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아미타불……. 아란 소저가 여긴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들어가도 되죠? 들어갈게요.”
“아니, 내가 언제 들어오라…….”
벌컥.
“오, 역시 멀쩡하셨네.”
다짜고짜 방문을 열고 등장한 단아란의 모습에 신불이 두 눈을 끔뻑인다.
“……소저, 그렇게 타인의 숙소를 제 마음대로 드나들면 안 되는 법이외다.”
“여기가 어떻게 신불 스님 숙소예요? 연무학관 숙소지.”
상상치도 못한 단아란의 대꾸에, 신불은 실로 오랜만에 턱 하니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아니라 벽을 보고 대화를 하면 이런 기분일까?
‘……어렸을 땐 안 그랬는데.’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순수함은 사라지고 제멋대로인 성격만 남아 버린 모양이다.
뭐…… 저 모습도 어떤 의미로는 순수하다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무의미한 대화를 포기한 신불이,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단아란을 향해 물었다.
“아무튼, 그래서 무슨 일로 본승을 찾아오신 것이오?”
“아까는 관주 때문에 못 한 말이 있어서요.”
“못 한 말?”
신불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어느새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단아란이 스산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다른 녀석들은 다 건드려도 되는데, 그놈은 건드리지 마세요.”
“그 놈이라니? 설마 사도관의 대표를 말하는 것이오?”
“맞아요.”
“허허, 소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본승은 도통 이해할 수가…….”
“……신불 스님.”
쓰윽.
너스레를 떨며 신불이 말꼬리를 늘어뜨리자, 단아란이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검지로 술상을 두드린다.
“저 같은 말 두 번 하는 거 안 좋아하는데.”
퍽.
그녀의 가벼운 손놀림과 함께 목제 탁자에 휑한 구멍이 만들어진다.
솔직히 저 정도 기예는 신불이라고 못할 것이 없었지만, 무서운 점은 단아란이 저런 행동을 하는 사이 그 어떤 기의 흐름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단아란이 신불에게 기습적으로 출수 한다면 그는 그 낌새를 알아차릴 방법이 전무하다는 의미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는 신불을 바라보며, 단아란이 부드럽게 말을 잇는다.
“다 아시는 분이 왜 그러실까? 눈치라고는 가져다 버린 저어기 화산이나 무당의 오라버니들도 아니고. 신불 스님은 선수니까 대충 눈치채셨잖아요?”
“크흐음…….”
은근한 단아란의 물음에 침음을 흘린 신불이, 못마땅한 듯 짧게 투덜거린다.
“거…… 이제 아예 대놓고 협박을 하는구려. 내가 그래도 아란 소저보다 열 살은 위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소이다.”
“에이……. 저도 신불 스님도 이백 살을 넘은 지 오래인데, 쩨쩨하게 십 년 가지고 위아래를 따지세요?”
“…….”
“그리고, 저한테 위아래가 있었으면 검존 오라버니가 백날 두들겨 맞으시겠어요?”
‘자랑이다.’
위아래 없는 게 아주 자랑이야!
하지만, 저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신불은 헛기침만 한번 해 보이고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흠……. 좋소. 아란 소저에게 인의예지를 기대한 것은 아니니. 그런데 내 한 가지만 확인합시다.”
“뭔데요?”
“그 사무현이라는 아이가, 정말 단 대협의 제자가 맞소이까?”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한 신불의 물음에, 단아란이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건 왜 물으세요? 직접 겪어 보셔 놓고.”
“좀 이상해서 그렇소. 저 어린 나이에 금강불괴를 이룬 것으로 보나, 화기를 쓰는 것으로 보나, 역시 단 대협의 손길을 받은 아이 같기는 한데…….”
“그런데요?”
“단대협의 무기는 도(刀)가 아니지 않소?”
신불이 줄곧 품고 있던 의문을 던지자, 단아란이 어깨를 으쓱인다.
“뭐, 오라버니 정도 되면 그럴싸한 도법 하나 만들어 내는 게 일이겠어요?”
“내 단 대협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평생 검객으로 살았던 이가 저만한 상승 도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오. 직접 상대해 보니, 그 하북 팽가의 오호단문도법 정도의 깊이가 느껴졌소이다.”
“음…….”
“해서 물어보는 것이오. 정말로 저 아이가 단 대협의 제자가 확실하오이까?”
신불의 의혹에 미간을 찌푸리는 단아란.
사실 그녀야말로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에 대해서 꽤나 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바로, 일전의 비무에서 사무현이 보여 주었던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던 모습 때문이었다.
‘그때의 그 상황과 도법이 연관성이 있으려나?’
