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대표 형님이 저러시는 건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질 않네.’
‘세상에, 저게 어딜 봐서 땀이야? 비 맞았다고 해도 믿겠다.’
비록 한겨울은 지나갔다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결코 따스하다 말할 수 없는 날씨다.
오죽하면 한쪽에서 그들의 아침 수련을 구경하는 신불 스님도 두꺼운 모피 옷을…….
‘……신불 스님?’
아니, 저 스님은 또 언제부터 저기 있었어?
하여튼 알고 지낸 지도 벌써 한 해가 지나가는데, 저 스님은 무엇 하나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자신들끼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보면 함께 끼어 있고, 또 어디서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한쪽 손에는 언제나…….
“……저분은 아침부터 술이시네.”
“음…….”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무현의 수련을 바라보는 신불.
그의 등장에 사도관도 몇몇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사무현의 도가 한 번 더 아래로 내려온다.
스르륵.
“……일만.”
이윽고 모든 개수를 채운 사무현이 긴 숨을 내쉬며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아 낸다.
하지만 이미 무복 자체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으므로 그런 노력은 별반 효과를 볼 수 없었다.
“끄응…… 날이 풀리니 땀이 더 나네.”
짧게 투덜거린 사무현이 땀에 젖은 무복 상의를 벗어 버린다.
그러자 흡사 나무껍질을 연상하게 할 만큼 세밀하게 갈라진 완벽한 근육이 모두의 눈에 들어온다.
“오오……. 몇 번을 보아도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몸이로다.”
사도관도들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 신불이 중얼거리자, 어느새 고개를 돌린 사무현이 그를 향해 인상을 찌푸린다.
“아니, 왜 또 거기서 구경하고 계세요? 저희 수련 중일 때는 오지 마시라니까?”
“하하, 어찌 또 그러시오? 시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의 몇 안 되는 낙을 그리 타박하지 마시구려.”
“우리 아침 수련을 구경하는 게 왜 신불 스님 낙이에요?”
“음……. 시주들을 보고 있으면 옛 생각이 나서 말이오.”
사무현의 말에 아련한 미소를 머금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신불.
어쩐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숙연함을 갖게 만드는 분위기였지만, 사무현의 얼굴은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시려고요?”
“……소승도 시주들과 비슷한 연배였을 때는, 소림 무공의 기본이 되는 육체 단련을 위해 아침마다 그리 수련을 하곤 했소이다.”
“…….”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는 강해질 수 없음을 알았기에, 남들보다 한 시진 일찍 일어났고 한 시진 늦게 잠을 청했지요. 시주들을 보고 있자니 그때의 생각이 눈에 선해서 말이외다.”
“……스님.”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신불의 모습에 옅은 미소를 머금는 사도관도들.
그리고 술 한 잔을 더 기울인 신불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그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허허, 시주들 덕분에 지금의 본승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곤 하오. 모두가 고생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술맛이 꿀맛이 되어 버리니, 어찌 인생의 낙이 아닐 수 있겠…….”
“가세요, 그냥 제발 좀 가요.”
여지없이 근엄하게 시작해 헛소리로 끝나는 신불의 말을 봉하며 등을 떠미는 사무현.
그에게 밀려 주춤주춤 물러나던 신불이, 문득 떠올랐는지 다급히 사무현에게 고개를 돌린다.
“아, 잠깐만. 내가 아직 하려 했던 말을 전하지 못했소.”
“아니, 또 무슨 말을 하시려고요?”
“하하, 이제 닷새 뒤면 연무학관의 휴관(休官) 기간이 아니오?”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신불의 모습에, 사무현이 떨떠름하게 반문한다.
“그런데요?”
“시주나 본승이나, 한 달 동안 돌아가 있을 고향도 없는 처지가 아니오?”
“……그래서요?”
“에헴……! 저 멀리 사천에 유명한 기루가 하나 있소. 기생들의 미색이 하늘에 닿았다 하여 천미루(天美樓)라고 불리는 곳이오.”
“…….”
“어떻소이까? 우리 함께 견문을 넓히러 며칠간 여행이나 다녀오는 것이. 일 년이나 이곳 연무학관에 틀어박혀 있었더니, 영 좀이 쑤시지 않소?”
기생들의 미색이 하늘에 닿았다는 기루라…….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내라면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는 하다.
