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휘이이잉.
강제로 깎아 내린 듯한 가파른 절벽.
높은 고도로 인해 새하얀 눈이 서려 있는 그 절벽 위에, 수십 명의 무사들이 붉은 핏물 속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신들 사이에서 치명상을 입고도 서 있는 다섯 명의 사내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는 이들 중, 누구 하나 큰 상처를 입지 않은 이가 없다.
“허억……! 허억……!”
독사처럼 찢어진 눈을 가진 깡마른 체형의 사내가, 힐끔 눈을 돌려 자신과 가장 가까운 거구의 사내를 바라본다.
서로간의 거리를 재며 은연중에 검을 고쳐 쥐자, 그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거구의 사내가 그와 반보 정도 거리를 벌린다.
쓰윽.
‘……빌어먹을.’
겉으로는 의식하지 않는 척하면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상당한 신경을 쏟고 있다.
저런 상대에게 섣불리 달려들어 봐야 기다렸다는 듯 반격이 날아들 터!
‘이 중에서 유일하게 거슬리는 놈이긴 하다만…….’
만약 저놈과 자신이 싸워 버리면 나머지 셋이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런 놈을 그냥 두고는 도저히 다른 놈들에게 신경을 기울일 수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
나머지 넷 모두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좀처럼 누구 하나 먼저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지던 그때, 그들과 조금 떨어진 숲 쪽에서 누군가의 흡족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만! 거기까지!”
그들을 이 지독한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자.
흑의인의 음성을 듣기 무섭게, 서로를 견제하던 모두의 시선이 이내 한데로 쏠린다.
그리고 그 순간…….
스걱.
……털썩.
“후우…….”
모두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깡마른 사내가 줄곧 노리고 있던 거구 사내의 목을 베어 낸다.
이에 살아남은 셋이 반사적으로 그를 견제하려던 그때.
“이놈이……!”
쿠구구구.
흑의인의 분노 어린 음성과 함께 숨조차 쉬기 힘든 지독한 위압감과 마기가 그들을 짓누른다.
창백해진 얼굴로 모두가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사이, 기세를 방출한 흑의인이 일그러진 얼굴로 깡마른 사내의 앞에 섰다.
“이…… 시건방진 놈!”
쾅!
휘리리리릭.
촤지지지직.
“……컥! 쿨럭! 쿨럭!”
흑의인의 일 각이 섬광같이 사내의 복부에 날아가 꽂히자, 넉 장 가까이 나가떨어진 사내가 절벽의 끄트머리까지 밀려나며 붉은 피를 토해 낸다.
하지만 잠시 후, 그 광경을 지켜보는 흑의인의 눈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간다.
“그걸 막아 냈다고?”
“……큭!”
절벽 밑으로 완전히 날려 버리기 위해 전개한 일각이었다.
그러나 공격을 허용하기 직전, 상대의 검면이 그의 발을 가로막았다.
“한낱 사파의 잡것 따위가 생각보다 제법이로구나. 하나 말을 듣지 않는 개는 키울 수 없는 법!”
스스스스.
말을 마친 흑의인이 위협적으로 우수를 치켜들자, 그의 손 주위로 마기를 동반한 검붉은 강기가 일렁인다.
그러자 숨을 헐떡이던 사내도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검을 움켜쥐었다.
죽기 전 최후의 저항이라도 해 보겠다는 듯이.
그러던 그때, 또 다른 사내의 음성이 절벽 위에 울려 퍼진다.
“그만해라, 구마.”
“……!”
당장이라도 사내의 머리를 부술 듯 수강을 끌어 올리고 있던 흑의인. 구마 장로가, 내력이 실린 한마디 음성에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과 조금 떨어진 숲 쪽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저벅.
“그만하라 했을 텐데, 왜 아직도 그 자세인 것이냐?”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또 다른 사내.
천마신교의 소교주 적마소를 향해, 구마 장로가 천천히 예의를 갖춘다.
“……소교주님을 뵈옵니다.”
“음…….”
주마 장로의 포권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적마소가, 주위를 빙 둘러보며 심드렁하게 묻는다.
“너희가 물색했다는 녀석들은 이것들이 전부냐?”
“예. 현 사파의 무인들 중, 단독 활동을 하는 재능 있는 이들만 추린 것입니다.”
“큭……. 재능?”
구마 장로의 말이 재미있었는지, 피식 실소를 흘린 적마소가 불쾌한 눈으로 저들을 바라본다.
“고작 저따위 것들에게 재능이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그따위 것을 눈이라 달고 다닐 바에야 뽑아 버리는 편이 낫겠구나.”
“……!”
“뭐…… 그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놈이 하나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조금 전 구마 장로에게 죽을 뻔한 깡마른 사내를 바라보는 적마소.
그런 그를 올려다보는 사내의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미세한 투지가 일렁이고 있다.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적마소가, 이윽고 구마 장로를 향해 손짓을 해 보인다.
