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나, 나를…… 도와주겠다는 말이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 흑룡문주.
그럴 수밖에.
자신의 수하라고 해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버리는 것이 사파의 섭리인데, 오늘 처음 본 이가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것도, 남경은 물론 이 일대에서 악명(惡名)이 높기로 유명한 적어채주를 상대로!
감격과 혼란에 빠진 흑룡문주를 내려다보며, 사무현이 빙긋 미소를 머금는다.
“뭐래? 싸우는 데 방해되니까, 같이 뒈지기 싫으면 비키시라고.”
“…….”
“왜, 같이 베어 드려?”
“…….”
사무현의 물음에 조용히 몸을 일으킨 흑룡문주가 땅바닥만 바라보며 한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던 적어채주가, 이내 혀를 차며 한 마디를 던진다.
“쯧쯧……. 목숨이 아까워서 이성을 잃었구나, 철영아. 왜 그런 선택을 했니?”
“하면, 순순히 벌레처럼 밟혀 죽으란 말이오?”
“음?”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흑룡문주의 반문에, 적어채주가 재밌다는 듯 미소를 머금는다.
“말투가 바뀌었구나. 어차피 죽을 거 그냥 막 나가 보겠다는 거니?”
“알아서 해석하시오. 당신 같은 인간이 설명한다고 알아듣기나 하겠소?”
“하아…….”
흑룡문주의 물음에, 긴 한숨을 내쉰 적어채주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그리고 다시 떠진 그의 눈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살의(殺意)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오래도록 남경을 떠나 있었나 보다. 그래도 틈틈이 방문한다고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날 기억하기 충분치 않았나 보구나?”
“…….”
“나는 네 팔과 다리를 먼저 자를 거란다. 자결을 할 수 없도록 이를 모조리 뽑아 버리고, 스스로 죽여 달라 애원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들 거란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섬뜩한 말을 이어 가는 적어채주.
이에 한순간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지만 흑룡문주는 곧 덤덤히 입을 열었다.
“……알고 있소.”
“알아? 그걸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했다고?”
“후우……. 이보시오, 적어채주.”
“…….”
“나는 벌레가 아니오.”
“……오호?”
“살 수 있는 방도가 없다면 깔끔히 죽는 것이 낫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사는 길을 택할 것이라는 말이외다.”
어느새 몸을 완전히 그에게로 돌리고 선 흑룡문주의 눈빛에 비장함이 어리자, 적어채주의 눈에도 짧은 이채가 스친다.
“살 수 있다라……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니?”
“그건 해 봐야 아는 일이지. 하지만 너무 자신만만해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시종일관 여유로워 보이는 적어채주를 바라보며 흑룡문주가 경고한다.
“아무리 당신이 강하다 하나 이곳에서는 결국 혼자요. 그에 반해 여기는, 뒤를 받칠 수 있는 사람만 수백이지.”
“하하, 설마 그 수백이,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흑룡문 아이들을 말하는 거니?”
“우리 힘만으로 당신을 위협하는 것은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지금 당신이 공격한 자의 수하들은 잊은 것이오?”
“…….”
“나와 흑룡문 전체를 어렵지 않게 제압한 전력이오. 아무리 당신이 강해도 여기 있는 모두를 베고 살아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을 터.”
나름대로 확신에 찬 흑룡문주의 대답에, 적어채주가 한 손으로 턱 끝을 매만지며 미소를 머금는다.
“흐음…… 그럴싸해. 확실히, 전체가 다 덤빈다면 위험할 수 있겠어.”
“잘 알겠소? 하면 순순히 물러…….”
“그런데.”
한 손을 들어 흑룡문주의 말을 끊어 낸 적어채주의 입가에, 어느새 참지 못할 조소가 머금어진다.
“설마 너는, 내가 이곳 남경에 혼자 발을 들였을 거라 생각하니?”
“……!”
“하하하하, 이거 재미있구나. 어찌 그렇게 생각이 짧니? 철영아.”
“서…… 설마…….”
스스슥.
그르륵, 그르륵.
적어채주의 웃음과 함께, 대중들 사이를 헤치고 거대한 체형의 외눈박이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눈에 보기에도 육중해 보이는 쇠사슬과 그 끝에 달린 철퇴를 바닥에 끌면서.
그르륵. 그르르륵.
“거우산악(巨牛山惡)……!”
흑룡문주가 경악 어린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그때, 거우산악이라 불린 사내의 반대편에서 또 다른 사내의 유들유들한 음성이 들려온다.
“비켜라, 비켜. 막는 놈들은 다 찔러 버린다.”
저벅저벅.
거우산악의 반대편 인파를 가르고 느긋하게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한 명의 사내.
턱 끝이 날카롭게 튀어나온 마른 체구의 사내는, 얇디얇은 세검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마, 맙소사……. 귀곡혈검(鬼曲血劍)까지……!”
