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아파.’
그리고 뜨겁다.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과 함께, 전신에서 뜨거운 화기(火氣)가 느껴진다.
‘……누구지? 이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 같기도 하고…….
그러고는 이내 광소를 터뜨리는 정체불명의 사내.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결국, 벌어지지 않는 입을 강제로 벌려 사무현이 물었다.
‘넌…… 누구냐.’
속삭이듯 작게 흘러나온 사무현의 목소리.
그 음성을 들었는지,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광소가 점차 잦아든다.
그리고 잠시 후…….
‘…….’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끝으로 다시금 우렁찬 광소가 이어진다.
그 웃음소리가 점차 멀어질수록 온몸 구석구석에서 아찔한 통증이 시작된다.
사무현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려 하던 그때,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드리웠다.
화악.
“……아.”
아주 잠깐 그의 눈에 밝은 빛이 비치는가 싶더니 곧 다시 어둠이 찾아 들었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닌, 새하얀 보름달이 뜬 밤하늘이 사무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긴?”
눈앞에 바뀌어 버린 세상이 펼쳐지고 온몸에 보다 생생한 감각이 돌아오고 나서야, 사무현은 이곳이 현실임을 자각했다.
더불어 자신이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장소에 누워 있다는 사실도.
그런데…… 여기가 대체 어디…….
“오오, 깨어났는가?”
상당히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곧 피에 젖은 민머리가 불쑥 사무현의 시야에 들어온다.
오, 이거 꼭 신불 스님 같은…….
“……신불 스님?”
반신반의한 사무현의 음성.
그의 입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작은 쇳소리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했는지 신불이 눈에 띠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상태를 살핀다.
쓰윽.
“정신이 든 모양이구만. 다행일세, 다행이야.”
“……애들은요?”
이것저것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사무현의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은 막휘 일행의 안부였다.
동천의 팔을 자르고 그의 반격에 당한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신불 덕분에 목숨을 구한 모양인데, 자신이 쓰러진 이후 녀석들은 어찌 되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때, 저 한쪽에서 그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저벅 저벅.
“형님! 일어 나셨습니까?”
“……막휘?”
힘겹게 고개를 반쯤 들어 돌리자, 산발 된 머리에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모습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온다.
그가 쓰러지기 전에 보았던 모습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너…… 상태가…….”
“아, 남문(南門)을 통해 암천막을 빠져나오다가, 진을 치고 있던 마교도들과 한번 붙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싸웠길래…….”
“염려 마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형님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너보다는 내가 낫지.
사무현의 눈빛에서 그 뜻을 읽었는지, 막휘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덧붙인다.
“얼굴 말고! 몸 상태 말입니다, 몸!”
“아…… 몸 상태.”
난 또, 얼굴 상태 말하는 줄 알았지.
“몸 상태야…… 당연히 네가 나보다 낫겠지……. 난 누워 있고 넌 서 있는데.”
“……어째 생각보다 살 만하신가 봅니다?”
막휘가 어이없다는 듯 반문하자, 무언가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닫은 사무현이 이윽고 어두워진 얼굴로 물었다.
“……다른 애들은?”
“아, 녀석들 말입니까?”
“…….”
“걔들도 꼴은 좀 추해졌지만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 신불 스님이 쳐 놓은 진 외곽의 상태를 살피고 있습니다.”
“진…… 외곽의 상태?”
“아미타불……. 이곳은 암천막의 본단에서 제법 떨어진 숲이오, 시주.”
사무현의 의문을 해결해 주려는 듯 신불이 말을 이었다.
“기절한 시주를 업고 우리는 남문을 통해 본단을 빠져나가려 했소. 한데 그곳도 이미 탈출하려는 이와 막으려는 이들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더이다.”
“그러면 여긴…….”
“음…… 어찌어찌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시주의 몸 상태로 인해 너무 멀리까지는 갈 수가 없었소. 이 정도면 추적으로부터는 안전하다 판단되어, 진을 치고 시주의 상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하아…….”
털썩.
신불의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무현이 뒷머리를 땅에 대고 눈을 감았다.
‘……다행이다.’
처음 눈을 떠서 신불을 봤을 때, 사무현이 느낀 첫 번째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혹여나 모두가 죽고 그 하나만 살아남은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뒤이어 막휘를 보았을 때, 가슴 벅차게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더욱 큰 두려움이 엄습했다.
살암, 손익패, 청사, 적사. 그 녀석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지.
