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
012화
“으아악!”
방 안에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공포에 질린 비명 소리와 함께, 사무현이 몸을 일으켰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헐떡이는데, 난데없는 기이한 시선이 어둠 속에서 느껴진다.
이에 사무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바로 옆에 창백한 안색의 사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다.
“으아아아! 뭐야!”
“으억! 깜짝이야……! 나다, 인마. 천마!”
“네, 네가 왜 거기 앉아 있어?”
“빌어먹을……. 네놈 안에서 편히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비명 소리가 들려 나와 본 것 아니냐!”
미간을 확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대꾸하는 천마의 모습에, 연신 거칠게 헐떡이던 사무현이 천천히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 아무 일도 없어?”
“그럼, 무슨 일이 있었겠느냐?”
“하아……. 젠장. 다행이다. 나 살아 있는 거 맞지?”
풀썩.
침대에 다시금 몸을 누이며, 자신의 목을 매만져 보는 사무현.
그 모습에 무언가 짐작했다는 듯, 천마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쯧쯧, 목이 베어 죽는 악몽이라도 꾼 것이냐?”
“어…… 그냥 좀…….”
“흐음……. 네놈답지 않게 대담한 짓을 하는가 싶었더니, 역시나 감당 못 할 짓이었구나. 사흘 내내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닥쳐. 그때는 그 수밖에 없었어.”
천마의 말에 건성으로 대꾸하며, 가만히 어둠 속의 천장을 올려보는 사무현.
석 달.
초대 천마가 그에게 준 시간이다.
몸 안에 있는 일 갑자의 공력을 녹여 내고, 천마의 자리를 두고 최종 일전을 준비할 시간.
바꾸어 말하면, 사무현의 남은 목숨도 꼭 그만큼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야.”
“무엇이냐?”
“너는 어떠냐?”
“……음?”
“석 달 뒤에, 네가 내 몸을 차지하고 있다고 치면 이길 수 있겠냐?”
사뭇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사무현의 물음에, 천마가 피식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쉽지는 않을 거다. 실전이라는 것은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태여 승산을 논한다면 삼 할 정도?”
“……그 정도냐?”
“그나마 천마신공이 주력이 아닌 본좌이니 그 정도인 것이다. 어쨌거나 놈이 진짜 초대라면, 이 천마신교를 세우고 천마신공을 만들어 낸 자니 말이다.”
여태 늘 자신만만한 모습만 보였던 이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역시, 맞붙어서 살아남는 쪽은 생각도 하면 안 되겠다.
사무현의 얼굴 위로 근심의 기색이 번지자, 천마가 은근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뭘 그렇게 걱정하느냐? 애초에 네 계획은 시간을 벌고 탈출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었느냐?”
“그게 또 쉬워야 말이지.”
“그 녀석과 맞붙어 살아남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지. 적어도 이쪽은 네 하기에 따라 가능성이 있는 일 아니냐?”
……사실이다.
애초에 사무현이 시간을 번 이유는, 진짜로 저 초대 천마와 맞설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 아니다.
교를 탈출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천마가 제시했던 반년.
그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초대 천마가 그들에게 준 시간은 고작 석 달이었고, 이는 교를 탈출할 준비를 마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삼 개월 안에 탈출도 가능성이 없기는 매한가지 같은데.”
“희박하기는 하지.”
“아직까지 네가 말하는 기의 흐름인지 뭔지도 느끼지 못하고 있잖아. 설마 나, 아예 재능이 없는 거 아니야?”
“음……. 확실히 본좌에 비하면 재능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이 새끼.
이쯤 되면 한 번쯤 기를 살려 주려고 빈말을 해 줄 만도 한데, 끝까지 시종일관 뼈를 때린다.
‘하기야, 이 상황에 희망 고문은 안 하느니만 못하지.’
결국 놈에게 위로받기를 포기한 사무현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으려는데, 뒤이은 천마의 말이 사무현의 눈을 뜨게 했다.
“사실 재능에 대한 부분은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기를 느끼는 감각은, 무(武)에 관한 재능 중 일부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여차하면, 반강제로 기를 느끼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뭐? 그런 방법이 있어?”
“조금…… 아플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가능할 거다.”
솔깃해진 사무현의 질문에,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
이에 벌떡 몸을 일으킨 사무현이 반짝이는 눈으로 천마를 바라보며 묻는다.
“뭐야? 그런 좋은 방법이 있으면서 왜 말 안 해 줬어?”
“말하지 않았느냐? 조금 아플 수 있다고. 사실 나도, 그 방법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에 있던 차였다.”
