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큭.”
“…….”
“큭큭…… 큭큭큭…… 하하하, 아하하하하!”
“……이놈! 무엇이 그리 우스운 게냐!”
분노한 혈마가 소리치자, 한참을 웃어 젖히던 천마가 한 손으로 눈가를 닦으며 말을 잇는다.
“하아……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살아생전이었다면 입을 열 틈도 없이 죽여 없앴을 벌레 따위가…… 감히 본좌의 전승자를 두고 협상을 하려 하다니.”
“뭐, 뭐라?”
“뭐…… 나름대로 재미있는 제안이기는 했다. 하나 네놈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구나.”
거기까지 말을 이어 가는 천마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본좌의 전승자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웅.
촤좌좌좍!
털썩.
“끄아아아아!”
어느새 잘려 나간 자신의 좌수를 내려다보며 혈마가 괴성을 내지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천마가 무심히 말을 잇는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만큼, 본좌의 전승자가 그리 가치 없어 보였느냐?”
“이이……! 어리석은 것! 힘도 다 잃어 가는 주제에 감히 어디서 허세를 부린단 말이냐!”
두 팔을 모두 잃은 혈마가 두 눈에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인다.
“녀석의 성장에 따라 여태껏 봉혼술도 함께 강해졌을 터! 놈이 환골탈태까지 하여 화경에 들어선다면, 네놈이 더 이상 봉혼술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
“크흐흐흣, 근래 들어 휴식을 취해도 좀처럼 쉽게 힘이 회복되지 않았겠지? 네놈의 미래가 훤히 보이는구나! 봉혼술에 갇혀 영원한 암흑에 빠질 네놈의 미래……!”
촤좌좌좌좍.
거침없이 말을 이어 가던 혈마의 목이 베이며 그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육체가 아닌 혼인 까닭인지, 반쯤 잘려 나간 상태로도 혈마는 아직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흐…… 흐흐…… 예…… 예상외구나……. 너 같은 악귀가…… 고, 고작 저런 애송이 때문에…… 그런 고통을…….”
스걱.
말을 이어 가던 혈마의 목이 완전하게 잘려 나간다.
그러자 그의 육체가 흐릿해지더니 곧이어 존재감조차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스스스스.
“쯧……. 벌레 같은 것이 죽어 가는 와중에도 시끄럽게 구는구나.”
어느새 심드렁해진 얼굴로 좌수에 들린 도를 지워 내는 천마.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무현이, 이윽고 반신반의한 얼굴로 그를 향해 묻는다.
“너…… 진짜냐?”
“음? 무엇이 말이냐?”
“……괜히 말 돌릴래?”
“뭐…… 크게 신경 쓸 것 없다,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니지만, 녀석의 말대로 되진 않을 테니.”
불안한 듯한 사무현의 어조에, 건성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천마가 말을 잇는다.
“저따위 잡귀라면 모를까, 고작 봉혼술 따위에 붙잡힐 본좌가 아니니라. 네가 얼마나 강해지건 본좌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아니겠느냐?”
……아, 그런 거냐?
순식간에 걱정할 필요를 날려 주니, 이거야 고맙다면 고마운데…….
“……확실하지?”
“물론이다. 본좌가 언제 거짓을 말하는 것을 보았느냐?”
“…….”
뻔뻔한 천마의 반문에 사무현이 할 말을 잃고 있던 그때, 난데없는 흡입력 같은 것이 사무현의 몸을 어둠 속으로 잡아당겼다.
“으헛……!”
“놀랄 것 없다. 네 혼이 돌아가는 과정일 뿐이니.”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순식간에 멀어지는 천마의 모습.
곧이어 사무현의 시야는 삽시간에 어둠으로 가득 찼다.
사무현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각은, 그의 뺨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뿐이었다.
***
찰싹찰싹.
“일어나시오! 시주! 정신을 좀 차리시오!”
찰싹찰싹!
“시이주우우! 정신……!”
덥석.
“……신불 스님.”
자신의 뺨을 계속해서 후려치는 신불의 손을 붙잡으며, 사무현이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만 좀 때려요.”
“오오오, 시주. 정신이 든 것이오?”
달덩이 같이 환한 신불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오자 사무현이 피식 실소를 흘린다.
그의 뺨을 후려치는 손길이 제법 맵기는 했지만, 그가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혈마와의 싸움을 대등하게 이끌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신불의 도움 덕분이었으니까.
“스님이 그렇게 때려 대는데 정신이 안 들 리 있나요.”
그렇게 힘겹게 사무현이 몸을 일으키자, 예상과는 달리 새파란 하늘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걱정 반 호기심 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도관도들의 모습도.
그리고…….
휘이이잉.
……어?
기분 탓인가?
뭐가 좀 이상하리만큼 허전한…….
