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정말 괜찮겠느냐?”
“예, 필요 없어요.”
“그래도 내가 뭔가 도울 만한 일이…….”
“아, 없다고요. 여기 애들 안 보여요? 제발 좀 가요, 그게 도와주는 거니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리 하마.”
사무현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 정도관의 허량이,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젖은 천을 내려놓았다.
“그럼, 한시 빨리 쾌차하기를 바라마.”
“예. 그럴게요. 어서 가세요.”
힘겹게 한 손을 휘저으며 허량을 내보낸 사무현이, 잠시 후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다.
고집불통 같은 인간 하나를 어찌어찌 보낸 것은 좋은데, 그래 봐야 큰 문제 앞에 작은 문제를 치워 버린 것에 불과하다.
“……늬들도 좀 가라, 제발.”
“하하, 왜 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형님.”
“그 사이 잊으셨을까 봐 말씀드리자면, 어떤 일이 있어도 형님의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간호 하라는 ‘사도관주님’의 ‘명’이 계셨습니다.”
사도관주님과 명 자에 힘을 팍팍 주는 것을 보니 사무현의 그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내가 호랑이 새끼들을 키웠구나.’
내 호령 한 번에 끔뻑끔뻑 죽던 놈들이 어쩌다 이렇게 사파처럼 커서는…….
아, 얘네 사파 맞지? 아무튼!
“……그럼 한 명만 남든가.”
“들었지? 얼른 눈치껏 들어가라.”
“무슨 개소리야? 형님께서 나보고 말씀하신 거 못 봤어?”
“서열로 정하자. 너희들 다 나가. 형님들 다섯 분 모두 누워 계시니, 이제는 이 마우평이 최고서열이시다.”
“사도관에 그딴 게 어딨습니까? 다섯 형님 제외하면 사실상 다 동(同)이지.”
“오늘 서열 정리 한번 해 드립니까?”
……이런 식이다.
마교와의 전투 끝에서 살아 돌아온, 암천막의 사천살 중 하나인 동천을 꺾은 천하제일 후기지수.
막휘와 손익패로부터 시작된 망할 소문 덕분에 사도관도들은 사무현에게 필요 이상의 과한 존경을, 사도관주는 지나칠 정도의 과한 애정(?)을 보이며 그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고맙긴 한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위중한 환자이니 편히 휴식을 취하라며 일인 병실을 구해 주면 뭐하겠는가?
이 시커먼 사내놈들이 간호를 하겠답시고 몰려와 병실을 그득 메우고 있는…….
“이 시커먼 것들이……. 싹 다 안 나가? 어디서 의술에 ‘의’자도 모르는 것들이 간호를 한다고 설쳐?”
굵직한 사내놈들 사이로, 팔짱을 낀 여 관도 하나가 으스대듯 말을 꺼낸다.
……아, 너희들도 있었구나.
미안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네.
“얼씨구? 너희는 뭐 그럴싸한 의술이라도 익혔다는 말이냐?”
“수틀리면 날붙이나 주먹만 휘두르던 너희들과는 비교하지 마. 침술 정도는 우리한테 기본 소양이니까.”
“사람 죽이는 독침(毒針)도 침술에 들어 가냐?”
“독침인지 약침인지, 어디 혓바닥에 한번 꽂아 줄까?”
……남녀 할 것 없이 험악하게 으르렁 거리는 저들을 바라보며 사무현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제발…… 안 나갈 거면 조용히 라도 해, 제발…….”
“어휴, 시끄러운 것들은 주둥이를 꿰매 버려야 되는데.”
“하……! 누가 진짜 시끄러운지 형님한테 한번 여쭤볼 테냐?”
“으아아아! 그만! 그만! 지금부터 한 마디라도 떠드는 놈부터 나가!”
결국 참지 못한 사무현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자, 병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
“……난리도 아니군.”
바로 옆 병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청사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암천막을 빠져나온 이들 중 유일하게 거동조차 하기 힘든 중상을 입은 사무현이다.
최대한 회복에 전념하기 위해 사무현 홀로 일 인실을 배정 받았는데, 정작 여섯 명이 머무는 이곳보다 저곳이 더 시끄럽다니.
‘사실 따지고 보면 다섯이긴 하지만.’
병실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올바른 주도(酒度)가 아니라며 병실을 탈출해 버린 신불.
