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6
016화
“어우우……. 이제야 좀 살겠다.”
시비들이 준비한 뜨끈한 목욕물에 몸을 담그자, 사무현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고. 이런 곳에서 그냥 오순도순 모여 살면 되지, 왜 툭 하면 나쁜 짓이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야.”
쓸데없는 대답을 해 줄 천마 녀석은 조금 후에 있을 수련을 준비한다며 몸 안으로 사라져 버린 상태.
오랜만에 방해꾼 없는 휴식을 즐기니, 며칠간의 노고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아까는 너무 막 행동한 건가?’
평소답지 않은 사무현의 모습에,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던 마교 무사들의 시선.
어차피 저들이 자신을 함부로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조금 과감한 면이 없지 않았다.
‘뭐…… 이미 지나간 일, 괜한 고민할 필요 없겠지. 어차피 조만간 목숨 걸고 탈출해야 하는 상황인데.’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것들이 좀 잘해 준다고 도망칠 때 그냥 놔둘 것들이냐는 말이다.
자기들을 속였다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와 내 등에 칼이라도 쑤셔 박으려 들 테지.
그렇게 이런저런 상념을 마친 사무현이 느긋하게 욕실을 빠져나와 새 의복을 갈아입는데, 문밖에서 시비의 음성이 들려왔다.
“칠 대시여, 안에 계십니까?”
“응? 무슨 일이냐?”
“화상장로께서 칠 대 천마님께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화상장로가?”
그놈이 왜 나를 찾아오지?
천마고 사건으로 호되게 당한 이후 내 앞에서는 설설 기다시피 했는데.
‘별일 없겠지?’
천마를 부를까 말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이미 천마를 흉내 내는 데는 도가 튼 상태였기에, 사무현은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라 해라.”
“드시지요.”
벌컥.
저벅저벅.
“장로 화상이, 칠 대 천마를 뵈옵니다!”
사무현의 앞에 부복하며, 정중한 예의를 갖추려 하는 화상 장로.
이에 한쪽 손을 내밀며 사무현이 그의 예를 중단시킨다.
“그만. 피곤하니, 찾은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
“예. 다름이 아니라, 천마도(天魔刀)의 처리 문제로 여쭐 것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천마도?”
……그게 대체 뭔데?
젠장, 그냥 천마를 부를 걸 그랬나?
내심 당혹스러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슬며시 미간을 찌푸리자, 화상장로가 당황한 듯 다급히 말을 이었다.
“무, 물론 이런 사소한 것을 여쭈러 이 시각에 온 것이 불쾌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워낙 긴박한 사안인지라…… 명색에 칠 대 천마님의 신물이 아닙니까?”
……그 녀석의 신물이라고?
그 천마도인지 뭔지 하는 게?
“……계속 말해 보라.”
“예. 본래 천마도는, 천마전 내부에 칠 대 천마님의 신물로서 보관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이번 강림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사온데, 천마께서 따로 찾지 않으시어 아직까지 지하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강림에 쓴 도구……? 아, 설마 그건가? 내 앞에 꽂혀 있던 무식하게 컸던 도.
“……그리고 이번에, 더 이상 강림의 의식을 진행할 수 없도록 의식소를 폐(廢)하는 일을 진행하게 되었사온데…… 허가 없이 함부로 칠 대 천마님의 신물을 건드릴 수는 없는 일이라, 처리를 여쭈러 이리 찾아왔습니다.”
오호라……. 그러니까 그 천마도인지 뭔지 하는 게 칠 대 천마 놈의 신물이고, 그 빌어먹을 의식소를 폐쇄하는데 그 천마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 또 뭐라고.
얘들 그 천마 놈의 후손들 아니랄까 봐, 일 처리 하는 것도 갑갑하기 그지없네.
“……의식소는 예정대로 폐하라. 그리고 천마도는, 최대한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가져오도록.”
“저, 저희가 직접 말씀이십니까?”
“왜, 뭐 문제라도 있느냐?”
“그, 그래도 명색에 칠 대 천마님의 신물이 아닙니까? 아랫것들이 실수를 할지 모르니, 직접 상태를 확인하시는 것이…….”
“…….”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주제를 넘게 그만…….”
이놈 이거 왜 이래?
제법 그럴싸한 소리 같아서 그게 좋겠구나, 싶었는데.
