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위명객잔의 별채 밖, 널찍한 공터.
무릎을 꿇고 앉아 힐끔힐끔 사무현의 눈치를 살피는 수십 명의 사도관도들을 앞에 한 채,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선 사무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늬들 말은.”
“…….”
“쟤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그렇습니다, 형님.”
“말한 그대로다.”
머리를 땅에 박고 엎드려뻗쳐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막휘와 살암.
하지만, 사무현의 미간은 더더욱 좁아질 뿐이다.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
“쟤들이 다 바보야? 대충 봐도 상대가 안 되는 거 알 텐데, 그걸 그냥 다짜고짜 달려들었다고?”
“……진짭니다, 형님.”
“……진짜다.”
짝다리를 짚고 불량스레 고개를 꺾은 사무현이, 막휘와 살암의 옆에 서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적월을 응시한다.
“저기요, 선배.”
“으…… 응?”
“지금 얘들 말이 사실이에요?”
“그래, 명백한 사실이다.”
사무현의 물음에 한 줄기 희망을 느꼈는지 적월이 차분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우리는 정말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우리끼리 조용히 식사나 하고 쉬려고 했는데, 저것들이…….”
“아하, 싸우고 싶지 않으셔서 꿋꿋이 한 놈만 마지막까지 두들겨 패셨어요? 그것도 아주 해맑게 웃으시면서?”
“…….”
“쯧……. 명색에 선배라는 사람이 애들 말리지는 못할망정.”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는 사무현의 태도에 적월은 내심 울컥했다.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건 저쪽에서 먼저 걸어온 시비에 정당하게 응한 것뿐인데.
‘물론 좀 즐기면서 패긴 했지만!’
평소에 얼마나 얻어맞고 쌓인 게 많았으면 저런 놈들을 상대로 풀고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것을 입 밖으로 내봐야 본전도 찾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적월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면목이 없다.”
“쯧.”
적월을 향해 한 번 더 혀를 찬 사무현이, 이번에는 살암과 막휘의 뒤에 앉아 있는 사도관도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야! 진짜 쟤들이 일방적으로 시비 걸었어? 확실해?”
“맞습니다, 형님!”
“저희는 억울합니다!”
“쟤들이 먼저 저희 밥상을 밀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흐음…….”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도관도들.
그들의 적극적인 해명을 듣고 있던 사무현이 천천히 한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엉거주춤하니 서 있는 흑룡문주와 흑룡문도들이 있었다.
“야.”
“으, 음?”
“진짜 늬들이 우리 애들한테 시비 걸었어?”
“아, 아니…… 그게…….”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사무현이 묻자, 무심결에 대답을 하려던 흑룡문주가 흘낏 주위의 시선을 살핀다.
웅성웅성.
어느새 별채 주위로 모여든 수많은 인파들이 혀를 내두르며 그들을 향해 수군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굳이 듣지 않더라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빌어먹을.’
사파는 힘으로, 공포로 군림하는 존재다.
한번 우스운 꼴을 보이고 나면 이곳에 지금껏 다져 놓은 입지가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다.
차라리 모두의 앞에서 박살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흑룡문주가 애써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턱 끝을 치켜올리며 말한다.
“……그래, 사실이다.”
“…….”
“그래서 뭐, 문제라도 있나? 응?”
“어…… 아니 그게…….”
사무현을 향해 두 눈을 희번덕이며 흑룡문주가 반문하자, 그를 바라보는 사무현의 눈빛에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이 어린다.
그런데 그 눈빛이 어쩐지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문제는 없지.”
어렵사리 말문을 연 사무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맞은 너희가 괜찮다는데.”
“…….”
“뭐…… 그래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 나중에 가서 뭐 손해 배상을 해 달라느니…… 그런 얘기는 안 할 거지? 어차피 너희가 시비 건 거니까.”
손해배상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묘하게 두 눈을 번뜩이는 것을 보아하니, 지금껏 저들을 갈구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나 보다.
하지만 사무현이 굳이 이런 협박을 하지 않더라도 흑룡문주는 그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시비를 건 것이 그들이 맞기도 하거니와, 여기서 손해 배상을 하라고 말한다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것을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으니까.
