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쾅!
휘리리릭.
풀썩.
“이……! 멍청한 놈들!”
바위도 부수어 버릴 듯한 거권(巨拳)으로 수하 한 명을 날려 보낸 사내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입술을 깨문다.
부리부리한 범과 같은 눈매에 붉은 얼굴.
사방으로 산발된 지저분한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내의 팔뚝은, 한 눈에 보기에도 선명하고 두터운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져 절명해 버린 수하를 경멸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사내가, 곧 이글거리는 눈을 돌려 그의 앞에 선 수하들을 둘러본다.
“……빈손으로 그냥 돌아와? 패한 것도 모자라 도망을 쳐서?”
분노가 뚝뚝 묻어나오는 사내의 스산한 물음에, 수하들 모두가 입술을 꽉 깨물고 마른침을 삼킨다.
무어라 변명이라도 해야 구명할 수 있겠지만, 그 변명을 내뱉는 이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광호채로부터 도망쳐 왔다는 보고를 한 조장이 한 주먹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대적룡채(大赤龍砦)의 전사라는 녀석들이…… 흑살오귀까지 붙여줬는데, 양민이나 다름없는 광호채 놈들에게 패해서 도망을 쳤다고!”
쾅!
휘리리릭.
풀썩.
“……!”
분노어린 사내. 적룡채주의 주먹질에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나동그라진다.
이대로라면 그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모조리 죽어 나갈 기세였기에, 결국 그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았던 사내가 바닥에 부복하며 소리쳤다.
“패하고 도망친 죄 죽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희의 억울함을 고하지 않을 수 없음을 용서하소서!”
“억울하다……?”
“예! 광호채가 생각지도 못한 고수를 대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저희의 습격을 미리 알고 대비해 두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자신들의 실책과 무능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라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는 분명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다.
“흑살오귀 다섯을 홀로 제압할 정도의 고수였습니다! 광호채주를 막아야 할 흑살오귀가 도리어 도망을 치며, 저희 모두에게 후퇴하라 명하였습니다!”
“뭐라? 흑살오귀를 홀로 제압했다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되물으며 두 눈썹을 추켜올리는 적룡채주.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는지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며 화제를 돌린다.
“……해서, 녀석들의 명대로 따른 것일 뿐이다?”
“녀석들의 명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채주께 전하지 않는다면, 저 악독한 광호채 녀석들이 형제들에게 어떤 간악한 수를 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외부의 고수까지 불러들인 마당에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사실 외부의 고수를 불러들인 것도, 광호채에게 선전포고도 없이 먼저 기습을 한 것도 적룡채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채주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저희를 용서치 마시고, 다음 광호채와의 전투에 선봉에 서게 해 주십시오! 부디 지난 전투의 치욕을 씻고, 적룡채의 위엄을 알리다 명예롭게 죽고 싶습니다!”
쿵!
그야말로 열변을 토해 내며 이마까지 바닥에 찍어 보이는 과감함을 보인다.
그의 이마가 찢어지며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기 시작하자, 그제야 분노가 다소 사그라들었는지 적룡채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일어나 내 앞에 서라.”
“예!”
파밧.
“네 이름이 무엇이냐?”
“단적(短適) 입니다!”
“오냐, 단적. 네 소원을 이루게 해 주마. 다음 광호채와의 전투에서 네가 선봉에 서도록.”
“감사합니다!”
겨우 살았다는 생각에 단적이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 사이, 적룡채주가 자신의 의자에 걸터앉으며 등받이에 거대한 몸을 기댄다.
털썩.
“크으음…… 이거 아주 제대로 당했군. 흑살오귀를 제압할 정도의 고수를 끌어들였다고?”
“예!”
“그만한 놈이라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는데…… 혹 알아본 놈이 있느냐?”
스윽.
“저…… 그, 그 고수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예상치 못한 이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단적의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적룡채의 산적 하나가, 조심스레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이들?”
