그러십니까, 형님?”
아직 혈무관의 입구까지는 몇 걸음 더 남았는데……?
의아함에 사무현의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잠시 후 막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혈무관의 입구에 서 있는 낯선 인형(人形).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자, 백의 무복을 입은 선한 인상의 사내가 그들의 눈에 들어온다.
“누구지?”
사도관도들 중에서는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그런데 그 순간…….
“……저놈은!”
지금까지 사무현의 뒤에 멍하니 서 있던 적월이, 돌연 꺼져 가던 생기를 되찾고 두 눈을 부릅뜬다.
“……도월검!”
***
‘……유명한 녀석인가?’
바로 뒤에서 들려온 적월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사무현의 눈이 가늘어진다.
혈무관의 입구에서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내.
깊고 부드러운 눈매 때문인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사무현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그런 외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강하네.’
추정되는 나이로 보아 분명 교관은 아니다.
선배 기수일 거라 생각되는데, 느껴지는 기도는 지금껏 보아 온 그 어떤 관도들과도 격을 달리한다.
그나마 비슷한 상대가 있다면 며칠 전에 박살을 내 놓은 황보악이라는 녀석 정도일까?
하지만 그로부터 전해지는 느낌으로 보건대, 황보악은 몇 번을 덤벼도 저 눈앞의 사내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사무현이 이런 평가를 내리는 사이, 도월검 허량도 내심 적지 않게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런 녀석과 싸움을 벌였다고?’
마주하고 서 있는 것만으로는 그 기량을 짐작기 어렵다.
그저 껄렁하게 서 있는 것 같은 자세에서도 빈틈을 찾을 수 없다.
그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눈앞의 상대는 그가 연무학관에 들어온 후 만난 관도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바라
보고 서 있었을까?
그들 사이에 긴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온 적월이었다.
“무슨 일이냐? 도월검. 설마 나를 만나러 왔나?”
“하남혈귀도 있었구려, 오랜만에 뵙소이다.”
으르렁거리듯 걸어 나온 적월을 향해, 짧게나마 포권을 하며 예의를 갖추는 허량.
그런 그의 모습에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적월이 말을 받는다.
“내가 있는 줄도 몰랐다는 말인데……. 그럼 대체 누구를 만나러 예까지 오셨나?”
“빈도(貧道)는 오늘 오십일 기 사도관의 대표를 만나러 왔소.”
“오십일 기의 대표를? 네가 말이냐?”
“그렇소, 듣기로는 사무현이라는 이름의 관도라고 하던데…….”
슬쩍 말꼬리를 흐리는가 싶던 허량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무현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벌써 만난 것 같군. 내 생각이 맞는가?”
“흐음……. 뭐, 맞게 찾아오신 것 같네요.”
굳이 자신을 부인할 이유가 없었기에, 사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각에 무슨 용무로?”
“어제 빈도의 동료들과 다툼이 있었다 들었네.”
“동료……? 아하.”
어제 사무현에게 얻어터진 오십 기 정도관도들을 말하는 모양이다.
그제야 그가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인지를 깨달은 사무현이 막 입을 열려는데, 적월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받는다.
“잠깐. 그 일은 너희 쪽에서 먼저 시비를…….”
“시비의 원인이 우리 쪽에 있다는 것은 이야기를 전해 들어 알고 있네.”
적월의 말을 끊으며 허량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하지. 동료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던 내 잘못도 크니 말일세.”
“크흠…….”
“하나…….”
사과를 마친 허량이, 언제 그랬냐는 듯 두 눈에 힘을 주며 그들을 바라본다.
“아무리 감정이 상했다 하더라도 손속이 너무 과했던 것은 사실이네. 동료 중 스물은 식사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있고, 또 한 명은 두 달이나 의무대에 머물러야 할 중상을 입었네.”
“아…….”
“음…….”
거…… 생각보다 좀 과하게 패기는 했네.
단순한 타박상이 전부였던 만패와는 부상의 정도가 심히 다르다.
