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까드득.
백신무의 말에 소리 나게 어금니를 깨무는 광명.
하지만 이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천천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어 보인다.
“……적어채주 광명이, 사신무의 일좌인 백신무를 뵈옵니다.”
“이제야 예의를 차려? 생각보다 많이 굼뜨네?”
“…….”
“뭐…… 그래도 목숨은 구했지만.”
쓰윽.
그 말과 함께, 어느새 뽑아 들고 있던 검을 검집 안으로 밀어 넣는 백신무.
대체 어느 틈에 검을 뽑은 것인지 놀란 적어채주가 고개를 들자, 그의 앞머리의 일부가 잘려나가 바닥을 나뒹군다.
스스슥.
“……!”
감정을 억누르던 찰나의 순간, 자신의 생사가 오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적어채주 광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소름 끼치는 수준의 살검(殺劍)이다.’
살검은 의도적으로 살기를 내뿜어 상대의 기세를 억누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살검의 경지가 완숙해질수록, 도리어 살기의 농도는 점점 더 옅어지고 기척조차 남기지 않을 만큼 은밀해진다.
그리고 그 끝에 이르러서는 결국, 상대가 죽는 순간까지도 베였음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놀랍군.’
과연 자신이 처음부터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자신을 향한 저 백신무의 살검을 받아 낼 수 있었을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호승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는 적어채주를 향해, 백신무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이놈 기세 좀 보게? 너, 나랑 싸워 보고 싶어?”
“……설마 이런 상황에, 그런 생각을 할 리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그러고 싶다는 말이네, 그렇지?”
“…….”
“흐음……. 이건 꽤 아까운 놈인데? 여기서 그냥 폐기 처분 하기에는.”
보기 드문 미소를 지으며 적어채주를 향해 다가가는 백신무.
금방이라도 서로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갔지만, 온몸이 경직되는 적어채주와는 달리 그는 부드럽게 적어채주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기회를 줄까?”
“……기회라 하시면?”
“장강수로십팔채의 일좌를 차지했다는 녀석이, 고작 후기지수한테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수룡왕께서 노하셨어. 그래서 날 보내셨지. 내 자율적 판단 하에, 널 죽일지 살릴지 결정하라고.”
“…….”
“처음에는 그냥 변명이나 듣고 죽이려 했는데…… 막상 보니 마음이 바뀌려 하네.”
거기까지 말한 백신무가, 두 눈을 깜빡이며 그와 수귀검을 번갈아 바라본다.
“어때? 지금 당장 저놈이랑 붙여 주면 이길 수 있겠어?”
“자, 잠깐……! 백신무님, 저 자는 장강수로채의 명예를……!”
수귀검이 다급히 말을 꺼내며 나서려는 그때, 어느새 또 다시 뽑아 든 백신무의 검 끝이 그의 목선을 향해 겨누어져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닫아.”
“…….”
“내 권한에 도전하는 놈은 벤다.”
백신무의 경고에 수귀검의 입이 다물어진다.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그의 얼굴이 굳어지자, 반대로 적어채주의 한쪽 입꼬리가 서서히 말려 올라간다.
“……발톱 일부가 뽑혔다고 해서, 범이 개새끼한테 당하겠습니까?”
“흐음…….”
적어채주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백신무가, 이윽고 마음을 정했는지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주위를 둘러본다.
“두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갑판에서 물러나라.”
백신무의 말에 다소 얼떨떨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던 이들이,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빠르게 갑판에서 내려간다.
이윽고 드넓은 선상의 갑판 위에는, 적어채주와 수귀검, 그리고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는 백신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깔끔한 걸 좋아해. 괜히 아량이니 의리니 떠들지 말고, 진 놈은 그 자리에서 죽여. 알겠지?”
“알겠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리하지요.”
결국 돌아가는 상황을 받아들인 수귀검이 어금니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적어채주 광명은 과거의 그로서는 감히 상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고수다.
하지만 그래 봐야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멀쩡한 상태였을 때의 이야기.
한쪽 팔이 잘린 몸으로, 작은 배를 타고 닷새를 넘게 장강을 헤맸을 그가 정상적인 상태일 리 만무하다.
‘그래…… 한 눈에 보아도 잔뜩 야위어 있지 않은가?’
두 눈에 독기만 가득할 뿐,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거무스름한 눈 주위가 그의 현 상태를 말해주는 듯하다.
어느새 자신감을 얻은 수귀검이, 곧이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챙!
“한때 형님으로 모셨던 예우를 담아, 내 손으로 직접 저승에 보내 드리리다.”
