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8
018화
소주천을 마친 후, 사무현은 꼬박 보름 동안 외부 출입을 멈추고 육체의 회복에 전념했다.
몸 안의 불순물을 지나치게 많이 쏟아내는 과정에서 생겨난 육체의 피로를 채운다는 것이 그 표면적인 이유였는데, 사실 말이 회복이지 대부분의 시간은 심법을 운용하는 데 사용되었다.
‘구태여 연공실에 가서만 수련을 해야 한다는 편견은 버려라. 수하들에게 한동안 누구의 출입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심법 수련과 육체의 회복에만 전념하면 되지 않느냐?’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났는데, 말 하나는 기깔 나게 잘한다.
아무튼, 육체의 회복을 근거로 한 본의 아닌 폐관 수련(?)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보름이 지난 후 사무현의 혈색은 이전보다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몸 안에 넘치는 힘은 스스로도 주체가 안 되어 어쩔 줄을 모를 지경이었으니까.
그렇게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심법 수련에만 할애하는 한편, 육체가 숙면을 취하는 동안에는 천마와 또 다른 수련이 계속되었다.
***
파바밧!
사방이 암흑인 어두운 이공간.
오직 서로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 있는 이곳에서, 오른손에 도를 치켜든 사무현이 천마를 향해 내달린다.
“하앗!”
“흠.”
쾅!
천마를 향해 휘두른 사무현의 거친 일 도를, 천마의 왼손에 쥐어진 태도가 부드럽게 가로막았다.
도신끼리 맞부딪친 짧은 대치.
이에 슬쩍 팔목을 비틀어 미세하게 공간을 만든 천마가 그대로 힘을 실어 사무현의 도를 후려친다.
쩡!
“크읍……!”
작은 공간에서 휘둘러진 일 도(一刀)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거력에, 사무현의 몸이 석 장 가까이 뒤쪽으로 밀려났다.
둘 사이에 거리가 멀어지자, 왼손에 들린 천마의 묵색 태도가 허공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낸다.
“야야……! 그건 반칙……!”
쩌저정!
천마의 일 도와 함께 날아든 무형의 기운에, 사무현의 몸이 또다시 석 장 가까이를 날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크헉! 너…… 이 새끼……!”
“흐음……. 본좌가 실수를 했구나.”
대련에서 쓰지 않기로 약속했던 도기(刀氣)를 사용하다니……!
하지만 태평하게 뒷머리나 긁적이며 딴청을 부리는 모양새가 저언혀 미안해 보이지를 않는다.
“실수? 실수 두 번 하면 사람 잡겠네! 그게 어딜 봐서 실수야!”
사무현이 두 눈을 희번덕이며 몸을 일으키자, 천마가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변명을 흘렸다.
“오해하지 마라. 이것 역시 다 수련의 연장선이니.”
“뭐? 뭐의 연장선?”
“살초를 쓰지 않기로 한 비무에서 갑자기 살초를 사용하거나, 예상치 못한 친우가 등 뒤에서 너를 찌르거나……. 무림이란 그런 곳이다. 언제나 네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적을 맞을 수는 없다. 적은 언제나, 네가 예상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아하, 그래서 지금 내게 그것을 가르치려 하셨다?”
“바로 그것이다. 이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해도, 네가 죽거나 치명상을 당할 일은 없으니까.”
오호라, 이거 꽤나 설득력 있는 말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를 실전을 경험하게 해 주기 위해, 부득이하게도 사용하지 않기로 했던 기술까지 써 가며 궁지로 몰다니.
이거 누가 들으면 참 스승 나신 줄 알겠네!
“지금 이게 어디서 말장난을 치지? 네가 네 입으로 실수라고 말해 놓고, 순식간에 말을 바꾸면 믿어 줄 것 같았냐?”
“……본좌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
허허……. 허허……. 세상에.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뜻인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뻔뻔하니, 몰아쳐야 할 순간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사무현의 모습에, 헛기침을 한 번 흘리며 천마가 말을 꺼낸다.
“크흠……. 아무튼, 우수도(右手刀)에 맞춘 천마도법의 초식들이 슬슬 손에 익은 것 같구나. 애초에 좌수도법(左手刀)에 맞게 만들어진 초식들이라, 변형이 잘될지 자신은 없었거늘.”
“음……. 확실히 왼손보다는 오른손이 쓰기 편하네.”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마의 왼손에 들린 태도를 바라보는 사무현.
처음 천마가 전수하려던 천마도법은, 좌수(左手)로 펼치는 도법이었다.
하지만 오른손잡이인 사무현에게 좌수로 펼쳐지는 초식들을 익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얼마 남지 않은 수련 시간을 고려해 천마는 천마도법을 우수(右手)에 맞게 뜯어고치는 작업을 해내야 했다.