“수고했다. 이것들은 이제 내가 관리할 테니, 너는 이만 가 보도록.”
“하오면…… 천마께는 어찌…….”
“일 년으로는 무리다. 삼 년의 시간을 주시면 그 안에 만들어보겠다 전하도록.”
“……존명.”
저벅저벅.
적마소의 말에 고개를 숙인 구마 장로가 조금 전의 사내를 한 번 더 노려보고 자리를 뜬다.
잠시 후 절벽 위에는, 적마소를 제외한 네 명의 사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그를 응시하고 서 있었다.
“다들 살아남은 것을 축하한다. 나는 대천마신교의 소교주, 적마소라 한다.”
“천마신교의…… 소교주?”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중얼거리는 깡마른 사내.
그 순간, 돌연 그에게 다가간 적마소가 한 손으로 그의 숨통을 움켜쥐더니 그를 허공에 들어 올린다.
스륵.
“……컥!”
“이곳에 온 순간부터 너희는 본교의 개다. 지금부터 말을 듣지 않는 개는…….”
쓰윽.
거기까지 말을 이어 가던 적마소가, 반대편 손을 뻗어 사내의 복부에 가져다 댄다.
“이리될 것이다.”
쿵!
“……!”
털썩.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굉음이 들리더니 적마소가 사내를 바닥에 내던진다.
그러자 잠시 후, 사내 몸 곳곳이 뒤틀리듯 경련하더니 곧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주르륵. 주륵.
“……컵! 커륵?”
입에서 물처럼 흘러나오는 피에 당황했는지 사내의 눈이 부릅떠진다.
잠시 후 입에서만 흘러나오던 피가 코에서도 흐르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두 눈과 귀에서도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주르륵, 주룩.
“……!”
“눈빛이 바뀌었구나…… 이제야 공포를 느끼느냐?”
눈에 띄게 창백해진 사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적마소가 무심한 얼굴로 묻는다.
“살고 싶으냐?”
“카르륵, 카륵.”
후두둑, 툭.
말을 하려 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사내는 어떤 말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런 그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적마소가 말을 잇는다.
“살고 싶다면 어디 한번 빌어 보거라. 할 수만 있다면 살려 줄 것이니.”
“……쿨럭! 크륵.”
이대로 가다가는 숨이 끊긴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윽고 사내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바닥에 엎드려 소리친다.
“커륵! 컥! 칼려……! 컥! 추……! 쿠룩! 칩시오!”
“이런…… 의지가 부족하구나. 그런 식으로 말해서 어찌 알아듣겠느냐?”
“……!”
적마소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젓자,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떤 사내가 사력을 다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인다.
“쿨럭! 칼려……! 추십치오!”
촤좌좍. 촤좍!
피가 넘어오는 와중에 억지로 목소리를 높인 탓에, 코와 입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피가 산개하듯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지켜보던 적마소가,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내의 등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다.
쓰윽.
“컥! 컥!…… 아?”
적마소의 손이 닿는 순간, 육신의 경련이 멎더니 흘러나오던 피가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이 믿기 힘든 상황에, 사내를 포함한 생존자 모두가 경악 어린 눈으로 적마소를 응시한다.
“이번은 내 명을 거부한 것이 아니니 용서해 주었다만…… 나는 명을 어긴 개를 살려 둘 만큼 자비롭지 못하다. 이번 일을 본보기 삼아, 충성스러운 개가 되도록.”
“조…… 존명!”
처음의 도전적인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내.
이에 적마소가 다른 곳에 서 있는 세 명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그들 중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바닥에 부복하며 소리친다.
“존명!”
“……좋군. 이제야 겨우 훈련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구나.”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적마소가, 주위를 빙 둘러보며 말을 잇는다.
“이제부터 너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훈련을 받을 것이다. 적당한 시기마다 한 번씩 너희들을 평가할 것이고, 그때마다 가장 떨어지는 한 명을 죽일 것이다.”
“……!”
“그리고 모든 훈련이 끝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명은…… 지금의 너희가 감히 꿈꿀 수 없는 힘과 권력을 갖게 될 것이다.”
적마소의 말을 들은 네 명의 사내 모두 바닥에 엎드린 채 가늘게 몸을 떨고 있다.
누군가는 두려움을, 또 누군가는 희열을 느끼고 있을 터.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적마소가 이내 등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쓰윽.
“일각 뒤에 다시 오겠다.”
“…….”
“그때는 이 장소에, 오직 너희 네 사람의 모습만 보일 수 있도록.”
저벅저벅.
말을 마친 적마소가 그들에게서 멀어지자, 사방에 늘어진 시체를 치우기 위한 저들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도망이나 싸움 따위는 감히 생각조차 나지 않는 듯, 정신없이 시체를 치우는 그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결연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
“꼭 약조를 지켜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사무현을 바라보며 허량이 재차 입을 열었다.
