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으음……. 쿨럭! 쿨럭!”
달그락.
기도를 타고 넘어오는 먼지에 기침을 토해 내며 신불이 몸을 일으켰다.
아주 잠깐 의식을 잃었던 것일까?
희뿌연 먼지로 가득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신불의 귓가로 살천의 음성이 들려온다.
“움직일 수 있겠나? 신불.”
“쿨럭……! 물론이외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살천의 물음에 답하며 신불이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한다.
다행히 전투 불능의 상태는 아닌 듯 보이지만, 갈비뼈와 한쪽 어깨가 심상치 않게 욱신거린다.
‘……몇 군데가 부러진 모양이군.’
하지만 그만한 공격을 당한 결과 치고는 오히려 경미한 부상이라 봐야 할 것이다.
어느덧 주위를 가득 메운 먼지가 가라앉자, 그의 앞에 서 있는 살천의 뒷모습이 신불의 눈에 들어온다.
“아미타불……. 그래도 폭발에 비해 생각만큼 위력적이지는 않았던 모양…….”
살천의 곁으로 다가가며 말을 이어 가던 신불이 돌연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며 말을 멈춘다.
그의 앞에서 변함없이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살천.
하지만 그의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는,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뜯겨져 나간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이, 이런……! 괜찮소이까, 암왕!”
“……!”
살천의 말에 당황한 신불이 묻자, 반쯤 고개를 돌린 살천의 입가에 자소 섞인 미소가 머금어진다.
파밧!
신불이 차마 대꾸할 틈도 없이, 흩어져 가는 먼지 속으로 몸을 날리는 살천.
잠시 후 먼지 속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은은한 폭음에, 신불이 입술을 깨물으며 염주를 움켜쥐었다.
“……아미타불!”
염주를 쥔 그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어찌 그리 나태했는가.
어찌 그리 마음을 놓았던가!
그 긴 평화의 시간 동안, 어찌하여 이보다 더 강해지지 못했던가!
‘하나…… 후회는 지금 할 일이 아니다.’
살천의 말이 옳다.
지금 그들과 맞선 적마소라는 자는 스스로를 천마가 아닌 소교주라 말했다.
강자존의 율법을 따르는 저들이니, 현재의 천마가 결코 저자보다 약하지 않을 터!
적어도 그들 중 하나는 이곳을 빠져나가 이 상황을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이 중원이 이백 년 만의 전화에 불타 버릴 지도 모른다.
“……미안하오, 암왕.”
전투가 벌어지는 저편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신불이, 그대로 등을 돌려 경공술을 펼친다.
파밧!
‘나 하나만 살아 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살천이 신불에게 맡긴 것은 미래다.
중원의 미래와, 언젠가 그의 뒤를 이어갈 암천막의 미래.
그리고 그 두 미래를 책임질 이들이 아직 이곳에 남아 있다.
그 미래를 살리기 위해, 신불은 전력을 다해 동쪽으로 향했다.
***
털썩.
풀썩.
‘이…… 이럴수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상황에 살암이 떡하고 입을 벌린다.
단 일 도(一刀)였다.
장난처럼 휘두른 사무현의 일 도에, 동천의 목과 몸이 각기 다른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어찌…… 어찌 이런 일이…….’
아무리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동천은 명색에 화경의 경지에 오른 음지의 사천살 중 하나다.
그 증거로, 싸움이 시작되기 무섭게 사무현을 일방적이라 할 만큼 몰아 붙였다.
한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버티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던 사무현이, 완전히 달라진 사람처럼 순식간에 동천의 목을 베어 버렸다.
“흐음…… 어디보자…….”
동천을 죽인 것 정도는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천마도를 어깨에 걸친 사무현이 느긋하게 주위를 빙 둘러본다.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십수 명 정도 되어 보이는 마교도들이 하나같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자 그들 중 수장으로 보이던 흑의인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서더니, 붉은 빛이 도는 장검을 뽑아 들며 소리친다.
“모두 앞으로 나서라! 놈은 부상을 입었고, 혼자다!”
쓰윽. 스륵.
사내의 외침에 이성을 되찾았는지, 한순간 기세를 잃었던 마교도들이 정밀하게 포위망을 좁혀 온다.