“아니, 목숨이 걸렸는데 좀 아픈 게 대수야? 당장 하자!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정말로 하겠느냐? 아프더라도?”
“물론이지!”
“흐음…….”
오랜만에 의욕에 불타는 사무현의 모습에,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턱 끝을 매만지는 천마.
그러고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그 특유의 악동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좋다. 네가 정 원한다면.”
어쩐지……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일 거다.
……아마도.
***
슥슥.
“그만! 그쪽 원은 더 크게 그려야 된다!”
“어…… 그래? 이 정도면 되나?”
“제발 눈이 있으면 그림을 보거라. 어찌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냐?”
혀까지 끌끌 차며 사무현의 노동(?)을 지시, 감독하는 칠 대 천마의 모습에 사무현이 조용히 어금니를 악문다.
당장 목숨이 바람 앞에 등불이라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욕이란 욕은 고스란히 받아 먹어야 하는 처지라니…….
‘……그래. 탈출만 하자, 탈출만.’
탈출만 하면, 그때는 저 시끄러운 놈을 성불시켜 줄 수 있다.
그리고 무림 일에는 완전히 손을 씻어 버린 다음, 얼결에 얻은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관아에 들어가 안전하게 포졸 노릇이나 하며 사는 거다!
크…… 여윽시 밥은 나랏밥이 가장 든든한 법.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설계하며 한나절 가까이 공을 쓴 결과, 이윽고 사무현은 연공실 내부에 커다란 진 하나를 완벽하게 그려 넣을 수 있었다.
“후우…… 됐어? 이거면 돼?”
“음…… 그럭저럭 된 것 같구나.”
“그런데 이게 뭔데? 기혼공파진(氣混攻破陣)?”
“어…… 말했듯이, 너에게 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진이다.”
“그래?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란 말이지?”
그런 게 있으면 왜 진작 안 써먹었어? 라는 뒷말을 이어 가려는 순간, 다급히 양손을 휘저으며 칠 대 천마가 사무현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만. 질문할 시간 따위 없다. 진은 완성되었으니,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
“어…… 그래.”
……솔직히 못 미덥다.
아까부터 괜한 질문은 과감하게 무시해 버리는 저 태도도 그렇고, 자꾸만 ‘아프다’는 말을 강조하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 저 진이라는 것의 이름.
기혼공파진……. 이름만 들어도 어째 위험한 느낌이 물씬 풍기지 않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놈의 수상쩍은 짓거리에 동의하고 나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놈이 내 목숨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목숨을 걸고라도 탈출 한번 해 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은 사무현이, 진의 중심부로 당차기 그지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우르르릉.
콰과광!
“뭐, 뭐야!”
이게 웬 천둥소리?
이런 얘기는 사전에 없던 말인데?
순간 당황한 사무현이 일단 뒷걸음질을 쳐서 진에서 빠져나가려는데, 등 뒤로 난데없는 따끔한 충격이 그의 퇴로를 차단했다.
콰직!
“악! 이건 또 무슨…… 어라?”
……없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간에 무슨 벽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빈 허공뿐.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사무현이 멍하니 그쪽으로 손을 뻗자, 한순간 번쩍이는 섬광이 그의 손을 후려쳤다.
쾅!
“으억!”
천둥소리 비슷한 폭음과 함께 손이 떨어져 나갈 듯한 충격이 찾아들자, 경악한 사무현이 다급히 그 공간에서 물러서며 소리쳤다.
“야, 야! 이게 대체 뭐야?”
“아, 벌써 보았느냐? 그게 바로 기(氣)다.”
……뭐라고?
“이게…… 기? 그런 게 왜 갑자기……. 들어올 때는 멀쩡했는데?”
“그럴 수밖에. 네가 진에 들어온 순간 진은 발동된다. 네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외부에서부터 시작되지.”
“뭐? 대체 뭐가 시작되는데?”
“진의 외부에서부터 안쪽으로, 대자연의 기가 고도로 응축되기 시작한다. 그만한 기의 압력에 맨몸으로 던져지면, 보통은 육체가 견뎌 내지 못하고 폭사(爆死)하고 말지.”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폭사……?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아, 너는 너무 염려할 것 없다. 네 몸은 명색에 금강불괴가 아니냐?”
아하……! 그럼 그렇지.
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인…….
“좀 아프기는 해도 괜찮을 거다…… 어지간하면.”
……이 새끼야, 갑자기 거기에 왜 이상한 수식어가 따라 붙냐?
뭐? 어지간하면?
“야, 이 미친 천마 새끼야! 그냥 기를 느끼게 해주는 진이라며! 그딴 말은 사전에 없었잖아!”
