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진심인가 보네?”
“적당히 기량이나 겨루어 보자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니까.”
“흐음…….”
진심이 느껴지는 살암의 부탁에 사무현이 잠시 상념에 잠긴다.
사실 지금 살암의 비무 신청은 사무현도 반기고 싶은 상황이다.
일전에 동천과의 싸움에서 느꼈던 바로 그 감각을 다시 한번 체험하고 싶어 근질거리던 차였으니까.
하지만…….
‘……그러기엔 저쪽이 너무 진심이란 말이지.’
자신을 향한 투지가 넘칠 정도로 확실하게 전해져 온다.
아마도 살령과 살천의 죽음이, 살암에게 있어 무언가를 각오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사무현이라는 벽과 정면으로 마주해 보겠다는 각오를…….
‘저런 놈을 상대로 봐주는 건 좀 그렇고.’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 박살 내는 것도 무언가 껄끄럽다.
갈등하는 사무현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살암이 말을 덧붙였다.
“한 가지 부탁하자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절대 봐주지 마라.”
“……뭐?”
“앞으로 내가 싸워야 할 적은 그렇게 유약한 이들이 아니니까.”
“…….”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집요하게 물어뜯을 것이고, 조그마한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올 녀석들이다. 네 어설픈 배려가 오히려 나를 망칠 수도 있으니, 부디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과거의 그가 가지고 있던 오만도, 허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그에게서 보이는 것은 순수한 투지와 각오.
그 모습에 결국 호승심이 동한 사무현이 자신의 등 뒤에 매인 천마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스스슥.
천마도의 도신을 감싸고 있던 천들이 부드럽게 잘려나가며, 천마도의 도 끝이 살암을 향해 겨누어진다.
“들어와라, 적어도 봐주진 않을 테니.”
“……고맙군.”
팟!
말을 마친 살암의 신형이 사무현을 향해 쇄도한다.
어느새 자신의 목선으로 날아드는 살암의 검로를 사무현의 천마도가 가로막는다.
쩌저정!
‘차라리 잘 됐네.’
동천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 낸 깨달음의 실마리.
병실에서 몇 번이나 그것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던 사무현이었다.
‘결국 천마 말이 맞았지, 뭐!’
머리가 나쁜 놈은 몸으로 굴러야 한다던 천마의 옛 조언.
되도 않는 명상은 집어치우고, 이럴 때는 일단 휘두르고 부딪쳐 보는 것이 성장의 지름길이다.
그리고 지금의 사무현에게 있어서 현 연무학관에서 가장 적합한 상대는 다름 아닌 살암이다.
파밧!
자신의 검로가 사무현의 도에 가로막히자, 살암이 튕기듯 몸을 회전해 반대로 검을 휘두른다.
이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자신의 거리를 만든 사무현이, 그대로 천마도를 휘둘러 살암의 검격을 받아 냈다.
콰과과광!
각자 넉 자에 이르는 검강과 도강을 머금고, 살암의 검과 사무현의 도가 격렬하게 맞부딪친다.
그 결과 도격에 실린 힘을 이겨 내지 못한 살암이 뒤로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본격적인 사무현의 공세가 시작된다.
쩌저정! 쩡! 콰광!
‘……무겁다.’
그리고 빠르다.
사무현의 도초를 방어해 내는 살암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방어에만 온 정신을 집중해도, 사무현의 도격 한 번 한 번에 검신이 부러질 듯 휘어지고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듯 하다.
처음에는 동귀어진의 각오를 해서라도 밀어붙여 보겠다 다짐했는데, 정작 사무현의 공세가 시작되자 도저히 그럴 만한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까드득.
쩌저저저정!
종횡무진 살암을 밀어붙이던 사무현의 도격이, 돌연 온 몸을 이용해 맞부딪쳐 온 살암의 검격에 막혀 처음으로 평수를 이룬다.
‘이렇게 허무하게 승기를 내주려고 도전한 것이 아니다……!’
쩡!
사무현의 도를 밀어낸 살암이 본격적인 공세로 전환한다.
콰광! 쾅! 콰광!
쩌저저정!
‘……보인다!’
처음 그와 맞붙었던 때와는 달리, 사무현의 도초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전개되는지 분명히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는 한 합을 받아 내는 것도 어려웠던 도격을 어떤 식으로든 받아넘길 수 있게 되었다.
