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문밖에 선 생각보다 많은 인파를 둘러보며 막휘가 경계 섞인 얼굴로 질문을 던진다.
일전에 객잔에서 보았을 때에도, 흑룡문이라는 곳의 규모가 제법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찾아온 이들은 흑룡문의 무사들만이 아니었다.
그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삼십여 명 정도 되어 보이는 무리들.
별다른 기도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무인은 아닌 듯한데, 저만한 인파가 왜 갑자기 찾아온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드러나는 막휘의 경계심에, 흑룡문주가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전에 보았던 흑룡문주 마철영이외다. 지난번의 일에 감사도 표할 겸, 흑풍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왔소.”
“……저분들 모두가 말입니까?”
“저들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오. 흑풍도를 직접 뵈옵고자 하는 것은, 나와 여기 있는 이 사람 둘뿐이오.”
“알겠습니다, 하면 두 분만 들어오시지요.”
“고맙소.”
쓰윽.
열린 문에 서 있던 막휘가 비켜서자, 흑룡문주가 앞장서서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의 뒤를 사문회주가 다소 긴장 어린 얼굴로 뒤따른다.
‘……저자가 그 소녹림왕인가?’
거우산악을 쓰러뜨리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장본인.
흑풍도 사무현의 오른팔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기도가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흑룡문주를 포함해, 남경의 사파 고수들을 모두 떠올려 보아도 그를 넘어설 만한 이가 마땅히 손에 꼽히지 않는다.
‘저만한 고수를 수하로 부리는 이라…….’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일도로 강을 가르고 백의 적을 쳐 버린다는, 수룡왕 같이 타고난 패도의 기운을 가진 이일까?
아니면 손짓 하나만으로 십만 녹림을 다스린다는, 녹림왕 같은 군림(君臨)의 자질을 타고난 이일까?
‘그도 아니면 과거의 살왕(殺王)처럼 두 면모를 동시에 가진 이일지도 모르지.’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느끼며 안으로 들어서자, 장원의 정중앙에 낡은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고 앉아있는 사내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다.
‘저자인가?’
금방이라도 삭아서 쓰러질 듯한 낡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은 사무현의 모습.
갖은 짜증과 불만,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나오는 그 얼굴에 사문회주의 눈이 가늘어진다.
‘……아닌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흑룡문주의 옆모습을 흘깃 바라보는 사문회주.
상대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 흑룡문주의 얼굴에는 어느덧 반가운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흑룡문주가 대인을…….”
“아니, 여길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온 흑룡문주가 예의를 갖추려 멈춰 서자, 낡은 의자에 앉아 있던 사무현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킨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 적어인지 청어인지 하는 인간이 벌써 찾아오기라도 했나요?”
“저…… 적어채주입니다. 대인께서 막아 주신 이후로는 별일이 없었습니다.”
“아, 그래요? 다행이시네. 그럼 무슨 일로 오셨어요?”
사무현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묻자, 사문회주를 향해 반쯤 몸을 돌리며 흑룡문주가 대답한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함께 온 사람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남경에서 정보 단체를 운영하는 사문회주(死問會主)입니다.”
“사문회주 우양(雨洋)이라 합니다.”
“사무현입니다.”
사문회주가 예를 갖춰 포권하자, 사무현도 씩 웃어 보이며 함께 포권을 해 보인다.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오셨는지?”
“예, 일전의 일로 흑룡문주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꼭 한번 뵙고 싶어 기회를 기다리던 차에, 오늘 마침 장원의 보수를 위해 자재를 사 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하하, 보잘것없는 규모이긴 하지만 정보 단체를 운영하다 보니, 앉아 있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게 되곤 합니다.”
묘하게 날카롭게 빛나는 사무현의 눈빛에 너털웃음을 흘린 사문회주가, 곧 빙긋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잇는다.
“해서…… 흑룡문의 무사 분들과 함께, 장원의 보수를 도와드릴 장인(匠人)들을 구해 올라왔습니다. 남경에서 가장 솜씨가 좋다고 하는 이들이니,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 그럼 저 밖에 계신 분들이 전부?”