결국 괜한 말장난이나 섞다 던진 질문에 답을 듣고서야, 사무현은 비로소 진심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동천은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사무현의 다시 눈을 뜨며 물었다.
천마는 분명 신불도 교전 중이지만 승산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가 아니라면 동천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이는 없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그들 모두가 살아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사무현의 물음에 돌아온 것은, 도리어 호기심 어린 신불의 시선과 막휘의 묘한 침묵이었다.
“…….”
“왜요?”
사무현이 재차 묻자, 막휘가 어쩐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 정말 기억 안 나십니까?”
“뭐가?”
“형님께서 쓰러뜨리셨습니다, 그 동천이라는 녀석을.”
“……내가?”
막휘의 대답에 두 눈썹을 추켜올리는 사무현.
그 순간 그의 머리에 한 가지 가정이 스쳐지나갔다.
‘……천마.’
그 녀석밖에는 없다.
동천의 마지막 공격에 당하기 직전, 사무현은 극심한 통증과 체력 저하로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그에 반해 동천은 한쪽 팔이 잘렸을 뿐이지 사실상 아직 싸울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었다.
혹여나 무의식으로라도 사무현이 그를 쓰러뜨렸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쉽지 않았을 텐데.’
마교를 탈출했을 때 추적하던 녀석들과는 달랐다.
상대는 명색에 화경의 경지에 오른 괴물.
물론 사무현의 육체도 단순한 절정급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큰 부상을 입은 상태로는 제대로 된 운신을 하는 것조차 버거웠을 것이다.
‘대체 몇 번째지? 이게.’
그의 몸을 통해 생명을 구한 것은 두 번째다.
하지만, 그 외에도 도움받은 것들을 헤아려 보면 열 손가락을 다 채우고도 가늠하기 어렵다.
애초에 녀석이 없었다면 마교를 탈출하는 것도, 무공을 익히는 것도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까.
‘안에서 쉬고 있는 건가?’
보통 때라면 그의 옆에 나와 큰소리도 치고 잔소리도 늘어놓았을 텐데, 눈을 뜨고 이만한 시간이 흐르기까지 녀석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일전에도 사무현의 몸을 지배한 대가로 한참을 피곤해했으니 이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타나면 고맙다는 말은 해 둬야겠네.’
조금 으스대거나 잔소리를 하더라도 오늘만큼은 감수해야겠다고 사무현은 생각했다.
잠시나마 마음을 놓아 버렸기 때문일까?
급속도로 머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 사무현이, 돌연 다시 의식을 놓아 버렸다.
스륵.
“어어? 형님…….”
“쉿, 푹 자게 두시게.”
당황하는 막휘를 향해 한쪽 손을 뻗어 보이는 신불.
그제야 사무현의 수혈(睡血)을 짚은 신불의 반대편 손이 막휘의 눈에 들어온다.
“스님께서 재우신 겁니까?”
“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서 말일세.”
그 말과 함께 신불이 사무현의 앞머리를 들춘다.
이마에서부터 뺨까지 흥건하게 맺혀 흐르는 땀방울들.
이에 막휘가 두 눈을 크게 뜨자, 신불이 안쓰러운 얼굴로 말을 잇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깨어나기 무섭게 비명을 내질렀을 중상일세. 흉부의 뼈가 드러났을 정도인데 고작 지혈밖에는 해 줄 것이 없으니…….”
“아…….”
신불의 말에 막휘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워낙 멀쩡하게 말을 해서 깜빡 잊고 있었지만, 저 정도의 중상이면 고통을 이기지 못해 혼절 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아미타불……. 스스로도 생사를 오가는 고통을 겪고 있을 터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동료들의 안부만을 걱정하고 있으니…….”
“……그런 사람입니다.”
신불의 말에 막휘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 모두를 지키기 위해, 화경급 고수와 혼자 대적하는 무모한 짓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미타불.”
막휘의 말에 신불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동천을 사무현이 감당하는 것은, 어느 모로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가 강하다고 해도 아직은 후기지수에 불과하니까.
‘하나 이겨 냈다.’
아마도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갖은 무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 홀로 그만한 중상을 입은 것이겠지.
그리고 그 결과 그는 다시없을 기적을 만들어 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강적 앞에서, 결국 그의 동료들을 지켜 냈다.
신불 자신과는 다르게…….
그렇게 신불이 자소 섞인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때, 저 멀리서 청사가 달려와 그를 향해 소리친다.
타다다닷.
“신불 스님! 남쪽에 추적자가 붙었습니다! 다섯 입니다!”
