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7
017화
사무현이 천마에게 도법과 체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내상에 좋다는 약재들을 이래저래 챙겨 먹은 덕분인지, 몸속 곳곳에서 사무현을 괴롭히던 통증은 이십 일쯤 말끔히 사라졌다.
첫 소주천은 최상의 몸 상태에서 해야 한다는 천마의 말에 꿋꿋이 한 달을 모두 채운 후, 사무현은 이윽고 심법을 익힐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본좌가 운기를 도와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육체가 없는 이런 몸이니 어쩔 수 없구나.”
“뭐 어때? 보통 소주천은 스스로 하는 거라며?”
“그건 소주천에 능숙해진 이들에 한한 것이지. 대부분 첫 운기(運氣)는 고수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사부란 존재가 대체 왜 있겠느냐?”
“…….”
“뭐 그래도…… 첫 소주천을 스스로 해내는 이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무림에서 흔히 기재나 천재라고 불리는 것들은, 종종 그런 일들을 해내곤 하지.”
아하, 난 또 무림인이라면 기본이라고 하길래 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익히는 건 기재나 천재들한테만 가능한 거였어?
“에이, 그럼 난 안 되겠는데?”
사무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퉁명스레 말하자, 천마도 그와 마찬가지로 어깨를 으쓱하며 그 뜻에 동조한다.
“뭐, 본좌도 그리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새끼가?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천마 새끼야.
“네가 스스로 소주천을 해낼 가능성은 솔직히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지.”
“뭔데?”
“이거 못하면, 너 탈출 못 한다.”
“…….”
“단순히 내공이 부족해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고작 두 달 남짓하게 배운 무공으로 본교를 탈출하려면, 적어도 네가 기재나 천재라 불리는 이들과 비슷한 재능은 갖추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끄응…….”
이 새끼가 참,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네.
탈출이라는 말 하나에 휘둘리는 이 상황은 마음에 안 들지만, 아마도 놈의 말은 사실일 거다.
적어도 무공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허언을 하지 않는 녀석이니까.
물론…… 아주 가끔은 빼고.
“그래도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마라. 어쨌거나 지금의 너는 소주천을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니까. 보통 너 정도의 상태에서 첫 소주천을 경험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것참 퍽이나 위로가 되네.”
“이건 결코 가벼이 볼 부분이 아니다. 보통 운기를 도와주는 것은, 스스로 기를 느끼고 움직일 수 없는 이들에게 첫 길을 열어 주기 위한 것. 하지만 넌 이미 기를 느낄 수 있고, 네 몸 안에도 일 갑자에 이르는 내력이 자리하고 있지 않느냐?”
……이 자식이 병 주고 약 주나?
조금 전까지는 스스로 소주천을 하는 것이 엄청 걱정되는 것처럼 말하더니, 지금은 또 아마도 가능할 것이라며 천하태평하게 말을 뒤집는다.
‘이해하려 하지 말자…… 그냥 받아들여야지 뭐.’
애초에 저런 놈인 것을 어쩌겠는가.
어차피 탈출만 성공하면 머지않아 성불시킬 놈이니, 자질구레한 것은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일단은 내 일이나 신경 쓰자. 내 일이나.
“자, 아무튼 그럼 시작해 보실까?”
그렇게 천마에게서 등을 돌린 사무현이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기를 흘려야 하는 통로와 그 위치도, 순서도 모두 머릿속에 들어 있다.
이제 단전의 기들을 움직여 혈자리를 개척해 나가는 것뿐!
‘좋아……. 느껴진다.’
배꼽 아래 단전 쪽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힘.
이 힘을 느끼며 조심스레 정신을 집중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기가 꿈틀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콰드득 콰득.
‘오……. 반응이 제법 있는데?’
슬쩍 건드려나 보자는 느낌이었는데, 톡 하고 건드리니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요동치는 힘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어렵지 않겠는데?’
어느새 조금 자신감을 얻은 사무현이, 음고혈 쪽으로 기를 움직이기 위해 조심스레 정신을 집중했다.
그런데…….
‘……뭐야? 왜 안 움직이지?’
분명 그가 느끼고 있는 내기는, 당장이라도 내달리고 싶다는 듯 빠르게 요동치며 안달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무언가에 꽉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단전 안에서만 뱅뱅 맴돌고 있다.
‘끄응……. 잘만 하면 될 것도 같은데?’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정신을 집중할수록, 기가 요동치는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단전 안에서 기가 맴돌기는 그렇게 일곱 차례.
결국 참다못한 사무현이 한 번에 모든 힘을 끌어모아 기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제발 좀 움직여라아!’
찌지직.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아, 참,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주의 사항이 더 있구나.”