“예. 이 장원의 보수 공사를 도울 분들입니다.”
“이야아, 정말 감사하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대로는 답이 없겠다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문회주의 손을 덥석 움켜쥐는 사무현.
그러고는 그의 손을 사정없이 흔들며 싱글벙글 말을 이어 나간다.
“이렇게 도우러 와 주셨는데 어쩌죠? 아직 내부 정리가 덜 돼서, 뭐 대접할 만한 게 마땅치 않은데…….”
“아, 형님! 제가 오늘 내려가면서 사 온 술이 한 병 있습니다.”
“오, 그래? 그거 잘됐네, 이리 줘 봐.”
“예, 형님. 헤헤.”
사무현의 칭찬에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품속에 감추어 두었던 술 한 병을 냉큼 가져다 바치는 손익패.
한편 생각 외로 소탈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문회주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의외로군.’
이만한 사파 집단을 유지하려면 필연적인 것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철저한 서열과 기강.
사파에서 우두머리를 결정짓는 것은 오직 힘이다 보니, 혹여라도 반기를 들 꿈조차 꾸지 못하게 관리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들의 분위기는 소규모 삼류 집단이라 해도 믿을 만큼 가벼워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외인 건…….’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흑풍도.
사파에서 저만한 집단을 이끄는 이들에게서는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거만함과 위세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는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싸움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과 실력으로, 오직 힘만으로 수많은 이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이들.
사파의 우두머리란 바로 그런 자들이다.
‘한데 이 자는 어찌…….’
오만함도, 거만함도, 스스로를 높이려는 위세도 찾아볼 수가 없다.
아직 피에 얼룩진 집단이 아닌, 사도관이라는 평화로운 곳에서 연을 맺은 이들인 까닭일까?
이들에 대한 평가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문회주가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받아 든 술병을 살피던 사무현이 손익패에게 물었다.
“죽엽청이네? 다른 건 더 없어?”
“예, 시간이 없어서 한 병밖에 못 샀습니다.”
“무슨 돈으로 샀는데?”
“아, 그거야 당연…….”
무심코 사무현의 물음에 답하려던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손익패가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사무현의 시선을 회피한다.
“그…… 제 용돈으로…….”
“……정말?”
“…….”
“……에라이!”
쾅!
휘리리리릭.
쿵!
죽엽청을 받아듬과 동시에, 있는 힘껏 손익패를 걷어차 담벼락까지 날려 버리는 사무현.
잠시 후, 보수 중이던 담벼락이 허물어지며 손익패의 몸이 그 잔해물 위로 널브러진다.
쩌적, 쩌적.
쿠르르릉.
“어디서 삥땅을 쳐? 콱.”
반쯤 의식을 놓고 움찔거리는 손익패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사무현이, 주위를 휙 둘러보며 으름장을 놓는다.
“익패랑 같이 내려갔던 놈들 중에, 혹시라도 삥땅 친 놈 있으면 자수해서 광명 찾아라.”
“…….”
“오호라……. 다들 떳떳하시다?”
모두를 빙둘러보던 사무현이, 돌연 사문회주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우리 애들이 자재 사 온 얘기를 듣고 오셨다고 하셨지요?”
“예? 아…… 예.”
“그러면 오늘 남경에서, 누가 뭘 샀는지도 조사하면 나오시겠네요?”
“어…… 그야…….”
……나오긴 나오지.
심지어 그리 어렵지도 않다.
남경 안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의 손아귀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걸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해도 되는 건가?
사문회주가 고심하던 그때,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만패가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걸어 나온다.
“크흠흠…….”
저벅저벅.
쓰윽.
어느새 사무현의 앞에 서서, 죽엽청 두 병을 품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는 만패.
어이가 없다는 듯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무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부른다.
“만패 선배.”
“으…… 음?”
“선배는 선배잖아요.”
“……그렇지.”
면목 없다는 듯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만패를 가만히 바라보던 사무현이, 긴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그의 복부에 일각을 내뻗는다.