“예. 광호채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저희를 포위해 공격하던 이들이었는데, 그 중 선두에 선 두 명이 상당한 실력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놈들 중 하나가, 일전에 음지삼왕 측에서 협조를 보내온 과거 암천막의 후계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했습니다.”
“암천막의 후계자와……?”
“예. 그리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 놈이…….”
잠시 대답을 고심하던 산적이, 적룡채주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잇는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소녹림왕(小綠林王)과 외모가 거의 비슷했습니다.”
“뭐라고? 소녹림왕?”
벌떡.
암천막의 후계자라는 이름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자리에 앉아 있던 적룡채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눈을 부릅뜬다.
소녹림왕, 막휘.
녹림왕의 후계자로서, 지금 연무학관에 있어야 할 그가 대체 왜 광호채가 있는 구화산까지 왔다는 말인가?
“확실하더냐! 연무학관에 있어야 할 놈이 왜 거기에 있어!”
“그, 그것이…… 저도 어찌된 영문인지는…….”
“채주님, 그것에 관해서는 짐작이 가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적룡채주의 의자 옆에 서 있던 염소수염의 사내가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을 꺼낸다.
“바로 일전에 재미있는 소식이 있었지요. 며칠 전 연무학관의 공문을 매단 전서응들이 중원 각지로 뿌려졌다는 소식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이 어쨌다는 말인가?”
“간단합니다. 연무학관에서 관도들의 문파로 보낸 공문들. 거기에 적힌 내용이 휴관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녀석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설명되지요.”
“연무학관이…… 휴관을?”
“예. 지난 암천막 사건도 있었으니 신빙성이 없는 추측은 아닙니다. 암천막의 후계자와 소녹림왕 모두, 이번 연무학관의 동기 입관생 사이가 아닙니까?”
“으음…….”
염소수염 사내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턱 끝을 매만지는 적룡채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가 노리고 있는 광호채에, 그가 함부로 할 수 없는 두 존재가 동시에 있다는 의미가 되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 셈이군. 하필이면 그 두 놈이 이런 시국에 광호채에 오다니.”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기회이지요.”
“……좋은 기회라고?”
염소수염 사내의 말에 적룡채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한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두명(頭明).”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체 왜 저들이 함께 이곳 광호채로 왔을까? 가능성이 있는 추측은 하나였지요. 암천막의 후계자가 음지삼왕의 눈을 피하기 위해, 녹림으로 몸을 숨기려 소녹림왕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
“……계속해 보라.”
“하면 어째서 하필 광호채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을 고려한다면 녹림왕이 있는 죽산으로 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제 생각엔 둘 중 하나입니다. 아직 녹림왕은, 자신의 후계자가 음지의 후계자와 함께 행동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혹은, 이를 공식적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
염소수염 사내. 두명의 말에 적룡채주의 눈이 부릅떠진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한쪽 입꼬리가 꿈틀하더니 곧 슬며시 말려 올라간다.
“……큭.”
“…….”
“큭큭큭…… 크흐흣…… 큭큭…… 으하하하하! 크핫핫핫핫!”
자연스런 내력이 흘러나오는 우렁찬 웃음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견뎌내지 못한 수하 중 몇몇은, 다리가 풀린 듯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풀썩.
털썩.
“크흣흣…… 과연! 그 말대로라면 이건 정말 기가 막힌 기회로군.”
“저희는 암천막의 후계자가 광호채에 숨어들었다는 명분하에 광호채를 친 것입니다. 하면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죽음을 당하건, 저희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겠지요.”
“훌륭하다 두명! 역시 네가 나의 머리이자, 오른팔이다! 네가 들어온 이후부터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구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적룡채주가,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펴며 산채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적룡채의 모든 형제들에게 전해라! 지금부터 한 시진 뒤, 암천막의 후계자를 잡기 위해 광호채를 칠 것이다!”
“존명!”
“흐흐…… 흑살오귀를 제압한 녀석도 광호채에 있다고 했지? 이거 간만에 몸 한번 제대로 풀 수 있겠구나.”
