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장사(長沙).
호남지역의 성도로 수많은 인구가 오가는 곳.
그 때문에 수많은 돈과 정보도 함께 오가는 이곳은, 약 백여 년쯤 전 새롭게 이전한 개방의 본타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개방의 방주, 걸왕(乞王) 우위개(宇位開)가 머물고 있는 이곳에 이른 새벽부터 방문자가 찾아들었다.
칠 주야 만에 이곳까지 달려온, 청해 분타주 오명이 바로 그 방문자였다.
‘……젠장, 왜 얘기를 다 듣고도 반응들이 없어?’
퀴퀴한 냄새가 맴도는 어두운 방 안에서 오명이 의아한 얼굴로 주위 눈치를 살폈다.
그들 사이에서는 왕 거지라 불리는 개방의 방주 우위개가, 드물게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주위에 주먹구구식으로 서 있는 다섯 명의 노인.
세간에서는 괴신오걸(怪神五乞)이라고도 불리는 개방의 고위 장로들이다.
왕 거지와 함께 개방의 대소사를 정하는 이들.
이 새벽에 자다 말고 불려 나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보고의 내용이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인지 저들은 하나같이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윽고 긴 침묵 끝에 걸왕, 우위개가 입을 열었다.
“……형제들은, 지금 청해 분타주의 말을 어찌 생각하시오?”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당연히 개소리지.”
오걸 중 가장 괄괄한 성격을 가졌다는 금사걸(金思乞)이 인상을 구기며 말을 꺼낸다.
“새벽부터 사람 귀찮게 깨워 놓더니, 말 같지도 않은 잡소리나 늘어놓는데 그게 개소리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뭐, 뭐요? 지금 개소리라 하셨습니까?”
금사걸 장로의 말에 청해 분타주 오명이 두 눈을 추켜 뜬다.
애초에 개방이란 거지들이 모여 만든 문파다.
상하 관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게 명문 정파처럼 강한 규율로 세워진 것도 아니고, 사파처럼 힘으로 지탱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그들이 개방의 고위 장로들이라고는 하지만 자신 또한 명색에 한 지역의 분타주.
그런 그가 칠 주야를 밤낮없이 달려와 겨우겨우 전한 기밀정보를 개소리라고 폄하 하다니?
하지만 울컥하는 오명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금사걸은 도리어 자신의 손에 들린 타구봉을 치켜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 했다! 제대로 확인도 안 된 정보를 망상으로 떠들어 대는데, 그게 개소리가 아니면 뭐야!”
“아니, 정황상 결과를 말씀드린 것 아닙니까! 무신은 거처에서 사라졌고, 거기서 그만한 전투의 흔적이 버젓이 있는데!”
“그게 무신 혼자 수련하다 생긴 흔적인지, 마교랑 싸우다 생긴 흔적인지 네놈이 어떻게 알아!”
“제가 수련 흔적과 전투 흔적도 구분 못할 줄 아십니까? 저도 명색에 분타주입니다! 분타주!”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씩씩 거리는 오명.
그 모습에 눈썹을 꿈틀한 금사걸의 타구봉이, 곧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한다.
붕붕.
“저 새파란 놈이……! 너 오늘 잘 걸렸다! 개소리나 지껄이는 놈은 일단 좀 맞아야 돼!”
“아이고! 장로가 분타주를 두들겨 패려 하네! 계급 낮은 놈은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뭐, 뭐? 계급? 너 이 새끼 이리와! 오늘 계급장 떼고……!”
“그만하게, 형제. 왕 거지 앞에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아니, 자네는 저 새파란 놈이 대드는 걸 보고만 있자는 말인가?”
“자자,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자네가 참게. 소형제도 그만하지. 내가 듣기에도 그리 설득력 있는 가설 같지는 않는군.”
금사걸의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오걸 중에서 가장 진중하다고 알려진 은사걸(銀思乞)이 그를 진정시킨다.
소싯적에는 금사걸과 정반대의 성격으로 가장 많이 다툼을 벌였었지만, 지금은 금사걸을 유일하게 진정시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벗이다.
그의 만류에 금사걸이 끙 하는 소리와 함께 타구봉을 내리자, 오명도 긴 숨을 한번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아…… 장로님들이 생각하시는 게 뭔지 저도 압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무신이, 마교도들 상대로 허무하게 당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걸 아는 놈이 그따위 소리를 해?”
금사걸이 이내 핀잔을 주었지만 오명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십쇼. 무신과 함께 과거 마교 대전을 이끌었던 파마불제도, 암천막에서 죽다 살아나왔다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함께 싸웠던 암왕은 죽었고요. 무신이라고 꼭 다르리란 법은 없잖습니까?”
