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찾아오셨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부족하지만 학관주직을 받고 있는 권존, 황보웅이라고 합니다.”
“허어……. 과례이시오, 관주. 객이 된 입장에서 이런 인사는 받기가 어렵소이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어렸을 때부터 마교로부터 중원을 수호한 파마불제의 명성을 듣고 자란 저입니다. 까마득한 후배의 예의이니, 어려워 말고 기꺼이 받아 주시지요.”
“아미타불…….”
권존 황보웅의 깍듯한 인사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신불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미타불……. 역시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이지.’
그가 누구인가?
어려서부터는 소림의 신동이자 희망으로 불렸으며, 후기지수 비무 대회의 당당한 우승자였다.
불혹도 되지 않은 나이에 화경이라는 지고한 경지를 개척하고, 무당의 무천검제와 함께 그 당시의 마교에 맞서 싸운 중원의 전설!
그가 소림에서나 찌그러져 있는 거지, 밖에 나오면 이 정도는 먹어 주는…….
“쯧쯧, 뭘 그렇게까지 추켜세워 드리고 있어? 누가 보면 중원을 신불 스님 혼자 지킨 줄 알겠네.”
맹주 접견실 한쪽에 반쯤 늘어져 있던 단아란이 퉁명스레 말을 던지자, 신불이 미간을 찌푸리며 단아란을 돌아본다.
“아니. 아미타불, 아란 시주는 왜 갑자기 본승에게 시비를……?”
“하, 하하, 물론 천무신녀께서도 당시에 큰 활약을 하셨지요. 제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정색하는 신불의 모습에 권존이 다급히 끼어들어 상황을 조율한다.
중원에 불같은 성격을 꼽으라 하면 천무신녀 다음간다는 소림의 방장, 신불이 아닌가?
승려의 별호가 자그마치 파마불제인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권존의 조율에도 불구하고 눈치 없는…… 아니,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단아란은 계속해서 당당히 말을 이어나갔다.
“활약은 무슨. 나도 신불 스님도, 이름 없는 잔챙이들 상대한 것밖에 없다니까?”
“아미타불! 시주는 본승과 무천검제가, 그 천마신교의 소교주 혈천적제를 상대한 것이 기억 안 난다는 말이오?”
“상대한 게 아니라 함정에 빠져서 죽을 뻔한 거 아니었어요? 오라버니들 도와주려다가 나랑 검성님까지 싹 다 죽을 뻔했던 것 같은데?”
“아미타불……. 아미타불……!”
단아란의 말이 뼈를 때렸는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빠르게 염불을 외는 신불.
그런 그를 향해 단아란이 거보라는 듯 샐쭉한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 월혁 오라버니가 구해 주셨죠? 혈천적제랑 장로들도 베어 버렸고.”
“끄으응……!”
무언가 상당히 억울한 느낌인데 막상 받아칠 말도 궁색하다.
결국 앓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린 신불이 투덜거리듯 한 마디를 흘린다.
“아미타불……. 어떻게든 이백 년 전에 버릇을 고쳐 놓았어야 했는데, 앞날을 예견하지 못한 어리석음의 결과로다.”
“예? 누가 누구 버릇을 고쳐요?”
“본승이 사과하겠소, 학관주. 이백 년 전에 본승이 버릇을 고쳐 놓았더라면, 저리도 앞뒤 모르는 아이가 되지 않았을 터인데……. 이제는 머리가 너무 커 버려서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외다.”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우회적으로 단아란을 공격하는 신불.
그 사이에 끼어 버린 권존이 쩔쩔매자, 단아란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질문을 던진다.
“내 버릇을 신불 스님이 어떻게 고쳐요? 아무리 어렸을 때라도.”
“충분히 가능했소. 그때는 본승이 더 강했으니까.”
“에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셨을 것 같은데?”
“아미타불……. 진심으로 하는 말이요?”
“월혁 오라버니요.”
“…….”
“월혁 오라버니가 계신데 제 버릇을 고치실 수 있으셨다고요? 스스로를 너무 용기 있게 평가하시는 것 같은데.”
“……아.”
단아란의 말에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굳어 있던 신불이,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얼굴로 미소를 머금는다.
“과연……. 아란 시주의 말이 맞소이다.”
“……갑자기 해탈하신 얼굴이네요?”
“허허, 어차피 이길 수 있었던 적이 없는 상대인데, 분하고 억울할 이유가 무에 있겠소이까? 토끼가 범을 이기지 못한다고 분해할 이유가 없는 법이지요.”
“…….”
