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이놈들! 이런 곳에 숨어 있으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내공이 실린 쩌렁쩌렁한 외침.
수십의 무사들을 대동하고 별채 안으로 들어선 흑룡문주와, 엉망이 된 식탁 위를 번갈아 보던 살암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저건 내가 죽이도록 하지.”
“반만 죽여라. 나머지 반은 내 몫이다.”
당장이라도 몸을 날릴 듯 어금니를 갈며 흑룡문주를 노려보는 막휘.
기가 죽기는커녕 도리어 덤벼들려는 상대의 모습에, 흑룡문주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서 온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우리 흑룡문의 영역이다! 지금이라도 엎드려 빈다면 목숨은 살려줄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그놈 참 혓바닥 한번 길군. 싸우러 왔으면 싸우면 그 뿐이지.”
어느새 살암과 막휘의 옆으로 걸어 나온 적월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든다.
스릉.
“자…… 와라. 네가 지금 누구의 식사를 방해했는지 똑똑히 가르쳐 주겠다.”
“이, 이놈들이……! 진정 해 보겠다는 말이렷다!”
무기까지 꺼내 들며 점점 심상치 않은 양상으로 일이 번지려 하자, 흑룡문주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스치고 지나간다.
사실 흑룡문주는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생각이 아니었다.
남경에서 그들의 입지가 있으니, 적당히 겁을 주고 꼬리를 내리게 만드는 정도가 그가 원했던 전개였다.
한데 한눈에 보아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수십 명이 무기까지 빼 들고 덤빈다면, 아무리 흑룡문이라도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하,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
이 정도 소란이면 이미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허리춤의 도를 반쯤 뽑아 들려던 그때.
쓰윽.
“에이, 검은 뽑지 마시죠, 적월 선배. 여기서 피를 보면 대표 형님께 무어라 변명하시려 그럽니까?”
“저것들도 무기가 있는데 우리만 맨손으로 하자는 말이냐?”
손익패의 만류에 적월이 삐딱하게 흑룡문주를 바라보자, 기다렸다는 듯 헛기침을 한 흑룡문주가 도에서 손을 떼어 내며 입을 연다.
딸칵.
“크흠, 네놈들 따위를 상대하는데 무기까지 쓸 필요는 없겠지. 원한다면 맨주먹으로 상대해 주마.”
“……저러는데요?”
“흐음……. 맨주먹이라…….”
흑룡문주의 말에 턱 끝을 매만지며 미소를 머금던 적월이, 이내 자신의 검을 돌려놓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맨몸으로 붙어 보자는데, 싫은 녀석이 있나?”
“……있을 리가 없지요.”
적월의 물음에 희번덕이는 미소를 머금으며 앞으로 걸어 나오는 만패.
어느새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손익패의 눈에도 붉은 핏대가 어리기 시작한다.
“그르르…….”
“워워, 진정해. 진정.”
몸속 깊은 곳에서 끓는 듯한 소리를 내는 손익패의 등을 토닥인 적사가, 히죽 미소를 머금으며 그의 옆에 선다.
“물으라면 그때 물어.”
‘……이건 대체 뭐 하는 것들이지?’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저들의 태도에 흑룡문주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대충 실력이 있는 집단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남의 집 안방에서 주인을 무시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않은가?
“가소로운 것들…… 오늘 모조리 바닥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게 만들어 주마! 쳐라!”
“와아아아!”
“어쭈?”
코웃음을 치며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흑룡문도들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이내 한쪽 손을 들어 올린 막휘가 모두를 향해 거칠게 소리친다.
“싹 다 엎어 버려!”
“으라아아아!”
“익패! 물어!”
“캬아아아!”
막휘의 외침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저들을 향해 맞서 달려드는 사도관도들과 짐승처럼 몸을 날리는 손익패.
지금까지 쌓아 왔던 울분이 폭발이라도 하듯, 그들의 움직임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
“으음…….”
물의 온기에 취해 반쯤 잠에 빠져 있던 사무현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으……. 뭐야……. 내가 얼마나 잤지?”
잠들기 전까지는 김까지 모락모락 오르고 있던 온수가 미지근하게 변해 있다.
작게 난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도 어느새 어두워진 상태.
모르긴 몰라도 꽤 오랜 시간 잠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끄응……. 야, 좀 깨워 주지, 그걸…….”
