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허억……! 허억……!”
투두둑 투둑.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몰아쉬는 숨소리.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은 원래의 말끔했던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고, 갈기갈기 찢긴 검은 무복은 넝마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반쯤 부러져 버린 검에 의지해 방어 자세를 취하는 살천의 귓가로, 감탄 섞인 적마소의 음성이 들려왔다.
“놀랍구나. 내가 전개한 천마신공을 세 초식이나 받아 내고도 서 있을 수 있다니.”
“…….”
“그저 음지의 쥐새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인정해 주마. 네놈의 실력은 이백 년 전의 삼성 오무제와 비교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다.”
현재의 삼존 사무제가 아닌, 과거의 삼성 오무제에 비견된다라…….
다소 의아하지만 기분 좋은 적마소의 찬사에, 가물가물해지는 의식을 붙잡고 있던 살천이 쓴웃음을 머금는다.
“……후한 평가군.”
“그리 생각할 것 없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여기까지구나. 아쉽겠지만 먼저 저승에 가 있거라. 하면 오래 지나지 않아, 네놈의 오랜 동료들도 하나하나 곁으로 보내 줄 테니.”
“……그거 반가운 소리군.”
적마소의 말에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살천이, 그를 향해 한 마디 도발을 던진다.
“하면 머지않아…… 저승에서 네놈을 먼저 만날 수 있을 테니.”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나.”
“무신(武神) 단월혁.”
“…….”
“그리고 천무신녀(天武神女) 단아란도 있지……. 이백 년 전의 천마가 다시 돌아와도 당해 내지 못할 텐데, 고작 너 같은 것에게 그들이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서 말이다.”
“흐음……. 무신과 천무신녀라…….”
살천의 말에, 적마소의 얼굴에 어쩐지 묘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천폭성(天爆星)이 무신으로 불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내 전해 들었지. 하면 천무신녀라는 계집은 그때 보았던 놈의 동생인 모양이로구나.”
“……뭐라고?”
“그 아이라면 능히 제 오라비 정도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잠깐 본 것에 불과하지만 그 재능이 범상치 않았으니까.”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천폭성. 이는 무신 단월혁이 이백 년 전에 부여받은 별호다.
그가 천폭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으니, 그때의 별호를 안다는 것은 적어도 그 시대를 알고 있다는 의미다.
“설마…… 네놈도 이백 년 전의 생존자더냐!”
“아니……. 엄밀히 말해 생존자는 아니지. 나는 그날의 전투에서 분명히 죽었으니.”
“그게 무슨……! 설마 죽었다 살아나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쿠구구궁.
살천이 목소리를 높여 묻자, 어딘가 멀리서 은은한 폭음이 울려 퍼진다.
“……저쪽도 슬슬 끝나 가는 모양이군. 하면 이쪽도 이만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
쓰윽.
그러고는 살천을 향해 오른손을 내뻗는 적마소.
잠시 후 그의 우수에 검은 마기가 집중되기 시작하자,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살천이 다급히 머리를 굴린다.
‘이백 년 전의 무신과 천무신녀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의 전쟁에서 살아남지는 못했다…….’
상대가 죽었다 살아난 놈이라는 가정은 하고 싶지 않지만, 보다 냉정하게 정보를 분석하려면 자신이 가진 기존의 잣대를 모조리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저자의 입을 통해 들었던 모든 정보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점차 형태를 갖추어 간다.
‘놈이 아까 무어라 했지……? 아직 힘을 온전히 되찾지 못했다고…….’
드드드드.
적마소가 선 주위의 대지가 갈라지며 그 파편들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도저히 극마의 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신위.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의 온전한 형태를 이룬다.
그리고 곧이어 살천의 눈에 서서히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이런……!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자…… 이만 가거라.”
콰구구구구!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인근을 모조리 집어삼킬 듯한 검은 마기가 그의 우수에서 터져 나왔다.
이에 살천이, 부러진 검에 남은 내력을 쏟아부으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은 마기를 베어 낸다.
쩌저정!
‘……신불은 모르고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믿고 싶지도 않지만……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절대 보통 일이 아니다.
이백 년 전에 중원을 피로 물들였던 괴물, 천마신교의 십삼 대 천마가…….
‘……살아났다!’
쩌저저적.
쾅!
폭사하는 마기를 버텨 주던 살천의 검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균열을 일으키며 파괴된다.
가공할 마기가 자신의 몸을 찢어발기는 것을 느끼며 살천은 생각했다.
