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이런 미친……!”
“미친?”
반사적인 욕지거리를 들은 단아란이 미간을 꿈틀하자, 벌떡 몸을 일으킨 사무현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항의한다.
“아니, 지금 사람 죽이려고 작정했습니까!”
“뭘 죽여? 피했잖아.”
“피했으니 살았죠! 이런 걸 맞았으면 제가 당당히 따질 수나 있었겠습니까!?”
“피할 거 알고 공격한 거야.”
“알긴 뭘 압니까! 진짜로 겨우 피했는데!
“아, 시끄럽네. 아무튼 살았으니 됐잖아.”
한 손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퉁명스레 대꾸하는 단아란의 모습에, 사무현의 이성을 지탱하던 무언가가 끊어졌다.
“이런 젠장,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못 참으면 뭐? 어쩔 건데?”
“내가 어지간하면 맘 잡고 조용히 좀 살아 보려 했는데! 결국 이렇게 만드네!”
스릉.
괜히 손속만 과하게 만드는 명분이 될까 봐, 쓰지 않았던 천마도까지 뽑아 드는 사무현.
순식간에 달라진 기세에 단아란의 눈이 크게 떠진다.
쾅!
***
“……형님, 정신이 드십니까?”
자신을 내려다보는 익숙한 막휘의 얼굴에,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사무현이 물었다.
“……여긴 어디냐.”
“의무대입니다, 형님.”
“……염병할.”
몸 곳곳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사무현이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어떻게 살긴 살았네.”
“뭐…… 그래도 죽이진 않으니까요.”
“죽이진 않지.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 패기는 하지.”
퉁퉁 부은 얼굴을 매만지는 사무현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막휘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 오늘은 왜 그렇게 덤비셨습니까? 평소처럼 적당히 맞아 주다 끝내시지.”
“끄응……. 나라고 이러고 싶었는 줄 아냐? 오늘 그 여자 눈 못 봤어?”
“눈이요?”
“어, 갑자기 뭐에 홀렸는지 아주 그냥 죽이려고 들던데?”
실제로 비무대에 균열까지 가게 했던 그 발차기는 정말 위험했다.
어지간하면 맞아 주고 기절한 척 끝내려 했는데, 거기에 실린 힘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비틀었다.
“젠장, 왜 그렇게 매 수업마다 나만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끄응.”
“그야 첫 수업 때, 형님이 괴물이니 뭐니 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아직도 기억한다고?”
“아니면 형님이 기절했다 깨어났던 그때, 너무 강한 인상을 심어 줘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막휘의 의견에 사무현의 시선이 천마에게로 돌아간다.
“……피곤하군. 오늘은 먼저 들어가 있도록 하지.”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자 여느 때처럼 홀연히 모습을 감춰 버리는 천마.
순식간에 화풀이 상대가 도망가 버리자, 어금니를 빠드득 깨문 사무현이 다시금 침대에 몸을 누인다.
풀썩.
“아무래도 열받아서 안 되겠다. 잠 좀 잘 테니, 석식 때 나 좀 깨우러 와라.”
“알겠습니다, 형님.”
“편히 쉬십시오, 형님.”
사무현의 손짓에, 막휘를 포함해서 의무대에 찾아왔던 십수 명이 몸을 일으킨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사무현은 곧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이 상황의 원흉인 천마 놈과 한바탕 살풀이를 해야 할 모양이었다.
***
꼴꼴꼴.
“……끄윽. 재미있는 일이로고.”
창가를 통해 사무현이 누워있는 자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건물 위에서, 반쯤 드러누운 신불이 홀로 술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보자……. 오늘은 세 번.”
술병을 쥔 반대편 손가락 하나를 더 접으며 신불이 두 눈을 가늘게 뜬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몇 번이나 둘러본다는 말이지.’
사실 그리 이상한 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습관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고, 무언가를 생각할 때 허공을 응시하는 것은 꽤나 흔히 보이는 습관들 중 하나니까.
다만 사무현의 경우, 허공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라도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라면 특이한 점일 것이다.
“역시…… 그 외엔 별다른 건 없군.”
직접 몸으로 부딪쳤을 때는 하루아침에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먼 거리에서 관찰할 때는 그리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저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이 상상 이상으로 부지런한 녀석이고, 사도관에 대한 애착이 아주 높다는 정도?
‘슬슬 다음 단계를 시작할 때로군.’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라.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고 하지만, 결국 행동 없이 바라만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생각을 마치자, 술병에 남은 술을 한입에 털어 넣은 신불이 지붕에서 가볍게 몸을 날렸다.
***
“자,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수, 수고했다.”
“고생했다…….”
“으음…….”
석식 수련을 마치고 우명관의 입구에서 헤어지면서, 오늘도 모든 힘을 소진한 적월 일행이 발걸음을 옮긴다.