하지만…….
“……스님.”
“왜 그러시오?”
“이제 진짜 귀속(歸俗)하셨어요?”
진지하게 진심을 담아 사무현이 질문을 던진다.
넘치는 호기심? 그럴 수 있다.
술 또한 곡차(穀茶)라는 이름으로 마시는 승려들이 있다 들었으니, 이 또한 뭐 그럴 수 있다.
물론 저건 누가 봐도 주정뱅이의 모습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스님이라는 사람이 모피 옷을 입었을 때에도 할 말을 잃었는데, 기생들을 보러 기루에 가자고?’
저기서 머리만 기르면 완벽한 속세인…… 아니, 솔직히 지금도 언뜻 보면 스님인 줄도 모른다.
승려복 위에 모피 옷을 걸치고 다니는 스님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사무현의 말에 신불은 짐짓 섭섭하다는 듯 말을 받았다.
“허어, 시주.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본승은 소림의 방장직을 내려놓았을 뿐, 살아서나 죽어서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이외다.”
“무슨 불자가 그렇게 속세에 빠져 사세요?”
“아미타불……. 그것은 시주가 불법에 대해 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외다.”
사무현의 물음에 경건한 얼굴로 반장을 하며 신불이 말을 잇는다.
“무릇 불법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소이다. 한데 그까짓 사소한 계율을 지키느라 중생들이 느끼는 오욕칠정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구제할 수가 있겠소?”
“…….”
“내가 이러는 것도, 다 보다 높은 불법을 펼치기 위함이오.”
어쩐지 억지 같으면서도 현기가 느껴지는 신불의 대답.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실 알고 보면 진정한 고승(高僧)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그래서, 가시겠소? 기루.”
……아니, 역시 그냥 땡중인 것 같다.
“흠……. 정말로 구미가 당기긴 하는데, 죄송하지만 이번엔 선약이 있네요.”
“선약? 나 말고 누가 기루에 가자고 했소?”
“……아뇨, 기루는 아니고.”
한 손을 휘저은 사무현이, 흘깃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살암을 돌아본다.
“쟤하고 같이 암천막이라는 곳에 가 보기로 했어요.”
“응? 암천막에 말이오?”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신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재차 묻는다.
“아니, 그 악(惡)의 소굴에 시주가 무슨 이유로…….”
“크흠……. 크흠!”
신불의 말에, 한쪽에서 열심히 헛기침을 하는 청사.
하지만 학관주가 주는 눈치도 무시하는 신불이, 한낱 후기지수가 주는 눈치 따위를 살필 리 만무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불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살암에게로 향한다.
“설마…… 암천막에서 시주를 포섭하려 했다거나…….”
“에이, 포섭은요, 무슨. 그런다고 넘어갈 사람인가요? 제가.”
“그러면…….”
“그냥 뭐, 구경하러 가는 거죠. 어지간하면 안 가려고 했는데, 암천막에서 무슨 기념식인가 뭔가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기념식?”
사무현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 신불.
이에 불쾌감 어린 표정을 애써 지워낸 살암이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일 년에 한 번씩, 암천막이 음지를 통일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허어……. 그런 것을 다 기념한다는 말인가? 말이 좋아 음지 통일이지 사람들만 숱하게 죽어 나갔을 터인데…….”
“……예. 해서 대대적으로 크게 하지는 않고, 몇몇 귀빈들과 암천막의 주요 인사들만 모여 조촐하게 진행됩니다.”
“그래? 그런데 그런 행사에 뭐 볼 것이 있다고 사 시주를 초청했는가?”
“귀빈들의 경우…… 개인적인 시간을 내어 먼 거리를 달려온 이들이 많지요. 해서 그들에게는 특별한 답례품으로 보답을 하곤 합니다.”
거기까지 대답을 마친 살암이 사무현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 말을 해 주었더니, 냉큼 가고 싶다 하더군요.”
“크흠흠……! 크흠!”
살암의 말에 헛기침을 하며 허공을 올려다보는 사무현.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신불이 질문을 던진다.
“아니, 대체 그 답례품이 무어라고 그 악의 소굴까지 들어간다는 말이오?”
“……금이요.”
“……음?”
“금자 열 냥에 해당하는 황금을 노잣돈으로 준다고…….”
“아미타불, 본승도 같이 갑시다.”