서로 간의 이해타산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음을 눈치채자, 일부러 거드름 어린 미소를 머금은 흑룡문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높인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피차 실력을 확인하는 자리였을 뿐이니, 쓸데없이 서로 간에 배상 문제를 논할 이유가 없지.”
“크으……. 호쾌하다. 호쾌해. 마음에 들어! 무인 맞네!”
……박수까지 치며 감탄하는 상대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흑룡문주는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어쨌거나 이 정도면 완전히 체면을 구기는 일은 막았다고 봐야 할 테니까.
“크흠……. 자, 그러면 우리는 이만 가지. 모두 돌아……!”
그렇게 흑룡문주가 막 사무현에게서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쓰윽.
“가…… 흐엇!”
흡사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막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던 흑룡문주의 몸이 그대로 굳어진다.
그리고 곧이어 그의 앞에서 맑은 사내의 웃음이 흘러나온다.
“하하하, 뭘 그리 놀라나? 내가 이곳에 올 줄 몰랐던 것도 아닐 텐데.”
“채…… 채주님……. 대, 대체 언제…….”
언제부터였을까?
등을 돌리기 무섭게 그의 앞에 나타난 붉은 무복의 사내.
하지만 그의 무복에는, 흑룡문주와는 달리 용이 아닌 커다란 수(水) 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이런…….”
“저자는……!”
외곽에 빙 둘러 그들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린다.
그러고는 혹여나 휘말릴세라 다급히 흩어져 멀찍이 거리를 더 벌린다.
심지어 그중 몇몇은 그대로 자리를 이탈해 도망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내의 등장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지만, 정작 뒷짐을 지고 서서 흑룡문주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의 얼굴은 태연하기 그지없다.
“이런……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언가 좀 허전하군. 예의는 그새 어디로 가져다 버린 건가?”
쿵!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대로 바닥에 부복한 흑룡문주가 엎드린 채 목소리를 높인다.
“흑룡문주 마철영이! 적어채주(赤漁砦主)를 뵈옵니다!”
“으흠…….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이라 썩 유쾌하진 않군.”
흑룡문주의 예를 받으며 조용히 자신의 턱 끝을 쓸어 보이는 사내. 적어채주.
호리호리한 체형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의 등 뒤에는 사무현의 천마도 못지않은 태도가 사선으로 매여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히죽 웃어 보인 적어채주가, 바닥에 엎드린 흑룡문주의 머리에 한쪽 발을 올려놓는다.
쓰윽.
움찔!
실로 굴욕적인 상황이었지만, 도리어 더더욱 공포에 질린 흑룡문주가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한다.
“채주…… 저, 저는 정말…….”
“철영아.”
“……!”
그를 부르는 적어채주의 어투가 달라지자, 거칠었던 흑룡문주의 숨소리가 멎는다.
“내가 오 년 전에 흑룡문을 너한테 맡기면서 뭐라고 했었지?”
“그…… 것이…….”
“내가 만든 흑룡문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고 했지. 힘든 일이 있으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누구에게도 절대 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고. 그렇지?”
자상하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부드럽게 말을 잇는 적어채주.
하지만 바짝 긴장한 흑룡문주의 호흡은 좀처럼 다시 내쉬어질 줄 모른다.
그리고…….
콰득.
“……커헉!”
흑룡문주의 머리를 누르고 있던 적어채주의 발에 무게감이 실리기 시작한다.
“그동안 나는 너를 철석같이 믿었단다. 설마 다른 녀석도 아닌 네가 나를 실망시킬 리는 없으니까. 이 의미를 아니?”
“크으윽……. 채…… 채주! 아니, 무, 문주(門主)님! 제, 제가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쓰윽.
“아가리가 찢어져서 죽고 싶은 게 아니면 당장 그 입 다물렴.”
대체 어느새 뽑아 든 것인지, 등 뒤에 있던 그의 도신 끝이 흑룡문주의 눈앞에 놓여있다.
그러는 사이 흑룡문주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그의 무게감은 점점 더해 가고 있었다.
“큽…… 커억……!”
새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검푸른 빛을 띠어 가는 흑룡문주의 얼굴.
하지만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적어채주의 얼굴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나는 너를 믿었단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너는 잘 알잖니? 내 명을 어기는 놈이 어떻게 되는지.”
“……!”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말이야.”