석식 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제대로 인사를 할 힘도 없어 보였는데, 그래도 이제는 이골이 났는지 제법 어색한 미소도 지어 보일 줄 안다.
그렇게 무심히 돌아서려던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사무현이 다급히 그들을 불렀다.
“아, 잠깐만요.”
“음……?”
“내일부터 선배들은 아침 수련 안 나오셔도 돼요.”
“뭐?”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사무현의 말에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뜨는 나혼수와 만패.
하루하루가 생사를 넘나드는 것처럼 버겁기는 했지만, 사무현과의 수련이 시작된 이후 매일같이 달라지는 자신을 마주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몸은 괴롭지만 가슴은 뿌듯한 나날을 보내던 그들에게, 이는 난데없는 비보가 아닐 수 없었다.
“우, 우리가 무슨 실수를…….”
“드디어 합격인 모양이구나.”
당황한 나혼수가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들과는 달리 빙긋 미소를 머금은 적월이 사무현을 바라보며 묻는다.
“이제 우리끼리 아침 수련을 진행해도 된다는 의미겠지?”
“예, 바로 보셨어요.”
“고맙다. 드디어 오십 기도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진심 어린 적월의 음성.
처음부터 다시 쌓아 나간다는 이 느낌을, 드디어 그와 같은 기수의 관도들에게도 느끼게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뭐, 선배가 그동안 잘 해내셨으니까.”
눈에 띄게 밝아지는 적월의 얼굴에, 함께 미소를 머금는 사무현.
그 짧은 눈인사를 끝으로, 먼저 등을 돌린 사무현이 우명관 내부로 발걸음을 옮긴다.
“……생각보다 훨씬 좋아하는구나.”
“그렇겠지.”
저 적월이라는 선배는 유독 사도관에 책임감과 애정이 깊다.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자신과는 달리, 정체되어 있는 다른 이들을 보며 내심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 혼자만의 성취가 아닌 사도관이 정도관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니까.
‘이제 사도관의 문제들은 거의 해결됐고, 남은 건 내 문제뿐인데…….’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그 빌어먹을 천무신녀와의 수업.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는 그 미친 여자로부터 과연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에휴……. 어디 반신불수라도 안 되면 다행…….”
벌컥.
탁.
문을 열기 무섭게 도로 닫은 사무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뭘 잘못 봤나?”
그의 안락한 숙소 안에, 웬 땡중 하나가 술병을 기울이고 있는 걸 본 것 같은데?
“아니, 잘 본 게 맞다.”
“뭐라고?”
두 눈을 추켜 뜨는 사무현을 향해 천마가 묘한 미소를 머금는다.
“염려 마라. 오늘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닌 것 같으니. 사실 아까 전부터 녀석이 들어와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니, 그걸 왜 이제 말해?”
“미리 말한다고 숙소에 들어가지 않을 것은 아니지 않느냐?”
“…….”
“그러고 사실 며칠 전부터 궁금하던 차였다. 그날 이후 줄곧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데…… 적의는 보이지 않고 도통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더구나.”
“…….”
“들어가 보아라. 설마 지난번보다 큰일이야 있겠느냐?”
……그래.
혈무관을 통째로 날려 먹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있을 리는 없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인간이랑 독대는 좀 아닌 것 같은데.
문고리를 잡고 사무현이 갈등하던 그때, 방 안쪽에서 느긋한 땡중. 신불의 음성이 들려온다.
“……밖에서 무얼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술상을 들여왔으니 어서 와 목이나 좀 축이시는 게 어떻겠는가?”
세상에…… 술상을 들였으니 목이나 축이라고?
저게 명색에 스님이라는 사람이 할 말인가?
역시, 제정신이 아닌 인간과는 상종도 하지 않는 게 상책…….
“본승은 지난번의 일에 대해 ‘금전적인 보상’을 하고 싶어 찾아왔네.”
벌컥.
금전적 보상이라는 말이 들려오기 무섭게 방문을 열어젖힌 사무현이, 이내 눈이 마주쳐 버린 신불을 어색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이내…….
“크흠흠! 으흠!”
“…….”
“거, 너무 뻔뻔하시네요, 여기가 어디라고…….”
“…….”
“그런데 보상금은 얼마나……?”
“……우선 앉아서 이야기하세.”
말 그대로 술상을 준비해 둔 신불이 맞은편 자리를 권하자, 사무현이 입꼬리를 씰룩이며 그 자리에 앉는다.
좀 제정신이 아니긴 하지만 상대는 그 유명한 소림의 방장.
체면이 있어서라도 결코 섭섭한 보상금을 논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우…….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막 몸 곳곳이 쑤셔요. 오늘도 의무대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는데…….”
