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스륵.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어두운 방 안의 침소에서 사무현이 몸을 일으켰다.
두 시진 남짓 잤을까?
그리 긴 숙면을 취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감각은 예리한 칼날과 같다.
쓰윽.
조용히 어둠 속을 바라보던 사무현이 한쪽 손을 들어 눈앞으로 가져온다.
마교에서 탈출할 때, 그리고 십만대산의 괴물과 삼 년간 싸우며 얻었던 자잘한 흉터들이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주먹을 쥐어 보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한 힘이 느껴진다.
“……진짜였구나.”
자신도 모르게 툭 하니 중얼거린다.
환골탈태와 함께 이루어낸 화경의 경지.
어제 하루 사이에 있었던 그 수많은 일이 흡사 꿈처럼 느껴졌지만, 몸 전체와 단전에서 느껴지는 비정상적인 힘이 그것이 꿈이 아님을 대변해 주고 있다.
어느덧 침소에서 몸을 일으킨 사무현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없네.’
혹시나 싶었는데, 천마 녀석은 아직도 나타날 만한 몸 상태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그가 강해질수록 봉혼술도 강해진다고 했으니, 아마 지금의 천마가 봉혼술 때문에 느끼는 피로감은 이전과 차원이 다를 것이다.
어제 환골탈태에서 깨어난 후, 사무현은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 힘들 만큼 강해진 상태였으니까.
‘……이게 화경인가.’
깨달음의 수준이나 이런 것들은 부수적인 요인으로 치더라도, 단전에서 느껴지는 내력 자체가 이전의 몇 배는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단전이 열렸다.
중단전이라고 했던가?
옛날의 자신이 이런 놈들하고 몇 번이나 싸움질을 벌였다니.
신불과의 싸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화상 장로와 동천과의 싸움에서는 살아남은 걸 기적이라고 불러야 할 지경이다.
하긴, 실제로 십만대산의 괴물과 천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진즉에 죽음을 맞이했을 테지만.
‘……천마 녀석은 얼마나 강한 걸까?’
천마는 말했다.
중단전이 열리고 화경의 경지로 들어서야 비로소 첫걸음을 떼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때부터는 차차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아무리 봐도 종착지처럼 느껴지는데.’
좀처럼 와닿지 않았던 녀석의 강함이 새삼스레 실감이 난다.
……대단한 놈.
전 같았다면 인정하지 않았을 한 마디를 속으로 중얼거린 사무현이, 이내 상념을 떨치고 발걸음을 옮긴다.
‘슬슬 나가 봐야지.’
한동안 본의 아닌 게으름을 부린 덕에 새벽에 수련하러 나가는 발걸음이 어색하기만 하다.
‘애들도 깨워서 같이 나갈까?’
자신이 없는 사이 한참 게으름을 부렸을 테지만, 그동안 자신을 걱정하며 간호했던 녀석들을 떠올리니 하루 정도는 더 쉬게 해 줘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그렇게 사무현이 홀로 조용히 방문을 빠져나와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벅저벅.
“……음?”
뭐지?
혈무관 안이 지나치게 고요하다.
잠꼬대를 하는 소리는 없을 수 있다 치더라도, 그 많은 녀석이 잠을 자는 건물에서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설마 이것들?’
반신반의한 얼굴로 사무현이 감각을 개방하자, 그의 오감이 순식간에 인근의 멀찍한 영역까지 펼쳐진다.
그리고 잠시 후 사무현은 혈무관의 뒤편에서 들려오는 모두의 인기척을 잡아 낼 수 있었다.
‘헉……! 헉……! 오백삼십팔……!’
‘오백팔십팔……! 오백팔십구……!’
‘야! 숫자 속으로 안세냐! 너희들 때문에 헷갈리잖아!’
‘너희들 다 조용히 해! 형님 깨시겠다!’
……이미 깼다, 이것들아.
물론 너희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은 아니었지만.
티격태격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혈무관 뒤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도관도들의 거친 숨소리들.
혈무관의 입구에 서서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무현이, 곧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허공을 올려다본다.
‘……이게 뭐라고 뿌듯하네.’
그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더 일찍부터 일어나 자신들만의 수련 시간을 가지는 녀석들.
처음 사도관도들을 수련시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저렇게 꾸준히 열심히면, 이제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네.’
이번 암천막과의 싸움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낀 바가 있다.
위기는 준비되지 않은 시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것.
그 위기의 때에 힘이 부족하면 그 무엇도 지킬 수가 없다.
그것이 동료의 목숨이건 스스로의 목숨이건.
‘……나도 좀 도와줘 볼까?’
다들 조금이라도 더 빠른 성취를 얻을 수 있도록.
원래는 혼자만의 수련을 하기 위해 새벽에 눈을 뜬 것이지만, 문득 오랜만에 다 같이 땀을 흘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열정에 불탈 때 기름을 부어 주는 것이 이끄는 자의 도리겠지.’