무심코 천마를 탓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대체 언제 사라진 것인지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쉬러 갔나.’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한 이후로 천마 녀석이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다.
사무현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분명 이전보다는 봉혼술의 영향을 눈에 띄게 많이 받고 있었다.
‘……망할 놈 같으니.’
봉혼술 따위에 영향을 받을 리 없다고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괜스레 힘이 들어간 주먹을 쥐고 허공을 응시하는 것도 잠시.
어느새 고개를 가로저으며 상념을 떨쳐 낸 사무현이 욕탕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첨벙.
‘다들 뭐 좀 먹었으려나?’
원래라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려 했지만, 이렇게 늦어 버렸으니 벌써 식사를 끝냈을지도 모른다.
우선 나가는 대로 녀석들이 씻을 환경부터 마련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무현은 분주하게 자신의 무복을 걸쳐 입었다.
***
쩡!
휘리리릭.
쿠당탕탕.
퍽퍽 퍽! 퍽퍽!
쩌적! 쩍! 쾅! 쾅! 쾅!
“……세상에.”
남경에서 가장 큰 사파의 무력 단체인 흑룡문.
그리고 그곳의 문주인, 광천도(狂天刀) 마철영.
그는 현재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쾅! 쾅! 퍽퍽퍽!
“뒈져라, 뒈져!”
“하체! 하체! 하체! 이 새끼들 하체가 왜 이렇게 부실해? 그러고도 늬들이 무인이냐?”
“어디서 주먹을 그따위로 휘둘러? 턱주가리 돌아가고 싶냐!”
……꿈인가?
지나치게 생생한 오감만 아니었어도 진심으로 꿈 일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우리 애들이, 저렇게 힘도 못 쓰고 처맞기 바쁘다고?’
물론 중원 전체로 놓고 봤을 때 흑룡문의 무사들의 무위는 강한 축에 든다고 말할 수 없다.
사파 중에도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세력은 얼마든지 있고, 정파. 특히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인들과는 감히 비교를 할 수조차 없을 테니까.
그들이 이곳 남경에서 힘을 주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이곳에 그럴싸한 정도 문파가 없다는 것과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말이 안 되는데?’
눈에서 독기를 줄줄 흘리는 굶주린 산도적 같은 것들이, 인당 한 명 이상의 흑룡문 무사들을 잡고 일방적인 구타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크아아아!”
“사, 사람 살……!”
쿵.
촤좌좍! 촤좍!
“끄아아아악!”
도망치는 흑룡문 무사를 덮쳐 위에서 찍어 누른 채, 양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마구 할퀴어대는 짐승 같은…… 아니, 짐승이나 다름없는 녀석까지!
‘비…… 빌어먹을…….’
이대로 가면 흑룡문의 압도적인 패배는 불 보듯 훤하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려는데, 흑룡문주의 귓가로 유들유들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런…… 설마 이제 와 도망을 치려는 건 아니겠지?”
“뭐, 뭐라? 도망?”
“아니지…… 그럴 리는 없겠지. 이미 이 주변에 보는 눈들이 몰려와 있을 텐데, 수하들을 두고 혼자 도망가서야 체면이 뭐가 되려고?”
“이…… 이놈이……!”
살암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흑룡문주가,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주먹에 권기를 끌어 올리며 두 눈을 부릅뜬다.
“누가 도망을 치려 했다는 말이냐, 이놈! 내 격에 맞는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거늘!”
“아,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
“여기에 나보다 강한 이는 없으니…… 별 수 없이 내가 상대해줄 도리 밖에 없겠구나.”
비웃듯이 히죽 웃으며 흑룡문주를 향해 다가가는 살암.
그런 그를 바라보는 흑룡문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차라리 잘 되었다……!’
흑룡문이 전력의 열세에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집단전이라는 것은, 언제나 전체적인 전력의 우위로만 승패가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무릇 집단전이란…… 수장(首匠)의 안위가 곧 승패를 결정짓는 법!’
불행인지 다행인지, 조금 전의 대화를 통해 유추해 보건대 그를 향해 다가오는 애송이는 저들의 ‘머리’에 속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언뜻 풍기는 분위기가 제법이긴 하지만, 그래 봐야 이제 막 약관을 넘긴 듯 보이는 어린놈에게 당할 자신이 아니다.
