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아, 신불 스님이구나.
여기가 삼 층인데 누군가 했…….
“……왜 문은 내버려 두고 창에서 그러고 계세요?”
황당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무현의 질문에, 창밖에서 신불의 너털웃음이 흘러들어 온다.
“허허, 계단을 타는 것보다 이쪽이 월등히 빠른데 굳이 정문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 않소?”
“……말은 진짜.”
결국 혀를 내두르며 신불이 매달린 창문을 열어 주는 사무현.
그러자 개구리처럼 벽에 바짝 붙어 있던 신불이 슬금슬금 방 안으로 들어온다.
등 뒤에 웬 보따리 하나를 메고서.
“그건 또 뭐예요?
“뭐일 것 같소?”
“……괜한 걸 물었네요. 안주라도 들여 달라고 할까요?”
“하하, 되었소. 한평생을 절에서 살았더니 이곳의 기름진 음식이 입에 맞지 않더이다.”
그리 말하며 보따리에서 두 개의 술병을 꺼내 든 신불이, 사무현에게 한 병을 내밀며 웃어 보인다.
“타지의 낯선 풍경을 안주 삼는다면, 씹을 것이 없어도 술 한두 병이 문제겠소?”
“참…….”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맑은 신불의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그에 대한 탐탁지 않았던 생각들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
다소 독특한 행동거지를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선한 사람이니까.
결국 그를 따라 미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신불이 건넨 술병을 받아 들었다.
***
“하아……. 피곤하군.”
털썩.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살령이 긴 숨을 내쉬며 침소에 걸터앉는다.
신불과의 기 싸움을 벌이고, 행사를 참여하러 온 귀빈들을 모두 만났다.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그에게 날아온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암천막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다스리는 권력자로 보일 뿐이겠지만, 실제로 암천막주의 일상은 고단한 업무의 연속이다.
특히나 이번처럼, 보고서의 내용이 심상치 않은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산서 인근에서 천마신교의 장로로 추측되는 이를 발견했다라…….’
평소에도 산서 인근에서 마교도라 추측되는 이들을 보았다는 보고서는 종종 올라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빈도수가 잦아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장로급으로 판단되는 이가 목격되었다니.
이는 결코 가벼이 흘릴 만한 사안이 아니다.
근 이백 년간 조용하던 마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새로운 천마(天魔)가 나타났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걸리는 것은 그 하나만이 아니었다.
‘……북천(北天)의 보고서에는 찾아볼 수 없던 내용이었다.’
암천막은 호북을 중심으로, 산서와 섬서를 북천이, 하남과 안휘는 동천이, 강서와 호남은 남천이, 중경과 사천, 감숙은 서천이 다스리고 있다.
중원 전역의 음지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방책이었지만, 최근 들어 살왕이 얻고 있는 정보와 사천살들이 보내오는 보고서의 내용들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 더 진위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암천막의 내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 오래 힘을 쌓아 두었기 때문이겠지.’
이번 행사를 끝으로 양지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쌓이고 쌓인 암천막의 힘이, 내부에서 터져 버릴지도 모르니까.
‘우선 행사에만 신경 쓰자……. 이 행사만 마무리되면 그때는…….’
그렇게 복잡한 상념을 지워 내며 살령이 막 의복을 갈아입으려는 순간이었다.
“고민이 많은 얼굴이구나.”
“……!”
난데없이 방 한쪽에서 들려온 음성.
평소라면 곧바로 그의 검이 뽑혔겠지만, 살령의 입가에는 어쩐지 부드러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에 계셨습니까?”
잠시 후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살령의 눈에 흑의 무복을 입고 있는 백발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제법 많이 늘었지만, 그럼에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 있는 사내의 전신에서는 사방을 압도하는 기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부님.”
살령이 몸을 일으키자, 음영 아래에 서 있던 사내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암천막을 세운 초대 막주이자 살령의 스승.
암왕(暗王) 살천(殺天)이, 꼭 십오 년 만에 암천막에 돌아온 순간이었다.
***
“그간 어찌 지내셨습니까?”
“중원 각지와 새외를 떠돌며 보냈다. 세상이 넓긴 넓더구나.”
냉랭했던 과거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살천.