승려복을 입고도 당당하게 병나발을 부는 스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과연 누구의 가치관이 잘못된 것인지 혼란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뭐. 아무튼, 그의 그런 기행 덕분에 나머지 다섯은 꽤나 조용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분께서 계셨으면 이 분위기는 조금 바뀌었으려나.’
신불의 빈자리를 바라보던 청사의 시선이, 조심스레 창밖을 응시하며 누워 있는 살암에게로 향한다.
무심한 얼굴 속에 숨어 있는 살기와 독기.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오싹 기치는 날카로운 기도에,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건넬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의 여유만만하던 그의 모습은 이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살암 스스로의 모든 것이라 여겼던 암천막이 무너졌다.
그의 부모와도 같았던 스승이 죽었고, 스승 이상으로 존경하고 있던 초대 막주도 목숨을 잃었다.
그토록 아비규환 같았던 전장 속에서 살암은 살아남았다.
아니, 살암만 살아남았다.
‘……무거우시겠지.’
어느새 살암을 바라보는 청사의 눈에 안타까움이 어린다.
대체 저 어깨에 얼마만큼 무거운 짐이 실려 있는지 그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음지의 지배자였던 암천막.
그 명맥을 잇는 유일한 후계자.
하지만, 현재의 음지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은 지금의 살암이 넘을 수 없는 거물들이다.
심지어 언젠가 이 연무학관을 졸업하고 음지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그들은 반드시 살암을…….
툭툭.
“……음?”
상념에 빠져있던 청사가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그의 한쪽 어깨를 두드린 적사가 묘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
그제야 자신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살암을 바라보았다는 걸 깨달은 청사가,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적사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전음을 잇는다.
적사의 잔소리에 딱히 반박하지 못한 청사가 뒷머리만 긁적이다 결국 한숨을 내쉰다.
암천막의 혈전이 벌어진 지 어느덧 보름.
그들이 연무학관에 도착한 지는 열흘 째.
무림도 그들도,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사사삭.
타닷.
“후우…… 염병할, 진짜 여긴 올 때마다 살 떨려 뒈지겠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험준하기 그지없는 산맥을 바람처럼 이동하는 사내.
여기저기 누더기가 진 천 옷에, 개방의 분타주임을 상징하는 녹색 보옥이 박힌 타구봉이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개방의 청해(靑海) 분타주, 오명(五命).
그는 현재,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해야 할 한 장의 서찰을 품고 십만대산을 오르고 있었다.
“전서응을 보내면 좀 받을 것이지!”
쉴 틈 없이 짜증 섞인 말들을 늘어놓았지만, 오명의 음성은 바로 앞에서 듣지 않고는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서신을 전하러 온 상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무신 단월혁.
마교 역사상 손가락에 꼽힌다는 십삼 대 천마를 저승으로 보내 버린 괴물이니, 자신과 같은 범인이 그의 능력을 가늠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특급 기밀이라 부하들을 시킬 수도 없고!’
무신 단월혁의 거처는 개방 내에서도 특급 중의 특급으로 분류되는 기밀이다.
그 기밀 유지를 위해, 개방의 분타주씩이나 되는 자신이 직접 서신을 운반하는 생고생을 감수해야 하다니!
심지어 그 이름도 살벌한 십만대산까지!
“젠장, 이번 건만 전하면 장기 휴가를 보내 준다고 했겠다?”
사실 오명에게 이 길은 초행이 아니다.
이미 이전에도 비슷한 일로 무신의 거처까지 서신을 전달한 바가 있었다.
그때 당시 무신이 말하길, 그의 거처 반경 오백여 장은 그 어떤 마교도도 접근할 수 없다고 했었다.
‘오백여 장……. 그래, 오백여 장까지는 안전하니까.’
그리고 십만대산이라는 곳 자체가 꺼려지는 것이지, 사실 아무리 마교도라도 그는 개방의 분타주다.
장로급이라도 마주치지 않는다면 설마 그가 줄행랑 하나를 못 치겠는가?
그렇게 스스로의 불안감을 다잡으며 경공술을 펼치는 사이, 이윽고 절벽 바위를 기점으로 한 양 갈래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 왔다!’
오명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여기서부터는 무신의 거처와 지척이다.
