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응성(應城).
호북에 위치한 최대 환락가(歡樂街)이자 유흥지다.
산서의 홍동마저도 몇 수 접어 줄 만큼, 수많은 기루와 도박장, 심지어 암시장과 정보 상인들마저도 즐비해 있는 곳이다.
여기까지는 언뜻 무법천지와도 같은 느낌을 연상케 하지만, 실제로 응성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수는 호북 전역을 놓고 비교해 보아도 상당히 적은 편에 속한다.
이곳에서 어설픈 사고나 범죄를 일으키는 것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모두가 공공연히 알고 있는 까닭이다.
중원의 음지를 통일한, 사실상 중원에서 무림맹 다음으로 거대한 세력.
바로 이곳 응성이, 암천막(暗天幕)의 본거지인 까닭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허어……. 이야아……. 이거……. 이야아…….”
“어우……. 이야아……. 우와…….”
……부끄럽다.
사무현 일행이 탄 마차가 응성의 환락가에 들어서기 무섭게,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막휘와 손익패가 기루 입구에 서 있는 기녀들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떡 벌어진 입에서 침이라도 흘러나올 기세였다.
흡사 시골 촌뜨기 같은 그들의 모습에 마차 안의 적사와 청사가 노골적으로 웃음을 참아 내고 있다.
하지만, 사무현을 진정으로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아미타불……. 오오……. 아미타불……!”
……두 손으로 막휘와 손익패의 머리를 짓누르고, 창문에서 고개를 쭉 빼내어 부지런히 주위를 둘러보는 신불.
아……. 저 스님은 대체 왜 저러는 걸까.
한 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사무현이, 이윽고 살암에게 고개를 돌린다.
“……야.”
“뭐지?”
“내가 신불 스님은 데려가지 말자고 했지.”
사무현이 으르렁거리듯 이야기하자, 살암이 실소를 흘리며 느긋하게 상체를 등받이에 기댄다.
“하면 어찌하라는 말이냐? 인원이 다 차서 안 된다고 하니, 우리 중 하나를 기절시켜서라도 끼어들 기세였는데.”
“끄응…….”
“그나저나, 너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냐?”
“음?”
“나나 청사야 이곳에서 줄곧 살아왔으니 대수로울 것 없지만, 너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이 처음이 아니냐?”
“뭐……. 그거야 그렇지.”
“오히려 저들의 반응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괜한 체면 차릴 것 없으니, 구경하고 싶다면 마음껏 구경해도 좋다.”
“흐음…….”
살암의 제안에 사무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창밖을 흘깃 바라본다.
뭐…… 사람들이 제법 많기는 하지만 저 정도는 떠돌이 생활을 할 때 여러 번 보았고, 기녀들의 미모가 하나같이 출중한 편이긴 했지만 그 또한 사무현에게는 그리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유인즉…….
‘천마신교 시비들이 예쁘긴 더 예뻤지.’
칠대 천마였던…… 아니, 칠대 천마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모시던 시비들.
하나같이 출중한 외모를 가진 이들이 십수 명씩 그의 거처에 머물렀지만, 사무현은 그 누구에게도 마음의 동요를 느낄 수 없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의심을 받아 자신의 목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가시방석인데, 주위가 아무리 꽃밭이라 한들 그것이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이곳에서 사무현이 동요하지 않는 것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여기저기 칼 들고 숨어 있는 놈들 천지네.’
시야에 드러난 것은 꽃밭일지 모르나 보이지 않는 그늘 아래에 독사 같은 것들이 몸을 숨기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고도로 훈련을 받은 이들.
그러니 화사한 꽃에 현혹돼 헤벌레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사무현이 보기에 어찌 한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신불 스님쯤 되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피식 실소를 한번 흘린 사무현이 이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살암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긴다.
‘특이한 녀석이군.’
사실 그가 굳이 이 길을 택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살암의 최대 목적은 사무현을 암천막으로, 정확히는 자신의 수하로 포섭하는 것.