……지난번에 너무 겁을 줬나?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대의 말이 옳군.”
“예, 예?”
“천마도는 본좌의 신물이니만큼, 조만간 직접 가지러 갈 것이다. 그대는 그때까지 본래의 장소에 잘 보관하고 있도록.”
“존명!”
이 정도면 된 거겠지……? 아마도.
***
“……그게 그렇게 대단한 무기라고?”
“그래, 지금껏 무엇을 들었느냐? 신병(神兵)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본좌의 애도(愛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잠에 빠지기 무섭게 사무현은 천마가 준비했던 이공간에서 눈을 떴다.
그곳에서 조금 전 화상장로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자, 천마놈은 신이 나서 일각 가까이 천마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너도 알다시피, 본좌는 본좌의 자랑을 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본좌가 이렇게 말을 할 정도라면, 너도 천마도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래?”
……갑자기 신뢰도 확 떨어지네.
“뭐……. 아무튼 그럼, 그 천마도인지 뭔지는 탈출하기 전에 회수하는 것으로 하고…… 슬슬 수련이나 시작해 보자. 초식인지 뭔지를 가르쳐 준다며?”
“흐음……. 그래. 자, 그럼 오늘은 도법(刀法)의 기본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허공을 향해 손을 뻗어 보이는 천마.
그 순간, 묵색 도신을 가진 거대한 태도 한 자루가 튀어나와 천마의 손에 쥐어진다.
“뭐, 뭐야 그거? 어떻게 한 거야?”
“하하, 놀랬느냐? 상상이다.”
“뭐? 상상?”
“잊었느냐? 여기는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결국 일종의 꿈속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떠올릴 수 있는 물체가 있다면 구현시킬 수 있지.”
“……그래? 그럼 나도 되나, 그거?”
“안 될 것은 없지. 하지만, 실제로 도를 잡아 본 적도 거의 없을 네놈이 이런 도를 구현할 수 있겠느냐?”
음…… 그건 그렇네.
“괜한 노력 하지 말고, 본좌의 움직임부터 자세히 살피거라. 어차피 한번 시현을 해 보인 후에, 네게 이 도를 넘길 것이니. 그럼.”
후우우웅.
자세를 바로잡기 전에, 손에 들린 도를 허공에 대고 가볍게 휘둘러 보는 천마.
그 순간, 그의 몸을 중심으로 바람 같기도 하고 파동 같기도 한 무형의 기류가 흘러나와 부드럽게 사무현의 몸을 감쌌다.
‘……이건?’
부드럽기 그지없는 바람.
하지만 어쩐지,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이 바람이 사무현의 몸을 베어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에 사무현이 본능적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어느덧 자신이 치켜든 도신(刀身)을 응시하며 천마가 입을 열었다.
“언제 보아도…… 실로 아름다운 무기다.”
“……뭐?”
“양 쪽에 날이 선 검과는 달리, 오직 한쪽 면에만 날이 서 있는 살인 병기. 오직 상대를 베어 내겠다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그대로 형상화해 낸 날붙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지 아니하냐?”
지금껏 보지 못한 황홀한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도신을 감상하며 말하는 천마의 모습.
사람을 베기 위해 만들어진 저 날붙이와 사랑에 빠진 듯 보이는 모습이라니…….
그 위화감에 사무현이 잠시 말을 잊은 사이, 손에 들린 도를 천천히 머리 위로 치켜들며 천마가 나직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무도…… 그리웠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분명하게 느껴지는 천마의 한(恨).
그 순간, 사무현의 심장이 돌연 쉴 틈 없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쿵쾅쿵쾅.
시간이 느려진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천마의 행동이 지나치게 느긋한 것일까?
천마의 도신이 그리는 부드러운 곡선의 궤적이 너무도 생생하게 사무현의 감각에 들어온다.
마치, 찰나라는 시간을 수도 없이 쪼갠 것처럼.
이윽고 도신의 끝이 정확히 천장을 향한 그 순간, 천마의 일 도가 섬광같이 휘둘러져 정확히 세로로 허공을 베어 냈다.
후웅.
천마의 일 도와 함께, 조금 전과 같은 바람이 또다시 사무현의 몸을 감쌌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부드러운 바람 속에 숨은 섬뜩한 예기(銳氣).
이는 마치, 실제 날붙이를 연상케 하는 수준이다.