이제 이 모퉁이만 돌아서 위로 올라가면……!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낡은 집 한 채를 발견한 오명이 남은 힘을 끄집어내 비탈길을 올라간다.
파바바밧.
타닷.
“후우…….”
어느덧 비탈길을 올라 무신의 거처 앞에 도착하자, 오명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에 부복하며 사뭇 경건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개방의 분타주 오명입니다! 무신께 천무신녀의 서신을 전하고자 찾아왔습니다!”
휘이이잉.
“그…… 크흠흠! 천무신녀의 서신을 전하러 온 개방의 오명입니다! 안에 계시옵니까?”
다시 한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높여 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이에 슬쩍 고개를 든 오명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다.
“……어디 산보라도 가셨나?”
거처 오백여 장 이내에 접근하는 이들은 누구라도 그의 감각을 피해갈 수 없다더니.
뒷머리를 긁적이며 엉거주춤하게 발걸음을 옮긴 오명이, 조심스레 무신의 거처 대문을 밀어 보았다.
“실례합니다, 제가 서신을 좀 전하려고…….”
벌컥.
“……어?”
잠시 후 대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 오명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누군가 거처를 수색이라도 한 것인지, 거처의 방문이 하나 같이 활짝 열려 있고 그 안은 텅텅 비어 있지 않은가?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저벅저벅.
슬쩍 서신만 놓고 가려던 오명이 자신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가 방 내부를 살펴본다.
며칠 간 사람이 살지 않은 것처럼, 방 안에는 여기저기 먼지가 가라앉아 있었고 급하게 이곳을 비운 것인지 생필품도 고스란히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이사를 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던 오명이, 품 안에 든 서지를 한번 쓸어 보고는 슬그머니 뒤쪽을 돌아보았다.
휘이이잉.
“……에이씨, 이제 어쩌지?”
그는 명색에 개방의 분타주다.
정보를 최우선으로 삼는 집단에서도, 방주와 직간접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중책에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특급 기밀로 알려진 무신의 거처가 비었다는 것을 알고도 그냥 돌아온다면 결코 문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찾아봐야…… 하나?’
그런데 어떻게?
여기는 십만대산인데?
마교 놈들의 소굴인데?
‘그래도 오백 장 안은 안전하다고 했으니까…….’
마교 놈들도 결코 그 경계를 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 상황에도 그 말을 믿어야 할지 걱정스럽긴 했지만, 오명은 결국 두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에게 타협안을 내밀었다.
“후우…… 그래! 사백 장! 내가 딱 사백 장 까지만 둘러본다!”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그대로 냅다 튀면 된다.
경공술 하나만큼은 삼존 사무제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가자!’
떨리는 가슴을 움켜쥔 오명이, 인근을 수색해 보기 위해 용감히 몸을 날렸다.
파밧!
***
“세…… 세상에…….”
무신의 거처를 떠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오명은 현재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황폐하다.
사방에 드넓은 숲이 펼쳐져 있는데 그 중심부는 완전히 폐허나 다름없게 초토화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지름만 십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구멍들이 뻥뻥 뚫려 있었고, 한때 멀쩡한 나무였을 것으로 보이는 작은 목재들이 군데군데 찢겨져 흩어져 있다.
‘이…… 이건…… 분명…….’
단순히 나무나 흙 따위가 필요해 공사를 했다면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전투의 흔적이다.
다만…….
‘이…… 이게…… 인간의 무공이 만들어 낸 흔적들이라고……?’
대자연의 지형을 이렇게까지 바꿔 버릴 정도의 무공들이 남발될 정도로 싸웠다면, 이곳에 인간의 규격을 한참이나 벗어난 존재가 최소한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이 무신의 거처 인근이라는 것을 미루어 보아 그 정체는 분명 무신 단월혁일 터.
한데…….
후들 후들.
‘무…… 무신이…….’
단월혁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호언장담했던 공간에서 벌어진 상식을 넘어선 대전투.
그리고 그 끝에 사라져 버린 무신 단월혁의 행방.
이 모든 것의 정황상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자 오명의 두 다리가 본능적으로 십만대산의 아래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파바밧!
‘크, 큰일이다……!’
아니, 단순히 큰일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이다.
‘무신 단월혁이……!’
자신도 모르게 오명이 자신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습격당했다!’
전 무림을 뒤흔들 대사건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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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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