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흐아아……. 잘 먹었다. 어우, 그야말로 낙원이네 낙원이야.”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숙소에 도착한 사무현이 늘어져라 침소에 몸을 누인다.
히죽 미소를 지어 보인 그가 조심스레 품속에 손을 밀어 넣자, 금자 열 냥과 백 냥짜리 전표가 든 돈주머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흐히히히.”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세상에나, 살암 그 녀석과 인연을 맺어둔 게 인생에 이런 큰 도움이 되다니.
사무현이 개인적으로 모으고 있던 돈에 이 쌈짓돈, 거기다 암천막에서 받기로 한 노잣돈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목돈이 마련된다.
이제 별 탈 없이 연무학관을 졸업해서,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아 장사나 하고 살면 편안한 인생이다.
그렇게 생각만 해도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흐뭇하게 웃고 있던 그때, 돌연 어제 살천과 나눈 마지막 한 합이 사무현의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천마 녀석의 말대로 잡념을 버린 채 녀석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겼다.
그렇게 스스로를 내려놓고 제 삼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천마와 자신에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너무도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초식은 그렇게 쓰는 거구나.’
지금까지 사무현은 초식을 완벽하게 펼치는 것에만 집중했다.
보다 완벽하게, 보다 정교하게, 보다 빠르게.
하지만 그러다 보니 자유로움을 잃고 있었다.
상대의 움직임과 흐름에 맞춰 힘과 힘으로 맞서고 있었을 뿐.
그러니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마주했을 때는 그야말로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롭게…….’
초식에 의지를 맞추는 것이 아닌, 초식이 의지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
오래전 천마가 했던 그 말을 떠올리며, 사무현의 손이 부드럽게 허공을 향해 그어진다.
부웅.
“……지금 뭘 한 것이냐?”
“……어?”
……이 새끼, 언제부터 옆에 있었지?
분명 밥 먹을 때까지만 해도 피곤하니 들어가 쉬겠다고 했는데?
“너…… 왜 거기에 있냐?”
“안에만 있기 심심해서 나와 본 차였다. 한데, 너야말로 지금 뭘 하고 있었느냐?”
“아…… 이거……?”
드러누워서 허공에 대고 천마도법을 수련해봤어, 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그렇게도 수련이 고팠느냐며 흐뭇하게 웃거나, 어디서 도법 수련을 그따위로 하느냐며 잔소리를 늘어놓을 게 불 보듯 훤하다.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모기.”
“음?”
“모기가 있어서 잡아 봤어.”
“……모기를 잡았다고? 그렇게 거창한 동작으로 말이냐?”
“아, 워낙 재빠른 놈이라 천마도법을 좀 응용했지.”
“…….”
“어우……. 좋네, 천마도법. 이제야 좀 잘 수 있겠네.”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천마로부터 돌아눕는 사무현.
그런 그를 바라보는 천마의 눈에는 묘한 이채가 머금어져 있었다.
***
드넓고 긴 복도.
그 양 벽면에는 흉흉한 기세를 풍기는 무사들이 부동의 자세로 맞은편을 바라보고 있다.
언뜻 보아도 수십에 달하는 이들의 사이를 거니는 것은, 어지간한 담력을 지닌 이라도 자연스레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
하지만 지금 이 복도를 걷고 있는 사내의 발걸음은 실로 여유롭기 그지없다.
아니, 오히려 그가 지나가는 것을 묵인하고 있는 흑의 무사들의 얼굴이 도리어 창백하게 질려 있는 듯 보였다.
저벅저벅.
우뚝.
“들어가도 되겠는가? 동천(東天).”
복도 끝의 방에 멈춰 선 사내, 북천의 물음에 잠시 후 방 안에서 나긋나긋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온다.
“으음……? 북천이야?”
“그래. 들어가도 되겠나?”
“끄응…… 글쎄…… 아직은 조금 덜 즐겼는…….”
“들어가지.”
벌컥.
안에서 들려온 동천의 음성을 무시한 채, 북천이 방문을 열어젖히고 발걸음을 들이민다.
그러자 비릿한 살내음과 함께 나체가 되어 널브러진 다섯 명의 여인이 북천의 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그 중 한 여인을 끌어안고 있는 나체 사내의 모습도.
“……어젯밤에 도착한 것으로 아는데, 그사이 성대하게도 놀고 있었군.”
“아직 덜 놀았는데.”
쓰윽.
감정을 가라앉힌 북천의 말에, 나체 사내, 동천이 히죽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좀처럼 흥분이 주체가 안 돼서 말이야.”