……꿀꺽.
‘이건 대체…….’
사무현이 내심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이, 어느새 아쉬운 미소와 함께 도신을 늘어뜨린 천마가 자신이 베어 버린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도법의 기본. 내려치기다.”
“…….”
“받아라.”
부웅.
퍽.
천마가 자신의 도를 던지자, 허공에서 몇 번인가 회전한 뒤 사무현의 앞에 박혔다.
천마로부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사무현이 말없이 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스윽.
“만 번이다.”
“……뭐?”
잘못 들은 건가?
에이……. 잘못 들었겠지?
하지만 이런 사무현의 바람과는 달리, 어느새 평소의 미소를 되찾은 천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경한 어조로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만 번이다. 내려치기, 만 번.”
하하…….
이 새끼가 그러려니 하며 계속 받아 줬더니, 이제 아주 정도도 없이 선을 막 넘네?
“야, 이……! 만 번이 장난이냐? 천 번으로 해!”
“쉬지 않고 움직인다면 세 시진이면 충분하다. 마침 지금 그 상태로는, 육체의 피로 따위도 없지 않겠느냐?”
“개소리 마! 손이 안 보이게 휘둘러도 세 시진 만에는 절대 못 해!”
“그럼 네 시진.”
“캬아악!”
짐승의 그것과도 같은 포효를 내지르는 사무현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천마가, 곧 표정을 굳히며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세간에서 흔히 떠도는 말들 중 그런 말이 있지. 만일검(萬日劍), 천일도(天日刀).”
……저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만 번을 얘기하는데 뭐? 천일 뭐?
“벨 수 있는 날이 위아래로 나 있고 찌르기에도 능한 검과는 달리 오직 한쪽 날로 베는 것밖에 수가 없는 도는, 변화의 가짓수가 적어 검보다 한계가 빠르게 찾아온다는 뜻이다.”
“……”
“그리고 이건 아주 그럴싸한…… 개소리다.”
“개소리?”
왜? 맞는 소리 같은데?
“도는 오직 베는 것밖에 없다. 바꾸어 말하면, 오직 베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지. 때문에 도객(刀客)이 추구해야 하는 길은, 빠르게 여러 초식을 익혀 도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일 도(一刀). 이것을 완성하는 것은, 천부적인 감각이나 재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길고 긴 노력. 그 끝에 모든 잡념을 버리고, 몸이 스스로 완벽한 길을 찾을 때 비로소 완벽한 일 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어딘지 모르게 현기마저 느껴지는 천마의 이야기.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그가 내뱉은 말 속에 빠져 있던 사무현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천마에게 되물었다.
“그럼…… 완벽한 일 도가 완성되면 어떻게 되지? 정확히 어떤 게 완벽한 일 도인 건데?”
사무현의 물음에, 일순간 천마의 입가에 희열과도 같은 미소가 번진다.
“막을 수 없다.”
“…….”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베어 낼 수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저놈이 느끼고 있는 희열에, 조금이나마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 사무현의 전신에 무엇 때문인지 모를 소름이 끼쳐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만 번이다.”
……아니, 왜 얘기가 그리로 튀어?
“야, 그게 만 번이랑 대체 무슨…….”
“완벽한 일도(一刀)를 완성하고 싶지 않은 것이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탈출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냐?”
“…….”
“……열심히 하도록.”
하……. 탈출?
고작 탈출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걸 만 번이나 휘두르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라면 내가……!
……해야지.
……씨팔.
탈출에 실패하면 목숨이 날아가는 상황인데, 만 번이 아니라 이만 번이라도 하라면 해야지.
결국 솟구치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천마가 건넨 도를 치켜든 사무현이, 조금 전 그가 했던 대로 허공을 베어냈다.
부웅.
‘……그래. 이렇게라도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천마를 꼬드긴 것은 사무현이다.
지금의 과정들이 예상보다 다소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원했던 것조차 즐거이 해내지 못해서야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새로이 마음가짐을 다잡은 사무현이 두 번째 일 도를 내려치는데, 한쪽에서 심드렁한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야야, 똑바로 해라. 횟수만 채운다고 다가 아니야. 한 번을 휘두르더라도, 네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베어 내란 말이다!”
음……. 역시 너와 함께라면 즐기지는 못하겠다.
개 같은 새끼.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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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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