아마 천마였다면 그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물론 가르침을 받는 이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훗날 위기에 닥치게 되면 도리어 감사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흡족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불길한 미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이윽고 혈무관의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쾅! 쿠궁! 쿵!
‘아아아악!’
‘끄아악!’
‘사람 살려! 대표가 사람 죽인…… 으악!’
“……흐음.”
동이 트지 않은 어두운 새벽.
저 멀리서 들려오는 사도관도들의 비명 소리에, 자신의 처소 지붕 위에서 명상에 잠겨 있던 신불이 눈을 떴다.
‘아미타불…… 저쪽도 다시 시작된 모양이군.’
사무현이 병실에 누워 있던 동안에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이전의 배에 달하는 수련량을 소화시키던 사도관도들이었다.
휴관 기간이니만큼 조금은 늘어져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이번 암천막 사태로 인해 저들의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타올랐다.
아마도 그들도 지금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하기야…… 나 역시 마찬가지인가.’
신불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암천막에서 돌아온 후, 그는 매일 밤 이곳에서 운기와 명상에 잠겼다.
그렇게 새벽이 지나 아침 동이 트고 나서야 겨우겨우 술기운에 의존해 잠에 빠지곤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마지막에 보았던 살천의 뒷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꽈악.
‘……내가 약했기 때문이다.’
살천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불 정도로는 그 소교주라는 괴물을 상대로 오래 버틸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 증거로, 그 괴물의 절기를 코 앞에서 받아 내고도 버틴 살천과는 달리 신불은 곧장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무림의 일절이라 불리는 소림의 절학들을 익히고도, 그는 살천의 뒤조차 제대로 받치지 못했다.
그조차도…….
“……아미타불.”
가슴을 갑갑하게 만드는 상념을 떨치기 위해 염불을 읊은 그가 다시금 명상에 들어가려는 순간, 신불의 뒤쪽에서 난데없는 인기척이 들려온다.
“흠흠……. 명상 끝났으면, 잠깐 시간 좀 내주지 그래요?”
“……허허, 아란 시주가 이곳에는 어쩐 일이오?”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신불이 고개를 돌린다.
“설마 하니, 본승의 술친구가 되어 주려 온 것이오?”
“……술도 없는 분이 말은 잘하시네요.”
신불의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술병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그가 지금의 수련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 주는 것.
그가 이 정도의 마음을 먹는 이유를 모르지 않았기에, 단아란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신불의 옆으로 다가와 선다.
“……밤에라도 좀 주무시지 않고.”
“하하, 본승이야 워낙에 술을 벗 삼아 살다 보니, 어느새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지고 말았소이다.”
단아란의 말에 너털웃음을 흘린 신불이, 곧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저 먼 허공을 응시한다.
“그리고 본승보다는, 아란 시주 스스로에게 신경을 쓰는 편이 옳지 않겠소?”
“……어떻게 아셨어요?”
“매일 밤마다 연무대에서 그토록 매서운 칼부림 소리가 들려오는데, 귀머거리가 아니고서야 어찌 모를 수 있겠소?”
“…….”
신불의 반문에 뒷머리를 긁적이던 단아란이, 이내 철퍼덕 그의 옆에 주저앉는다.
“저, 뭐 하나만 부탁 좀 하려고 왔어요.”
“아미타불……. 본승에게 부탁이라 하셨소?”
어쩐지 심상치 않은 단아란의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신불의 미간이 좁아진다.
“설마…… 이곳을 떠나려는 것이오?”
“……그사이 없던 법력이라도 생기셨어요?
놀란 단아란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자 신불이 쓴웃음을 머금는다.
사실, 회의를 마친 후 줄곧 그의 머리를 떠돌던 전개였다.
그 단아란이, 단월혁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으니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가?
그리고 끝에 나온 답은 결국 하나였다.
바로 직접 찾아 나서는 것.
하지만, 이는 안 될 말이었다.
“안되오.”
신불이 드물게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떤 부탁을 하려고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나, 본승은 절대로 아란 시주를 보내 줄 수 없는 입장이외다.”
“왜요? 제가 제 발로 간다는데.”
“아란 시주.”
단아란과의 대화 중 처음으로 목소리에 힘을 실은 신불이, 조금의 웃음기도 깃들지 않은 눈으로 꾸짖듯이 단아란을 바라본다.
“이런 말을 어찌 들을지는 모르지만…… 그 무신마저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요. 물론 그의 무위와 성정을 생각하면 아란 시주의 말대로 별일이 아닐지도 모르오. 하지만…….”
“…….”
“만일 그와의 연락 방도가 두절된 상황에서 아란 시주마저 연락이 끊어진다면, 마교가 침공했을 때 중원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시오?”
“에이, 연락이야 종종 하면 그만이지요. 대산에 도착할 때쯤 한 번, 오라버니를 찾았을 때 한 번.”
“시주!”
“신불 스님.”