어느 한쪽이 먼저 앞으로 나서는 것 없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원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이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이들인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스슥.
더 이상 거리를 좁혀 오는 저들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살암이 한 걸음을 내딛자, 여유로운 얼굴로 저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사무현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그의 행동을 막아선다.
“가만히 있거라.”
“……뭐라고?”
포위망이 좁아지면 그만큼 행동반경이 줄어들게 되고, 포위망 안쪽인 그들이 불리해진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더군다나 저들의 대부분은 하나하나가 절정에 근접한 이들.
심지어 저 중 몇몇에게서는 지금의 살암으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기세가 느껴진다.
“너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다. 저들의 포위망에 맞서 싸우면 반드시…….”
“아니.”
“…….”
“가만 있거라.”
“……!”
조금 전보다 조금 더 낮아진 사무현의 음성과 함께, 지금껏 들어왔던 그 어떤 명(命)보다 더 강한 위압감이 살암의 전신을 짓누른다.
바로 그때, 가장 앞서 입을 열었던 흑의 사내가 한쪽 손을 들며 소리친다.
“쳐라!”
파바밧!
누구 하나 망설임 없이, 각자의 무기에 한껏 기를 불어 넣으며 정면으로 돌진하는 이들.
이런 상황이라면 저들의 포위진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등을 맞댄 사도관도들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던 그때.
“……딱 알맞게 들어와 주는구나.”
‘……뭐라고?’
영문 모를 사무현의 중얼거림.
이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 흑의인 중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부웅.
조금 전까지 어깨 위에 걸쳐 있던 사무현의 천마도가 부드럽게 한 바퀴 휘둘러진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촤좌좌좍!
스르륵.
풀썩. 털썩. 털썩.
“……아니!”
일제히 포위망을 좁혀 나가던 열 다섯 명의 동료들이, 하나같이 목과 몸이 떨어져 바닥을 나뒹군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흑의인이 두 눈을 부릅뜨자 흥미로운 사무현의 음성이 그의 귓가에 들려온다.
“오호라, 감이 제법 좋은 모양이구나. 그 상황에 멈춰 서다니.”
“이, 이럴 수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그 홀로 살아 있는 이 상황에도, 도대체 자신의 눈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당황하는 그의 귓가로 어쩐지 즐거운 듯한 사무현의 음성이 이어진다.
“재미있구나. 한 번 더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네 목숨을 살려 주마. 그만한 재능을 여기서 꺾어 버리는 것은 못할 짓이니.”
사무현의 한 마디에 흑의인의 눈에 희망의 빛이 어린다.
보이지도 않는 저 공격을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잘만 하면 살아 돌아갈 수가…….
서걱.
“……저런, 그냥 운이었던 모양이구나.”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상대의 음성에서 자신이 베였음을 깨달은 순간, 흑의인의 목과 몸은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털썩.
“끄응……. 피곤하구나. 그리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이리 아프다니.”
모든 적을 쓰러뜨린 사무현이, 자신의 몸 곳곳에 새겨진 상처들을 내려다보며 혀를 찬다.
그러고는 이내 무심한 손놀림으로 꼼꼼하게 자신의 상처들을 점혈하기 시작했다.
투두둑. 툭.
사무현이 손이 스치자 상처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멎는다.
이런 사무현의 행동을 멍하니 지켜보던 막휘가,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떨리는 음성으로 그를 부른다.
“저…… 혀, 형님?”
“…….”
“형님……?”
“……음? 나를 부른 것이냐?”
막휘의 두 번째 물음에 그제야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사무현.
그와 눈이 마주치자, 막휘는 전신에서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무현의 눈빛에, 이전에는 없던 오만함이 너무도 자연스레 깔려 있다.
그리고 이는 분명 일 년 전 그날에 막휘가 기억하고 있던 그 눈빛이었다.
마치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벌레로 보는 듯한 눈빛.
“왜 그러느냐?”
딱딱하게 굳어 버린 막휘를 향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 사무현.
이에 막휘가 두 손과 함께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
“……음?”