“……눈에 띄는 짓은 자제하라 했을 텐데.”
표정을 굳힌 북천이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자, 동천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지금 네 행동이 도리어 더 눈에 띄는 것 같은데…….”
“…….”
동천의 말에 말없이 주먹을 움켜쥐는 북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동천이, 잠시 후 큰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하하, 화내지 마, 북천. 난 내 방식대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있던 것뿐이라고.”
“……이따위 짓이?”
“하면 어쩌겠어?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겠는 것을. 이번 행사 때는 ‘암왕’까지 오셨다던데, 내가 괜한 사고를 벌이면 안 될 것 아니야?”
양 팔을 펼치며 너스레를 떠는 동천을 바라보며, 북천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사실 그의 말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저 빌어먹을 녀석이 익힌 무공은 환혈신공(歡血神攻).
사내는 양기를, 여인은 음기를 기반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빠른 내력을 쌓게 만들어 주는 무공이다.
음양의 기운이 어느 한쪽으로만 극단적으로 치우쳐지게 만드는 무공이라, 사내의 경우 여인의 음기 없이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여인의 경우도 사내의 양기 없이 보름을 넘기지 못한다.
거기다 사람의 성향 자체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변해 버려, 빼어난 효과만을 바라보고 익히기에는 많은 부작용들을 가진 무공이다.
설령 익히는 이가 있어도 불혹을 넘기지 못하고 단명(短命)하는 이가 많은데, 이 동천이라는 녀석은 드물게 대성하여 화경의 경지에 그 이름을 올려 두었다.
덕분에 음양(陰陽)의 기운이 조절되어 이제 여인을 품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몸이 되었지만.
그의 성향 자체가 원래 그러했던 것인지 오래도록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 동천은 이후에도 항시 자신의 잠자리에 많은 여인들을 대동했다.
‘……지금은 참아야 한다.’
하는 짓 하나하나가 신경을 거스르는 놈이지만, 지금은 날을 세울 때가 아니다.
어느덧 감정을 가라앉힌 북천이 전음으로 본론을 꺼내자, 시종일관 웃고 있던 동천의 얼굴에 미소가 옅어진다.
전음으로 빠르게 용무를 전한 북천이, 이내 그에게서 돌아서며 말을 꺼낸다.
“정오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정 피를 식히지 못하겠거든 연공실에서 땀이라도 빼고 와라. 다름 다닌 암왕을 뵙는 일이니.”
저벅저벅.
말을 마친 북천이 발걸음을 옮겨 그의 처소를 벗어난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동천이, 짧게 혀를 차며 문밖의 무사에게 명을 내린다.
“이 계집들은 모두 치워 버리고, 자정까지 새로운 계집들로 대기시켜.”
“존명.”
“아, 그리고 누가 내 무복 좀 가져와라.”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려 정리한 동천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잇는다.
“기껏 여기까지 찾아와서 남긴 부탁이니, 들어줘야지.”
***
퍽! 쩌정! 쾅!
드넓은 연공실.
암천막 내에서도 나름대로 직위가 있는 무사들에게만 허락된 그 공간에, 두 명의 사내가 웃옷을 벗어 던지고 대련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손익패와 막휘.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소화를 시킬 겸 몸을 풀기 위해 살암에게 부탁해 연공실 사용을 허가받은 상태였다.
쩡!
막휘와 손익패의 일장이 맞부딪치며 연공실 내에 쩌렁쩌렁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막휘의 장력을 이겨내지 못한 손익패의 신형이 뒤쪽으로 밀려났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다시 자리를 박차고 막휘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앗!”
부웅.
손가락을 반쯤 구부린 손익패의 일수가 막휘의 얼굴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정확히 일 보 뒤로 물러나 그의 공격을 회피한 막휘를 향해, 허공에서 한 번 더 몸을 회전시킨 손익패가 섬광 같은 일각을 내뻗는다.
쩡!
촤지직.
두 팔을 교차해 손익패의 일각을 가로막은 막휘의 몸이 뒤쪽으로 밀려난다.
여지껏 손익패와 겨루며 막휘가 밀려난 것은 처음이었기에, 이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청사와 적사의 얼굴에 은은한 놀라움이 스쳐 지나간다.
“진짜 엄청 늘었네.”
“……이제 우리 둘을 상대로도 일각을 버티는 놈이 아니냐?”
