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문주라고 불린 형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크고 작은 형체들.
그 효과가 어느 정도는 있었는지, 크기를 잔뜩 부풀렸던 형체가 다소나마 진정된 음성으로 말을 잇는다.
어느새 문주라는 형체의 말에 따라, 모두가 의기투합을 다지고 있는 그때였다.
쓰윽.
난데없이 그들이 있던 별채의 천장을 통과해, 형체 하나가 그들의 중심에 떨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당황했는지 형체들 전체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한다.
장원에 귀신이 나온다고 하면, 보통 버티다 못해 도망을 치거나 제사를 지내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반응이다.
그런데 잠도 안 자고 귀신과 싸워 보겠다고 설치다가, 이제는 제 돈 주고 산 장원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이건 자기가 못 살면 귀신도 못 산다는 심보가 아닌가?
스스슥.
그 말과 함께, 문주라 불린 형체의 뒤를 따라 천장으로 빠져나가는 수십 명의 귀신들.
잠시 후 별채 안에는 또다시 적막만이 맴돌고 있었다.
***
“얼른 싹 다 나와! 지금 안 나오면 다 죽어어어!”
양손에 커다란 횃불을 밝혀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치는 사무현.
별채의 앞에 선 그의 행동을 지켜보며 사도관도들의 얼굴에 경악과 혼란의 빛이 떠올라 있다.
“아니…… 대표 형님은 갑자기 또 왜 저러시는 거야?”
“누가 뭐 이상한 소리라도 했나? 귀신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싹 다 태울 거면 여길 왜 돈 주고 산 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수군거리며 사무현의 괴이한 행동을 지켜보는 사도관도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천마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는다.
“본좌의 잘못이 아니다. 본좌는 분명 꾀어내라 말했다.”
저들에게 들릴 리 없는 변명을 하며 사무현에게 고개를 돌리는 천마.
대체 어떤 머리 구조를 가져야, 귀신들을 꾀어낼 방법으로 장원 전체를 불태우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어느새 천마의 시선이 별채의 옥상 위로 향한다.
‘이게 효과가 있다는 말이지.’
사무현이 정말로 장원을 태워 버릴까 걱정이 되었는지, 숨어 있던 귀신 놈들이 별채의 지붕 위에 올라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진짜 실행에 옮길 수도 놈이라는 것을 이미 저들도 알고 있는 것이리라.
한편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웠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보이지 않자, 사무현이 광기 어린 미소를 머금으며 별채로 다가간다.
저벅저벅.
“오호라, 안 나온다, 그거지? 좋아, 그럼 어디 별채부터 시작해서 장원이 싹 다 타도 안 나오는지 볼까?”
쓰윽.
따닥, 따닥.
막 별채의 지붕 위의 귀신들이 사무현의 만행을 지켜보며 경악성을 흘린다.
적당히 겁만 주려는 게 아닐까 했는데 진짜로 별채에 불을 놓고 있지 않은가?
사사사삭.
지붕 위에 모여 있던 흐릿한 형체의 귀신들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산개하며 흩어진다.
그러고는 곧이어, 마치 유성우처럼 일제히 사무현을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흐음……. 과연. 나름 영악한 선택을 했구나.”
귀신들의 속셈이 눈에 보인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린 천마가 좌수를 허공에 치켜든다.
그러자 그의 어느새, 그의 손에 쥐어진 흐릿한 형태의 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스스.
‘지금의 본좌에게는 이 정도가 한계이긴 하다만…….’
금방이라도 형체를 잃고 흐트러지려는 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만한 것들을 베어 내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부웅.
잠시 후 천마가 허공을 향해 일도를 휘두르자, 그의 기를 한껏 담은 도기(刀氣)가 사방으로 산개하며 유성처럼 날아드는 귀신들을 찢어발기기 시작한다.
“뭐, 뭐야!”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귀신들의 비명 소리에 사도관도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푸르른 하늘뿐.
천마의 도기에 찢겨 소멸하는 수많은 귀신들의 모습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퍼버버벅!
천마의 도기에서 살아남은 귀신들이, 별채에 불을 놓던 사무현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순식간에 허공에 있던 모든 귀신들이 사라지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천마가 유형화시켰던 도를 지워 내며 중얼거린다.
“쯧……. 생각보다 훨씬 형편없구나.”
기껏해야 서넛 정도가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겨우 절반 남짓한 숫자만 베어 버렸을 뿐이다.
더욱 강해진 봉혼술의 영향과 몸을 유형화시킨 상태에서 무리하게 도까지 만들어 낸 결과였다.
‘뭐, 사실…… 이렇게 베어 버릴 필요까지도 없었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천마가 고개를 돌리자, 횃불을 별채에 가져다 대고 있던 사무현의 몸이 그대로 뒤로 쓰러진다.
풀썩.
“혀, 형님!”
“대표 형님!”
허공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다가 사무현이 쓰러지자, 적지 않게 당황한 사도관도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그를 부축한다.
귀신들이 몸에 들어간 영향인지, 사무현은 의식을 잃고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런 선택을 하다니.’
다른 놈도 아니고 녀석의 몸에 빙의를 시도한 것은 저들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였다.
만약 저들이 노린 것이 막휘나 살암이었다면, 오히려 상황이 꽤나 골치 아픈 전개로 흘러갔을 것이다.
사무현의 성격상 귀신이 씌였다고 해도 그들을 냉정하게 공격할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들은 사무현의 몸에 들어가는 것을 택했고, 그 결과는 아마 지금쯤 온몸…… 아니, 온 영혼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구경이나 해 볼까?’