스스로를 토끼로 만들어 버리는 신불의 태세 전환에, 할 말을 잃고 입을 벙긋거리는 단아란.
이 틈을 타 권존이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한다.
“한데, 여기 연무학관까지는 어인 일로 먼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으음? 아, 그것이 말이오.”
그제야 자신이 온 목적을 떠올렸는지, 단아란의 눈치를 슬쩍 본 신불이 어쩐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는다.
“내 관주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소이다.”
“부탁이요?”
“하하, 이번 신입 후기지수들의 명성이 저어 멀리 숭산까지 들려와서 말이외다.”
“……대체 무슨 억지스러운 부탁을 하시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상당히 수상쩍다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뜨는 단아란.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신불이 권존에게 말을 잇는다.
“그것이 말일세…….”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 가는 신불.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단아란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권존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번져 갔다.
***
탕!
“아미이타부울!”
목재로 만든 술상에 소리 나게 술병을 내려놓으며 신불이 분노를 표출한다.
“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중원을 지킨 본승의 부탁을 거절하다니! 부처님도 돌아앉으실 일이로다!”
“바, 방장. 언성을 낮추시지요.”
정말 누가 들을까 겁난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혜명이 신불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말을 잇는다.
“관주의 입장도 생각하셔야지요. 사실 방장께서 그런 부탁을 하실 것이라고는 저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니, 내가 뭐 어려운 부탁을 했는가? 그냥 사도관의 후기지수와 친목을 좀 쌓고 싶다는 것이거늘…….”
“하면 그냥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되실 일이지 왜 굳이 비무를 고집하셨습니까?”
“원래 사내놈들끼리는, 특히나 무인끼리는 치고받으며 친해지는 것이 아닌가? 아미타불……. 본승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것들은 정이라는 것을 모르는구나.”
투덜거리는 신불을 바라보며 혜명이 조용히 미소를 머금는다.
‘……치고받으면서 친해진다는 게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방장.’
싸우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정도 들고 서로를 인정하게 된다는 의미이지, 친해지기 위해서 다짜고짜 싸움을 건다는 이론은 그 평생에 들어 본 적이 없다.
한데 그런 기괴망측한 이론이 하필이면 같은 소림의, 그것도 방장의 입에서 흘러나오다니…….
“끄응……. 아무튼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로구나. 설마 시작부터 본승의 일에 딴지를 걸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시작부터요?”
설마 그 뒤에 뭐가 더 준비되어 있으셨습니까?
궁금하긴 하지만 차마 묻고 싶지는 않다.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질문을 애써 집어삼킨 혜명이 애써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아무리 방장이시라도 관내에서는 관주의 말을 따라 주셔야 합니다. 혹여라도 문제를 일으키시면 안 됩니다. 제가 정말 곤란해집니다.”
“음? 자네 마치, 내가 정말 문제를 일으킬까 진심으로 걱정하는 반응이구먼?”
“예,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
“그러니 이렇게 성미에도 안 맞는 방장의 술시중이나 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뭇 진지한 혜명의 대답에 신불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인다.
아니……. 웬일로 기분을 맞춰 주며 술자리를 함께 해 주나 했더니,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소림 밖에 나오자마자 감시나 받는 신세라니.’
벌써부터 숭산이 그리워지려 하는…….
‘아, 그건 아니지.’
여기가 감시당하는 신세라면 숭산은 갇혀 지내는 신세다.
거기보다는 여기가 낫지, 여러모로.
“아무튼 오늘은 곡차나 드시고 주무십시오. 제가 내일 즈음에, 관주에게 체술 수업 참관 정도는 부탁해 보겠습니다.”
“쯧……. 수업을 지켜보는 정도로 어찌 녀석에 대해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모르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원래 목적은 이쯤에서 포기하십시오.”
“흐음……. 포기라.”
탁.
혜명의 단호한 발언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신불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는다.
“혜명, 자네는 소싯적 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소림 내에서는 호기심 덩어리로, 밖에서는 사고뭉치로 유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그리 안 좋은 것들만 기억하는가?”
다소 억울하다는 투로 항의하던 신불이, 이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을 잇는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 그만 두세. 아무튼, 그런 내가 어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아는가?”
“글쎄요……?”
“날 잡으려는 이에게는 잡히지 않았고, 날 피해 다니는 이는 기필코 잡았네. 그리고 날 가로막고 감시하는 이들은 모두…….”
거기까지 말하던 신불의 얼굴에 수라와도 같은 미소가 머금어진다.
“……보내 버렸네.”