어느새 사무현의 손을 붙잡으며 두 눈을 반짝이는 신불.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사무현이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자, 신불이 살암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재차 말을 꺼낸다.
“본승도 꼭 암천막의 행사에 참가하고 싶소. 같이 갑시다.”
“……죄송하지만, 제가 대동할 수 있는 인원이 모두 채워진지라.”
“아니오, 본승도 꼭 같이 가고 싶소이다.”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같이 갑시다.”
“…….”
“……제발.”
***
홍동(洪洞).
산서지역 내에서, 도박장과 기루가 어우러져 대규모 유흥지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나 이곳에 위치한 환영루(歡永樓)는 칠 층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건물로, 아래 세 층은 도박장, 위의 세 층은 기루로 쓰여 하루에도 헤아리기 힘든 수의 손님들이 오가는 관광 명소다.
하지만 그곳의 가장 높은 최상층은, 초대받지 않은 이들은 누구도 발길을 할 수 없다.
암천막의 본부에 특급 업무를 의뢰한 귀빈들만이 오가는 층.
그리고 그 최상층에, 한 사내가 홀로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탁, 탁.
‘……늦는군.’
온몸이 근육질로 이루어진 거구의 사내가, 검지로 술상을 두드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이곳에서 기다리기 시작한 지 벌써 일각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이곳에 잠입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인데, 이렇게까지 오래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그를 아래로 깔아 보고 있다는 노골적인 표현이리라.
‘……시건방진 것들.’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당장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함께 하고 있지만, 거사(巨事)를 앞두고 쓸데없는 기 싸움이나 벌이려 하다니.
‘이빨도 남아 있지 않은 늙은 범이, 아직도 제가 숲의 왕인 줄 아는 겐가?’
미간 사이의 골이 깊어지던 사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쓰윽.
“어디 볼일이라도 생겼나?”
“……!”
어두운 방 한쪽 구석에서 들려온 섬뜩한 음성에 사내의 머리털이 쭈뼛 선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고수더라도 그의 감각을 속이면서 잠입 할 수는 없을 것인데, 하면 지금까지 줄곧 이곳에서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지금까지 기척을 속일 수 있었다면, 언제라도 그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리라.
꾸욱.
상대에게 시작부터 기세를 빼앗기긴 했지만, 사내 또한 힘 하나만으로 이 자리까지 온 인물이다.
어느새 마음의 동요를 지우고 고개를 돌린 사내가 두 눈에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낸다.
“……몰래 숨어 있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군. 대체 얼마나 시간을 낭비한 거지?”
“시간 낭비는 아니지. 그대가 조금만 더 성급한 이였다면, 영영 내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을 테니까.”
“……뭐라?”
어떤 의미로든 이중적인 뜻을 담은 말을 내뱉으며,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
검은 무복에 수놓인 붉은 문양.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소름이 돋게 만드는 광기 어린 눈빛.
은은하게 공기 중에 풍기기 시작한 지독한 마기에, 두 주먹을 움켜쥔 사내가 낮은 음성으로 경고를 뱉는다.
“……지금 나를 도발하는 건가?”
“하하, 도발? 고작 그대 따위를 상대로?”
“이……!”
“너와 거래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라.”
한순간, 입가에서 웃음기를 완전히 지워 낸 상대가 사내의 눈을 노려보며 말한다.
그러자 상대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사내가, 결국 입술만 질근 깨물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기억하고 있소.”
“하면 되었다.”
어느새 다소 누그러진 어투로 돌아온 상대가, 그를 향해 접힌 서류 한 장을 건넨다.
“숙지하고 폐기하라.”
“……알겠소.”
“거사가 코앞이다. 쓸데없는 변수가 끼어들지 않도록 항시 주위를 살피도록.”
스스슥.
말을 마친 상대가 어둠 속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곧이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대하기 짝이 없던 존재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야말로 완성의 경지에 오른 귀식대법(龜息大法).
이에 마른침을 한번 삼킨 사내가, 잠시 후 접혀 있던 서지를 펼쳐 내용을 읽어 내린다.
형형한 두 눈에 날카로운 빛이 번뜩이는 것도 잠시.
잠시 후 사내의 손에서 일어난 삼매진화(三昧眞火)가 그가 읽던 서지를 완전히 불태워 버렸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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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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