“……으아아악! 뭐야, 이게!”
“허허, 어찌 그리 놀라시오? 시주.”
“아니! 젠장! 내가 왜 발가벗고 있어요! 내 옷! 옷 안 가져와!”
당황한 사무현의 소리치자, 그제야 사도관도들 몇몇이 황급히 혈무관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러는 사이 막휘가 자신의 상의를 벗어 사무현에게 건네자, 사무현이 그것을 이불처럼 덮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익패, 청사, 살암, 적사……. 아주 그냥 빠짐없이 몰려와 사무현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다.
“구경났냐! 당장 고개 안 돌려!”
사무현이 버럭 언성을 높이자, 여관도들 몇몇을 포함한 모두가 슬그머니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원흉임에 분명한 당사자에게 사무현이 부릅뜬 두 눈을 돌린다.
“……슨블 스늠 즈시지요.(신불 스님 짓이지요.)”
“아……. 그게 여기에는 다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네.”
다급히 양손을 들어 올리며 신불이 애써 태연한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시주의 환골탈태 과정이 조금 기이하기에, 무언가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모두를 먼저 밖으로 대피시켰다네.”
“그래서요?”
“시주의 몸에 화기가 가라앉을 생각을 안 하기에,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건물이 불타 버릴 것만 같았다네. 해서 내가 직접 시주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왔지.”
“옷도 안 입히고요?”
“입히는 족족 타 버릴 텐데 의미가 있겠는가?”
“그럼 화기가 꺼진 다음에는요? 아니, 그보다 애들더러 멀리 물러나 있으라고 할 수도 있었지 않아요?”
“음……. 그럴 수도 있었겠군. 본승이 그 부분은 생각지 못했…….”
“아하, 생각지 못해요?”
또르륵.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미간을 꿈틀거리는 사무현의 모습에, 결국 식은땀을 흘리며 신불이 몸을 일으킨다.
“아미타불…….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구먼. 본승은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네.”
“어딜 가세요? 옷만 가지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저도 이야기 좀 하게.”
“……아미타불.”
파밧!
“아니! 어디 가십……! 거기 서 보시라고!”
사무현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한 채, 그대로 등을 돌려 경공술을 펼치는 신불.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지자 사무현이 희번덕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뭘 봐, 다들 몸 안 돌려? 간만에 푸닥거리 한번 할까?”
사사삭!
살벌한 사무현의 음성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사불란하게 몸을 돌려 등을 돌리고 서는 이들.
그렇게 막휘의 큼지막한 웃옷을 이불처럼 덮은 채, 사무현은 한동안 더 맨살을 대고 바닥에 누워있어야 했다.
어찌 되었건, 마교에서 천마를 만난 지 약 사 년만에 사무현이 화경의 경지에 오른 순간이었다.
***
“아하하하!”
“아미타불……. 뭐가 그렇게 웃기시오?”
배를 잡고 신나게 웃음을 터뜨리는 단아란의 모습에, 신불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에 잠시 후 웃음을 멈춘 단아란이 한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아 내며 말을 잇는다.
“하아……. 웃기잖아요. 무인으로서는 더 없이 영광스러운 순간이 그렇게 모양 빠지는 순간이 되어버렸으니…… 그 녀석이 한동안 신불 스님 엄청 귀찮게 하겠네요.”
“아미타불…… 어차피 입은들 벗은들 본질은, 껍데기 안에 있는 것이거늘…….”
답지 않게 스님다운 척을 하는 신불을 바라보던 단아란이, 문득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그나저나…… 아무리 오라버니의 제자라고 해도 이렇게 빨리 화경에 오를 줄은 몰랐네요. 나도 이립이 거의 다 되어서 화경에 올랐는데.”
“하지만 아란 시주는 이미 약관의 나이에 화경의 무위를 이해하고 있지 않았소? 본승은 환골탈태에 오르기 전의 사무현 시주와 소싯적의 아란 소저가 맞붙는다면, 아마도 아란 소저가 손쉽게 이길 것이라 생각하오.”
“뭐……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죠. 워낙에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라.”
신불의 말에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단아란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사무현의 무위는 그 나이대에 비해 믿기 힘들 만큼 빼어나다.
전투에도 능숙하고 도법, 체술, 경험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화경에 오르는 건 조금 더 먼 이야기 일 것이라고 단아란은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현이 이해하고 있는 무위는 어디까지나 절정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사무현은 도리어 자신보다도 더 빠른 나이에 화경의 경지를 개척했다.
아마 동천이라는 녀석과 치른 사생결단이 큰 깨달음을 준 모양이었지만, 역시나 그 녀석과 싸우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제 특별 수업 때문인가 봐요.”
누구에 대한 것인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단아란이 입을 열었다.