“이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도법까지 뜯어고친 본좌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게 하지 않으려면, 한시도 게으름을 부려선 안 될 거다.”
“염려 마라. 죽기 싫어서라도 죽을 각오로 하고 있으니까.”
“마음가짐은 좋구나. 하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눈을 뜨면 곧장 심법을 수련하도록.”
……뭐랄까.
자는 시간, 일어나서 생활하는 시간 하나하나를 통제받는 이 기분.
이건 거의…… 사육인데?
“다 네놈 좋으라고 하는 일이다. 이게 어디 본좌가 좋으라고 시키는 것이겠느냐? 먼 훗날 돌아보면, 아하, 이래서 나한테 이런 걸 시켰구나…… 하면서 나한테 도리어 고마워하게 될 거다.”
“…….”
사육보다 육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기분 탓일 것이다.
……아마도.
***
초대 천마와의 공식적인 대결이 한 달 안쪽으로 좁혀졌다.
그동안 낮에는 심법, 밤에는 천마와의 대련을 이어 가며 사무현은 남들보다 배는 바쁜 일상을 소화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이가 돌연 사무현을 찾았다.
쩝쩝, 으적으적.
“저…… 칠 대 천마님, 드릴 말씀이…….”
“……잠시만.”
후루룩후루룩.
꿀꺽.
“후우……. 오늘도 잘 먹었네. 뭔데?”
식사를 마친 후 시원하게 물 한 잔을 들이켠 사무현이 배를 두드리며 묻자, 이제는 그런 그의 모습에 익숙해진 시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화상장로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화상장로……? 내가 한동안 방문도 불허한다고 했을 텐데.”
“예, 그렇게 전했습니다만…… 일전에 드린 말씀에 관련하여, 긴급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일전에 했던 말이라면…….’
……아!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그 천마도인지 뭔지를 가져가 달라고 부탁했었지?
그게 그렇게 긴급한 사안인가?
“흐음……. 뭐, 그 문제라면 대충 알겠네. 밖에서 기다리라고 해라. 내가 직접 나갈 테니.”
“알겠습니다.”
사무현의 말에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인 시비가, 식사를 마치고 남은 음식들을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방 안이 말끔하게 비워지자, 홀로 남은 사무현이 낮은 음성으로 천마를 부른다.
“야야, 천마. 좀 나와 봐라.”
모습도 형상화하지 않은 채, 전음으로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천마.
최근 낮 시간의 대부분은 심법 수련으로만 할애하고 있었기에, 천마 또한 구태여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도 그럴 수 있을까?
“나와 봐. 밖으로 나갈 일이 생겼다.”
“……그래? 천마도를 가지러 가는데, 안 가겠다 이거지?”
“천마도라 했느냐?”
와 씨, 반응 속도 보소?
대체 언제 튀어나왔는지, 바로 옆에서 들려온 천마의 음성에 한순간 까무라칠 뻔했다.
“인기척 좀 내고 나타나라!”
“본좌는 귀신이라, 목소리가 곧 인기척이니라.”
그래, 너 잘났다.
“뭐……. 아무튼 천마도인지 뭔지를 가지러 갈 거야. 그게 네 신물이었다며? 확인은 같이 해 봐야지.”
“그런 것이라면 안 갈 이유가 없지. 어서 가도록 하자.”
어느새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현보다도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기는 천마.
언뜻 드러내지 않는 듯 보이지만, 평소보다 한껏 들떠 있는 그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사무현이 아니다.
‘자식, 좋긴 어지간히 좋은가 보네.’
다시 태어나도 사람 죽이는 데 한평생을 쓸 천하의 몹쓸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무기를 보러 가는 것에 저리 좋아하는 것을 보면 천생 무인은 맞는 모양이다.
‘좋아하는 걸 보니 또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느새 저 빌어먹을 놈이랑 미운 정이라도 든 것일……?
……이런.
하마터면 스치듯 한 상념으로나마 해선 안 될 소리를 내뱉을 뻔했다.
‘어우 씨, 내가 무슨 생각을……. 살인마가 자기 칼 아끼는 거랑 무인이 자기 칼 아끼는 게 같아?’
하마터면, 역사에 길이 남을 범죄자에 공감하는 최악의 인간이 될 뻔했다.
순간적으로 든 오한에 몸을 한 번 가볍게 떨며, 사무현은 천마의 뒤를 따라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
저벅저벅.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불규칙하면서도 가벼운 발걸음.
그런 사무현의 발걸음을 은연중 주시하며, 그를 안내하는 화상장로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깃들었다.
‘확실히 이상하군.’
저건 고수들 특유의, 언제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가벼운 발걸음이 아니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편안하게 내뻗는 발걸음.