슬쩍 미소를 머금은 천마의 몸이 허공에서 흐릿해진다.
천마가 사라지는 사이, 사도관도들은 쓰러진 사무현의 몸을 안아 들고 본당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아니, 갑자기 이건 무슨 상황이야?”
어이가 없다는 듯한 사무현의 중얼거림.
천마가 귀신들을 학살하는 소리를 들으며 승리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세상이 어두워지더니 이곳에 도착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어둠뿐인 이곳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무현이 알고 있는 그곳인데…….
‘천마가 갑자기 날 이리 불렀나?’
의아한 듯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사무현의 앞으로 느닷없이 삼십여 명에 가까운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흐흐, 놈……! 드디어 이렇게 만나게 되었구나!”
“……얘들은 또 뭐야?”
당연히 천마 놈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것이 튀어나온 건, 일전에 장군귀로 알고 있던 혈마를 만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째 혈마 때와는 다르게 조금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 건 왜지?
멀뚱히 서서 심드렁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사무현의 모습에, 분개한 귀신들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높인다.
“그동안 잘도 까불었겠다!”
“감히 장원을 불태우려 하다니……! 오늘 네놈의 혼을 소멸시키고, 육체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이놈!”
“……아하.”
저들의 말을 들으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사무현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알겠네. 그러니까 너희들이, 내 장원에서 설치고 있는 귀신들이라는 말이지?”
“이노오오옴! 네 장원이라니! 그것은 우리의 장원이다!”
“감히 어디서 굴러온 돌 주제에 주인 행세를 하려 드느냐!”
사무현의 한 마디에 즉각 항의하고 나서는 이들.
이에 사무현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잇는다.
“아아, 그래, 알겠어. 그러니까, 내 장원의 주인이 지금 너희들이라는 말이네?”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칠십 년 전 우리가 이 장원을……!”
“그래서, 증서는?”
“……뭐라?”
“여기가 너희들 장원이라며, 증서 있으시냐고.”
“……어?”
사무현의 말에 할 말을 잃었는지, 저들 중 맨 앞에 나와 있던 거구의 사내가 두 눈을 끔뻑인다.
어안이 벙벙한 그 얼굴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사무현이, 천천히 허공에서 도를 만들어 낸다.
쓰윽.
“장원 증서도 없어, 하다못해 산 사람도 아니야. 자기들 집도 못 지키고 수십 년 전에 전멸한 것들이, 정당하게 돈 내고 증서 사서 들어온 사람한테 시비를 걸어? 뒈진 놈들이 또 뒈지고 싶어서?”
“이…… 이놈이……!”
“그 입 닥쳐!”
쿵!
사무현이 바닥을 힘껏 짓이기자, 우렁찬 파공성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저들의 기세를 억누른다.
“난! 내 걸 건드리는 놈들은 용서하지 않아아아!”
쾅!
말을 마친 사무현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저들에게 몸을 날리자, 한순간 당황하던 이들도 순식간에 진형을 갖춘다.
“저, 저 미친놈 죽여!”
“이야아아아!”
사무현의 몸 안으로 들어온 삼십여 명의 귀신들과 그 귀신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달려드는 사무현.
서로에게 정의가 있다고 믿고 있는 만큼, 이들은 어느 한쪽도 감히 물러섬이 없었다.
***
“어쩌지?”
“의원이라도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의원이 아니라 스님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벌써 반 시진 가까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무현을 내려다보며 걱정스레 수군거리는 사도관도들.
본당에 옮겨 그의 상태를 살폈지만, 맥도 정상이고 어디 하나 잘못된 곳이 없다.
귀신들도 보이는 족족 해치워 버리던 그가 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쓰러져 버렸다는 말인가?
‘설마 진짜 귀신한테 당하신 건 아니겠지?’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사무현을 살피고 있던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사무현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윽.
“어…… 어? 혀, 형님! 정신이 드십니까?”
“대표 형님이 깨어나셨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이것들이…… 조용히 안 해! 형님 말씀하시잖아!”
막휘의 외침에 소란이 잦아들자, 잠시 후 부스스하게 눈을 뜬 사무현이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 어디냐?”
“본당입니다, 형님.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응? 아…….”
그제야 지금껏 자신이 쓰러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무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뭐, 별일 아니야. 귀신 놈들이랑 한바탕하느라고.”
“아…… 그동안 너무 피곤하셔서……?”
사무현의 몸에 귀신들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막휘가 그의 뜻을 곡해하여 반문하자, 피식 실소를 흘린 사무현이 두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켠다.
“으음……. 글쎄? 아무튼 뭐, 속이 후련하긴 하네.”
“후우……. 다행입니다. 전 혹시나 별채를 불태우시다가 무슨 큰일이라도 당하신 줄 알고…….”
“큰일은 무슨.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한테.”
막휘의 말에 한 손을 휘저으며 대답한 사무현이, 문득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말을 꺼낸다.
“아…… 꽤 오래 힘썼더니 목마르네. 거기 누가 물 좀 가져와 봐라.”
“아, 예. 제가 다녀오겠…….”
“아니, 넌 앉아 있어.”
“예?”
사무현의 부탁에 몸을 일으키려다 멈춘 손익패가 그를 돌아보는 순간.
스스스스.
“……아?”
손익패를 포함한 사도관도들 모두는 일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 한쪽의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물이 든 도자기가, 갑자기 허공을 날아 사무현의 손바닥 위에 조심스레 안착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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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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