기본부터 다시 쌓아 가겠다는 생각으로 견뎌 낸 사무현의 무식한 수련 방식.
이 모든 것을 견뎌 내고도 자신의 방에서 남몰래 한 시진씩 더 수련을 쌓아온 살암이다.
‘언제까지고 뒤만 바라볼 생각은 없었다……!’
콰과광!
매일 조금씩이라도, 사무현과의 거리를 좁혀 나아갔다는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증명해야 한다.
앞으로 그가 싸워 나가야 할 적은, 지금의 사무현처럼 손속에 사정을 두어 주는 이가 아니니까.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암천막을 재건 한다는 무거운 짐은 대체 어찌 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 이상으로 살암이 선전하자, 한쪽에서 그들의 비무를 지켜보던 신불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허어……. 이건 예상치 못한 전개로고.’
살암이 다른 사도관의 후기지수들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막휘 또한 다른 사도관도들 보다 몇 수 위의 실력을 가졌지만, 그런 막휘도 살암과는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으니까.
‘한데 그조차도, 스스로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나.’
하기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사무현의 혹독한 수련이 끝나면, 당장이라도 쓰러지려 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살암은 언제나 자신의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그 어떤 수련을 할 때에도, 방해가 될 수밖에 없는 장신구들을 단 한 번도 벗은 적이 없었다.
‘……호부(虎父) 아래 견자(犬子) 없다더니.’
강호에서 유명한 격언 그대로, 끝까지 자신의 실력의 삼 할을 숨긴 심계(心計).
천재라는 말조차 부족하게 느껴지는 사무현과 어떻게든 검을 섞어 나가는 재능.
그야말로 살천과 살령의 소싯적 모습을 반반 섞어 놓은 듯하다.
‘한데…… 무언가 좀 이상하군.’
살암을 향해 감탄 섞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잠시.
신불의 의아한 시선이 곧 살암과 공수를 교환하는 사무현에게로 향한다.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는 것인가?’
도초는 예전과 변함없이 무겁고 빠르다.
한데 정작 도초를 전개하는 사무현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못마땅하다.
살암의 수준이 그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 그런 것이 아니다.
‘꼭……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답답함이 느껴진다.
불편함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없는 거슬림이 느껴진다.
신불이 의아한 눈으로 사무현을 살피는 사이, 그의 얼굴에 점점 더 노골적인 답답함이 어린다.
‘……이게 아니야.’
자신의 목선과 흉부, 복부로 연달아 날아드는 살암의 검격을 쳐내며 사무현이 미간을 찌푸린다.
‘너무 무뎌.’
객관적으로 사무현 자신의 도초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굳이 따지면 오히려 더 빨라지고 무거워졌다.
아마 동천과의 생사를 오간 싸움이 사무현에게 성장의 동력이 되어 준 것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사무현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랐어.’
동천의 왼팔을 잘라 냈던 사무현의 마지막 도초.
당시 사무현은 오히려 지금보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그때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한데…….
‘그때는 이렇지 않았어.’
동천을 몰아붙이던 그의 도초는 이렇게 무디지 않았다.
지금 사무현이 전개하는 도초는, 당시보다 빠르고 무겁지만 예리하지는 못하다.
대체 왜 이런 차이가 벌어지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때는 어떻게 했더라?’
살암의 검격을 무의식중에 받아넘기며 사무현은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에 그는,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동천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전환했다.
자신은 동천을 이길 수 없지만, 천마라면 다를 것이라고.
해서 사무현은 그것 하나만을 떠올리며 싸웠다.
‘내가 천마라면…….’
또 녀석이 나라면 어떻게 도를 휘둘렀을까.
그때를 떠올리자 사무현의 눈빛이 흐릿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쩌저정!
“……음!”
촤지직.
사무현의 도격을 감당하지 못한 자신의 몸이 뒤로 밀려나자 살암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지금 이건…….’
극강의 힘을 실은 공격?
아니, 그런 것과는 무언가 다르다.
전투에 임하던 녀석의 눈빛이 흐릿해진 순간 ‘무언가’가 바뀌었다.
그래, 지금 이건 마치 살령의…….
