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흐음…….”
단월혁과의 짧은 공방을 마치고 자신의 우수를 내려다보는 천마.
어느새 그의 무복 소매 끝자락이 미세하게 갈라져 있다.
그리고 단월혁의 무복 또한, 앞섶 일부가 칼에 베인 듯 잘려 나갔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군. 심검을 자유자재로 펼치면서 이만한 위력의 강기를 전개하다니.”
“……나쁘지 않다?”
“그래, 나쁘지 않다. 하나…….”
단월혁의 물음에 대답한 천마가, 다시 오만하게 뒷짐을 지며 말을 잇는다.
“그것뿐이다.”
“…….”
“고작 이 정도로는 본좌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지금 보여 준 것이 네 전부라면, 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다.”
덤덤한 천마의 음성.
그 말을 듣고 있던 단월혁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간다.
“……그래? 실망스러웠더냐?”
쓰윽.
알 수 없는 조소를 머금은 단월혁의 검신이 몸의 정중앙과 일치된다.
잠시 후 그의 몸 주위로 심상치 않은 붉은 기류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스스스스스.
콰드드득.
조금 전 천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단월혁을 중심으로 대지가 갈라지고 그의 머리칼이 허공으로 솟구친다.
둘 사이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단월혁의 몸을 맴돌고 있는 것이 마기가 아니라 화기라는 것 정도였다.
“하면 어디…… 이것도 받아 보거라.”
스스스스.
단월혁의 몸 주위를 맴돌던 붉은 화기가 점점 그 크기를 부풀려 간다.
그리고 이윽고 그 화기의 일부가 조금 전 천마를 삼켰던 화룡의 형태로 화(化)한다.
“기의 크기가 커졌군. 하나 역시 평범…….”
스스스스.
천마의 말이 이어지던 그때, 거대한 용의 형상 옆으로 또 하나의 용의 형상이 만들어진다.
두 마리의 화룡이 계속해서 크기를 키우며, 금방이라도 주위를 집어삼킬 듯 요동친다.
그리고…….
스스슥 스스스슥.
“……음?”
두 마리의 화룡이 한 번 더 분열을 일으키더니 그 수가 넷으로 불어난다.
당장이라도 풀려나기 위해 요동치는 그들의 사이로, 심상치 않은 크기의 화룡 한 마리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쿠우우우우.
“……네가 전대 천마를 넘어서는 그릇이라는 것은 인정하겠다, 하나.”
포효하는 다섯 용의 형상을 등 뒤에 세운 채, 단월혁이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날 찾아온 것이 지나치게 일렀구나.”
부웅.
콰우우우우.
말을 마친 단월혁의 검이 휘둘러지자, 다섯 마리의 용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며 커다란 파공성을 흘린다.
그렇게 허공으로 흩어지던 화룡들이, 돌연 방향을 선회해 천마가 있는 방향으로 일제히 날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스스로 의지가 있는 것처럼!
“흐음…….”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거대한 다섯 마리의 화룡을 바라보며, 천마가 한쪽 입꼬리를 씰룩인다.
“이건 조금 재미있겠구나.”
드드드드.
말을 마친 천마의 몸 주위로 검은 마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이윽고 다섯 마리의 용이 사방과 머리 위에서 입을 벌리고 날아드는 순간, 천마의 몸 주위를 감싸고 있던 마기가 폭사 하며 다섯 용의 머리를 찢어발긴다.
콰과과과과과과과.
쩌저적 쩌적.
지축이 통째로 뒤집히고 범위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숲이 초토화되어 간다.
지형의 일부를 뒤바꿀 정도의 거대한 폭발이 십만대산의 한쪽에서 터져 나온다.
암천막이 마교에 의해 찢어진 지 꼭 닷새째 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
암천막이 붕괴되었다는 소문이 퍼진지도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암천막 분열의 뒷배에 마교가 자리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백 년간 평화 속에 살아왔던 중원 무림에는 심상치 않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마교와 음지가 손을 잡았다!’
‘음지의 이왕(二王)이 지고, 삼왕(三王)의 시대가 시작됐다!’
‘파마불제도 같은 자리에 있었으나 대세를 바꾸기엔 무리였다!’
삽시간에 여러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져 나갔으나, 결국 중원의 호사가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하나였다.
무림의 판도를 흔들 만한 이번 사태에 무림맹은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
하지만 모두의 기다림과는 달리, 무림맹의 대외적 입장 표명은 생각 외로 늦어지고 있었다.
“무림맹의 입장에서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무림맹의 대책회의실.
오대세가와 구파일방, 그 외에 무림맹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대문파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갈세가(諸葛世家)의 대표로 무림맹에 나와 있는 제갈운(諸葛)이 가장 먼저 의견을 내세우자, 곧바로 반대 의견이 튀어나왔다.