“킥……. 네가? 나를?”
수귀검의 말에 명백한 비웃음을 머금은 적어채주가 아직도 피가 떨어지고 있는 도 끝을 그에게 겨눈다.
“오냐, 유언으로 쳐 주마.”
“……그럼 시작.”
탓.
파밧!
말을 마친 백신무가 뒤쪽으로 몸을 날리자, 적어채주가 자리를 박차고 수귀검에게 달려든다.
왼손에 들린 그의 도가 거칠게 수귀검의 목선으로 날아든다.
쩌저저정!
“크흣……! 역시……!”
검강을 끌어 올려 적어채주의 도를 받아 낸 수귀검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머금는다.
적어채주가 과거와 같았다면,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손을 쓴 탓인지, 아니면 체력이 바닥이 난 까닭인지 그의 일도는 어느 때보다도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보란 듯이 비웃음을 흘린 수귀검이, 힘을 주어 그의 도를 밀어내려 하는 순간이었다.
텁!
“……음?”
그의 도를 떨쳐내려 했으나, 무언가에 붙잡힌 듯 그의 검이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당황한 수귀검이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역시나 요지부동이었다.
드드드드.
“크읍……! 이…… 이게 무슨……!”
“한쪽 팔이 잘린 데다 지칠 대로 지쳤을 테니, 네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리 생각했을 테지?”
“……!”
“쯧쯧……. 제가 보는 앞마당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아서야……. 그래서 네놈이 개새끼라는 거란다.”
“크윽……! 닥쳐라! 이……!”
툭.
분노한 수귀검이 포효하며 검을 내지르려는 순간, 적어채주의 도가 비틀어지며 순간적으로 수귀검의 검로를 바꾸어 버렸다.
부웅.
그의 검이 텅 빈 허공을 가르고, 경악 어린 그의 눈으로 살기 어린 적어채주의 얼굴이 들어온다.
“감사해라.”
촤좌좌좍!
“……날 상대로 고통 없이 갈 수 있다는 것에.”
툭.
털썩.
적어채주의 섬광 같은 일도에 수귀검의 목과 몸이 둘로 나뉘어져 버렸다.
머리를 잃은 그의 몸이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지고, 피 묻은 도신을 대충 털어 내는 적어채주의 곁으로 백신무가 다가온다.
짝짝짝.
“훌륭하네. 왼팔로 그 정도면, 오른팔이 멀쩡했을 때에는 나와도 싸워볼 만했겠는데?”
“……과찬이십니다. 오른팔이 멀쩡했을 때도, 지금과 별반 차이는 없었을 겁니다.”
반쯤은 진심인 말이었다.
흑풍도라는 애송이에게 패한 후, 지난 닷새 동안 끊임없이 그때의 전투를 떠올리며 자신의 부족함을 분명하게 깨달아 버렸으니까.
아직 그의 몸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지만, 도에 대한 이해도만큼은 그 짧은 사이 두 단계 이상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상태였다.
“아니, 아니, 겸양은 집어치워도 돼. 아직 좌수도에 익숙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만하면 아주 훌륭했어.”
적어채주를 인정해 주기로 했는지, 두 팔을 벌리며 흡족하게 이야기하는 백신무.
그리고 잠시 후, 적어채주에게 가까이 다가간 백신무가 속삭이듯 그의 귓가에 대고 말을 꺼낸다.
“올해를 넘기지 마.”
“……예?”
“뭘 모르는 척 물어? 복수 안 할 거야?”
“……!”
“장강수로십팔채의 이름에 똥칠을 했으면 피칠을 해서라도 덮어라……. 그게 수룡왕의 뜻이야.”
“…….”
“다음에도 날 보고 싶은 거 아니면, 잘해.”
저벅저벅.
그 말을 마치고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발걸음을 옮기는 백신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적어채주가 입술을 깨문다.
‘올해를 넘기지 말라고……?’
저건 명백한 협박이다.
내년까지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자신의 목을 베러 찾아오겠다는 협박.
그리고 이는, 상대가 자신을 확실한 아래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오냐! 내 기필코 좋은 소식을 들려주마.’
한쪽 팔을 잃었다고는 하나, 그가 여전히 적어채주로 있는 이상 애송이 하나를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대일 무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남경에는 그의 발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릴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테니까.
‘그리고 기다려라……!’
꽈악.
‘올해 안에 놈의 목을 따고 나면…… 다음은 네놈 차례이니!’
백신무를 바라보는 적어채주의 눈에 숨길 수 없는 살의가 번들거렸다.