“……음? 지금 뭐라 했소?”
“그렇잖아요? 제 수업 때의 가르침이 차곡차곡 누적되었으니, 동천이라는 녀석과 싸울 때 그 깨달음이 발현될 수 있었던 거겠지요.”
“하하, 아미타불. 그 또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만, 결정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소이다.”
“결정적인 원인이요?”
“크흠흠……. 현 중원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현자(賢子)가 옆에 붙어 있었으니, 그토록 갑작스러운 성취를 이루는 것도 예견된 바가 아니었겠소이까?”
“……그 현자가 신불 스님은 아닐 거잖아요. 그렇지요?”
맞다고 대답하면 주먹이라도 휘두를 듯한 단아란의 표정에, 신불이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하려는 순간이었다.
벌컥.
“어? 학관주 왔어?”
“……역시 또 여기에 계셨군요.”
학관주의 집무실.
그곳에서 구태여 학관주의 의자에 늘어지듯 앉아, 두 발은 당당하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을 흔드는 단아란의 모습.
이제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저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더 노력하지 않았던 소싯적의 자신이 그토록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딱 한 대만 때려 봤으면.’
그렇게 권존이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떠올리는 사이, 어느덧 빈 술병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신불이 입을 열었다.
탁.
“끄윽……. 아미타불. 한데, 학관주가 이 시각에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무슨 일로 오셨냐고?’
그게 지금 남의 집무실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술이나 퍼마시는 스님 입에서 나올 말입니까?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예전에는 그래도 단아란 혼자 북을 치고 있었다면, 일 년 전부터는 저 땡중 스님까지 합류해 옆에서 피리를 불어대고 있다.
‘인(忍)…… 인(忍)…… 인(忍)……!’
……당장이라도 화병으로 쓰러질 것 같지만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주먹에서도, 짬에서도 밀리는데.
결국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스스로를 억누른 권존이, 일그러진 미소를 머금어 보이며 말을 잇는다.
“……다름이 아니라, 고문님을 모셔야 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엉? 날 모셔? 네가 왜?”
“아미타불, 별 일이구려. 하고 많은 사람 중 왜 아란 시주를…….”
“걸왕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든 단아란과 신불에게 말리지 않기 위해 권존이 최대한 빨리 본론을 꺼내 들었다.
“최근 십만대산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관련하여, 단아란 고문님과 모두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십만대산에서 벌어진 사태? 그게 뭔데?”
“……그건 저도 모르니, 함께 가서 들으시지요.”
이쯤 했으면 얼른 가자는 의미로 권존이 한 팔을 펼쳐 보였지만, 단아란은 도리어 귀찮아 죽겠다는 듯 찌푸려진 얼굴로 고개를 가로 꺾는다.
“아니, 뭔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그것도 거지 새끼가 사람을 오라 가라 해? 뒈지게 맞으려고. 그 새끼보고 오라 그래.”
“……각 문파를 대표하는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물론 고문님께서 부르시면 그들도 이곳까지 오겠지만, 그러기엔 장소가 워낙 협소하지 않습니까? 그냥 못이기는 척 함께 가 주시지요.”
“끄으으응…….”
“허허, 딱딱한 자리에서 고생 좀 하시겠소이다. 잘 가시오, 아란 시주.”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몸을 일으키는 단아란을 바라보며 고소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 신불.
그가 막 옆에 놓인 새로운 술병 하나를 여는 순간, 한탄 섞인 권존의 음성이 그의 귓가에 들려온다.
“……파마불제께서도 가셔야 합니다.”
“응? 본승이 말인가?”
“예.”
“아니…… 대체 내가 왜?”
“……연무학관 내에 계시는 삼존 사무제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달라는, 걸왕의 간곡한 청이 있었습니다.”
왜 자꾸 했던 말을 반복하는 느낌이 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권존은 최대한 이런 상념을 지워냈다.
그리고 그런 권존을 가만히 바라보던 신불이, 이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벌떡 몸을 일으킨다.
오…… 그래도 역시 스님은 스님…….
“아미타불! 어디 위아래 없는 거지 시주가 본승을 오라 가라 한다는 말이오? 앞장서시오! 내 이 목탁으로 대가리를 깨 버려야……!”
“에헤이, 참아요, 신불 오라버니. 패도 내가 패지, 신불 오라버니가 패면 소림 애들 얼굴도 못 들고 다닌다니까?”
반질반질한 머리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치는 신불과, 그런 신불을 뜯어말리는 단아란을 바라보며 권존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는다.
‘……스님, 그거 목탁 아닙니다…….’
……술병입니다, 스님.
‘……그냥 둘 다 없다고 할까?’
근 일 년 들어 학관주의 자리가 지나치게 버거워졌음을 실감하며,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권존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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