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나는 누구인가.
대체 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인가.
드넓은 암천막의 연공실 내부에서, 암왕을 마주하고 선 사무현.
빈틈이라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고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까지 저릿저릿한 기세가 느껴진다.
‘내가 미쳤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돈에 미쳤다.
끝까지 거절했으면 될 걸, 그까짓 돈이 뭐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끼며 사무현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
“싫은데요?”
단호하기 그지없는 사무현의 대답에 살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어째서인가? 그저 손이나 조금 섞어 보고자 하는 것인데.”
“말이 좋아 손이나 섞는 거지, 결국 저보다 센 사람한테 두들겨 맞는 것밖에 더 되나요?”
퉁명스레 대꾸한 사무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덧붙인다.
“저보다 센 사람한테 얻어맞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거든요.”
“흐음……. 과연. 그럴 만도 하지. 무슨 말인지 잘 알겠네.”
어…… 뭐지?
다소 건방지다거나, 고수와의 손속을 섞는 것은 무인의 영광이라거나 하는 헛소리를 지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곧바로 말을 수긍한다.
뭐…… 아무튼 설득은 된 것 같은…….
“하면 이렇게 하도록 하지.”
“아니, 뭘요? 안 싸운다니까요?”
“만일 나와 비무를 벌여, 내 옷자락 하나라도 베어 낼 수 있다면.”
거기까지 말을 이은 살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금자 백 냥을 주도록 하지.”
“……뭐라고요?”
“설령 옷자락을 베어 내지 못해도, 열 합만 버텨 낼 수 있으면 금자 열 냥을 주겠네. 이만하면 자네에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하는데…….”
……꿀꺽.
살천의 제안에 사무현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옷자락만 스쳐도 금자 백 냥?
아니, 그보다 열 합만 버텨도 금자 열 냥이다.
이번 암천막의 행사에 참여해 받기로 한 노자까지 합치면…….
‘난 부자다.’
까짓것 하루 이틀 얻어맞는 것도 아닌데, 금자 백 냥짜리면 과장 조금 보태서 사흘 밤낮으로 얻어맞아 줄 용의도 있다.
더 생각할 것 없이 사무현이 막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저벅.
“아미타불……. 본승을 앞에 두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암왕.”
“……신불 스님?”
“본승은 말씀하신 금액의 반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새파란 후기지수와 붙어 봐야, 즐거움이나 느끼실 수…….”
“아오, 진짜!”
덥석.
자신을 제치고 앞으로 나가려는 신불의 목덜미를 움켜잡은 사무현이, 그를 뒤로 당기며 한쪽 손을 들었다.
“할게요! 금자 백 냥 맞죠? 약속 꼭 지키세요!”
“……물론일세. 그 정도야 전혀 어렵지 않으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하게 만드는 저 미소에 무를까 싶었지만, 사무현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
“후우…….”
……그래, 금자 백 냥이다.
이유도, 영문도 모르고 기절할 때까지 얻어맞던 비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비무다.
생각을 마친 사무현이, 천마도의 도신 끝을 살천에게 겨눈다.
스윽.
“……시작하지요.”
“좋군. 먼저 들어오게, 삼 초는 내 양보하지.”
“그것도 열 합에 들어가는 겁니다?”
“아, 물론일세.”
“……에라!”
파밧!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간 사무현이 큰 동작으로 천마도를 휘두른다.
천마도법의 일 초식 천하양단.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일도를 향해, 움직임이 없던 살천의 검신에서 푸른 검강이 솟아오른다.
쩌저저정!
“흠…….”
자신의 검을 통해 전해지는 힘을 가늠하듯 고개를 반쯤 꺾는 살천.
사무현의 도신에 타오르듯 머금어진 푸른 도강을 바라보던 그가, 짧게 혀를 차며 그의 도를 튕겨낸다.
쾅!
“읏……!”
한순간 자세를 흐트러지게 만드는 거력에 허공으로 붕 뜬 사무현의 신형이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다.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면 결코 신불의 아래라고 보기 어렵다.
‘전력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 상대라 그거지?’
그렇다면 더 이상 간을 볼 필요도 없다.
생각을 마친 사무현의 천마도에 붉은 화기가 피어오른다.
“에라!”
부웅.
콰과과과.
짧은 기합과 함께 천마도법의 또 다른 초식인 만마참풍이 펼쳐진다.
