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
014화
번쩍이는 황금으로 치장된 사방의 벽면과, 붉은 비단이 빼곡하게 깔린 바닥.
실로 호화롭기 그지없는 드넓은 공간에, 한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내와 십여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부복한 사인(四人).
태상장로 고극혈과 얼마 전까지 임시 교주직을 맡고 있던 조암장로, 화상장로와 최근에 교내에 돌아온 구마(具魔)장로가 바로 이들이었다.
그렇게 천마의 명상이 끝나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윽고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천천히 눈을 뜬 사내. 천마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예, 교외에서 중원의 정보를 수집 중에 있던 구마장로가 천마께 알현을 청하기 위해 찾았습니다.”
“흐음…….”
태상장로의 말에, 무심한 시선을 움직여 바닥에 부복한 구마장로를 응시하는 천마.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무게감에 구마장로가 마른침을 삼키는 그 순간, 권위 어린 천마의 음성이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라.”
“존명.”
천마의 명에 구마장로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광오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천마의 시선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순간, 구마장로의 몸이 빠른 속도로 떨리더니 그의 등과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으…… 으으…….”
기세? 혹은 지독한 살기? 아니, 그런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깃든 감정은, 마치 눈앞에 놓인 벌레를 관찰하는 듯한 무심한 호기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릴만한 끝 모를 광오함.
단지 눈빛만을 마주한 것뿐이지만, 구마장로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저 천마라는 존재 앞에서만큼은, 자신은 그야말로 벌레와도 같은 존재.
그 어떤 누구라도, 저 천마와 마주하면 두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의 생사(生死)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대에게 대항할 것인가? 혹은 자비를 바라며 무릎을 꿇을 것인가.
그 두 가지 본능에서, 구마장로가 후자를 선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쿵! 쿵! 쿵!
“장로 구마가 대천마신교의 지존이신 천마를 뵈옵니다!”
세 번이나 이마를 바닥에 짓이기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표하는 구마.
하지만 그 충성스러운 모습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지, 천마는 그저 무심하게 고개를 반쯤 끄덕일 뿐이었다.
“노력하도록.”
“존명!”
“태상장로, 그날 이후 칠 대와 십삼 대는 무얼 하고 있는가?”
애초부터 구마 장로에게는 흥미가 없었는지, 이내 무미건조한 시선을 태상 장로에게로 돌리는 천마.
이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태상 장로가 고개를 숙이며 그의 물음에 답한다.
“예. 십삼 대께서는 그날 이후 곧장 개인 연공실로 폐관수련을 들어가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전하러 다녀온 이들의 말에 따르면, 가부좌를 틀고 앉으셔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고 전해 왔습니다.”
“그런가.”
“그리고 칠 대께서는…….”
답을 하기 전에 조금 망설이듯, 잠시 뜸을 들이는 태상장로.
그러나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숙소와 연공실을 오가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이하게, 천마고에서 진법서(陣法書)를 요청하셨다고 하더군요.”
“진법?”
“예.”
“흐음…….”
태상장로의 말에, 무언가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는 초대 천마.
그러나 이내 흥미를 지워 버렸는지, 그는 곧 무심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놈들이 무엇을 하려 하건, 내가 약조한 시간까지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마라. 단.”
“…….”
“혹여라도 그들 중 입만 산 벌레가 끼어 있을지 모를 일이니…… 교외로 나서는 것만큼은 반드시 본좌의 허가를 받도록 이르라.”
“존명!”
***
“하아…… 그래. 그럼 정리를 한번 해 보자.”
“좋다.”
사무현의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팔짱을 끼고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
그런 놈의 모습을 바라보니, 멀쩡하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가 잠이 들면 내 혼은 무의식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렇다.”
“지금 너는 내 무의식의 공간에 들어와서, 내 혼을 네 공간 안으로 옮겨 놓은 거고.”
“네 몸 안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본좌가 지내는 공간이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구나.”
아……. 이게 진짜 웬 말이냐.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저질러서, 내 몸을 빼앗은 귀신한테 자면서까지 시달려야 하는 거지?
“하하, 자! 어떠냐? 이곳이라면 네 육체의 상태와 관계없이, 그 어떤 수련도 쌓을 수 있다.”
스스로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듯, 어깨에 힘을 빡 주며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천마의 모습.
그래도 웃는 얼굴에 침 뱉기 뭐하다고, 저러고 있으니 욕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데도 차마 내뱉기가…….