“마교가 개입했습니다. 한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요?”
“마교의 개입은 몇몇 생존자들의 정황상 증언일 뿐, 명확한 증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소. 무엇보다 무림맹은 지금껏 음지의 일에는 무개입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소이다.”
아미파의 대표로 온 아연(兒然)의 말을 제갈운이 맞받아치자, 현 무림맹주(武林盟主)로 있는 섬천검제(殲天劍帝)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짓누르며 말을 잇는다.
“……말을 정정해 주길 바라오. 무림맹은 지금껏 그런 것을 원칙으로 삼은 적은 없소이다.”
“관례가 그러했다는 말입니다.”
다소 억지스럽게 자신의 말을 수습하며 제갈운이 말을 잇는다.
“지난 이백 년간 음지의 행보가 어떠했습니까? 그 마교와의 전쟁 이후, 보잘 것 없던 암천막이라는 문파가 중원 전체의 음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중원의 음지 통일이라는 다소 과격한 행보를 이어 갈 때도 무림맹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구두상의 경고도 하지 않았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사실 이번 암천막의 사건이 놀랄 만한 일이지만, 이백 년 전 암천막의 과격한 행보를 생각하면 저희가 개입할 만한 일도 아닌 듯합니다.”
제갈운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모용세가의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그러자 그들의 반대편에 있던 화산의 대표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반박한다.
“잠깐. 이백 년 전은 무림맹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도 못했던 시기였소. 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던 일을 관례라고 여길 일은 아니오이다.”
“어허! 할 수 있어서 못했건 하고 싶지 않았건, 결국 역사가 곧 관례가 된 다는 것을 어찌 모르시오!”
서로 간의 의견이 몇 번 오가자 금세 회의실이 저들의 높은 언성으로 술렁인다.
그러던 그때, 소림의 대표로 나온 불여(不餘)가 낮은 음성으로 말을 꺼낸다.
“아미타불……. 맹주님, 소림의 입장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시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맹주를 통해 정식으로 발언권을 청한다.
이는 소림이 강호의 북두임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음과 동시에, 저들에게 소림의 발언을 주목하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다행히 이 의도는 효과가 있었는지 술렁이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소림은 이 일을 결코 좌시만 해선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어째서 그러하오?”
“마교 때문입니다. 단순히 음지의 일이라면 무림맹이 개입할 일이 아니지만, 그들을 통해 마교가 중원 진출을 꾀하려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으음…….”
“이 작은 불씨가 커져 전화(戰火)가 되어 버린다면 늦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조금 과하더라도 반드시 손을 써야 한다는 것이 소림의 입장입니다.”
‘……그게 다가 아니겠지.’
언뜻 덤덤해 보이는 불여의 말을 들으며 섬천검제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언뜻 대의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소림이 저리도 적극적인 이유는 바로 저 사건에 파마불제 신불이 휘말렸기 때문일 것이다.
소림의 전대 방장이자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부상을 입고 돌아왔으니, 평소 중립을 주장하는 그들답지 않게 대의를 입에 올리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모으려 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강경한 소림의 발언에 구파일방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제갈세가의 제갈운이 다급히 손을 들어 반박 의견을 꺼내 든다.
“잠깐.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마교가 개입했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자들의 정황 증거일 뿐입니다.”
“그 생존자들 중에 파마불제도 계셨소이다. 제갈세가는 지금, 그분의 말씀조차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외까?”
“그…… 그런 말은 아니지 않소?”
파마불제라는 이름으로 정공법에 나서자 기세에 밀린 제갈운이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린다.
명색에 정파 무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상, 소림이라는 이름에 맞서는 것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때, 사파 측 대문파의 수장들 사이에 끼어 있던 사명문(死銘門)의 문주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낸다.
“크흠……. 아무리 소림이라도, 마교를 핑계 삼아 음지의 일에 개입하시는 것은 과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사명문주의 말에 사파 측 이들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인다.
사명문은 사파에 보기 드문 대문파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 비해 발언권이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녹림과 장강수로채를 제외한다면 무림맹에 발언권을 가진 사파들 중 수장 격이라 말할 수 있는 문파다.
“혹여나 이것이 세간에, 무림맹이 힘으로 하나의 세력을 탄압한다 느끼게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미타불……. 어찌 그것을 탄압이라고 하시외까?”
“언제나 그렇듯 정파의 명분은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가 되지 않습니까? 이번에 파마불제라는 이름으로 음지에 개입한다면, 이후에는 검존의, 권존의, 혹은 다른 누군가의 이름으로 사파나 다른 세력에 개입할 가능성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으음…….”