‘……내가 무슨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살암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순간이지만 사무현과 스승의 검을 비교하다니.
사무현이 강한 것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령과 비교되기에는 지나치게 이르다.
‘흔들려선 안 된다!’
사무현이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녀석은 아까 전부터 자신만의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아직 그가 자신을 적수로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
그렇다면,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파바밧!
생각을 마친 살암이 다시 한번 사무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디 이것도 받아내 봐라!’
한순간 모든 기척을 감춘 살암의 검이 사무현의 목선으로 날아든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쾌검.
더불어 살기와 기척마저도 완전히 감추어 버린 살검(殺劍).
이것을 받아 내지 못한다면 사무현은 치명상을 입는다.
어쩌면 목숨을 위협받을 만한 중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암은 멈추지 않았다.
상대는 다름 아닌 사무현이니까.
그런 그의 기대에 반응이라도 하듯, 사무현의 도가 부드러운 궤도를 그리며 그의 살검에 반응한다.
그리고 잠시 후…….
스팍!
쩌저저저저정!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중단 언저리에 있던 사무현의 도가 순식간에 위로 치솟더니, 살암의 무복 앞섶을 스치며 그의 검을 올려 쳤다.
저항을 할 수도, 버텨낼 수도 없는 거력(巨力)을 느낌과 동시에 살암의 검은 어느새 그의 손아귀를 빠져나와 허공을 날고 있었다.
휘리리리릭.
퍽!
“……아.”
다섯 장 가까이를 날아 바닥에 박혀 버린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살암이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
촤좌좍.
살암의 이마에서 턱선까지 세로로 붉은 실선이 그어진다.
잠시 후 살암이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털썩.
“……하.”
죽는 줄 알았다.
상처가 깊지 않아 망정이지, 만약 사무현이 조금만 더 깊게 도를 휘둘렀다면 살암의 몸은 그대로 반토막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한편 살암이 쓰러진 후에야 정신을 차렸는지, 흐릿하던 사무현의 초점이 돌아오며 그의 시선이 쓰러진 살암에게로 향한다.
“……아.”
“…….”
“끝난…… 건가?”
어쩐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지는 사무현의 중얼거림.
그제야 상대가 무아지경의 상태였음을 깨달은 살암이 온 몸에 돋은 소름을 억누른다.
‘……성장하고 있었다고?’
자신과 치열한 비무를 벌이고 있었던 그 와중에도?
한편 정신이 들고 나서야 살암의 부상이 눈에 들어왔는지, 사무현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살암에게 다가간다.
“야, 너 괜찮냐?”
“아…….”
“…….”
“……괜찮다.”
사무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모르게 살암이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오늘의 비무는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행했던 비무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자고 있던 괴물을 깨우고 만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살암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신불의 눈에도 경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
풀썩.
“하아……. 드디어 내 방이네.”
이게 대체 얼마만인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침소에 누워보는 것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자로 뻗어 있던 사무현이,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방 한쪽에 세워둔 천마도로 고개를 돌린다.
‘그나저나…… 뭔가 조금 알 것 같기도 한데.’
조금 전 살암과의 비무에서, 사무현은 동천과의 전투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해냈다.
정확히 어떤 감각인지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말하자면 ‘제대로 베었다.’라는 느낌.
‘천마 놈한테 물어보면 설명해 줬을 텐데.’
무공에 관해 궁금한 걸 물어보면, 으스대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며 설명을 늘어놓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놈, 이번에는 꽤 오래 쉬네.’
병실에 입원한 후 지금까지…… 아니, 정확히 말해 암천막에서 의식을 잃은 후 지금까지 천마 녀석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육체가 잠에 빠졌을 때도, 그는 이공간으로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
“……많이 피곤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던 사무현이, 무심코 그를 불러 본다.
“야, 천마야.”
“…….”
“야, 천마야, 잠깐만 나와 봐.”
“…….”
“야 이 새끼야, 필요하지도 않을 땐 툭툭 튀어나오면서 정작 부를 땐 안 나오냐?”
“…….”
“……진짜 안 나오네.”
설마 그새 성불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괜한 짜증과 불안감에 뒷머리를 몇 번 긁어 댄 사무현이, 이내 긴 한숨을 내쉬며 천장으로 고개를 돌린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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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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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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