……주의 사항?
“첫 소주천 때부터 많은 양의 내력을 흘리려 하면 무리가 될 수 있다. 일 갑자나 되는 내력은 말할 것도 없지. 그러니 부디 한 번에 많은 내력을 건드리지 않도록 각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야…… 이 새끼야, 그걸…….
쾅!
빨리 말해야지, 개 같은 놈아!
‘……읍!’
몸 안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마치 밀려오는 거친 물살에 막고 있던 둑이 허물어지듯, 음고혈이 뚫리며 사무현의 단전 안에 있던 일 갑자의 내력이 거칠게 기혈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콰구구구.
‘……좆됐다.’
막을 수 없다.
통제할 수 없다.
한번 내달리기 시작한 일 갑자의 내력은, 여태껏 기를 통제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사무현이 통제할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아니었다.
작은 바가지 하나를 들고 강물을 제어할 수 없듯이, 내력은 사무현의 통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식간에 다음 통로를 개척하기 위해 내달렸다.
‘바, 방향! 방향이라도……!’
소주천 중에 한 번이라도 잘못된 혈자리로 기가 통하면, 그 순간부터 그가 익히려는 심법은 정체불명의 심법이 되어 버린다.
아니, 최악의 상황에는 주화입마에 빠져 광인(狂人)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은 오래 걸려도 좋으니,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나아가라고 경고하지 않았느냐!’
천마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정신을 쏟을 여유가 없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원하는 방향으로 기가 통하고 있었지만, 이 제멋대로인 기가 언제 방향을 뒤틀지 알 수 없는 노릇.
결국 사무현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를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고 방향만이라도 틀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쏟아내는 것뿐이었다.
콰구구구.
쾅! 쾅! 쾅!
‘……큭!’
쾅! 쾅! 콰구구구.
또 다른 혈의 저항을 무식하게 힘으로 뚫어낸 일 갑자의 내력이, 다음 목적지를 향해 쉴 틈 없이 내달린다.
생전 처음으로 기혈이 열리고 넓혀지는 것은, 비명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통증을 동반한다.
처음 작은 내력이 통할 기혈을 여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인데, 한꺼번에 일 갑자의 내력이 기혈을 넓히고 있으니 그 통증은 거의 몸속에 불덩이가 떨어진 것과 같으리라.
만약 입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라는 천마의 경고가 아니었으면, 통증에 무뎌질 만큼 무뎌진 사무현이라도 벌써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을 것이다.
‘끄으윽……!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소냐……!’
삼 년이라는 시간을 죽지 못해 버텼다.
처음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 애원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일 년이 지나자 그것은 오히려 독기로 바뀌었다.
뒈질 때 뒈지더라도 결코 네놈들에게 우는소리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는 독기.
그것으로 사무현은 수백여 명의 실험체가 죽어 나가던 그 고통의 시간을 이겨 냈다.
‘그리고…… 쪽팔려서라도 이제 여기서 뒈질 수는 없다고!’
사무현과는 달리, 결국 소모품으로 죽어 간 수많은 이들.
당장 사무현의 몸 안에 있는 내력이 그들의 생명을 대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겨우 이 정도도 이겨 내지 못하고 뒈지면……! 귀신이 되어서도 놀림거리지!’
그래, 살아야 한다.
그토록 살고자 했으나 죽어야 했던 수많은 이들을 대신해서.
반드시 살아 나가, 저 빌어먹을 마교도 놈들에게 보란 듯이 한 방을 먹여 주고 말 거다.
쾅! 쾅! 쾅!
콰구구구.
‘이제……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주요 혈자리는 세 곳!
그렇게 마지막 사력을 다해 사무현이 정신을 집중하던 그 순간, 제법 오래도록 버티고 있던 신주혈이 허물어지며 한순간 아찔한 통증이 사무현의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었다.
‘……!’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
하지만, 그 찰나는 신주혈을 무너뜨린 일 갑자의 내력에 다음 진로를 정해 줘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한순간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던 일 갑자의 내력이, 돌연 예상치 못한 곳으로 방향을 꺾으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
‘……이런!’
난데없이 호통을 치는 듯한 거친 음성에, 번뜩 정신이 돌아온 사무현이 다급히 기의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심유혈을 뚫는 과정에서 많은 힘을 쏟아 냈는지, 천종혈의 방향으로 향하려던 내력은 사무현의 통제에 따라 순순히 방향을 틀어 주었다.
콰구구구.
쾅! 쾅! 쾅!
그렇게 목표했던 심유혈을 지나 마지막 혈까지 모두 개척한 일 갑자의 내력이 자연스레 단전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광염천파심법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마무리 지은 소주천.
