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꿀꺽 꿀꺽.
“……크으, 시원하네.”
벌컥벌컥 물을 들이 킨 사무현이 물병을 내려놓자, 그 모습을 어안이 벙벙한 듯 바라보던 막휘가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를 부른다.
“저…… 형님.”
“응?”
“조금 전 그거…… 격공섭물을 쓰신 겁니까?”
“뭐래? 고작 물 한잔 편히 마시겠다고 뭐 하러 무공을 써?”
퉁명스러운 사무현의 반문에 막휘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면…… 그…… 물병이 스스로 움직인 건……?”
“아, 이거?”
막휘의 물음에 피식 웃음을 흘린 사무현이 덤덤히 말을 잇는다.
“생각보다 착한 애들이더라고.”
“……예?”
“귀신들 말이야.”
“……아.”
……뭘까?
어쩐지 이 대화에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그의 머리가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만 걸까?
막휘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한쪽 벽에 서서 의아한 듯 이 상황을 지켜보던 적월이 반신반의한 듯 입을 열었다.
“설마…… 지금 귀신을 길들였다, 뭐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에이, 길을 들이긴? 쟤들이 뭐 짐승이에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한 손을 휘저으며 사무현이 반박하자, 그제야 자신의 상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은 적월이 환한 미소를 머금는다.
“역시 그렇지?”
“걔들을 길들인 게 아니라.”
“그래.”
“뒈져라 팼어요.”
“그래, 역시 그럴 줄……. 뭐어어?”
설마설마 아닐 것이라 믿었던 대답이 현실로 돌아오자 적월의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
“귀, 귀신을 팼다고?”
“뭘 그렇게 놀라요? 귀신 죽는 것도 몇 번 봤으면서.”
“그, 그건…… 그런데…….”
……뭐지?
여기서 놀라는 게 오히려 이상한건가?
아니 그래도, 퇴마의 일환으로 소멸시키는 것과 귀신을 사람 패듯 팼다는 건 좀 느낌이 다르지 않나?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적월이 주변을 둘러보자, 역시나 조금 전 그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도관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 역시 이게 정상이지!’
그렇게 적월이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그때, 살암이 다소 침착하게 사무현에게 질문을 이어 간다.
“잠깐. 역시 좀 이해가 안 가는데, 패고 싶다고 팰 수 있으면 왜 지금까지는 안 팼던 거냐?”
“지금까지는 쟤들이 숨어 다녔잖아. 이번에 별채를 불태우려니까, 아예 작정하고 달려들더라고.”
“그래서?”
“그래서는? 지금까지 시달렸던 거에 이자까지 쳐서 두들겨 팼지. 몇 놈은 진짜로 뒈졌고. 나머지는 제발 살려 달라고 싹싹 빌던데?”
“……허.”
사무현의 말에 어쩐지 안쓰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살암.
대체 어떻게 귀신을 팬 건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사무현이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아무리 귀신이라도 동정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가엾게도.’
차라리 깔끔하게 성불했다면 좋았을걸.
어쩌다 귀신이 되서 이승을 떠돌다가 저승사자보다도 더한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제 그놈들은 장원을 떠나는 거냐?”
“아, 우선은 그럴 필요 없어졌어.”
“……음?”
“별채 하나만 자기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내어 달래. 그러면 그 안에서만 쥐죽은 듯 살겠다고.”
“굳이? 그냥 내쫓아도 되는 거 아니냐?”
살암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자 사무현이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안 되지, 그럼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음?”
“그동안 내가 이 장원에서 힘들었던 게 얼만데, 여기서 그냥 보내 준다고?”
“…….”
“에이, 그럴 수는 없지. 하다못해 지금까지 저지른 최소한의 죗값은 치르고 가야 계산이 맞지 않겠어?”
“설마…… 그 죗값이라는 게…….”
조금 전 사무현의 명(命)에 의해 물병이 오간 것을 떠올린 살암이 반신반의하며 묻자, 사무현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백 년.”
“…….”
“앞으로 백 년간 별채에 머물면서, 내가 시키는 소일거리 좀 하기로 했어. 괜찮지?”
극악무도(極惡無道).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끼며 입을 다물고 마는 살암의 귓가로, 뒤이은 사무현의 음성이 들려온다.
“뭐하냐? 일 안 하고.”