화기까지 동반한 그 무시무시한 도풍을 바라보던 살천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일 검을 휘두른다.
그러자…….
촤좌좌좌좌.
오래 전 살암이 보여 주었던 빗줄기 같은 검기의 세례가 암왕 살천의 검을 통해 전개된다.
과거 살암의 경우 겨우 수백 개 남짓한 검기였는데, 살천의 검기는 그 정도가 아니다.
수천…… 아니,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거의 만개는 되어 보이는 미세한 검기들이 사무현의 도풍을 찢으며 날아든다.
콰구구구구구.
“이런……!”
도풍을 뚫고 날아드는 세찬 검기를 막아내기 위해, 사무현이 다급히 도막을 치며 호신기를 끌어 올린다.
콰광! 쾅! 콰과광!
연공실 바닥에 구멍을 뻥뻥 뚫어버리는 살벌한 검기가 몇 번이나 사무현의 도막을 두드린다.
하지만 만마참풍으로 일부를 상쇄시킨 덕분에 사무현에게까지 닿은 검기는 그리 많지 않았고, 결국 두 번째 초식마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좋아…… 그럼 이건 어떠냐!’
두 눈을 번뜩인 사무현이, 한 걸음 나가며 횡으로 일도를 휘두른다.
그러자 그의 도신을 타고 십여 개의 도기가 뻗어 나가는가 싶더니, 돌연 각자 살아 있는 뱀처럼 휘어져 각기 다른 방향에서 살천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천마도법의 구 초식, 백룡아(百龍牙).
경지에 이르면 백 개의 강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지금의 사무현에게는 이 정도가 한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상대의 옷깃을 찢는 정도의 역할쯤은……!
촤좌좌좍!
살천의 검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휘둘러지는가 싶더니, 돌연 그를 향해 쇄도하던 십여 개의 도기가 허공에서 폭발해 버리고 만다.
콰과과과광!
“……염병, 내가 하는 일이 쉽게 될 리가 없지.”
사무현이 사용할 수 있는 천마도법의 상승 초식 두 개가 무력화되었다.
만근도는 일전에 신불에게도 먹히지 않았던 초식이니, 보나 마나 저 노인에게도 먹힐 가능성이 희박하다.
‘……결국 몸으로 때워야겠네.’
어쩌겠는가?
다 자신의 욕심이 만든 업보이거늘.
그리고 무엇보다 금자 백 냥이면 이만한 고생을 하는 의미가 없지 않다.
도리어 넘쳐흐르면 흘렀지.
“후우……. 간다!”
쾅!
저돌적으로 살천을 향해 몸을 날리는 사무현.
그의 도강에 어린 붉은 화기를 바라보며 살천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
‘역시 그 녀석의 작품이었군.’
자신을 향해 종횡무진 공격해 들어오는 사무현을 바라보며 살천은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금강불괴의 육체를 이루었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신불이 들러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확신은 없었다.
강호는 넓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거나 잊힌 기인들은 넘쳐난다.
듣도 보도 못한 기연을 얻어 튀어나온 괴물이 강호를 떠들썩하게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하고 많은 무공 중, 화기(火氣)를 다룰 수 있다는 건 결국 한 가지만을 의미하지.’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혈교.
그 혈교 무공의 맥을 잇고 있는 마지막 무인.
무신 단월혁이 직접 가르친 이가 아니라면, 더 이상 강호에 혈교의 무공을 쓸 수 있는 이는 없다.
‘어째서 검(劍)이 아니라 도(刀)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눈에 보기에도 저 녀석이 익힌 도법의 완성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고작해야 이립도 되지 않은 후기지수의 손에서 펼쳐진 상승 초식들의 위력이 이 정도라면, 훗날 경지에 오른 후 펼쳐지게 될 초식의 위력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단순한 휘두름에도 도의 이치가 실려 있다.’
저 젊은 나이에 대체 얼마나 도를 휘두른 것인지, 생각보다 도가 먼저 반응해 움직이고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거우면서 날카롭다.
이 정도면 그 녀석이 만들어 낸 작품 중에서도 걸작이라 할 만하다.
상대의 공격을 덤덤히 받아쳐 나가는 살천의 입가에 아련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검이 아닌 것은 좀 아쉽다만.’
그래도 검신을 통해 전해지는 무게감과 위압감은 과거의 무신, 단월혁을 흐릿하게나마 떠올리게 한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다.