그와 동시에 눈을 번쩍 뜬 사무현이 기다렸다는 듯 검붉은 피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욱!”
주르륵.
“오오, 성공적으로 소주천을 마쳤구나!”
“웨에엑! 우웨엑!”
“괜찮다. 원래 처음 소주천을 하면, 몸 안의 불순물들이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쿨럭! 웨에에엑! 웨엑! 우웨엑!”
“어…… 보통…… 그것들을 뱉어 내는…….”
“쿨럭! 쿨럭! 우웨에엑!”
“……괜찮으냐?”
한 움큼 검붉은 핏물이나 뱉어 내고 말 줄 알았더니, 이건 뭐 환골탈태라도 한 것인지 바닥이 사무현이 뱉어낸 검은 토혈로 가득하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보아 혈에 끼어 있던 불순물들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아니, 뭐가 이렇게 많이…… 너 설마……?”
“후우…… 이…… 천마…… 너 이새끼……”
“하하…… 이, 일 갑자를 모두 운용했으냐?”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사무현으로부터 슬그머니 한 걸음 멀어지는 천마.
그런 그를 따라잡기 위해 힘겹게 한 걸음을 더 내디디며 사무현이 입을 열었다.
“후우……. 너…… 일루 와 봐. 걸을 힘도 없네, 씨팔 거.”
“피를 생각보다 조금 더 흘려서 그럴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조금……? 너…… 너 일루 드루와. 일루 드루와! 이……!”
어어……?
갑자기 너무 열을 냈나?
돌연 세상이 빙글 하고 돌더니, 바닥이 수직으로 올라와 안면에 부딪친다.
쾅!
“어? 괜찮으냐? 정신 차리거라!”
하하……. 내가 쓰러진 거였구나.
빌어먹을 거.
“염려 말거라. 본좌가 생각하기에는 그저 피를 조금…… 아니, 많이 흘리긴 했는……. 아무튼 괜찮을 거다!”
……이 새끼야, 그렇게 말하면 더 걱정되잖아.
하지만 걱정이 되거나 말거나, 더 이상 사무현에게 눈을 뜨고 있을 만한 체력은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원통하게 천마를 노려보다, 기어이 눈을 감고 졸도하고 마는 사무현.
여러모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사무현 생애 처음으로 소주천을 이룬 순간이었다.
***
“축하한다. 기어이 스스로 소주천을 이루다니……. 아무튼 이제 너도 진정한 무인(武人)이 되었구나.”
“…….”
“이제 본격적으로 본좌의 천마도법을 계승할 준비가 되었구나. 이대로라면 네놈의 목표였던 본교의 탈출 또한 마냥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야, 머리 울리니까 닥쳐.”
“……그러지.”
사무현의 욕지거리에 슬쩍 고개를 돌리며 입을 다무는 천마.
이에 긴 한숨을 내쉰 사무현이, 천천히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아우……. 힘이 하나도 없네.”
“정말 힘이 하나도 없느냐? 소주천을 제대로 이루었다면 그럴 리가…….”
“이런 씨……!”
“조용히 하도록 하지.”
두 눈을 희번덕이는 사무현의 모습에 천마가 다시 입을 다물자, 천천히 다리에 힘을 주어 사무현이 몸을 일으킨다.
사실 천마의 말대로 몸 자체는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이전의 몸도 움직임에 전혀 불편함은 없었는데, 지금의 몸에 비하면 그야말로 물먹은 솜이나 다름없다.
‘……시야가 빙빙 도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아마 이 문제는, 천마의 말대로 지나친 토혈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불순물 덩어리를 내뱉은 것이라도, 결국 사무현의 몸을 구성하던 피라는 것에는 변함없으니까.
“일단…… 뭐라도 좀 먹자. 너랑의 대화는 그다음이다.”
“훌륭한 생각이다.”
드물게 맞장구까지 치는 천마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흘리며, 연공실 밖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 사무현.
그러던 그가 문득 생각난 듯 발걸음을 멈추고 천마를 향해 물어 왔다.
“야,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음?”
“아까 소주천 중에…… 나한테 기혈의 방향이 다르다며 소리친 게 너냐?”
반신반의한 사무현의 물음에, 천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썹을 추켜 올린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네가 어떤 상황인지 본좌가 어찌 알고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이냐?”
“그래? 그런데 아까는 분명…….”
“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기분 탓일까?
아니면,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도 모를 무의식의 음성을 들은 것일까?
확실한 것은, 그 음성이 천마의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들어본 듯한 음성이었다는 것이었다.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떨떠름한 기분을 대충 덮어 버리며, 사무현은 연공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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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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