적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청사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지난 일 년 동안, 적사와 청사도 분명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강해졌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함께 성장하고 있어 때때로 실감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연무학관에 입관하기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하지만, 그런 적사나 청사보다도 월등히 강해진 이가 있었으니 이는 다름 아닌 손익패였다.
쩌저정!
“크흡……!”
촤지지직.
그들이라면 일격에 전투 불능이 되었을 막휘의 일장을 몸으로 받아 내면서도, 조금의 물러섬 없이 다시 자세를 낮추는 손익패.
그의 육체를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만들어 주는 천수신공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손익패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저 물러서지 않는 투지다.
‘처음에는 그냥 무식한 녀석이었는데.’
이제 그 무식함에 정교함이 갖춰졌다.
물론 아직도 막휘나 살암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지만, 저 성장세를 계속해서 이어 간다면 언젠가 막휘와 호각을 다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손익패와 막휘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그때…….
“풉……!”
“음?”
난데없이 연공실 내부에 울려 퍼진 웃음소리에, 손익패에게 결정타를 먹이려 달려들던 막휘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하하하, 하하하하.”
한 손으로 배를 잡고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호리호리한 체형의 사내.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다름 아닌 막휘 자신과 손익패가 있었기에, 곧 그 웃음의 원인을 깨달은 그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저놈은 대체 무슨…….”
“놈! 지금 누굴 보고 웃고 있는 것이냐!”
그나마 상황을 파악하려 하는 손익패와는 달리, 막휘가 드물게도 성급히 언성을 높인다.
이곳은 다름 아닌 암천막의 연공실.
그렇다면 그를 비웃은 이 또한 십중팔구 암천막의 인물이다.
애초에 그들과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 녹림의 후계자가 막휘이기에, 암천막에서 무시 받는 것만큼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없다.
그리고 막휘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리던 사내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그를 보며 묻는다.
“뭐……? 지금 그거 내게 한 말이니?”
“그럼, 이곳에 네놈 말고 다른 누가 있느냐!”
“하……. 이거 참, 내가 이곳에 없던 사이에, 아이들의 기강이 많이 무너졌나 보구나.”
안타깝다는 듯 한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고개를 가로젓는 사내.
그러던 그가, 곧 히죽 웃어 보이더니 순식간에 막휘의 앞에 당도했다.
스팟.
“……아니!”
“저런…… 놀랐느냐? 조금 천천히 걸어올 걸 그랬구나.”
부드러운 미소와는 달리, 사내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소름 끼치는 기세가 막휘와 손익패를 동시에 억누른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거대한 압박감.
단아란과의 지도 비무 때 겪은 경험으로 어떻게든 버텨 내고 있었지만, 상대가 자신들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인지했다.
“내가 너를 보고 웃었단다. 솜씨가 너무도 같잖아서. 자, 이제 어찌하겠니?”
“이…… 놈……!”
“저런, 쓸데없는 말을 하라고 기다려 준 게 아니었는데.”
쓰윽.
부드러운 사내의 손이 막휘의 머리 위에 올려진다.
“한 번만 더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면 그대로 머리를 터트려 주마. 조금 전 내 물음에 답을 먼저 해 보렴.”
“……!”
“……안 할 거니?”
뚜둑.
차마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고 굳어 있는 막휘의 머리칼을, 사내가 거칠게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털썩.
“소, 소호대(小護隊)의 청사가 동천을 뵈옵니다!”
“음? 뭐야, 날 알고 있었니?”
“예, 동천님! 지금 그 녀석은 소막주께서 초청한 귀빈으로…….”
“하아아아…….”
청사의 말을 듣던 사내가, 막휘의 머리를 잡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그리곤 땅이 꺼져라 내뱉은 긴 한숨 뒤에, 천천히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며 청사를 노려본다.
“슬슬 짜증 나려 하네.”
“도, 동천님…….”
“왜 이것도 저것도…… 내 말에 제대로 대답은 안 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
“……그냥 다 죽일까?”
누군가에게 묻는 말이 아니다.
그저 혼자만의 중얼거림.
광기 어린 눈을 빛내는 동천을 향해 청사의 옆에 선 적사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야, 잘라 버리기 전에 그 손 내려.”
“……음?”
난데없이 연공실에 울려 퍼진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한데로 돌아갔다.
연공실 입구에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사내의 우수에는, 언제 뽑아 들었는지 모를 묵색 태도가 들려 있었다.
“누가 남의 아우 머리에 손을 얹으래?”
“…….”
“뒈지려고.”
사무현의 등장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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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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