사무현의 두 번째 음성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사무현의 옆에 놓여 있던 물그릇이 허공을 둥실둥실 떠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탁.
“좋아, 좋아, 내가 부를 때까지 별채에 가 있어.”
“…….”
“아, 혹시나 싶어서 말해 두는데, 허락 없이 별채 밖에 나왔다가 걸리면 아주 싹 다 뒈지는 거야.”
“…….”
“가 봐.”
스스스스.
사무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이 있는 방에 자연스레 내려앉아 있던 한기(寒氣)가 사라진다.
귀신들이 모두 이곳을 나갔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경악 어린 모두의 시선이 사무현에게 집중된다.
‘아니, 진짜 사람 맞나?’
‘세상에, 이젠 귀신들까지 꼬리를 내리네.’
‘이건 개방이 와서 소문내도 안 믿겠다.’
“낄낄낄, 그간 고생한 보람이 있네.”
모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 년간 부려 먹을 심부름꾼들이 생겼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사무현이었다.
***
남경에 위치한 흑룡문의 장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경 제일 세력이라고 불렸던 그곳에서, 다소 은밀한 만남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으로 전부 온 것이오?”
“……그런 것 같소이다.”
흑룡문주 마철영의 물음에, 자리에 앉은 이들 중 그와 가장 가까운 거리의 사내가 답했다.
널찍한 회의실에 마련 된 커다란 탁자와 스무 개의 좌석.
하지만 그곳을 채우고 있는 이는, 흑룡문주를 포함해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열다섯 문파에 사람을 보냈는데 찾아온 곳이 고작 넷이라…….’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한 저들의 심리에 흑룡문주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지금껏 그들의 뒤에 버티고 있던 적어채와 관계가 틀어졌으니, 더 이상 남경에서 흑룡문과 좋은 관계를 이어 갈 뜻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신경 쓰지 말자. 비단 저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니.’
사실상 흑룡문 내에서도 이미 상당한 이탈자가 나와 버린 상황이다.
사파에서 자신의 입지를 만드는 것은 오직 힘.
지금의 상황에서는 저들 넷이 그의 부름에 응해 준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흑룡문에서 여러분들을 뵙자 한 것은, 앞으로 남경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여러분의 뜻을 묻기 위함이오.”
“남경에서 벌어질 일들이요?”
흑룡문주의 물음에, 조금 전 대답했던 사내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다.
이 자리에 참석한 네 세력 중에서는 가장 큰 세력인, 구호단(九虎團)의 단주, 기응선(機應線)이었다.
“혹 그것이, 일전의 적어채주 일과 관련된 일입니까?”
“으음…….”
“흠…….”
다소 민감한 주제를 거리낌 없이 꺼내 든 구호단주의 물음에, 함께 자리를 착석하고 있던 이들이 낮은 침음성을 흘린다.
그들은 무너져가는 흑룡문에 비해서도 너무 보잘 것 없는 세력이었기에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지, 적어채와 흑룡문 중 어느 한쪽의 편에 서기 위해 온 이들이 아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읽어낸 흑룡문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신 분들의 뜻은 알고 있소. 흑룡문과 척을 지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그렇다고 적어채와 관련된 문제에서 흑룡문의 편에 서고 싶은 생각 역시 없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요.”
아홉 개의 큰 기루를 운영하고 있는, 반쯤은 장사치에 가까운 구호단주답게 그의 눈은 영민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적어채주의 두려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는 바로 흑룡문주 당신일 거요. 그들과 척을 진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에는 장강수로십팔채와도 척을 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이고.”
“물론, 옳은 말씀이오.”
“한데도 그대는 아직 이곳 남경에 있소. 내가 그대라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 들고 야반도주라도 했을 텐데 말이지. 그 말인 즉, 이 상황을 타개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처럼 보이오만…….”
노골적인 구호단주의 이야기에 흑룡문주가 미소를 머금는다.
역시,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그라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여다보고 싶을 것이라 생각했다.
위험 속에서 기회를 찾고, 다시 없을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 바로 장사치들 특유의 본능 아니던가?
“다른 이들은 몰라도 구호단주의 눈은 못 속이겠구려.”
“…….”
“……좋소. 이 자리에 있는 네 분은 흑룡문의 입장을 들어 볼 의향 정도는 있는 듯하니, 내 허심탄회하게 말하리다.”