생각을 마친 흑룡문주가 의도적으로 여유롭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를 도발한다.
“와라, 애송아. 선공을 양보하마.”
“선공이라…….”
흑룡문주의 말에 두 눈을 가늘게 뜨던 살암이, 잠시 후 싸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원한다면.”
스팟!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박찬 살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흑룡문주의 바로 앞에 나타난다.
이에 대경실색한 흑룡문주가 반사적으로 주먹을 뻗었으나, 그의 주먹이 살암의 몸에 닿기도 전에 살암의 발이 먼저 흑룡문주의 안면을 가격했다.
쾅!
촤지지직.
“……크흡!”
그가 괜히 문주가 된 것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석 장 가까이 밀려났지만 침음성을 흘리며 곧 균형을 바로잡는다.
하지만 그가 정면을 보았을 때는 이미, 살암의 신형이 그가 있던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느리군.”
“……읏!”
난데없이 뒤에서 들려온 살암의 음성에 흑룡문주가 반사적으로 뒤쪽으로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허공만 갈랐고, 어느새 그의 복부에는 살암의 일장이 놓여있었다.
쩡!
“크헉!”
몸 안의 장기들을 뒤흔들어 버리는 일수.
격산타우의 묘리가 고스란히 실린 일장에 두 손으로 복부를 움켜쥔 흑룡문주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 이놈이……!”
“큰소리를 치기에 나름 기대했건만.”
흑룡문주를 바라보는 살암의 눈에는 어느새 심드렁함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 봐야 결국은 이름 없는 사파의 우두머리였구나.”
“뭐, 뭐라? 이름이 없어?”
살암의 말에 분개했는지 온몸을 가늘게 떨며 주먹을 움켜쥐는 흑룡문주.
그런 그를 향해, 스산한 미소를 머금은 살암이 위협적인 발걸음을 내딛었다.
“길게 끌 것도 없으니, 슬슬 끝장을 보자.”
“이……!”
다가오는 살암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살기 어린 두 눈을 부릅뜬 흑룡문주가 돌연 허리춤의 도를 뽑아 든다.
챙!
부웅.
꽤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도를 움직인 흑룡문주가, 자신의 몸 중앙선에 도신을 일치시킨다.
어느새 푸른 도강을 끌어 올리고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살암이 짧은 탄사를 흘린다.
스스스.
“오호라…… 촌구석 사도문파의 문주치고는 제법이군.”
“흐흐, 오냐 이놈. 어디 목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계속 지껄여 보거라!”
쾅!
그러고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 살암의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도를 휘두르는 흑룡문주.
그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던 살암이, 이윽고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가져간다.
그 모습에 흑룡문주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사로잡힌 그 순간.
스팟!
쩌저저저정!
한 줄기 섬광이 상대의 손에서 뽑혔다고 생각하는 찰나, 어느새 자신의 도를 가로막고 있는 상대의 검을 확인한 흑룡문주가 경악성을 흘린다.
“마, 말도 안 돼! 그 짧은 사이에……!”
극한의 쾌검(快劍)을 익힌 이라 그의 도보다 빠르게 검을 뽑을 수는 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도강을 가로막을 수 있는 수준의 검강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반밖에 살지 않았을 법한 애송이가……!
드득. 드드득.
“큽! 이, 이런……!”
쾅!
짧은 폭음과 함께, 결국 힘에서 밀린 흑룡문주의 신형이 다시 한번 뒤쪽으로 밀려 난다.
촤지지직.
“……큭!”
“쯧…… 멍청한 놈, 차라리 도를 뽑지 않았더라면 무사히 살아갈 수는 있었을 터인데.”
저벅저벅.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어조로 말을 이어가며 흑룡문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살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흑룡문주의 눈에 공포심이 어리기 시작한다.
“야, 이……! 다들 동작 그마아아안!”
“……이런.”
난데없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외침에, 아깝다는 듯 짧게 혀를 찬 살암이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는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들고 있던 검을 원래 있던 허리춤으로 돌려놓으려는데…….
“살암, 이 새끼야. 내가 동작 그만이라고 했지?”
“……그러지.”
자신을 향한 사무현의 경고에, 결국 어깨와 검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는 살암.
조금 전의 무시무시한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분위기에,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던 흑룡문주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손으로 목뒤를 잡고 있는 세상 삐딱한 얼굴의 사무현이 그들 모두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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