명백한 살기(殺氣)가 느껴지는 적어채주의 음성.
이에 흑룡문주는 생각했다.
어차피 죽는 것이라면, 마지막 순간 발악이라도 해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지만 흑룡문주는 이내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자신이 허튼 저항을 하면, 팔과 다리를 잘라 차라리 죽여 달라 애원하게 만들 인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차라리 이렇게 깔끔하게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을 이겨 내고 있던 그때였다.
부웅.
허공을 가르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들은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의 머리를 짓밟고 있던 압력과 무게감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 이게 무슨……?’
당황한 흑룡문주가 슬며시 고개를 들자, 어느새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무현의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염병, 내가 이걸 왜 끼어들었지?’
당장 눈앞에서 죽게 생긴 인간을 보아 충동적으로 움직이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괜한 일에 말려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저것 보라! 한눈에 보기에도 살기등등한 기세를 풍기는 인간이, 사무현을 향해 섬뜩한 미소를 머금고 있지 않은가?
‘에이, 진짜 귀찮게 됐네.’
자고로 미친놈이랑은 함부로 엮이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하지만, 아무리 미친놈이라고 하더라도 수하의 머리통을 발로 밟아 죽이려 한 것은 너무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도 그냥 내버려 두었더라면 아마도 밤새 꿈자리가 흉흉했을 것이다.
물론…… 그래 봐야 천마 새끼랑 싸우는 꿈이겠지만.
“……네놈은 뭐냐?”
복잡한 심사가 담긴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사무현을 향해, 적어채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뭔데 흑룡문주를 돕는 거냐?”
“크흠……. 미안하게 됐네요, 딱히 끼어들려고 끼어든 건 아니었는데.”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그의 시선을 피하던 사무현이, 이윽고 담담한 얼굴로 적어채주를 바라본다.
“아무튼 끼어든 김에 조금만 더 끼어들게요. 대충 봐도 이쪽이 그쪽 부하 같은데,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러는 거 아니에요. 마교도 안 그러겠네.”
“흐음……. 충고는 고맙지만, 그건 이쪽에서 알아서 할 일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무현의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어 보이며 적어채주가 대답을 이어간다.
“보아하니 그쪽도 사파 같은데, 하면 집단마다 고유의 방식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지 않나?”
“뭐…… 그거야 그렇지만…….”
적어채주의 말에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기던 사무현이, 이윽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을 잇는다.
“아무튼 적어도 그럼 사람들 안 보는데 가서 하세요. 잠깐이긴 해도 말 섞은 사람이 저 때문에 죽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요.”
“아……. 그래. 그렇게 말하니 납득이 되는군.”
감히 네까짓 게 뭔데 설치느냐고 나올 줄 알았던 사무현의 예상과는 달리, 그럴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적어채주가 동의를 표한다.
그런 그의 반응에 사무현이 내심 놀라고 있던 순간…….
스팟!
사무현이 고개를 휙 뒤로 젖히는가 싶더니, 머리카락의 일부가 잘려 나가 나풀나풀 허공을 맴돌고 있다.
기습적으로 휘둘러진 쾌도(快刀).
도기(刀氣)가 아닌 무형의 도풍(刀風)이 조금 전까지 사무현의 얼굴이 있던 자리를 베어 냈다.
“이런…… 왜 굳이 피했나?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을 수 있도록 내 직접 도와주려 했는데.”
“……이거 진짜 미친 새끼네?”
분명히 자신의 눈을 노린 공격이었다.
한순간 눈썹을 꿈틀한 사무현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등 뒤의 천마도로 오른손을 뻗었다.
쓰윽.
휘리릭 휘릭.
“……오호.”
사무현이 도의 손잡이를 움켜쥠과 동시에 도신을 감싸고 있던 붕대가 잘려 나가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적어채주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흐른다.
“이거 놀랍군. 추정되는 나이대에 비해 썩 쓸 만한 솜씨구나.”
“쓸 만한 솜씨?”
적어채주의 말에 피식 실소를 흘린 사무현이, 발아래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흑룡문주를 향해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이봐, 흑룡 아저씨.”
“예…… 예?”
“아저씨는 저리 빠져 있어. 뒈지기 싫으면.”
삶에 희망을 가지게 만드는 사무현의 한 마디에, 흑룡문주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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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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