적월과 만패가 입을 다물자, 허량의 시선이 사무현에게만 집중된다.
“어찌하여 그렇게까지 하였는가? 내 자네를 보건대, 얼마든지 더 적은 부상으로도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을 터.”
책망하는 허량의 말에 사무현의 한쪽 눈썹이 꿈틀한다.
“아니,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 이제 와서 무슨……!”
“그 부분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 했네. 난 지금, 그럼에도 자네의 손속이 지나치게 과했음을 얘기하는 것이야. 아무리 버릇이 없어도, 어른이 아이를 심하게 때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일세.”
“허…….”
폭행당한 동기들을 버릇없는 아이로, 사무현을 어른으로 비유하며 말하는 허량.
부정하자니 어린아이라도 잘못하면 죽도록 패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정론(正論)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대를 만나자, 말문이 막힌 사무현이 가만히 천마를 돌아본다.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하냐? 라는 뜻을 전하는 사무현의 눈빛에, 천마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답을 한다.
“어려울 것 없다. 정론에는 현실로 답해 주면 된다. 이곳이 강호였다면 죽은 목숨이라고 전하거라.”
“아…… 그렇지. 여기가 강호였으면, 그 선배들 싹 다 죽었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인데요?”
“이곳은 강호가 아니라 연무학관이네. 그리고 강호에서도, 단순히 기분이 상한다고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일은 드문 일이네.”
“…….”
“다 같은 연무학관의 관도인데, 자네는 너무 과했네.”
아…… 진짜 할 말 없게 만드네.
뭔가 되게 답답하고 열받는데, 막상 쏘아붙여 줄 말이 없다.
이래서는 꼭 이쪽이 사파의 악당이라도 된 것 같은…….
‘……어? 생각해 보니, 나 사파 맞잖아?’
이런 젠장, 그럼 내가 이걸 왜 어려워하고 있어?
사파면 사파답게 해야지.
“그래서요?”
“음……?”
“손속이 좀 과했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고요?”
한 손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불량스레 말한 사무현이, 삐딱하게 고개를 가로 꺾으며 말을 잇는다.
“뭐, 병실 찾아가 엎드리고 사과라도 드릴까?”
“……언행에 예의를 갖추게. 비록 속해 있는 관은 다르지만, 나는 자네의 선배 기수일세.”
“아니, 난 그쪽 같은 선배……!”
“입장을 바꾸면 이해하기 쉬울 걸세. 정도관에 들어온 신입 기수가 자네에게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자네는 그것을 옳은 행동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
또다시 생각지도 못하게 사무현의 입을 봉한 허량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사무현을 향해 말을 잇는다.
“아무튼 자네의 뜻은 알겠네. 단순히 화가 나서 저지른 일이고, 사과를 할 뜻도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제대로 이해는 하셨네.”
“하면 나 역시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지. 연무학관의 선배 기수로서, 그대에게 학관에서 지켜야 할 정도와 예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도록 하겠네.”
“……결국 한번 붙어 보자는 말씀이시네.”
역시…… 결국 이렇게 될 거 말싸움만 길게 했네.
사무현이 슬쩍 자세를 낮추려 하자, 한 손을 내밀어 보이며 허량이 그의 행동을 제지한다.
“맞는 말이네만, 적어도 오늘은 아닐세.”
“뭐요?”
“어제는 황보악과 겨루었고, 오늘도 보아하니 수련을 하다 오는 길 아닌가? 이래서는 정당한 승부를 겨룰 수 없지.”
“아니…… 저는 전혀 상관없는데요?”
“내가 상관있네.”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엄한 얼굴을 해 보인 허량이, 곧장 등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승부는 닷새 후, 장소는 공평하게 연무대에서 하도록 하지. 오늘은 그대의 뜻을 확인하고 내 의지를 전한 것으로 충분한 것 같군.”
“……후회하실 텐데?”
“후회하지 않네. 정당하지 못한 승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저벅저벅.
말을 마치자, 그대로 미련 없이 멀어져 가는 허량.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무현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한 감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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