오명의 설득에도 금사걸을 포함한 오걸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미 그들에게 있어 무신이라는 존재는 하나의 신화다.
깨지지 않는 맹신과도 같은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는 확고한 근거가 있었다.
“하아……. 너 분타주라는 놈이, 이백 년 전에 무신한테 죽은 천마가 어떤 놈인지는 알고 그따위 소리를 하냐?”
금사걸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짓누르며 묻자 그에 대한 반발 심리로 오명이 턱 끝을 치켜들며 반박한다.
“제가 왜 모릅니까? 천마신교의 역사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에는 꼽힌다는 괴물을.”
“그래, 그 괴물이 당시 무림의 삼성 오무제를 한자리에서 꺾었지. 그뿐인 줄 알아? 삼성 오무제와 함께 천마를 죽이려고 모여들었던 각 문파의 절정 고수들도 한 자리에서 싸그리 죽였어!”
“다 아는 얘기네요, 뭐.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그런 괴물을 이백 년 전에 죽인 게 무신이라고! 그때부터 그만한 시간이 흘렀으면 못해도 배는 강해졌을 텐데, 그런 무신을 아직 전성기의 힘도 회복 못 한 마교가 잡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만, 그만하게.”
이번에는 은사걸이 아닌, 방주 우위개가 한 손을 들며 그들을 중재한다.
“우리끼리 다툼이나 하자고 모인 것이 아니잖은가?”
“아니, 왕 거지. 왕 거지는 저놈의 개소리를 진지하게 들을 셈입니까? 무슨 분타주라는 놈이 고작 그따위 허무맹랑한 보고를…….”
“실은 조금 전, 연무학관의 방의걸에게 보고서가 도착했네.”
무거운 분위기로 말을 이어 가는 우위개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파인다.
“파마불제 신불의 증언을 토대로 한, 암천막에서의 전투에 관한 보고서였지.”
“그게…… 어쨌다는 말씀이십니까?”
금사걸을 포함한 장로들의 의아한 시선이 우위개에게로 향한다.
그의 어투에서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까닭이었다.
“신불이 연무학관에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에 암왕 살천과 파마불제 신불은, 사천살과의 싸움을 겪은 것이 아니었다고 하네.”
“그럼 마교의 장로들과 싸운 모양이군요. 마교의 지원을 받았다면 그 정도는 짐작…….”
“틀렸네, 신불과 살왕을 꺾은 것은 마교의 장로들이 아니었네.”
금사걸의 말을 끊어 낸 우위개가 고개를 가로저은 뒤 말을 꺼낸다.
“신불과 암왕 살천은…… 스스로를 소교주라고 칭한 한 명의 마교도에게 패배했다고 하네.”
우위개의 말이 끝나자 방 안에 잠시 침묵이 맴돈다.
그리고 그 끝에, 은사걸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 소교주 한 명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네.”
“그 파마불제와 암왕이…… 소교주 한 명을 당해 내지 못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하네.”
“그런…… 말도 안 되는…….”
방주의 대답에 오걸은 물론, 정작 보고서를 올린 오명의 얼굴도 경악으로 물든다.
파마불제 신불과 암왕 살천은, 그 무신을 도와 마교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들이다.
심지어 연륜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다른 삼존 사무제보다 한 수 윗줄로 평가받는 이들이거늘……!
“그…… 러면…… 그 소교주가 설마…….”
“……아마도.”
은사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우위개가, 잠시 입술을 깨물다 말을 이었다.
“탈마(脫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네.”
“……세상에.”
우위개의 입에서 떨어진 탈마라는 단어에 오걸 모두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수백 년…… 아니,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전설적인 괴물이 이백 년 만에 다시 나타나다니?
“아니…… 잠깐. 왕 거지, 지금 소교주가 탈마일지 모른다는 말씀은…….”
“…….”
“……이런 망할.”
털썩.
자신도 모르게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는지 금사걸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두 명의 탈마.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지금 오명의 가설이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제 아무리 무신이라고 하더라도, 두 명의 탈마를 상대로 싸웠다면 승리의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겠는가?
“……아직 우리는 무엇 하나 단언할 수 없네.”
충격에 빠진 오걸을 둘러보며 우위개가 말을 잇는다.
“지금 당장은…… 우리가 알아낸 사실과 가정을 천무신녀에게 어찌 전해야 할지, 그것부터 생각하도록 하세.”
무거움이 느껴지는 우위개의 말에 모두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천무신녀 단아란.