“기를 느끼게 해준다는 말은 사실이다.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이전까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선명한 대자연의 기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씨팔!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이 어딨……!”
쾅!
“흐억!”
씩씩거리며 천마를 향해 열을 올리는 그때, 난데없이 머리 위로 천둥소리와 함께 묵직한 충격이 전해진다.
이에 당황한 사무현이 다급히 고개를 낮추자, 뒤이어 천하태평한 칠 대 천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서두르거라. 아무리 금강불괴라 해도, 결국에는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올 테니. 그나마 중심부로 들어가는 편이 조금이나마 시간을 버는 방법이다.”
“그럼 탈출이랑도 더 멀어지잖아, 이 빌어먹을 새끼야!”
거칠게 소리치며 반박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사무현은 진의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처음과는 비교하기도 힘들 만큼 숨쉬기가 버겁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의 몸을 억누르는 듯한 무게감이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중심부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그를 압박하던 압력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넌…… 내가 여기서 빠져나가면 반드시 성불시킨다.”
“아아, 그래. 좋을 대로.”
할 테면 얼마든지 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을 대충 휘젓고 있는 천마의 모습.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 한 방 갈겨 주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아 오른다.
‘갈겨 봐야 맞지도 않겠지만……. 아무튼!’
중심부까지 걸어 들어왔으니 시간은 벌 만큼 벌었고, 이제 여기서 무슨 수를 내든지 해야 한다.
‘진의 외부부터 기의 압력이 강해지고, 그 압력이 강해지면서 중심부로 들어오고…….’
그게 심해지면 금강불괴 몸으로도 견뎌 낼 방법이 없고…….
……어? 이거 잠깐만.
“야……. 그럼 이거 결국엔 어떻게 나가야 되냐?”
“별것 없다. 일반적이라면 검강(劍罡)이나 도강(刀罡)같은 것들로 진을 파괴했겠지만, 넌 그냥 호신기(護身氣)를 두르고 진에서 나오면 된다.”
“……뭐? 뭔 신기?”
“호신기다. 금강불괴에 이른 육체라면, 호신기만 둘러도 호신강기(護身罡氣)에 준하는 강도를 만들어 낼 터.”
……저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기를 느껴 본 적도 없는 사람한테 뭘 하라고?
“야, 이 미친 천마야! 호신기인지 뭔지, 쓰는 법을 알려 주고 들여보냈어야지!”
“하하, 염려 마라. 기를 느낄 수만 있게 된다면 호신기를 구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니까. 그저 네 몸 안의 기를 피부 위로 집중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그 방법을 모른다고!”
“흐음……. 그렇다면 큰일이구나. 실패하면 아마 목숨이 날아갈 터인데…….”
“…….”
“뭐……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이쪽은 적어도 가능성이 있으니, 한번 노력해 보거라. 어차피 그 정도도 극복 못 할 재능이라면, 석 달 만에 여길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테니.”
……개새끼.
잠시라도 저 미친 인간을 믿은 스스로를 저주하는 사이, 사무현이 서 있는 진의 중심부마저 기의 농도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읍!”
“오호, 벌써 시작되었나? 집중하거라. 이제 꽤나 위험한 상황이니.”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안다, 이 새끼야.
아무튼, 이제는 정말로 허투루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가만히 버티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두 팔과 두 다리가 무거워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콰지직 콰직.
“……으으!”
본격적으로 기의 압력이 강해지는지, 몸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형체 없는 무형의 힘이 당장이라도 사무현의 몸을 폭사시키기 위해 맹렬히 압박해온다.
이 믿기 힘든 이질적인 힘이, 자신의 몸 안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말인가?
‘대체…… 어디에?’
목숨이 지척에 달린 그 순간, 사무현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법은 기를 보다 빠르게 축적하고, 손쉽게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네가 호흡을 하는 동안에도 기는 네 몸에 축적되고 있지. 바로 여기, 단전이라는 곳으로.’
그에게 ‘기’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천마가 했던 이야기들이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스친다.
이에 사무현의 모든 감각이 천마가 말했던 단전이라는 곳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무현의 감각에 평소에는 찾아내지 못했던 무언가가 잡혔다.
배꼽 아래 텅 빈 공간에서, 당장이라도 자신을 끄집어내라 말하는 듯 맹렬히 꿈틀거리는 뜨거운 기운을.
‘……이거다!’
생에 처음으로 발견한 기의 감각에 환희에 찬 미소를 머금는 그 순간, 사무현의 오른쪽 어깨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지더니 돌연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콰드득.
촤좍!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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