과거의 무신과 다시 한번 겨루어 보고 싶다는 갈증을 약간이나마 달랠 수 있었으니까.
금자 열 냥의 값어치는 하고도 남았다.
‘하나…… 금자 백 냥의 값어치는 아직이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은 파악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가슴 서늘한 공격이 날아들지 않았다.
어느새 감정을 가라앉힌 살천이 본격적으로 살검을 운용하며 사무현을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콰광!
***
“큭……!”
촤지지직.
살천의 검격에 밀려난 사무현의 신형이 또다시 뒤쪽으로 밀려난다.
그와 함께 사무현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후드득 쏟아져 내린다.
“후우…… 후우…….”
“뭐야, 설마 벌써 지친 거냐?”
사무현의 평소 체력을 알고 있는 천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상대를 이기는 것은 애초에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사무현의 체력상 벌써 이렇게 지칠 시기는 아니었다.
“젠장…… 묘하게 숨이 차네.”
“흐음…….”
사무현의 대답에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살천을 바라보는 천마.
그제야 어찌 된 일인지 짐작이 간다는 듯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압박감이다.”
“뭐?”
“그게 아니라면 설명될 방도가 없다. 지금껏 너도 수많은 압박감을 받아 왔겠지만, 진심으로 너를 죽이고자 하는 압박을 받아 본 일은 많지 않지. 그렇지 않느냐?”
“뭐…… 그야…….”
“굳이 따지자면…… 과거 마교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느껴 보았겠구나. 네 스스로 과한 긴장을 한 까닭이니, 호흡부터 바로 해라.”
“아…….”
그제야 자신의 몸에 과한 힘이 들어가 있음을 깨달은 사무현이 호흡을 바로 하며 다시 방어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한쪽 입꼬리를 보일 듯 말 듯 움직인 살천이, 자리를 박차고 사무현에게 달려든다.
파밧!
“칫……!”
콰광!
또다시 살천의 검격이 어지럽게 쇄도하기 시작하자, 그것을 막아 내는 사무현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사무현이 귓가로 계속된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녀석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살검(殺劍)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날아드는 일격필살의 검. 일전에 십만대산의 괴물에게서도 겪어 본 적이 있지 않느냐?”
‘그걸 누가 모르냐!’
알고 있다.
상대가 쓰는 검이 살검이라는 것도, 그것을 막아 내려면 시각이 아닌 기감과 촉감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저 살검을 쓰고 난 후에는 항상 빈틈이 찾아든다는 것도.
그 모든 것을 알고는 있는데, 상대의 살검이 너무 은밀해 해법을 알고도 좀처럼 파훼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오감을 집중해 살검의 기척을 잡아내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이렇게…….
쩌저저정!
촤좍!
“큭……!”
난데없이 날아든 극강의 일검에, 공격을 받아 낸 사무현의 자세가 휘청이며 그의 무복 일부가 잘려 나간다.
그리고…….
스팟!
사무현의 방어 자세가 틀어짐과 동시에 날아든 살검이, 아슬아슬하게 사무현의 뺨을 훑고 지나간다.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잡은 사무현의 귓가로 심드렁한 살천의 음성이 들려온다.
“강하기는 한데…… 딱 거기까지군.”
“후우, 후우…….”
“잘 키운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 이상 나아갈 수는 없는 재목. 왜 그가 굳이 널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구나.”
저건 또 무슨 소리지?
그가 날 선택했다니?
설마 신불을 말하는 걸까?
영문 모를 살천의 말에 사무현의 생각이 복잡해지려는 순간, 그의 옆에 선 천마에게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온다.
“오호라…… 본좌를 도발하다니.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겠구나.”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저 인간이 대충 천 년 전에 죽은 너를 어떻게 알고 도발하겠냐?
황당해하는 사무현을 향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천마가 말을 잇는다.
“가급적이면 조금 더 기초를 다지고 지나가려 했지만…… 저런 도발을 받았으니, 슬슬 다음 단계를 넘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음……?”
“자, 지금부터 본좌가 너를 통해 보여 주마.”
“…….”
“네가 밟아야 할 다음 단계가 어떤 것인지.”
실로 오랜만에 전해지는 의미심장한 천마의 음성에 천마도를 쥔 사무현의 우수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곧이어, 두 눈이 긴 호선을 그린 천마가 읊조린다.
“앞으로 나아가며 일 초식.”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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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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