맥이 탁 하고 풀렸는지 다리까지 휘청하며 절망적인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흑룡문주.
거우산악과 귀곡혈검.
이들은 적어채주의 두 팔로 불리는 이들로, 하나 같이 절정에 오른 살인귀들이었다.
소문대로라면 아마 저 둘만으로도, 흑룡문 전체를 괴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저들 둘이 뒤를 받치고 적어채주가 앞장을 선다면……!’
저들이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저 자가 얼마나 강한지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채주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빠르게 눈을 굴리며 뒷걸음질을 치는 흑룡문주를 향해, 적어채주가 빙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뭐 하니? 어서 도망치렴, 철영아.”
“……!”
“너를 찾아 죽이는 재미도 꽤나 쏠쏠할 것 같구나.”
그 말과 함께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리는 적어채주.
이에 무심코 등을 돌려 도망치려던 흑룡문주의 눈에, 자신을 바라보는 사무현의 얼굴이 들어온다.
“……!”
그를 나무라는 눈빛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도 아니다.
그저 담담함.
어떤 선택이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 그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꾸욱.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면부지의 자신을 구해 주려 나선 그에게 고마움을 넘어선 감사의 마음마저 들었다.
한데 지금은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그에 맞서 맹렬하게 맞부딪치고 있다.
그렇게 홀로 고뇌하던 끝에 흑룡문주에게 찾아든 것은 다름 아닌 허탈함이었다.
‘……이래 놓고 벌레가 아니라고?’
감정이고 뭐고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만 치다 밟혀 죽을 운명인 자신이?
‘아니야.’
주먹을 꽉 쥐며 생각을 고쳐먹은 흑룡문주가, 곧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적어채주를 노려본다.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벌레처럼 최후를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챙!
생각을 마치자, 흑룡문주가 허리춤의 도를 뽑아 들어 적어채주의 옆에 선 귀곡혈검을 향해 겨눈다.
“……귀곡혈검은 나와 흑룡문이 맡겠소.”
결단을 마친 흑룡문주의 비장한 음성에 사무현이 의외라는 듯 입을 열어 묻는다.
“흐음……. 되겠어? 저쪽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쉽진 않을 것 같지만, 우리로 인해 시작된 싸움이니 노력은 해 봐야 하지 않겠소?”
“…….”
“하지만……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 같소. 나머지는 염치 불고하고 부탁해 보겠소이다.”
거기까지 말을 마친 흑룡문주가, 한쪽에 서서 그들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던 흑룡문도들에게 소리친다.
“모두 무기를 뽑아 들어라! 흑룡문이 귀곡혈검을 상대한다!”
“……아.”
흑룡문주의 한 마디에, 흑룡문도들이 서로 간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거리를 벌린다.
일부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고, 일부는 망설이듯 주춤주춤 흑룡문주에게 합류한다.
어느 쪽에 더 승산이 있는지를 꽤나 치열하게 고심하고 있는 것이리라.
분열하는 그들의 모습에, 당황한 흑룡문주가 더 크게 목소리를 높인다.
“도망치지 마라! 이건 우리 흑룡문의 싸움이다!
“빌어먹을……! 누구더러 개죽음을 당하라고!”
“난 빠진다! 이건 흑룡문이 아니라 흑룡문주의 싸움이야!”
파밧! 파바밧!
“머, 멈춰라!”
흑룡문주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갈등하던 흑룡문 무사들의 일부가 경공술까지 펼치며 전장을 이탈한다.
그러자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을 치던 수십의 무사들도 썰물처럼 우르르 진형을 무너뜨린다.
“이…… 이런……!”
낙담하는 얼굴로 헛숨을 들이시는 흑룡문주.
거의 백여 명에 근접했던 흑룡문 무사들 중, 전장에 남은 이들은 허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서른 명 정도가 전부다.
‘어, 어찌 이런……!’
물론 흑룡문주도 전투가 시작되면 이탈하는 이들이 나올 것이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전력의 오 할 이상이 대놓고 도망쳐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꽈악.
하지만 절망하는 것도 잠시.
어차피 이제 와 도망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흑룡문주가 천천히 마음을 다잡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아니, 나아가려 했다.
쓰윽.
“그냥 거기 있어요.”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오?”
“어차피 그 전력으로 덤벼 봐야 죽기밖에 더해요?”
“…….”
너무도 직설적인 사무현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무는 흑룡문주.
그런 그를 향해 사무현이 퉁명스레 말을 덧붙인다.
“기껏 살려 줬는데, 죽어 버리면 내가 뭐가 돼요?”
거기까지 말을 마친 사무현이 느긋하게 천마도를 들어 올려 적어채주를 겨눈다.
“야.”
“음?”