무신과 천무신녀가 있다면, 저 적마소라는 녀석은 어떻게든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 대체 현재의 천마(天魔)는……?’
천마신교의 역사를 뒤져도 손에 꼽힌다고 평가받는 십삼 대 천마.
그런 그에게 천마라고 인정받고 있는 괴물……!
그렇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던 살천의 의식이 이윽고 끊어진다.
살막(殺幕)의 후계자이자 암천막(暗天幕)의 초대 막주였던, 더불어 무신 단월혁의 더 없는 조력자였던 암왕(暗王) 살천(殺天)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
촤좌좍!
“크읍……!”
타닷.
흉부에서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내려오는 붉은 실선이 만들어지자, 뒤쪽으로 물러선 북천이 다급히 스스로의 상처를 지혈한다.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서천과 남천, 그리고 자신까지.
도합 세 명의 화경급 고수가 단 한 명을 상대로 협공을 펼치고 있다.
처음에는 일각을 넘기지 않고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건만, 살령은 그런 상황에서도 도리어 그들을 위협하는 저력을 보여 주고 있다.
투두둑 툭.
“뭐 하느냐…… 어서 들어오지 않고……?”
“……괴물 같은 놈.”
기어이 서천의 입에서, 북천이 몇 번이나 집어 삼키던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온몸이 피로 물든 살령의 모습.
등에는 남천의 검이 박혀 있고, 한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를 서천이 만든 검상이 대신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왼팔은 북천의 도에 의해 완전히 떨어져 나간 상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여야 할 모습이건만, 도리어 그 참혹한 모습이 살령을 더더욱 악귀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
“들어오지 않는다면…….”
주르륵.
말을 이어 가는 살령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온다.
“……내가 가마!”
파밧!
쇳소리 같은 한 마디와 함께 살령의 신형이 북천에게로 접근한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한쪽 눈으로 북천을 쏘아보며, 살령의 검이 복잡한 궤도와 함께 북천의 목으로 날아든다.
“윽……!”
쩌저정!
처음이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반격을 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기세에 밀린 탓에, 북천의 도는 소극적으로 상대의 검로를 가로막는 데 그쳤다.
그러자.
스륵.
쾅!
“크헉……!”
북천의 도를 부드럽게 밀쳐 낸 살령이 과격하게 달려들어 그의 안면을 머리로 받아 버린다.
코뼈가 부러진 듯한 충격에 북천이 피를 쏟으며 물러나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살령의 일 각이 그의 대퇴부를 후려친다.
쩡!
“어딜 가느냐!”
“이런……!”
쐐애액!
쩌저저정!
균형을 잃는 북천의 머리 위를, 검강을 머금은 살령의 검이 섬광같이 내려친다.
가까스로 도를 회수해 방어에 성공하긴 했지만, 여기서 끝을 보겠다는 듯 살령의 발이 북천의 발등을 짓이긴다.
쿵!
우드득.
“크아아아악!”
발등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충격에 북천이 비명을 지르자, 어느새 살령의 우측으로 접근한 남천이 수강이 머금어진 일 수를 뻗어 낸다.
촤좌좍!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틀어 남천의 수강을 흘려 내는 살령.
곧이어 북천을 밟고 있던 그의 발이 남천의 복부로 날아든다.
쩡!
“컥……!”
촤지지직.
침음성과 함께 남천의 신형이 뒤쪽으로 밀려난다.
그 순간.
촤좍!
어느새 남천의 반대편으로 접근한 서천의 검이 살령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간다.
그러자 지금까지 어떤 공격을 받고도 변하지 않던 살령의 얼굴이 처음으로 고통에 일그러진다.
“크헉……!”
“돼, 됐어……. 끝……!”
촤좌좍!
지나치게 이르게 승리를 확신한 순간, 북천의 도를 밀어붙이고 있던 살령의 검이 돌연 서천의 오른팔을 날려 버린다.
휘리릭.
털썩.
“끄아아아아!”
감정의 변화를 거의 보이지 않는 서천이 고통과 절망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검수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우수가 팔꿈치 위쪽까지 잘려 나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그러나 살령이 검을 돌린 그 짧은 순간, 자유를 되찾은 북천의 도가 기다렸다는 듯 살령의 오른쪽 팔을 베어 낸다.
촤좌좍!
“크흐흐…… 놈! 이제야말로 끝났……!”
덥석.
잘려 나간 자신의 오른팔에서 떨어진 검을 허공에서 입으로 낚아채는 살령.