딱 한 번뿐이기는 했지만, 그녀와의 비무 도중 기절했다 깨어난 사무현은 한순간 믿기 힘든 무위를 보여 주었다.
공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 합의 교환으로 그녀의 무복 소매를 잘라 냈다.
아무리 그녀가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능한 이는 전 중원을 뒤져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단아란의 모습에 신불이 두 눈을 반짝이며 은근한 어조로 물어 온다.
“……소저가 생각하기에도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기는 한 모양이구려.”
“아, 그런 거 없어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은 단아란이 뒤이은 말로 그의 의심을 일축한다.
“그 아이가 어디서 뭘 배웠건, 제가 오라버니에게 드린 초청장을 가지고 온 아이예요. 그것만으로도 오라버니의 제자라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과연…… 단 대협에게 보낸 초청장을 가지고 왔다면, 분명 그와 인연을 맺고 있었던 아이임은 분명하구려. 하면 이제 도법에 대한 궁금증만 풀면 되겠는데…….”
“……그 사고를 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요?”
단아란이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자, 신불이 도리어 두 눈을 크게 뜨며 반박한다.
“허어, 무슨 말씀이오? 어차피 사고는 쳐 버렸으니 뭐라도 얻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외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혹, 아란 소저가 내게 협력을 좀 해 줄 수 없으시오?”
“……제가 했던 경고는 귓등으로 들으셨나 보네요?”
“아미타불. 본승의 살 날이 그리 길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막 살고 싶지는 않소이다.”
“그럼 뭔데요?”
“사람을 알아 가는 것이 꼭 몸으로 부딪치는 방법만 있겠소이까? 어차피 하루 만에 꽤 많은 정보를 얻어 냈으니, 이제부터는 좀 노련하고 부드러운 방법을 쓸 때지요.”
“……노련하고 부드러운 방법이요?”
단아란이 짐짓 흥미롭다는 듯 물어오자 신불이 손바닥을 탁 치며 히죽 미소를 머금는다.
“자,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요. 앞으로 녀석의 비밀을 하나하나 벗겨 볼 생각인데, 내게 협력해 준다면 내가 얻는 정보들을 공유해 드리리다. 겸사겸사 아란 소저의 호기심도 함께 풀 수 있을 거라 보는데, 어떻소?”
단아란이 흥미를 보이기 무섭게 곧바로 포섭을 시도하는 신불.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단아란은 구미가 당기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무현의 비밀을 알아내고는 싶은데, 수업 때마다 두들겨 패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불 스님이라면 알아낼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좀 심하다 싶을 만큼 두들겨 패고 기절을 시켜 보아도 영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저 신불은, 연무학관에 온 지 하루 만에 사무현이 단월혁의 제자라는 부분까지 알아냈다.
더불어 단순한 제자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여러모로 보나 단아란 자신보다 이런 일에 있어 유능한 것이 사실이다.
“……또 두들겨 패려는 거 아니지요?”
결국 단아란이 미끼를 물어 버리자, 신불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다.
“물론이오. 이미 부딪쳐서 알아내야 할 부분들은 모두 알아냈소이다.”
“혹시라도 또 사고 치면, 전 신불 스님이랑 전 아무 관계도 없는 거예요?”
“아미타불, 여부가 있겠소이까?”
연무학관의 망나니인 단아란과 소림의 사고뭉치인 신불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는 순간이었다.
***
우명관(雨明館).
연무학관의 큰 행사 때 찾아오는 수많은 손님들을 위한 건물이다.
비무 대회와 같은 때가 아니면 거의 열리지 않는 우명관의 건물이, 하룻밤 사이 혈무관을 잃어버린 사도관도들로 가득 찼다.
“형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지금이라도 의무대에 가시지요. 저희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막휘와 손익패의 음성에, 사무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러나라는 손짓을 해 보인다.
“됐어, 졸려 죽겠으니까 얼른 가 봐.”
“알겠습니다, 형님. 혹여 마음 바뀌시면 바로 불러 주십시오.”
“편히 쉬십시오, 형님.”
평소보다 더더욱 과한 예의를 지키며 물러나는 막휘와 손익패.
그들이 나가고 나자, 무표정한 얼굴로 누워 있던 사무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무복 상의를 벗어버린다.
펄럭.
“……빌어먹을 땡중 같으니.”
사무현의 몸 곳곳에는 손바닥 모양의 검붉은 멍자국이 찍혀 있었다.
나름대로 얻어맞는 데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소림의 땡중은 조금 남다른 방법으로 사무현을 공격했다.
‘……파마불제라고 했던가?’