그런 그의 모습에 함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살령이 빈 술잔에 술을 따른다.
“이제 다시 돌아와 제자의 곁을 지켜 주시는 겁니까?”
“그편이 좋겠느냐?”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사부님께서 안계시니, 수하들의 통제가 전처럼 수월하지 않습니다.”
“내가 없어서가 아니라, 저들이 권력의 맛을 알아 버린 게다.”
살령이 따른 술잔을 비워 낸 살천이 이번에는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을 잇는다.
“사천살에게 독립적인 통치 권한을 주겠다고 한 것은 네 결정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았다만…… 그래도 네 목적대로, 암천막 자체는 무서울 정도의 성장을 하고 있더구나.”
“예, 본격적으로 눈덩이가 굴러가기 시작해, 이제는 제가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나, 일전에도 말했듯이 주의해야 한다. 너의 체계는 조직을 전체적으로 강하게 만들었지만, 음지를 지배하는 것은 결국 힘이다.”
거기까지 말을 마친 살천이 자신이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을 덧붙인다.
“네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저들은 미련 없이 네가 준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할 것이다. 그러니 결코 암천막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잊게 해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살천의 말에 고개를 숙여 보인 살령이, 문득 떠오른 듯 화제를 돌린다.
“참, 그러고 보니 파마불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신불이 말이냐?”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살천이 두 눈을 치켜뜬다.
“그 녀석이 무슨 일이냐?”
“예, 표면상의 이유는 암천막의 행사 참여이긴 한데…… 연무학관의 후기지수 하나를 따라왔다더군요.”
“후기지수를 따라왔다고?”
살령의 말에 살천의 미간이 슬그머니 찌푸려진다.
어쨌거나 과거 천마신교와의 싸움에서 동료였던 사이이니 만큼, 신불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떤 녀석인지 가엾기 그지없구나.”
하필이면 그 녀석에게 걸리다니.
이제 신불의 호기심이 끝나기 전까지는 귀찮은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살천이 안타까움에 혀를 차자, 살령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덧붙인다.
“아마 사부님께서도 소문은 들으셨을 겁니다. 최근 연무학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사도관도입니다.”
“이름을 날리는 사도관도라……. 흑풍도(黑風刀)인지 뭔지 하는 별호가 붙은 애송이를 말하는 모양이구나.”
“예, 바로 보셨습니다.”
흑풍도 사무현.
사실 그리 널리 알려진 별호는 아니다.
연무학관에 틀어박혀 있는 사도관도들은 물론이고, 사무현 스스로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조차도 그가 그런 별호로 불리는지 모르고 있었으니까.
검존의 제자와 무상검제의 제자를 한자리에서 꺾고, 천하제일 후기지수라고 불리던 도월검 허량과 호각을 다툰 사도관의 귀재(鬼材).
그와 허량의 전투를 본 누군가가 묘사하기를, 묵색 태도가 검은 바람을 일으킨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다.
“한동안 소림에서 꼼짝 않고 있던 신불이 들러 붙었다라……. 확실히 보통 녀석은 아닌 모양이군.”
“살암도 사천살 중 하나로 눈독을 들이고 있더군요. 단순한 허명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살암도?”
“예. 듣기로는 이립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금강불괴에 준하는 외공을 익혔다고 하더군요.”
“금강불괴에 준하는 외공……? 어느 문파의 출신인가?”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꽤나 흥미로운 녀석이지요.”
“이립도 되지 않은 나이에 금강불괴에…… 출신 문파도 알아내지 못한 녀석이라…….”
살령의 말에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듯 두 눈을 가늘게 뜨는 살천.
그러던 그가, 이윽고 술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쓰윽.
“사부님……?”
“조금 흥이 생기는구나.”
“……지금 보시고자 하십니까?”
살령이 뒤따르며 묻자, 살천이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안내해 주거라. 내 직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직접 한번 보아야겠다.”
***
“그러니까 그 어린놈이! 감히 내 앞에서! 응? 제 검에 손을 딱 가져다 대면서 말일세!”
“…….”
“제 놈도 본승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알 터인데! 막주가 되더니 머리통만 커져서는……!”
“저…… 신불 스님.”