입에 경기를 불어넣어 그것을 고정시킨 살령이, 그대로 몸을 돌려 북천을 향해 돌진한다.
“아니……!”
살령의 팔을 베어 내며 방심한 탓에 북천에게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단이 거의 없다.
무심코 뒤로 물러나려 한쪽 발을 움직였으나, 조금 전 부러졌던 발등에서 온 통증이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켰다.
욱신.
“크윽……!”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어느덧 목선을 향해 날아드는 살령의 검.
살기등등한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살령의 핏대 선 눈이, 북천의 움직임마저 굳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그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떠올린 그때.
스걱.
자신을 향해 접근하던 살령의 상반신이,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더니 바닥을 나뒹굴었다.
풀썩.
챙그랑.
“……쿨럭!”
하반신이 완전히 잘려 나간 살령이, 검붉은 핏물을 쏟아 내며 물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군다.
한편 북천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살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하하, 이거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군.”
“……!”
저벅 저벅.
난데없이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에 북천의 고개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간다.
대체 언제부터 이곳에 와 있던 것일까?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그들에게 다가오는 구마 장로의 모습에, 북천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체…… 당신이 여기에 왜…….”
“허어, 생명의 은인에게 한다는 첫 마디가 그것인가? 이거 기껏 구해 준 보람이 없군.”
답지 않게 너스레를 떠는 구마 장로의 모습에 북천이 지그시 입술을 깨문다.
애초에 동문을 장악하기로 계획 되었던 구마 장로다.
그랬던 그가 이곳까지 와 있으니,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경계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설마…… 이놈이 우리를 노리고……?’
지금 그를 포함한 사천살 모두는 전투 불능에 가까운 상처를 입은 상태다.
이런 상황이라면 구마 장로가 다른 마음을 먹었을 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묻는 말에나 답하시오. 왜 당신이 여기에……”
“답을 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 한데 그보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순서 아니겠는가?”
뒷짐을 지고 선 채 빙긋 웃어 보이는 구마 장로.
이에 잠시 그의 얼굴을 노려보던 북천이 고개를 돌려 사지가 잘려 나간 살령을 내려다본다.
입에서 쉴 틈 없이 검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그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분노 어린 눈초리로 구마 장로를 쏘아보고 있었다.
“쿨럭……! 네가…… 감히…… 쿨럭……! 암천막을……!”
“……거기까지 하시오, 살왕.”
어쩐지 살령을 바라보고 있기 껄끄러웠는지, 맨바닥으로 시선을 돌린 북천이 자신의 도를 치켜든다.
“……싸움은 끝났소.”
“어리석은…… 쿨럭! 저들이……. 쿨럭! 너희들을……!”
촤좌좍!
피를 토하며 말을 이어 가던 살령의 목을, 반원형의 검붉은 강기가 베어 낸다.
털썩.
“쯧……. 그냥 조용히 갈 것이지, 지나치게 말이 많군.”
강기를 전개한 한쪽 손을 내리며 미간을 찌푸리는 구마 장로.
예고도 없이 끼어든 그를 향해, 북천이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게 무슨 짓이오!”
“어차피 죽일 것이 아니었나? 하도 시간을 끌길래 도와준 것뿐이거늘.”
북천의 분노에도 도리어 퉁명스레 대꾸하는 구마 장로.
그 모습에 부르르 몸을 떤 북천이 어금니를 꽉 물며 주먹을 움켜쥔다.
‘이렇게 대놓고……!’
비록 그들이 배신했다고는 하지만, 살왕 살령은 명색에 음지의 지배자다.
그런 그를 사천살의 손으로 죽인다는 상징성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한쪽에 서 있던 남천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진다.
‘……하지만 더 따지고 들 수도 없다.’
살왕은 죽었다.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의 사천살 중, 한 명은 확실한 전투 불가 상태고 남은 둘의 상태도 온전치 못하다.
동천이 그들과 합류하기 전까지는 저자의 심기를 건드려 좋을 것이 없다.
“자자, 어찌 그리 굳은 얼굴들인가? 그대들의 숙원이 해결될 날인데, 응당 기뻐해야지!”
“…….”
“……어서 기뻐하게.”
……꿀꺽.
기분 탓일까?
어쩐지 스산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구마 장로의 한 마디.
어딘지 모르게 명(命)처럼 느껴지는 그의 한 마디에, 북천과 남천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음지를 지배해 오던 암천막이 결국 마교의 손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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