어느새 신불과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운 단아란이 그의 두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저, 이 정도면 엄청 참은 거거든요.”
“…….”
“살천 아저씨는 마교의 소교주라는 새끼한테, 살령 그 미련한 놈은 자기 부하들한테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 무림맹의 입장이고 나발이고 당장 달려가서 하나하나 박살을 내놓고 싶었거든요?”
“……알고 있소이다.”
“그런데 저는 연무학관의 고문이니까, 음지의 일에 끼어들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중립인지 뭔지를 지켜야 한다고…… 마교 놈들이라도 박살 내야겠다고 하니까, 그건 또 중원의 평화가 깨질 수 있으니 참으라고 하고…….”
“…….”
“그런데 있잖아요.”
거기까지 말을 이어 나가던 단아란의 몸 주위로 심상치 않은 기의 파동이 퍼지기 시작한다.
신불을 압박하기 위함이 아닌, 그녀 스스로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 까닭이다.
“나 이번에는 못 참아요.”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오라버니가 행방불명 됐다는데, 내가 왜 여기 처박혀서 감정을 억누르고 있어야 하죠? 내가 연무학관의 고문이라? 아니면 중원제일이니 뭐니 하면서 모두가 추켜세우는 천무신녀라서?”
말을 이어 가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천천히 긴 호흡을 내쉰 단아란이 덤덤히 말을 이었다.
“제가 갑자기 없어지면 다들 당황할 테니…… 신불 스님한테만 말해 두는 거예요. 그냥 대산 인근만 쭉 훑어보고 오려는 거니까, 괜히 걱정할 것 없다고 좀 전해 줘요.”
“……아란 시주.”
“그 정도가, 꼬장꼬장한 저를 고문이랍시고 데리고 있던 모두한테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예요.”
터진 둑처럼 흘러나오는 단아란의 진심에, 결국 긴 한숨을 내쉰 신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낸다.
“하아……. 시주의 뜻이 그리도 완고하다면 본승이 여기서 말린들 의미는 없겠구려.”
“예, 맞아요.”
“……알겠소. 하면 언제 떠날 생각이시오?”
“여기서 바로 가려고요. 시간 끌어 봐야 좋을 게 뭐 있어요? 다들 눈뜨기 전에 가야지.”
거기까지 말을 이은 단아란이, 씩 웃어 보이며 자리를 털고 몸을 일으켰다.
“아, 그리고 제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 오라버니 제자 좀 잘 부탁할게요. 어찌어찌 대가리는 좀 큰 것 같지만, 신불 스님이 살아온 세월이라는 게 있으니까 이래저래 챙겨 줄 게 많을 거 아니에요?”
“알겠소, 그 또한 약조하리다.”
“고마워요. 땡중이라고는 해도, 절 이해하는 건 신불 스님뿐이네요. 그럼 저는 이만…….”
“가만, 거기 서시오, 아란 시주.”
어느새 단아란의 뒤를 따라 몸을 일으킨 신불이, 자신의 의복을 정돈하며 일어나 단아란을 마주한다.
“시주의 부탁은 들어주리다. 그러니, 시주도 본승의 부탁을 들어주어야겠소이다.”
“……부탁이 뭔데요?”
“정 대산으로 가겠다면, 이 자리에서 본승을 꺾고 가도록 하시구려.”
“……예?”
신불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단아란의 두 눈썹이 추켜 올라간다.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예요?”
“말한 그대로요.”
천천히 무릎을 구부려 자세를 낮추고, 한쪽 손은 주먹을 쥐어 옆구리에, 한쪽 손은 반장을 펼쳐 앞으로 내뻗는 신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단아란의 얼굴이 슬며시 찌푸려진다.
“설마…… 진심이에요?”
“아란 시주의 의지는 이해했소이다. 단순히 공(共)을 위해 달란 부탁은 지극히 이기적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알았소.”
“…….”
“하나 본승 또한…… 본승을 대신해 목숨을 잃은 옛 동료를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걸고 아란 시주를 막아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소이다.”
“하아…….”
신불의 말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단아란이 두 눈을 부릅뜬다.
“알았으니까 거기까지만 하고 물러나세요. 지금 전 누굴 봐줄 만한 상황이 아니에요.”
“봐달라고 한 적 없소이다.”
까드득.
신불의 단호한 말에 단아란이 소리나게 어금니를 깨문다.
“……기어이, 저랑 진심으로 부딪쳐 보시겠다 그거예요?”
“아미타불……. 문답무용이외다.”
콰드드득.
쩌저저적!
신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아란이 서 있던 지붕에 균열이 일며 심상치 않은 기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그리고 곧이어,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단아란의 진심어린 위압감이 신불을 옥죄인다.
“……좋아요, 신불 스님이 정 원하신다면.”
“…….”
“아주 박살을 내고 가 드리죠.”
쾅!
말을 마친 단아란의 신형이 섬광같이 신불을 향해 쇄도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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