자신만만해 하는 적룡채주를 바라보는 두명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
“크으…… 그래서 그때 제가 말했지요. 어떻게 뒈졌는지도 모르고 뒈지기 싫으면 집중해라!”
“오오……!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어찌되긴요? 저 놈이 아주 눈 뒤집어져서 달려드는데…… 뭐, 그래도 그럭저럭 제법이긴 하더라고요. 어쨌거나 제가 도(刀)까지 쓰게 만들었으니까.”
“허어, 그 암천막의 후계자를 상대로 제법이라니요. 은인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저로서는 도무지 가늠이 가질 않습니다.”
연신 탄사를 흘리며 사무현을 추켜세우는 광호채주.
그가 건네는 술잔을 기분 좋게 받아든 사무현이, 한 입에 술을 털어 넣으며 대답한다.
“크으……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수준이에요. 저보다 강한 놈들이야 지천에 널렸는걸요, 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흑살오귀를 홀로, 그것도 그토록 손쉽게 제압하는 고수께서 그리 말씀하시다니요? 그들을 그리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고수는, 이곳 안휘의 사파들을 모두 긁어모아도 열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를 띄워 주기 위한 의도가 섞여 있기는 하지만, 광호채주의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흑살오귀가 실력에 비해 과한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그들 다섯을 혼자서 제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광호채주 자신만 하더라도 그들에게 밀려 목숨을 잃을뻔하지 않았던가?
안휘의 패자라고 하는 저 남궁세가의 고수들까지 포함한다면 모를까, 안휘에서 활동하는 사파의 고수들만 놓고 본다면 흑살오귀를 손쉽게 제압할 고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금 전 소녹림왕께서도 말하셨지만, 은인께 흑풍도라는 평범한 별호는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오늘 흑살오귀를 한 자리에서 제압하신 이야기가 퍼진다면, 아마 은인의 무위에 걸맞은 별호가 새롭게 나타날 것입니다.”
“에이, 에이. 상관없어요. 별호 같은 거 있어 봐야 무슨 쓸모가 있다고.”
“어찌 쓸모가 없겠습니까? 강호에서 명성은 또 다른 힘입니다. 앞으로 은인께서 어떤 행보를 하시건 그 뒤를 받쳐 줄 보이지 않는 힘이 될 것인데, 응당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요.”
“흐음…… 그래요?”
나름대로 솔깃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사무현의 반응은 그저 심드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의 다섯 놈을 처리한 정도로 뭐 대단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겠냐 싶었다.
‘다섯 놈이 다 덤벼 봐야 살암 하나도 못 이기겠던데.’
흑살오귀니 뭐니, 별호만 그럴싸하지 크게 대단할 것도 없는 실력이었다.
개개인의 수준만 놓고 보면 청사나 적사보다도 한 수 아래로 봐야할 정도?
막휘 정도만 되어도 그들 다섯과 호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평화로운 분위기네.’
모닥불 앞에서 광호채주가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술 한 잔을 기울이는 사무현.
산채 곳곳에 피어난 모닥불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기분 좋은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다.
신불 스님이 있었다면 엄청 좋아했을…….
“……음?”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신불의 생각에 실소를 흘리는 것도 잠시.
이윽고 저 멀리서 느껴진 감각에 사무현의 눈이 가늘어진다.
“갑자기 어찌 그러십니까?”
사무현의 반응을 알아차린 막휘가 의아한 듯 묻자, 사무현이 짧게 혀를 한번 차고는 술잔에 남은 술을 입 안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
스윽.
“거…… 생각보다 끈기 있는 놈들이네.”
투덜거리듯 중얼거린 사무현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막휘와 광호채주도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따라 몸을 일으킨다.
“형님, 갑자기 무슨…….”
“광호채주님, 아무래도 축제는 여기까지 해야 될 것 같네요.”
“예?”
“포위당했어요. 아니, 곧 포위 당 할거에요.”
“……설마!”
“예, 바로 그 설마예요.”
“……적룡채!”
광호채주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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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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