“뭔가?”
“조금 전에, 스님이 먼저 기세를 방출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 그게 핵심이지.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 왜 자기 방어를 한 사람을…….
“시주.”
사무현의 물음에, 신불이 돌연 진지해진 얼굴로 사무현을 바라본다.
“시주는 대체 누구의 편이오?”
“……예?”
“아미타불……. 시주만큼은 본승의 편에 서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고작 오늘 처음 본 암천막주의 편에 서다니, 본승은 너무 섭섭하외다.”
미간 사이를 좁히며 입술까지 삐죽이는 신불의 모습에, 사무현이 결국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만다.
‘선하긴 개뿔.’
역시,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똥고집 땡중이다.
“아무튼! 시주는 본승의 말을 꼭 명심하셔야 하오. 그 암천막주가 시주를 슬슬 꾀더라도, 본승과의 인연을 생각해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잔뜩 흥분한 신불이 힘을 주어 말을 이어가던 그때, 돌연 무언가를 느꼈는지 천마의 고개가 문 쪽으로 돌아간다.
“……오호?”
“……음?”
천마보다 조금 늦은 반응을 한 신불의 고개도 그와 마찬가지로 움직인다.
그리고 곧이어, 저 멀리서 스치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사무현의 귓가에 들려온다.
저벅저벅.
우뚝.
“안에 있는가?”
문 앞에서 들려오는 사내. 살령의 음성에, 사무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몸을 일으킨다.
“무슨 일이세요?”
“잠시……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왔네.”
“아, 예. 들어오세요.”
“고맙군, 실례하겠네.”
벌컥.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며 두 명의 사내가 사무현의 눈에 들어온다.
앞에 선 이는 낮에 보았던 암천막주였고, 그의 뒤에 선 이는 중년보다 노인에 가까운 백발의 사내였다.
‘누구지, 저 사람은?’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도가 느껴졌기에, 막 그들에게 다가서려던 사무현이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런데 그 순간…….
오싹.
파밧!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오싹함에 사무현이 본능적으로 뒤로 일보 물러난다.
그러자 살령의 뒤에 서 있던 사내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이거 놀랍군.”
“……!”
“보통은 자신이 베이는 것도 모르고 죽기 마련인데…… 살기를 간파하고 거리를 벌린다라.”
쓰윽.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
본능적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사무현이 자신도 모르게 천마도의 손잡이를 움켜쥔다.
그러자 무심한 눈으로 사무현을 바라보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와 보거라.”
“이……!”
“아미타불…… 이거 장난이 너무 지나치신 것 같소이다, 암왕.”
금방이라도 사무현이 달려들 태세를 갖추려는데, 그들 사이로 반장을 하며 끼어드는 신불.
사무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신불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자, 이윽고 싸늘하기 그지없던 사내의 입가가 씰룩인다.
“이거…… 너무 늙어 못 알아볼 뻔했군. 거의 이백 년 만인가? 파마불제.”
“하하, 동안(童顔)으로 유명한 본승에게 그리 말씀하실 정도면, 암왕이야 말로 당장 묫자리를 알아보아야 하지 않겠소이까?”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는 신불의 모습에,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살천이 위압적인 기세를 거둔다.
그러자 몸 안의 근육이 순식간에 풀어지는 것을 느낀 사무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마도에서 손을 떼어 낸다.
“흐음……. 이거 정말 흥미롭구나. 고작 음지의 세력에 화경급 고수가 둘씩이나 자리하고 있다니.”
‘젠장, 저것도 화경이냐?’
천마의 중얼거림에 사무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중원을 통틀어도 그리 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경지라고 하더니, 왜 이렇게 그의 주변에는 이런 놈들이 득실거린다는 말인가?
쓰윽.
“초면에 장난이 심했군. 빼어난 후기지수가 암천막에 방문했다는 소식에, 내가 조금 흥분했던 모양이네.”
“아…… 예.”
예상외로 정중한 사내의 사과에 사무현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지?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상인…….
“한데…… 혹시 괜찮다면 조금 전의 장난을 더 이어가 보고 싶군. 손을 섞으며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일세.”
……젠장, 그럼 그렇지. 역시 미친놈이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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