“과연, 맞는 말씀이오.”
사파 측 대문파들이 사명문을 옹호하고 나서자, 정파 측 대문파 중 하나인 천원문(天元門)의 대표가 한쪽 손을 들어 보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한 일이지만 마교는 실재하는 위협이오. 자칫 이백 년 전의 마교 대전이 되풀이되고 나서 후회한다면, 그건 이미 늦은 일이 아니오?”
“굳이 마교라는 위험을 걱정하는 것이라면 음지에 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오. 다시 한번 마교가 중원의 일에 개입하면, 무림맹도 좌시할 수 없다는 경고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이외다!”
웅성웅성.
“……하아.”
소림의 중재로 격식을 갖추는가 싶었던 회의가 또다시 난장판이 되어간다.
의견은 한데 모이지 않고,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이다.
점점 서로를 헐뜯기 바빠지는 저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섬천검제의 미간에 골이 깊어져갔다.
***
꿀꺽꿀꺽.
탁.
“크으……. 내, 그리될 줄 알고 있었소이다.”
한 손에 들린 술병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승려복 안쪽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신불이 말을 이었다.
“사파는 갈수록 약해져 가는 자신들의 입지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오대세가는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켜 자신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오. 하지만 구파일방은 그들과 달리 명예와 명성으로 먹고사는 이들이니…… 음지의 세력을 이대로 좌시할 경우, 자신들의 이름에 흠집이 날까 두렵지 않겠소이까?”
“……맥을 정확히 짚으시는군요”
자신의 집무실 탁자를 술상으로 쓰고 있는 신불의 발언에, 연무학관주인 권존이 쓴웃음 섞인 감탄사를 흘렸다.
병상은 답답하다며 이른 새벽부터 이곳에 와 술만 퍼마시던 신불이다.
그런데 참석하지도 않은 회의의 내용을 자신의 손바닥 보듯 이야기하고 있으니, 확실히 사람의 진면목은 겉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모양이었다.
“끌끌, 이 나이쯤 되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오. 겉으로는 정의니 협이니 떠들어 대도, 결국에는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더이다.”
“……예, 맞는 말씀입니다.”
신불의 말에 권존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집무실 한쪽 의자에 반쯤 누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단아란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래?”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회의 결과 말이야. 뭐라도 결론은 냈을 거 아니야?”
“그것이…… 우선은 공문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뭐? 공문?”
권존의 말에 단아란의 눈썹이 올라간다.
“무슨 공문?”
“음지의 일에 마교가 개입한 것인지 해명하라는 공문입니다. 더불어 앞으로 어떤 목적으로건, 마교를 끌어들이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무림맹의 입장에서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내용도 포함할 계획입니다.”
“……얼씨구.”
권존의 말에 피식 실소를 흘린 단아란이 의자에서 자세를 바로하며 매섭게 눈을 번뜩인다.
“중원의 일에 마교를 끌어들였는데, 고작 공문을 보내 해결한다고?”
“제가 결정한 일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무림맹의 일은 맹주가…….”
“아하, 맹주가 결정했다?”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단아란의 모습에, 권존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심사가 이렇게 뒤틀렸을 때에는 보통 큰 사고가 뒤따르기 마련이었으니까.
“섬천검제,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마교를 끌어들인 일에 고작 공무우운? 간만에 무림맹 한번 다녀와야겠네.”
“이, 이번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 결과이고, 계속되는 회의를 통해서 더 좋은 대책을 마련할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맹주라는 직책은 모두의 입장을 정리할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습니다.”
“하아…… 이 빌어먹을 새끼들. 오대세가가 문제인 거지? 가주 놈들 싹 다 불러서 정신 교육이라도 시켜야 되나?”
“그, 글쎄요 그거야…… 아, 아참! 그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든 단아란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권존이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게 뭔데?”
“이번 일에 관련해서 무신 어르신께 서신을 보내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야 당연히 보냈지.”
“그렇습니까? 하면 답신이…….”
“안 왔어, 아직.”
권존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은 단아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잇는다.
“뭐……. 아무리 무심하신 오라버니라도 이번 일에는 답신을 주시긴 할 것 같은데……. 거리가 워낙에 먼 곳이라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래도 아마 이제쯤에는 당도했을 텐데.”
“그, 그렇습니까? 어서 답신이 오면 좋겠군요.”
단아란의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한 권존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단아란은 어쩐지 초조한 얼굴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괜찮으신 거지요? 오라버니.’
마교가 움직였다.
지금껏 단월혁이라는 존재 하나로 꿈쩍도 하지 않았던 그 마교가.
이 세상에 단월혁에게 위해를 가할 만한 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그런 그녀의 걱정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어둑하기만 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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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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