스산하기 그지없는, 섬뜩하기까지 한 신불의 한 마디에 혜명의 얼굴이 굳어진다.
꿀꺽.
“보내시다니…… 대체 어디로…….”
“어디일 것 같은가?”
“설마…….”
퍼버벅!
혜명이 입을 열려는 순간 섬광같은 신불의 손놀림이 혜명의 몸을 두드린다.
그러자 마치 경련이라도 하듯 떨던 혜명이, 그대로 옆으로 스르륵 쓰러져 버린다.
풀썩.
“……편히 쉬게. 미안하지만, 난 원래가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서 말일세.”
쓰러진 혜명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찬 신불이, 방 한쪽 구석에 던져 둔 봇짐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끄응……. 가급적 쓸 일이 없기를 바랐건만.”
하지만 세상사라는 게, 종종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하느냐?
스윽.
“아미타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봇짐에서 꺼낸 야행복과 복면을 꺼내 드는 신불.
잠시 후 소림 승려복을 훌훌 벗어 버린 그는, 흑색 무복을 입은 수상쩍은 복면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껄껄, 이 모든 것이 연륜……. 아니, 부처님의 지혜로다.”
부처님이 들었으면 목탁으로 머리통을 부숴 버렸을 망발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신불은 그렇게 방을 나섰다.
그가 떠나고 난 빈 방에는, 수혈을 점혈 당해 깊은 잠에 빠져든 혜명과 널브러진 술병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
술시가 다 되어 가는 야심한 시각, 사무현을 포함한 사도관의 조장들이 석식 수련을 마치고 혈무관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거의 넝마나 다름없어진 무복을 걸친(?) 청사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린다.
그런 그의 옆으로 적사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배워서 그래, 천무신녀한테.”
“……그런 말씀 마세요, 형님은 원래 저러셨습니다.”
청사와 적사의 뒤에 이어, 손익패마저 쓰러질 듯한 걸음을 옮기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오늘 드디어 몸이 완쾌되었다면서, 그들 모두를 상대로 집단 비무를 벌인 사무현.
하지만 반쯤 죽어 가는 발걸음을 옮기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앞서가는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워 보였다.
‘저게 진짜 사람이냐?’
‘우리도 예전보다는 훨씬 세졌는데.’
‘살암이랑 적월 선배는 검강까지 쓰던데…….’
오십 기와 오십일 기를 통틀어서, 사무현을 제외하고는 사도관에서 가장 강하다 말할 만한 이들의 연합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죽기 살기로 덤빈 끝에 얻어 낸 결과는, 사무현을 상대로 일각을 버텨 냈다는 상처뿐인 자부심이 전부였다.
그 외에 굳이 한 가지 더 얻은 게 더 있다면…….
쓰윽.
“쓰레기야……. 나는 그냥 쓰레기.”
“이런 실력으로 산적은 무슨……. 해적이나 알아볼까…….”
“암천막의 미래……. 미래가 어둡구나…….”
고개를 돌린 손익패의 눈에, 어깨를 축축 늘어뜨린 채 걷고 있는 적월과 막휘, 살암의 모습이 들어온다.
자괴감을 넘어선 자기혐오까지 하는 저들을 바라보니, 실력에 자부심을 가진다는 게 썩 좋은 것이라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가늘고 길게 살아야겠다.’
어차피 사무현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 것을.
그렇게 상념을 정리한 손익패가 막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음?”
앞서가던 사무현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돌연 현무관을 향해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린다.
“이런……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예?”
쾅!
휘리리릭.
쿠당탕탕탕!
“……크헉.”
“뭐, 뭐야!”
난데없는 굉음과 함께, 혈무관의 대문을 부수고 튀어나온 신형 하나가 맨바닥을 나뒹굴었다.
크게 숨을 들이시며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은 사도관도 중 하나였다.
“무슨 일이냐!”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그가, 한쪽에서 다가오는 사무현 일행을 발견하곤 다급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쿨럭……! 피, 피하십시오, 형님! 습격입니다.”
“뭐? 습격?”
“웬 술 취한 복면인 하나가……. 아, 아무튼 피하십시오. 다들 당했습니다.”
입가에 검붉은 피까지 흘리며 필사적으로 말을 잇는 사도관도의 모습에, 사무현의 어금니가 소리나게 깨물어진다.
까득.
“……익패.”
“예, 형님!”
“얘 책임지고 의무대로 데려가.”
“예!”
사무현의 말에 대답한 손익패가, 다급히 사도관도를 업고 의무대로 달린다.
그러고 나자, 천천히 긴 숨을 내쉰 사무현이 혈무관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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