“이…… 미친 천마 새끼야.”
힘들 리가 있나?
“너 이 새끼…… 이제 하다 하다 내 꿈속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미친놈아, 수련을 하더라도 잠은 자면서 해야 할 것 아냐!”
“아, 수면의 문제는 염려 마라. 네 의식은 깨어 있지만, 네 육체는 충분한 숙면을 취하는 중이니. 아마도 막상 눈을 뜨면, 평소와 별다를 것 없을 것이다.”
아하……. 그러니까, 난 잠도 자지 말고 계속 움직여라?
어차피 내 몸에는 문제가 없을 테니까?
잠을 안 자도 저언혀 피곤하지 않을 테니까?
‘……어? 괜찮은데, 그럼?’
처음에는 순간 욱해서 성질이 나기는 했지만, 부작용이 없다고 한다면 이 상황에 썩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이제 가뜩이나 두 달 반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이렇게 사용하면 잠자는 시간마저 수련 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으니까.
“……진짜 부작용 없는 거 맞지?”
“물론이다. 어차피 육체가 깨어날 때가 되면, 네 혼은 강제로 육체에 돌아가게 될 거다. 이건 그냥, 아주 생생한 꿈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흐음……. 꿈이라…….”
귀신……. 그것도 천마가 나오는 꿈이라…….
그것참 악몽(惡夢)이네, 염병.
“……뭐, 아무튼 알겠다. 이건 인정해 줘야겠네. 잘 생각해 냈다.”
“하하, 네가 드디어 본좌를 인정하는구나. 하기야, 본좌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 으핫핫핫.”
오……. 저 호탕한 웃음소리.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꼴 보기가 싫다.
하지만 뭐, 인정할 건 인정해 줘야지.
천마의 말대로, 이건 저놈 외에는 생각할 수도 실현할 수도 없는 방법이 맞으니까.
귀신이면서, 인간의 몸을 빼앗지 않으며, 무공에 대해 박식한 무림 고수.
이 모든 조건이 한꺼번에 갖춰진 녀석이 저놈 말고 대체 누가 있겠는가?
“뭐, 아무튼 그럼 시작해 볼……. 어? 그런데 잠깐만. 여기서는 내가 아무리 심법을 사용해도 내 육체랑 무관한 것 아니냐?”
“그거야 당연하지. 심법은 훗날 네 육체가 온전해지면 시작해야겠지.”
“……뭐야? 그럼 이런 공간을 확보한 게 아무 의미가 없잖아?”
“하하, 설마 본좌가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공간을 만들었겠느냐? 이곳에서는 현재의 네 육체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게 될 거다.”
오호라, 천마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런데…… 기분 탓인가?
왜 눈빛이 스산하게 느껴지지?
“육체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 뭔데?”
“초식. 그리고 경험.”
“……초식?”
“본좌는 지금부터 네게 도법(刀法)과 보법(步法), 기본적인 체술(體術)들을 전수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천마도법(天魔刀法)을 전수하는 것이 그 목표지. 이는 본좌가 만든 독문 무공으로, 완성한다면 능히 천하를 베어 버릴 수 있는 무공이다.”
“천마도법?”
“그래. 초대 천마가 만든 천마신공과 본좌의 독문 도법을 합쳐 만든 희대의 무공이다. 본좌는 제자를 키우지도 않았으며 이 무공을 비급으로 남기지도 않았으니, 전 무림을 뒤져도 이 도법을 익힌 이는 본좌와 너뿐일 것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넘칠 듯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천마의 음성.
그가 이렇게까지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대단한 것을 가르쳐 주려나 보다 싶기는 하다.
그런데…….
“잠깐만. 그러면 그거, 마공(魔攻) 아니냐?”
“……뭐라?”
“아니야? 네가 만들었다는 무공이면 결국 마공이잖아.”
“쯧…… 네놈은 마공의 기준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마공의 기준?
……그거야 나는 모르지.
무공인지 뭔지를 익히려고 마음먹은 것도 바로 얼마 전인데, 마공이 정확히 뭔지 어찌 알겠는가.
남들이 마교도는 마공을 익힌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지.
“……마교도가 익히면 죄다 마공 아니냐?”
“무공은 무공일 뿐이다. 중원 놈들은 그저, 마기(魔氣)를 연성한 이들이 펼친 모든 무공을 마공이라 부르지, 멍청하게도. 제 놈들이 익힌 공력을 토대로 하면 정도의 무공, 천마신교가 펼치는 무공은 마공.”