“……아미타불.”
쓰윽.
청사의 말에 몸을 일으키며 염주를 움켜쥐는 신불.
그러고는 막휘를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본승이 다녀오도록 하겠소이다.”
“차라리 진에 숨어 있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제대로 훈련받은 추적대라면 진으로 속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오, 그리고…….”
막휘의 말에 대답하던 신불이, 슬쩍 깊은 잠에 빠진 사무현을 돌아보며 말을 잇는다.
“괜한 소란이 벌어지면 얼마 안 되는 휴식 시간이 방해받을 것이오. 날이 밝기 전에 한 번 더 장거리를 움직여야 하는 만큼, 조금이라도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오.”
“아…….”
“하면 앞장서시오, 청사 시주.”
어느새 남쪽으로 몸을 돌린 신불이, 그답지 않은 분노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어둠을 노려보며 발걸음을 옮긴다.
“적에게 있어서만큼은, 소림의 승려가 결코 유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할 것 같으니.”
***
암천막의 혈전 이후 닷새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거대 집단의 몰락에, 무림에 발을 걸치고 있는 중원의 모두는 실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왕(二王)의 몰락과 삼왕(三王)의 등장.
가히 개벽이라 부를 만한 음지의 변화에 정, 사를 막론한 모든 이들이 신경과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낸 장본인들은, 청해의 한쪽 구석에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십만대산에 위치한 천마신교의 총타.
그곳에 위치한 교주전에서 두 명의 흑의인이 한 사내를 앞에 두고 부복해 있었다.
“소교주 적마소와 장로 구마가, 천마(天魔)의 명을 이행하고 돌아왔나이다.”
“음.”
구마 장로보다 조금 더 앞 쪽에 부복해 대표로 예를 갖추는 적마소.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인 초대 천마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오랜만의 외출은 즐거웠느냐?”
“사사로이 즐기기 위한 외출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공손한 적마소의 대답.
조금도 나무랄 데 없는 대답이었지만 초대 천마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내 의도를 곡해했군. 난 그대에게 명을 내린 바가 없다.”
“…….”
“그저 구마 장로와 함께 다녀오라고 ‘허가’를 해 준 것뿐이지. 꽤나 오래도록 몸이 근질거렸을 텐데, 한번 정도는 풀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말이야.”
“천마의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덕분에, 이백 년 전에 놓쳤던 쥐새끼 중 하나를 처단할 수 있었습니다.”
천마의 말에 다시 한번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적마소.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천마가 그의 뒤쪽에 부복한 구마 장로에게 고개를 돌린다.
“일은 계획대로 마무리되었느냐?”
“예, 소교주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 하면 중원의 음지는 이제 우리 수중에 있다는 말이로구나.”
“아직 완전하다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곧 그리될 것입니다.”
천마의 물음에 답을 한 구마 장로가, 잠시 눈치를 살피다 말을 잇는다.
“실은 이번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암천막을 사분하기로 했던 이들 중 하나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해서 그들로 음지를 사분하여 다스리려던 본래의 계획과는 달리, 공백이 생겨 버린 동쪽을 다스릴 다른 이를 찾아야 할 듯합니다.”
“계획이 지연되겠구나.”
“예.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 년 내에 동쪽을 정리할 만한 이를 물색해 보겠습니다.”
“흐음……. 일 년 이라…….”
구마 장로의 말에 잠시 허공을 응시하는 천마.
그의 분위기가 어쩐지 심상치 않자, 한쪽 벽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태상 장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천마께서 원하신다면 어떻게든 본래의 계획에 맞추어 보겠나이다.”
“아니……. 굳이 그럴 것 없다.”
“…….”
“때로는 조금 뜸을 들여야, 더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는 법이니.”
태상 장로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은 천마가, 느긋하게 몸을 일으켜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긴다.
저벅저벅.
“잠시 산책을 다녀올 것이다. 적마소만 나를 따르라.”
“존명.”
다짜고짜 꺼낸 천마의 말에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이는 적마소.
그와 천마가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남아버린 장로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번진다.
그런 그들을 뒤로 한 천마의 얼굴에, 보기 드문 기대감이 번져있다.
“궁금하구나. 과연 이무기가 그 사이에 여의주를 발견했을지, 어떨지.”
총타 밖의 저 먼 곳.
그들 사이에 소위 ‘경계’라 불리는 곳으로 시선을 두며 천마가 두 눈을 반짝인다.
“조금 더 기다려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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