설마 난데없이 사도관에 찾아와 그들을 습격한 복면인이, 중원의 사무제 중 한 사람이라는 괴물 늙은이였을 줄이야.
심지어 그가 그 소림의 방장이었다는 사실까지 듣고 나자 사무현은 경악을 금할 도리가 없었다.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수 있다니.’
아니, 그 정도면 흐린 물도 아니다.
썩은 물이지! 그 정도면!
정말로 죄송하다며 사무현에게 직각으로 허리를 숙여 대는 혜명의 모습을 보며, 분노는 사라지고 그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마저 들어 버린 사무현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토록 바르게 성장한 혜명의 그릇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끄응……. 아무튼 이것도 한 열흘은 가겠네.”
명색에 사무제 중 하나라고, 금강불괴에 호신기까지 두른 그의 몸 안쪽까지 깊은 충격을 선사했다.
덕분에 겉으로는 그저 멍만 들었지만 그의 몸속 내부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투덜거리던 사무현이 다시 벌러덩 침소에 누워 버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가 흥미로운 듯 말을 꺼낸다.
“한데 좀 이상하구나.”
“뭐가?”
“그 땡중은 분명, 오늘 아침 혜명과 함께 너를 지켜보던 녀석이었다.”
“그게 뭐?”
“혜명에게 너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나쁘게 듣지는 않았을 터. 한데 대체 왜 그런 무모한 방법까지 써 가면서 너와 손을 섞으려 했다는 말이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후기지수랑 한번 붙어 보겠다고 한밤중에 그 난리를 피운 인간이다.
지금껏 사무현이 살면서 수많은 미친 인간을 봐왔지만, 그중 최고를 꼽으라면 단언컨대 오늘 만난 땡중이다.
미친놈이 미친 짓을 하는데 그 이유를 이해하면 그것도 미친놈이지.
“이유는 모르지만…… 더 이상 만날 일도 없는 인간이니 신경 쓸 필요 없겠지. 혈무관을 완전히 박살내 버렸는데, 학관주가 가만히 있겠어?”
“뭐…… 그야 그렇겠지만…….”
“아아, 몰라.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어. 오늘은 그만 잘래.”
혈무관의 잔해를 치우며 각자의 짐을 챙기느라 꼬박 반 시진을 고생했다.
조금만 있으면 벌써 동이 틀 시각이라, 오늘은 처음으로 새벽 수련을 생략하겠다는 결정까지 내렸다.
“자, 그럼 좀 늘어져라 자 볼…….”
“좋아, 그럼 본좌는 수련을 준비하고 있으마.”
……아, 그러네.
잠이 아니라 수련 시작이구나.
“……천마야.”
“음?”
“그…… 오늘 하루만 쉬면 어떨…….”
“말이 되는 소리를 하거라.”
“…….”
“가뜩이나 연무학관에 온 이후 수련량이 줄었다. 당장은 저 녀석들을 가르치며 네가 얻는 것도 있으니 참고 있다만, 이공간의 수련까지 줄이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피곤한 날에 하루쯤은…….”
“그깟 땡중에게 그렇게 두들겨 맞아 놓고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
“실력이 부족할 때는 노오력밖에 답이 없지. 네가 싫다고 해도 이공간을 만들어 둘 것이니, 괜한 수 쓰지 말고 어서 넘어오도록 해라.”
스륵.
제 할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대로 허공에서 자취를 감춰 버리는 천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무현의 입가에 슬픈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럼 그렇지.’
여윽시 미친놈 중에 제일은 천마 놈이지.
아무튼 그렇게, 연무학관에 온 이래 사무현에게 가장 피로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파마불제인지 뭔지 하는 인간이 혈무관을 무너뜨린 후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명관이라는 새로운 숙소에 어색해 하는 것도 잠시, 사도관도들은 어느덧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전보다 더한 열정으로 반복되는 아침 수련, 저녁 이후의 석식 수련, 정해진 일과대로 반복되는 수업들…….
그리고 사무현이 끔찍하게 여기는 천무신녀와의 지도 비무 수업도, 바로 그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였다.
쾅 콰광! 쾅!
연무대를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진다.
비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며, 사도관도들의 얼굴에는 안쓰러움이, 정도관도들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떠올라 있었다.
쾅!
휘리리릭.
쿠당탕탕!
안면에 정통으로 주먹을 얻어맞은 사무현이 비무대 위를 나뒹굴자, 쓰러진 그를 향해 곧바로 단아란의 일 각이 날아든다.
부웅.
쩡!
단아란의 발이 떨어진 비무대에 작은 균열이 만들어진다.
그것을 확인하자, 가까스로 고개를 비틀어 피한 사무현의 눈이 뒤집어졌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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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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