“…….”
“넌 혈교의 심법으로 쌓은 공력을 기반으로 무공을 펼치게 될 거다. 하면 네가 익힌 무공은 그냥 사파의 무공이지. 요점은, 기공(氣攻)에 마기(魔氣)가 섞이지 않으면 마공이 아니라는 거다.”
확실히…….
지금 천마가 한 말대로라면 천마의 무공을 익힌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그저 어디서 저런 무공을 익혔는지, 그 근본을 궁금해하는 이들만 있겠지.
“……좋아, 그럼 한번 배워 보지.”
“탁월한 선택이다. 하면…….”
스윽.
“본격적으로 초식을 배우기에 앞서, 네놈의 현 수준을 한번 보도록 하지. 어디 한번 자세를 잡고 서 보도록 해라.”
……이건 무슨 소리지?
난데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대놓고 싸우자고 자세를 잡는 천마의 모습.
이에 얼떨떨한 얼굴로 함께 몸을 일으키면서, 사무현이 반문했다.
“뭐, 뭐야? 설마 싸워 보자고?”
“싸운다라……. 표현이 다소 천박한 느낌이 없지 않으니, 앞으로는 대련이나 비무라는 말을 써 주면 좋겠군.”
“그러니까, 결국 그…… 한번 붙어 보자는 거 아니야?”
“하하, 지금의 네 수준으로는 그럴 주제가 못되지. 말 그대로, 그저 네 수준이나 파악해 보려는 것이다.”
아니,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뭐 배운 거라도 있어야 수준이든 뭐든 파악할 것이 아닌가?
“……나 아무것도 배운 거 없는데?”
“안다.”
“그런데 뭐 어떻게 덤비라고?”
“살면서 주먹질 한번 안 해 봤느냐? 현재의 네 체력, 속도, 격투 감각 등. 한계를 정확히 알아야 나도 어떻게 널 가르칠지 판단이 설 것이 아니냐?”
“아……. 원래 그런 건가?”
“물론이다. 자, 알아들었으면 어서 자세를 잡고 덤벼 보도록.”
음……. 저 새끼 이럴 때는 말 잘하네.
입가에 떠오른 저 회심의 미소나 지우고 그딴 핑계를 댈 것이지.
뭐…… 아무튼 저놈에게 어떤 사심이 섞였건, 이 상황은 사무현에게도 그리 불만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저 새끼 얼굴에 한번 주먹을 꽂아 보는 것이, 바로 얼마 전까지 사무현의 최대 소원이었으니까.
‘무기도 없고, 저놈도 나도 그냥 혼의 상태니까…… 불리할 건 없지?’
슬쩍 자신 없는 것처럼 밑밥은 깔아 놓았지만, 이래 봬도 떠돌이 생활 하며 주먹다짐깨나 해 왔던 사무현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까마득한 막내이지만 개방에 속한 거지도 하나 있었다.
‘한 대 갈기고 먼지 나게 얻어맞긴 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한 대는 갈겼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어쨌거나 지금은 혼과 혼의 상황이니, 딱히 불리할 것도 없다.
맞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뭐.
“……좋아. 배우겠다는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덤벼 주지.”
“오오,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본좌의 무공을 배우려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다 좋은데 배짱이 왜 나오지?
아무튼, 어디 한번 해 보는 거다.
“간다……! 으라아!”
그렇게, 우렁찬 기합을 내지른 사무현이 천마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
어설프게 주먹질을 해 봐야 먹힐 가능성은 낮을 테니, 일단 허리부터 붙잡고 내팽개치며 시작이……!
쾅!
‘……어?’
놈의 허리를 부여잡기 위해 내달린 그 순간, 난데없이 눈앞에 별이 반짝이더니 고개가 위쪽으로 치켜 올라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사무현이 고개를 돌리자, 눈앞으로 섬광 같은 무언가가 번쩍이며 그의 몸이 뒤쪽으로 나뒹굴었다.
쩍!
쿠당.
“……크헉!”
“쯧쯧, 상대의 반격은 생각지도 않고 덤벼드는 꼴이라니. 명색에 사람인데, 멧돼지와 다를 바가 없구나.”
“크윽……! 너 이 새끼!”
이게 사람을 멧돼지 취급해?
이미 이판사판이었지만 이제 진짜 막장이다!
분노를 기반 삼아 벌떡 몸을 일으킨 사무현이 그대로 천마를 향해 큰 동작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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