“음……? 그건 천무신녀에게 당했기 때문이 아닌가?”
아…… 알고 있었나?
하루 종일 멀찍이서 따라다녔다는 말을 깜빡했네.
“……뭐, 그것도 한몫했다는 얘기죠.”
어색하게 말을 얼버무린 사무현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다.
“아무튼 어설프게 넘어갈 생각은 마십시오. 그날 저를 포함해서 우리 애들이 당한 걸 생각하면…….”
쩔그렁.
사무현의 말을 끊고, 품속에서 묵직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 술상에 올려두는 신불.
목을 쭉 뺀 사무현이 흘깃 그 안을 들여다보자,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찬란한 금자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자네와 대화가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액수를 그리 섭섭하게 주고 싶은 마음은 없네. 내가 명색에 소림의 방장 아닌가?”
“…….”
“어떤가? 나와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시겠는가?”
그 말과 함께 사무현에게 빈 술잔 하나를 건네는 신불.
그러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그가 건넨 술잔을 받아 든 사무현이, 돌연 표정을 굳히며 술잔을 술상 위에 내려놓는다.
탁.
쓰윽.
그러고는 술상 한쪽에 세워진 술병을 공손히 집어 들어 신불의 빈 잔으로 가져간다.
“먼저 한잔 따라 드릴게요.”
“…….”
“그래도 연장자이신데.”
“…….”
“헤헤.”
……어쩌면, 생각보다 대화가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신불이었다.
***
“허어…… 그랬구먼. 여태껏 그 많은 고생을 하셨는가.”
신불의 음성에서 진심으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술자리를 시작한 지 꼬박 반 시진이 되어, 신불은 사무현의 그간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장군귀에 씌어 집에서 쫓겨났던 이야기들.
거지 생활을 하면서도, 개방의 거지들에게 텃세를 당해 홀로 지내 온 외로운 나날들.
마지막에 천마신교에 납치되었던 이야기와 십만대산의 괴물에게 붙잡혔던 이야기는 제외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실로 기구하다 할 만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삶을 살아오며 용케 그만한 무공을 익혔구먼…… 실로 다행인 일일세.”
“뭐…… 운이 좋았지요. 여러모로.”
사실 어찌 보면 지독하게 운이 나쁜 것이겠지만, 그 와중에 실낱같은 기회를 얻었다.
그 말을 하며 사무현이 쓴웃음을 머금자, 비로소 때가 무르익었음을 깨달은 신불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두 눈을 반짝인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 떠돌이 생활을 하던 자네에게 어떤 기연이 찾아왔기에, 그런 고강한 무공을 익힌 것인가?”
“아뇨, 뭐…… 그다지 고강하다고 할 만한 무공은 아닌데.”
어색한 대답과는 달리, 사무현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번진다.
어느새 사무현 자신 또한, 천마도법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무현의 낌새를 읽어 낸 신불이 은근히 그의 기분을 추켜세운다.
“허어, 그게 고강하다고 할 만한 무공이 아니라면 무엇을 고강하다고 해야 할꼬? 겸손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일세, 시주.”
“크흠흠……. 뭐…… 우연이었어요. 이상한 집단에 붙잡혔다가 거기서 만난 인연인데…….”
“이상한 집단?”
“아마 말해도 잘 모를 거예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작은 집단이라…….”
혹시 모를 질문의 가능성을 다급히 끊어 놓으며 사무현이 말을 잇는다.
“아무튼, 그곳에서 만난 친구한테 배운 무공이에요. 탈출하는 데 도움을 톡톡히 받았지요. 처음에는 그냥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제는…….”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있어요, 라는 뒷말을 애써 삼키며 사무현이 씩 미소를 머금는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흐음……. 작은 집단에 잡혔다가 만난 신비한 인연이라…….”
사무현의 말을 곱씹으며 신불이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어투로 보아 많은 내용을 생략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면 문제는, 현 무림에 저만한 도법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이 얼마나 되느냐는 사실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집단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역시,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이라면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도 유명할 수밖에 없다.
무파의 특성상, 힘을 가진 이들은 결국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우선 정파 중에는 하북팽가…… 그리고 격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명월도문(明月刀門)과 적석문(積析門).’
신불이 가진 방대한 정보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헤집고 지나다닌다.
‘음지에서는 암천막 정도일 테고……. 사파에서는 흑광도문(黑光刀門)이나 사룡문(四龍門)…… 장강수로채(長江水路寨)…….’
장강수로채의 도법 자체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채주인 수룡왕(水龍王)의 도법은 사파에서 그 악명이 높다.
‘그리고 새외까지 굳이 꼽자면…….’
여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던 신불의 눈이 일순 날카롭게 빛난다.
‘……마교(魔敎).’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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