목소리를 내리깔며 분위기를 잡은 흑룡문주가 이윽고 비장한 음성으로 말을 잇는다.
“흑룡문은 조만간, 흑풍도 사무현이 이끄는 세력의 휘하에 들어가려 하오.”
“……지금 뭐라 하셨소?”
흑룡문주의 선언에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반문하는 구호단주.
그를 포함한 다른 세 세력의 대표들 또한, 어안이 벙벙한 듯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고 있다.
“흑풍도 사무현 말이오.”
모두를 둘러보며 그의 이름을 강조한 흑룡문주가 다시 한번 힘을 주어 자신의 뜻을 전한다.
“현재 연무학관이 무기한 휴관을 발표하면서, 갈 곳이 없어진 사도관들을 이끌고 있는 후기지수요. 암천막의 멸문 당시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기도 하고, 적어채주의 오른팔을 날려 버린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
“그와 그가 이끄는 사도관도들 이라면 반드시 남경 제일 세력으로 우뚝 서게 될 거요. 적어채주와 거우산악, 귀곡혈검을 쓰러뜨렸을 정도니 실력은 의심할 나위가 없고, 우리가 부족한 머릿수와 기반을 받쳐 주기만 한다면 능히…….”
“미쳤군.”
벌떡.
흑룡문주의 말을 끊어 낸 구호단주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미간을 찌푸린다.
“실망이오, 흑룡문주. 당신 정도 되는 이가 그토록 사리 분별 못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진정하시오, 구호단주.”
“진정? 지금 진정이라 했소?”
흑룡문주의 말에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구호단주가 그대로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말을 잇는다.
“초악문(初握門), 회명단(會命團), 사문회(死問會).”
“…….”
“저들은 그저 흑룡문이 두려웠기 때문에 온 것이오. 아무리 적어채의 비호가 사라졌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흑룡문의 이름을 무시하기에는 버거웠을 테니까.”
“……알고 있소.”
“하지만 나는 아니었소!”
“…….”
“이 자리에 온 것만으로도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그대도 모르지 않을 터! 나는 당신이라는 사람이 적어도 순순히 사지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여기까지 온 것이오!”
“하면 잘하신 것이오, 나는…….”
“허튼소리! 고작 이립도 되지 않은 후기지수 집단을 믿고 적어채를! 더 나아가서 장강수로채와 척을 지자고? 그걸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흑룡문주에게 언성을 높이며 소리치던 구호단주가,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궁지에 몰리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어리석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군. 나는 이만 가리다.”
“자, 잠깐! 구호단주!”
저벅저벅.
쿵.
흑룡문주의 외침에도 미련 없이 문을 닫고 나가 버리는 구호단주.
곧이어 흑룡문주의 눈치를 보던 세 문파의 대표들도 헛기침을 하다 하나둘씩 몸을 일으킨다.
“크…… 크흠…… 저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저, 저도 급한 일이…….”
“죄, 죄송합니다.”
“이…… 이런……!”
구호단주의 행동을 시작으로 그대로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각 세력의 수장들.
순식간에 텅 빈 회의실에 홀로 남게 되자, 망연자실한 얼굴의 흑룡문주가 지그시 입술을 깨문다.
‘생각보다 쉽지 않군.’
하기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자신 또한 흑풍도의 밑에 들어가겠다는 선언을 들었다면 저들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소문으로 들은 흑풍도와 사도관도들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한들, 적어채주와 그의 수하 몇을 상대하는 것과 적어채 전체를 상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
더군다나, 그들의 뒤에 있는 장강수로십팔채는 녹림과 함께 사파 제일 세력을 다투는 이들이다.
‘이렇게 되면 흑룡문 홀로 그들의 휘하에 들어가야 하는데…….’
문제는 저들과 흑룡문 두 세력만으로는 적어채를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채주의 성격상 반드시 복수전을 벌이려 남경을 다시 찾을 것인데, 그때가 되면 차기 흑룡문이 되기 위한 사파들이 알아서 그쪽으로 줄을 서려 들 것이다.
“하아……. 답답한 노릇이군.”
흑풍도에게 줄을 대는 것이 맞느냐?
아니면 구호단주의 말대로 지금이라도 남경을 벗어나 도망가는 것이 맞느냐?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던 그때, 돌연 그의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크…… 크흠……. 흑룡문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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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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