그러기 위해 먼저 새로운 별천지를 보여 주어 탐욕을 일으킬 요량이었다.
이곳 환락가의 모든 것들이 자신의 발아래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탐욕이 없는 이라도 권력에 욕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예상을 깨고 사무현은 정말로 별다른 동요 없이 덤덤한 반응만 보일 뿐이다.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그건가?’
금자 몇 냥에 벌벌 떨고 욕심을 부리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출중한 무공과는 별개로 욕심이 많고 조심성이 없는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마냥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뭐…… 생각처럼 쉬우면 오히려 재미가 없지.’
어차피 이곳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기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암천막의 본거지로 들어서게 된다면, 그들이 단순한 음지의 집단 따위가 아님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
쿵!
“충! 소막주님을 뵙습니다!”
“소막주님을 뵙습니다!”
암천막의 본거지로 보이는 으리으리한 크기의 장원에 도착하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십여 명의 흑의 무사 중 하나가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춘다.
어느새 마차에서 내린 살암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그들을 향해 가볍게 손짓을 해 보인다.
“길을 열어라.”
“존명!”
스스스.
문을 지키고 있던 이들 하나하나가 일류 이상의 무위를 얻은 무사들이다.
특히나 그들의 선두에서 예를 갖춘 흑의무인은, 한눈에 보아도 절정에 오른 고수다.
그런 그들을 손짓으로 부린 살암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까닥인다.
“가지. 이제부터는 좀 걸어야 한다.”
저벅저벅.
짤랑짤랑.
장신구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살암이 앞장서서 걸어가자, 그를 호위하기 위해 적사와 청사가 그 뒤를 따른다.
흥미와 경계가 반반 섞인 눈으로 주위를 한번 둘러본 사무현이, 이내 피식 웃으며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가자.”
“예.”
“예, 형님.”
조금 전 적사와 청사처럼 사무현의 뒤를 바짝 붙어 발걸음을 옮기는 막휘와 손익패.
그리고 그런 그들과 일 장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신불이 주위를 둘러보며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미타불……. 강호에서 들려오던 암천막의 이름이 허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로구나.’
느긋한 발걸음과는 달리 내심 감탄을 흘리는 신불.
그가 아는 한, 음지(陰地) 세력의 힘은 아무리 커도 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중원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은밀한 음지 세력이라 불렸던 살막마저도, 그 천마신교와의 전투에서 하루를 채 버티지 못하고 괴멸하고 말았으니까.
애초에 돈으로 움직이는 이들이니만큼 수가 많아도 무공의 질은 낮을 수밖에 없고, 목숨을 걸고라도 자신의 세력을 지켜야 한다는 의리나 기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한데 어찌 이들은…….’
하나하나의 수준이 어지간한 대문파의 무인들 못지않고, 저 안쪽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이들 중에는 소림의 십팔나한을 연상케 하는 기세도 섞여 있다.
이것이 지금의 살왕(殺王)이 만든 암천막이라면, 그는 분명 과거의 암왕(暗王)을 넘어섰다고 할만하다.
자신 하나만의 강함에 만족하지 않고, 세력 전체의 성장을 추구했으니까.
‘……이대로라면, 저들이 양지로 나올 일도 머지않았군.’
힘이 포화되면 반드시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미 이곳에 있는 저들의 전력만으로도 어지간한 구파에 비견될 만하니, 머지않아 저들은 사파의 세력마저 집어삼켜 무림맹과 세력을 양분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아마 살암이 신불을 마지못해 데려온 것도, 현재 암천막의 힘을 은연중에 보여 주기 위함일 터.
‘아미타불……. 이거 앞으로의 중원이 생각보다 재미있어지겠구나.’
조용히 미소를 머금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갑작스레 저 앞에서 느껴진 거대한 존재감에 신불의 두 눈이 커진다.
“……음?”
고개를 들자 어느새 앞장서서 정문을 들어선 이들의 발걸음도 멈춰 서 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마치 왕과 같이 호화로운 옷을 입은 사내가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현 음지의 지배자이자 암천막의 막주, 살왕(殺王) 살령(殺靈)의 등장이었다.