“내가 어지간하면 제압하는 정도에서 멈추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너는 안 되겠다.”
“흐음……. 그래? 그러면 어디, 죽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나?”
“팔 하나.”
“…….”
“죽이는 건 너무 갔고, 팔 하나 정도 잘라 줄게. 그러면 더 이상 약한 애들 괴롭힌다고 설치지는 못하겠지.”
사무현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린 적어채주가 슬쩍 자신의 아랫입술을 훑어 낸다.
살심이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그 특유의 습관이었다.
“……정말 기대되는군.”
물론 기대하는 것이 자신의 패배는 아니지만 말이다.
“막휘, 살암, 일어나라.”
사무현의 말에 아직까지 머리를 땅에 박고 있던 살암과 막휘가 몸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뭘 해야 할지 말 안 해도 알고 있다는 듯, 두 눈을 반짝이며 거우산악과 귀곡혈검이라는 이들을 응시한다.
“둘이 하나씩 나눠라.”
“내가 귀곡혈검을 맞지.”
사무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살암이 입을 열었다.
“세검(細劍)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말이야.”
악의 없는 새하얀 미소를 머금는 살암의 모습에 흑룡문주가 몸을 움찔한다.
살암이 한 명을 고르자, 막휘도 더 생각할 것 없다는 듯 양어깨를 풀며 거우산악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럼 내가 저쪽이군.”
“그전에 잠깐.”
한쪽 손을 들어 올려 막휘의 행동을 멈춘 살암이 사무현에게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막휘에게는 한 명 정도 더 붙여 주는 게 어떻겠나? 익패 정도면 어떨까 싶은데…….”
“흐음……. 한 명이라…….”
살암의 말뜻을 이해하고 생각에 잠기는 듯하던 사무현이, 막휘에게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어떻게 할래? 네가 필요하다면 붙여 주고.”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고집부리지 마라.”
막휘의 말에 살암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끼어든다.
“상대는 천장쌍수(天長雙獸)다.”
“천장쌍수? 쟤들이?”
살암의 말에 놀란 막휘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저들을 바라본다.
“아까는 거우산악이라고…….”
“거우산악과 귀곡혈검. 그건 천장쌍수가 장강수로채(長江水路寨)에 들어가며 얻게 된 새로운 별호다.”
“……!”
장강수로채.
혹은 장강수로십팔채(長江水路十八寨)라고도 불린다.
중원을 남과 북으로 나누는 장강을 지배하는 수적 집단으로, 녹림과 함께 사파의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거론되는 세력이기도 하다.
“장강수로채라…….”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리는 막휘의 음성에서 분명한 호승심이 전해진다.
“……딱 좋은 상대네.”
파밧!
그 말과 함께 더 말릴 틈도 없이 거우산악 쪽으로 몸을 날리는 막휘.
이에 짧게 혀를 찬 살암도 슬쩍 고개를 돌려 청사에게 말을 건넨다.
“……녀석이 위험하다 싶으면 지체 없이 도와라.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꼴사납게 죽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존명.”
청사의 대답을 끝으로, 살암도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겨 흥미롭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귀곡혈검에게로 다가간다.
“오래도 기다리게 하는군. 차라리 먼저 몸을 움직일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말이야.”
능글능글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꺼내는 귀곡혈검을 향해 살암이 도리어 조소를 머금는다.
“그래? 하면 그리 해 보지 그랬나?”
“……뭐라?”
“한 번에 백 명에 가까운 놈들과 싸우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강한 놈들을 먼저 제거하는 편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 아니었나?”
살암의 날카로운 지적에 귀곡혈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그리고 이내, 그의 두 눈에 짙은 살의가 번지기 시작한다.
“……그걸 알면서도 굳이 일대일로 싸워 보겠다고?”
“아, 이 기회에 나도 그럴싸한 별호 하나는 얻어야겠다 싶어서 말이다.”
“…….”
“한때 천장쌍수 중 하나였던 귀곡혈검을 베어 낸다면…… 적어도 체면을 세울만한 별호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스릉.
“……미래의 암천막주로서 말이다.”
그 말과 함께 부드럽게 검을 뽑아 드는 살암.
한편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귀곡혈검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미래의 암천막주……? 네놈 설마……!”
파밧!
귀곡혈검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자리를 박찬 살암이 그를 향해 접근해 일검을 휘두른다.
살암의 검신이 순식간에 귀곡혈검의 목선까지 날아들었지만, 기괴할 정도의 유연성으로 허리를 뒤로 젖힌 귀곡혈검이 살암의 검을 흘려 내며 세검을 그의 복부로 찔러 넣는다.
촤좍!
사락.
다급히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살암의 무복 옆구리가 세검에 의해 찢어진다.
하지만 귀곡혈검 역시, 앞 머리칼의 일부가 잘려 나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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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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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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