***
“야야! 거기 나무 좀 빨리 날라 와라!”
“벽돌! 벽돌 더 없냐!”
“막휘 형님! 이쪽에 이렇게 줄로 묶으면 되는 게 맞습니까?”
“저, 저……! 누가 기둥을 한 번만 묶어, 이 미친놈아!”
드넓은 장원에 내리쬐는 햇빛.
수십여 명에 이르는 사도관도들이, 이른 아침부터 사 온 자재들을 날라 무너진 담벼락과 본당의 허물어진 벽들을 보수하고 있었다.
귀신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르르르 콰장창창.
“아악! 제엔자앙! 잘 쌓고 있었는데!”
“이 멍청한 것들이……! 그렇게 건성건성 쌓아 올리니까 무너지지! 생각 좀 해라, 생각!”
“아니, 나혼수 선배는 그렇게 생각이 깊으셔서 석회(石灰)도 안 바르고 벽돌을 올리십니까?”
“대신 황토 바르잖아! 황토! 우리 동네에선 다 이렇게 했어!”
“거짓말 마십쇼! 시골 촌구석도 그렇게는……!”
“……하.”
담벼락 보수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도관도들을 바라보며,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든 사무현이 한탄 어린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저것들을 믿은 내가 등신이지.”
어차피 장원을 사는데 돈을 아꼈으니, 귀신 놀음으로 고생한 아우들을 생각해 제대로 된 보수공들을 부를 생각이었던 사무현이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웬일로 의기투합해, ‘우리가 살 곳은 우리의 힘으로 지어야 합니다!’라는 기특한 소리를 내뱉었고, 어디 한번 믿어 보자는 생각에 자재 살 돈을 아주 넉넉히 쥐여 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
와장창창!
쿠당탕탕!
쨍그랑!
……젠장.
이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쳐다보는 것도 두려울 지경이다.
이렇게 가뜩이나 심란하기 그지없는 상황인데…….
“하하, 난리도 그냥 난리가 아니구나. 저거 봐라, 멀쩡한 담벼락까지 허물고 있으니 이건 보수가 아니라 철거라고 봐야겠구나.”
“…….”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래서야 자재 값만 날리고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은…….”
“…….”
“……흠흠.”
과연 어디까지 떠드는지 한번 보자는 듯한 사무현의 눈빛에, 언제 웃었냐는 듯 헛기침을 흘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천마.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런 천마를 지그시 노려보던 사무현이, 이윽고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내공을 실어 소리친다.
“모두 동작 그마아아아안!”
“아…….”
“형님……?”
사무현의 외침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각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 고개를 돌린다.
“이 자식들이……! 뭐? 자재 값만 주면 너희들이 알아서 만들어? 장원을 거지 소굴로 만들 일 있냐!”
“크흠흠…….”
저 말을 처음 내뱉은 장본인인 손익패가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깐다.
“그리고 막휘! 뭐어어? 녹림의 후계자에게 담벼락 세우는 건 일도 아니야아아?”
“크흠……. 녹림에서는 벽돌 같은 것을 쓰지 않다 보니…….”
“자랑이다! 아주! 자랑이야!”
결국 비난과 책임을 피하지 못한 막휘도 손익패를 따라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이마에 핏대를 세운 사무현이 씩씩 거리며 말을 잇는다.
“당장 하던 거 멈추고! 남은 자재 가져가서 싹 다 환불하고! 제대로 된 장인들로 다시 데려와!”
“아니, 형님. 그래도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베는 것이…….”
“뭐? 계속 말해 봐, 뭐어어어?”
“……수레부터 가져오겠습니다.”
결국 희번덕이는 사무현의 눈빛을 이겨 내지 못한 막휘가, 들고 있던 벽돌을 내려놓고 장원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크흠흠……. 사 대인, 안에 계십니까?”
“음? 형님, 손님이 오신 것 같습니다.”
반쯤은 박살나 있는 장원의 문밖으로, 최대한 멀쩡한 문만을 바라보려 애쓰는 흑룡문주의 얼굴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대?”
그가 이곳에 머물기로 한 게 벌써 소문이 났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어쨌거나 처음으로 그들을 찾아온 손님이었기에, 사무현이 막휘에게 턱짓을 하며 말을 꺼낸다.
“뭐 해? 일단 열어 드려.”
“아, 예.”
타다닷.
벌컥.
막휘가 장원의 대문을 열어젖히자, 흑룡문주와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서 있는 수십에 달하는 인파가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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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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