물론 이것만으로 상대의 무위를 폄하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분명 의구심이 깃드는 부분이긴 하다.
발걸음 같은 것은 일종의 습관이라, 고수들은 무의식중에 걷는 발걸음에서부터 자신의 무위를 드러내곤 하니까.
‘설마 정말로……?’
반신반의한 눈으로 사무현의 뒤를 쫓으며, 화상장로는 이틀 전 태상장로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겐가? 내가 분명 초대 천마님과의 약속 전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하지 않았는가!’
‘그, 그래도 그분께서 직접 오신다고 했는데 어찌 또다시 독촉을…….’
‘만일 노여워하신다면 공사가 긴급해서 그리하였다고 둘러대게. 아무튼 이 부분은, 그날이 오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일이네.’
‘굳이…… 그럴 것이 있습니까? 만일 가짜였다면 어차피 그날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텐데요.’
‘허허…… 자네, 생각보다 보는 시야가 좁군. 만일 그가 칠 대 천마를 흉내 내는 잡것이었다면, 그가 죽은 후 초대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
‘석 달이라는 시간을, 스스로 모두에게 천마임을 증명하시려 내어 주셨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실수로 만들어진 잡것의 수작질이었다면, 그 분노는 자연히 이 모든 실수를 만들어 낸 우리에게로 향할 것이야.’
처음에는 다소 과하다고 생각했던 태상장로의 걱정.
하지만, 가만히 곱씹어 보면 그의 말도 분명 일리가 있다.
초대 천마의 성정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지금껏 보아 온 바로는 모든 인간을 오직 쓸모에 의해 판가름하고 있다.
만일 초대 천마의 눈에 ‘쓸모없고 무능력한 수하’로 낙인찍힌다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어도 그리 이상한 전개가 아니리라.
그렇게 화상장로가 이런저런 추측을 세우며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어느덧 그들은 목적지에 다다랐다.
“멈추시오! 신분을…….”
“장로화상이다, 칠 대 천마를 뫼시고 천마도를 회수하러 왔다.”
화상장로가 신분을 밝히자, 거대한 철문 앞을 막아서고 있던 흑의 무사들 중 하나가 그대로 바닥에 부복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쿵.
“칠 대 천마를 뵈옵니다!”
“칠 대 천마를 뵈옵니다!”
흑의 무사 하나의 부복과 함께, 그의 뒤에 서 있던 십여 명의 무사들이 하나같이 부복하며 큰 소리로 예를 갖추었다.
이제는 다소 익숙한 저들의 예법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현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명을 내린다.
“문을 열어라.”
“존명!”
벌컥.
“흐음…….”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비릿한 철 냄새가 섞인 퀴퀴한 냄새가 안쪽에서부터 퍼져 나왔다.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당시의 냄새.
이에 사무현이,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에 힘을 주며 두 눈을 가늘게 뜬다.
“진정해라. 보는 눈이 많다.”
사무현의 상태를 짐작한 천마가 한마디 경고를 흘리자, 보일 듯 말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주먹에 힘을 풀고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지.”
“예.”
저벅저벅.
표정을 굳힌 사무현의 뒤를 따라,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발걸음을 옮기는 화상장로.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잠시 후 그들의 등 뒤에서 육중한 철문이 닫혔다.
쿵.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음…….”
철문이 닫치며 빛이 사라지자, 끝을 모를 만큼 긴 통로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야광석들이 빛을 발했다.
그럭저럭 시야가 확보된 좁은 길을 앞장서서 걷는 화상장로.
그의 뒤를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이윽고 벽면의 한쪽에 육중한 철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은 십삼 대 천마님의 의식이 행해진 장소입니다. 이쪽으로…….”
저벅저벅.
화상장로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더 들어서자, 또다시 한쪽 벽면에 육중한 철문이 나타났다.
“이곳입니다.”
끼이이익.
벌컥.
화상장로가 문을 열자, 잠시 후 사무현의 기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널찍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 여기저기 남아 있는, 채 사라지지 않은 핏자국.
밀폐된 공간 특유의 갑갑하고 무거운 공기와 코끝을 아릿하게 만드는 쇠 비린내.
최대한 태연한 얼굴을 유지하며 방 안에 들어섰으나, 과거의 끔찍했던 그 기억이 떠오르자 사무현의 호흡이 미세하게 가빠지기 시작한다.
“진정하고 호흡과 시선에 신경 써라. 저기 저게 천마도다.”
꾸욱.
천마의 말에 입술을 한 번 꾹 깨물며, 천천히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응시하는 사무현.
한때 그가 결박되어 있던 의자 앞에는, 스치듯이 보았던 거대한 묵색 태도가 박혀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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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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