막휘의 대답을 듣다 말고 돌연 허공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무현.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떠나자, 막휘가 살았다는 듯 숨을 내쉬며 쓰러질 듯한 두 다리에 힘을 준다.
그런 막휘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저 먼 곳을 응시하던 사무현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땡중답지 않게 현명한 선택을 한 모양이구나.”
“……예?”
“자…… 하면 이만, 이 몸을 부탁하도록 하마.”
스륵.
그 말을 끝으로, 사무현의 눈이 감기더니 그의 몸이 돌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풀썩.
“……어?”
“……형님?”
갑작스레 의식을 잃어버린 사무현의 모습에 막휘를 포함한 모두가 두 눈을 끔뻑인다.
아니…… 지금까지 멀쩡히 잘 있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파바밧.
타닷.
“아미타불……! 모두들 무사하신가!”
“신불 스님!”
저 멀리서 경공을 펼치며 달려온 신불이 그들의 앞에 도착하자, 낯선 곳에서 부모를 만난 아이들처럼 모두가 격하게 그를 반긴다.
“대체 어디에 계시다 이제 오셨……!”
신불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건네려던 막휘가, 오히려 그들보다 더욱 넝마가 되어 버린 신불의 몰골을 확인하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뜬다.
“스, 스님. 대체 어디서 이런…….”
“늦어서 미안하네. 나 또한 적과의 싸움이 있었……. 으음?”
막휘의 말에 대답하며 그들을 살피던 그때, 신불의 눈에 한쪽에 쓰러진 사무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이런……! 사무현 시주는 어쩌다 저런 꼴이 되었는가!”
사무현의 위중한 상태를 한눈에 알아본 신불이 다급히 몸을 날려 그를 살핀다.
흉부 근육이 길게 갈라진 상처는 한 눈에 보기에도 심상치가 않았고, 몸 곳곳에 결코 얕다고 할 수 없는 수많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이럴 수가……. 대체 어찌 이런…… 서, 설마 장로급이라도 나타났던 건가?”
“……예?”
“아니…… 아니지! 장로급이 나타났으면 모두가 살아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장로급이 아니라면 이해가 가는 상황도 아니다.
절정 중에서는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인 사무현이 대체 어쩌다 이렇게 위중한 부상을 입었다는 말인가?
저 녀석들은 그래도 하나같이 말짱한…….
“……가만. 설마, 사무현 시주 혼자 마교도들을 모두 상대한 것은…….”
쿠구구구구.
미간을 역팔자로 휘며 살암과 막휘를 나무라듯 바라보던 그때, 신불이 서 있는 자리까지 심상치 않은 대지의 진동이 울려 퍼진다.
이것이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어렵지 않게 눈치챈 신불이, 다급히 사무현을 등에 업고 몸을 일으켰다.
“아미타불……. 우선 안전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
“그 전에, 저도 한 가지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음?”
“제가 알기로 스님께서는 제 사조님과 함께 계셨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는 살암의 물음.
그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예상한 신불이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아미타불……. 살암 시주의 말이 맞네.”
“하면 제 사조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왜 함께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살암의 질문에 잠시 입을 열었다 닫은 신불이, 곧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다.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닐세. 우선 안전한 곳에 도착해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는가?”
“…….”
“가세. 더 이상 지체하는 것은 모두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니.”
파밧.
말을 마친 신불이 남쪽으로 몸을 날리자, 살암의 눈치를 한 번 살핀 막휘와 손익패도 그의 뒤를 따른다.
쿠구구. 쿠구.
“……가시지요, 소막주님.”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저 멀리 폭음이 울려 퍼지는 곳을 바라보는 살암을 향해, 적사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연다.
“살왕께서도, 암왕께서도. 반드시 살아남으실 것입니다.”
아직 돌아가는 전황을 제대로 모르는 적사의 말에 살암이 조용히 주먹을 움켜쥔다.
내뱉고 싶은 말들을 애써 집어삼킨 그가, 이윽고 몸을 돌리며 짧게 입을 열었다.
“……가자.”
“예.”
“예!”
파밧!
타닷!
살암과 함께 빠르게 전장을 벗어나는 적사와 청사.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동천과 마교무사들의 시신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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