***
……꿀꺽.
‘……강하다.’
살암의 앞으로 나타난 사내, 살령의 등장에, 사무현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신불과는 다르다.
신불이 드넓게 흐르는 강을 보는 느낌이었다면, 눈앞에 있는 사내는 당장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수 있는 집채만 한 호랑이를 보는 기분이다.
어느새 주변을 압도해 나가고 있는 기묘한 살기에 사무현의 감각이 맹렬하게 반응한다.
그러던 그때…….
“쯧쯧, 뭘 그리 긴장하느냐?”
“…….”
“그래 봐야, 조금 재미있는 잡것에 불과하거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만한 천마의 음성.
하지만 우습게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근육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앞을 막고 있던 살령이 무심히 입을 열었다.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구나.”
호화로운 복장과 어울리지 않게 무미건조함이 느껴지는 음성.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익숙한지 살암은 도리어 옅은 미소와 함께 그에게 포권을 해 보인다.
스윽.
“대암천막의 소막주 살암이, 스승님을 뵈옵니다.”
“음.”
살암의 인사에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살령.
냉랭하기 그지없는 그의 눈빛이, 살암을 지나쳐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무현과 일행들에게로 향한다.
“저들은 누구냐?”
“이번 행사의 객(客)들입니다.”
“객……?”
살암의 말에 살령이 흥미로운 눈빛을 빛내며 조금 더 자세히 그들을 살핀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시선이 사무현의 앞에서 멈추더니 한쪽 입꼬리가 보일 듯 말 듯 움직인다.
정곡을 찌른 살령의 물음에 살암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진다.
살암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살령의 얼굴에 희미하게 흡족함이 맴돈다.
그렇게 얼마나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윽고 천천히 두 팔을 벌린 살령이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암천막에 온 객들을 환영하네. 본인은 현 암천막의 막주인 살령이라고 하네.”
“그, 그 이름도 높으신 살왕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손익패라고 합니다.
“……막휘입니다.”
손익패가 예의를 차리고 나서자 막휘가 마지못한 듯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춘다.
아무리 녹림과 암천막의 사이가 껄끄럽다고는 하지만, 암천막주인 살왕의 존재에 예의를 갖추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그들이 예를 갖추자, 자연스레 살령의 시선이 사무현에게로 향한다.
쓰윽.
“……사무현입니다.”
다행히 모나지 않게 예를 갖추며 사무현이 포권을 해 보이자, 막휘와 손익패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그들의 인사가 끝나자 살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최대한 편안할 수 있도록 조치해 둘 것이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말하도록 하게, 그리고…….”
거기까지 말을 마친 살령의 시선이, 그들과 조금 동떨어져 서 있는 신불에게로 향한다.
“……파마불제께서도 암천막에 방문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따로 좀 독대를 했으면 하오니, 저를 따라와 주시지요.”
“음……. 그러도록 하세.”
“그럼 다들 편히 쉬도록 하게.”
저벅저벅.
말을 마친 살령의 뒤를 따라 뒷짐을 지고 발걸음을 옮기는 신불.
잠시 후 그들의 모습이 멀어지자 살암이 모두를 한번 둘러보고는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도 가지. 특별히 귀빈실로 안내할 테니.”
“아……. 예!”
“크흠…….”
새삼스레 암천막과 살암의 존재를 재확인한 손익패와 막휘가, 다소 굳은 얼굴로 그 뒤를 따른다.
사무현도 함께 발걸음을 떼려던 그때…….
“……음?”
“……왜 그래?”
어디론가 고개를 돌리는 천마의 모습에, 사무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돌아본다.
“뭐라도 있어?”
“흐음……. 기분 탓인가?”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잘못 느낀 모양이다.”
“……싱겁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천마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사무현.
한편 무언가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지, 두 눈을 가늘게 뜬 천마의 시선은 한동안 더 저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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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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