“반드시 꼭! 무당으로 찾아와야 한다!”
“아, 예. 알겠으니까, 이제 좀 가세요.”
“정말 믿어도 되는 거겠지?”
“아, 진짜 좀! 약조 지킬 테니까 믿고 가시라고!”
“끄응…….”
참다못한 사무현이 언성을 높이자, 뒷머리를 긁적이던 허량이 못내 아쉬운 듯 말을 잇는다.
“이 년 뒤에 너와 다시 겨루어 볼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는구나.”
“염려 마세요. 이년 뒤에 무당에서 두들겨 패 드릴 테니까.”
시원시원한 사무현의 대답에, 결국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허량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얘길 들으니 조금은 발걸음이 가벼워지는구나. 한시라도 빨리 무당에 가서, 너와 맞붙을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열심히 해 보세요. 파릇파릇한 사제들 앞에서 얻어맞으면 그게 무슨 개망신이에요?”
“하하, 그래. 내 유념하도록 하마.”
사무현의 말에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는 허량.
거참…… 보면 볼수록 도저히 정파 같지 않은…… 아니, 너무 완벽하게 정파 같은 사람이다.
사무현 자신 같았으면 새파란 후배 놈이 이따위 소리를 했으면 그 자리에서 사생결단을 냈을 텐데.
아무튼 그렇게 인사를 마친 허량이 떠나자, 잠시 후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이가 사무현의 앞에 섰다.
쓰윽.
“……뭐야? 휴관 전에 맞고 가려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사무현의 눈빛을 받고 있는 이는, 학관의 초부터 그와 대적했던 화산파의 명운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사무현의 도발에 발작하며 달려들었을 녀석인데, 오늘만큼은 예상외로 차분하게 사무현의 말을 받았다.
“설마. 그냥 떠나기 전에 할 말이 있어서 온 것뿐이다.”
“난 너랑 할 말 없는데?”
너무도 솔직한 사무현의 대답에, 명운의 얼굴에 일순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덤덤한 얼굴로 사무현을 향해 말을 잇는다.
“……오 년 뒤다.”
“……뭐?”
“처음 너에게 패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목표다. 연무학관을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너를 꺾고야 말겠다고.”
“……네가?”
고작 오 년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라는 사무현의 뜻이 전해졌는지, 지그시 입술을 깨문 명운이 천천히 그에게서 몸을 돌린다.
“……기억해라. 다시 만날 때는, 절대로 지금과 같지 않을 거다.”
저벅저벅.
허량과 명운의 인사가 끝난 뒤에도, 황보악과 남궁천을 포함한 몇몇 정도관도들이 사무현을 한 번씩 노려보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그렇게 이름도 모를 여덟 번째의 정도관도가 지나가고 나자, 사무현의 시선이 저 멀리 하늘로 향한다.
‘……내가 너무 착하게 살았나?’
그냥 보이는 족족 두들겨 팼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저럴 생각도 못하고 도망치듯 사라졌을 텐데.
그렇게 사무현이 아쉬운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어느덧 그에게 다가온 신불이 천천히 합장과 함께 인사를 건넨다.
“아미타불…… 시주와 꽤나 깊은 정이 들었는데, 이래저래 아쉬움을 금할 수 없소이다.”
“정 아쉬우면 따라오실래요?”
“하하, 정말로 고마운 제안이오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수 없소이다.”
거기까지 말을 마친 신불이 무림맹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벽에 기대서 있는 단아란의 시선은, 시종일관 그들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아란 시주가 본승을 단련시켜 주기로 했으니…… 한동안은 좋든 싫든, 무림맹에 붙어 있어야 할 듯하외다.”
“……괜찮으시겠어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것 같은데.”
“뭐…… 설마 죽이기야 하겠소이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실은 본승도 그리 생각하외다.”
사무현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 신불.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하나…… 또다시 마교도들에게 당할 바에야, 한 번쯤 제대로 고생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본승의 생각이오.”
“……그런 각오시라면.”
신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미소를 짓는 사무현.
그런 그의 뒤에서, 살암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크흠……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냐? 이제 우리만 남았다.”
“……들으셨죠? 아무래도 이제 진짜 가 봐야겠네요.”
“아미타불…… 이곳 무림맹에서 시주의 무탈함을 기원하겠소이다.”
“예, 스님도요.”
신불과의 인사를 마친 사무현이 몸을 돌리자, 그와 함께 움직이기로 결정한 육십여 명의 사도관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불어 한동안 그와 함께 활동하기로 한 적월과 만패, 나혼수까지도.
“자…… 그럼 가자.”
“예! 형님!”
사무현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하며, 그를 필두로 무림맹에서 멀어지는 사도관도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무림맹의 정문에 선 사도관주가 아쉬움과 근심이 반반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잔잔하던 강호에 심상치 않은 파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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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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