안하무인에 가까운 성격을 가졌다는 그녀가. 자신의 오라버니인 무신을 유독 자랑스러워 한다는 그녀가 이 소식을 전해 듣는다면, 과연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여러모로 암담해지는 상황에, 오명을 포함한 오걸 모두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찾아들었다.
***
“형님, 정말 부축 없이 괜찮으시겠…….”
“가까이 오지 마라,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몸으로 확인하기 싫으면.”
마지막까지 자신의 주위에 들러붙는 아우들(?)에게 경고 어린 눈빛을 보내며 사무현이 천으로 감싸인 천마도를 등 뒤에 동여맨다.
……길었다.
중환자 취급을 받으면서…… 아니, 실제로도 중환자로서 좁아터진 병실에 꼬박 보름을 갇혀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간호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하지만 하는 일이라고는 서로가 서로를 헐뜯기 바쁜 시커먼 것들 사이에서!
‘이제야 몸 좀 풀어 볼 수 있겠네.’
오랜만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천마도의 무게에 사무현이 실소한다.
대체 얼마만이던가?
자신의 몸이나 다름없다 여겼던 천마도의 무게를 이토록 생생히 느낀 것이.
더 우스운 것은, 퇴원하는 순간 사무현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천마도를 휘두르고 싶다는 생각이라는 사실이다.
‘애들은 보내고, 일단 사명관부터 혼자 들러서…….’
벌컥.
“하하, 잘 있었는가? 시주!”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병실 문을 벌컥 열고 해맑은 미소와 함께 나타난 신불.
어김없이 그의 한쪽 손에 들린 술병을 바라보며 사무현이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나 퇴원하는 거 누가 소문냈냐?”
“저, 저희는 아닙니다, 형님.”
“잊으셨습니까? 저희는 형님과 줄곧 함께…….”
“하하, 그들은 죄가 없네. 다 내가 의원들을 구슬려 알아낸 정보이니.”
아, 그랬구나.
어쩐지 그 인간들, 내가 퇴원한다니까 헐레벌떡 나가 버리더라니.
“이…… 의원이라는 인간들이 환자 정보나 팔아먹고……!”
내가 의원이라고 못 팰 줄 아나 본데, 사람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
“자자, 뭘 그리 멍하니 서 있는가? 이리 오시게, 시주.”
덥석.
절망하는 사무현의 손목을 낚아채며 그와 함께 병실 밖으로 향하는 신불.
아니…… 잠깐만. 나 오늘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니, 저…… 신불 스님. 저 오늘은 정말 술 안 당기는데요.”
“아, 술이 안 당기시오?”
“예, 저 오늘 그냥…….”
“하하, 염려 마시오. 시주는 내가 설마, 막 퇴원한 환자를 데리고 술이나 먹자고 이러는 것 같소이까?”
“……아니에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실 분인데.
어이가 없다는 사무현의 반문에, 신불이 조금 뜨끔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멈춘다.
“실은…… 난 그저 부탁을 받아 온 것이오. 시주가 퇴원하는 것만 손꼽아 기다리며, 가장 먼저 시주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소이다.”
“누군데요, 그게?”
“따라와 보면 알게 될 것이오. 가서 그의 부탁을 거절하더라도, 우선은 함께 가 주었으면 고맙겠소이다.”
평소답지 않게 진중한 신불의 부탁에, 고민하던 사무현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
사명관.
연무학관에 위치한, 사도관이 보유한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
과거의 사무현이 매일 저녁마다 사도관도들을 수련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근 이십여 일 만에 돌아온 사명관의 내부를 빙 둘러보며, 다소 아련한 미소를 짓고 있던 사무현이 천천히 신불에게 고개를 돌린다.
“……설마 사명관으로 올 줄은 몰랐네요.”
“하하, 이곳에서 기다릴 테니 반드시 데리고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말일세.”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신불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이윽고 시선을 옮겨 자신의 맞은편에 서 있는 살암을 응시했다.
“……장신구는 다 버렸냐?”
“그래.”
툭 던진 사무현의 물음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살암.
불과 십수 일 전까지 봐왔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금 사무현의 앞에는 칼날 같은 기도를 풍기는 한 명의 검수만 자리하고 있다.
대놓고 전의(戰意)를 드러내고 있는 그 모습에 사무현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뭐…… 대충 분위기로 봐서 싸우자는 건 알겠는데, 이유나 좀 알자. 갑자기 왜 그러는데?”
“알기 위해서다.”
“……음?”
“나 자신의 한계……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해서.”
“…….”
“……내가 넘어야 할 벽의 높이를.”
스릉.
말을 마친 살암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어 사무현에게 겨눈다.
그와 함께 전해진 분명한 살기(殺氣)에 사무현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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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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