“에라!”
쾅!
휘리리릭.
털썩.
“아니, 선배라는 사람이! 모범은 못 보일망정 후배를 꼬드겨서 횡령이나 하고 있어? 내가 진짜 선배만 아니었어도……!”
“차, 참아라!”
“그래도 선배다! 선배!”
한쪽에 서 있던 적월과 나혼수가 다급히 튀어나와 사무현을 만류하자, 씩씩거리며 만패와 손익패 쪽을 바라보던 사무현이 이내 바닥에 놓인 죽엽청을 집어 든다.
“후우……. 뭐, 그래도 대접할 게 뭐라도 있어서 다행이네요.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저, 저희는 굳이 마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만…….”
“예, 예. 진짜로 괜찮습니다.”
자신들의 앞에서 수하 두 명을 날려 버리고 취한 죽엽청이, 손님 된 입장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 있겠는가?
하지만 사무현은 그런 그들의 의견은 묵살하고 그대로 본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가…… 가세.”
“아…… 예.”
식은땀을 닦아 내는 흑룡문주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는 사문회주.
그의 머릿속에는 사무현에 대한 평가가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
“정보상이시라고요?”
“……정보상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주력으로 삼는 사도 단체라고 생각해 주시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술잔을 받아 들며 사문회주가 공손히 대답하자, 흑룡문주가 은근슬쩍 한 마디를 거들었다.
“남경은 강소의 성도입니다. 결코 작지 않은 지역이지요. 사문회주와 우호적 관계를 맺으신다면 앞으로의 일에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흑룡문주의 말에 사무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야 바른 말이다.
당장 음지삼왕과의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는 남경까지 오기는 했지만 정작 이곳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할 줄 아는 건 싸움질밖에 없는 수십 명을 먹여 살려야 할 처지에 놓인 사무현에게, 지역 최고 정보 단체와의 우호적 관계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다만…….
“흐음……. 그런데요.”
손에 들고 있던 죽엽청 술병을 내려놓으며 사무현이 사문회주를 응시한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요?”
“말씀하시지요.”
“뭐, 흑룡문주님이야 저한테 도움을 받은 게 있으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사문회주님은 오늘 저를 처음 보시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그런 분이 미리 사람들까지 대동하고 오셔서 장원 보수도 도와주시고, 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접근하시는지 이해가 잘 안 가서요.”
사무현의 말을 들으면서도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사문회주.
그런 그를 향해 사무현이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요.”
“…….”
“아닌가요?”
상당히 직설적인 사무현의 물음에, 사문회주의 눈이 흥미로움으로 반짝인다.
‘확실히…… 처음 보는 유형이구나.’
장원 밖에서의 행동을 보았을 때에는 그저 아무 생각이 없는 이처럼 보였다.
스스로가 얼마나 강한지도 궁금하지 않고, 주위의 시선이나 생각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안하무인.
사파 특유의 오만함이나 자만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저 그가 아무런 계산 없이 움직이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의도를 분명히 관찰하고 있다.
아마도 처음 그들이 이 장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생각 없어 보이는 행동 속에서도 예리한 눈을 번뜩이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식과 정치에 능한 인물이 아닐까 싶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그런 모습을 애써 숨기려 하지도 않고 있다.
이는 스스로가 가진 ‘힘’을 분명하게 믿고 있다는 것.
사파의 무인들에게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저런 성향은, 그가 알기로 아주 드문 소수가 가지고 있는 성향이다.
그리고 그런 성향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절대자였지.’
상대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존재들.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존재들.
그런 자들에게서나 보여야 할 모습들이, 왜 저 어린 후기지수에게서 보이는 걸까?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을 이어 가던 사문회주가 이윽고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시니, 저 또한 그리 대답을 드리는 것이 옳을 듯하군요.”
사문회주가 잠시 말을 고르자, 흑룡문주가 다소 긴장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혹여나 그가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듯이.
“제가 장인들을 데리고 온 것은, 이렇게 공자와 마주앉아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게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지요?”
“공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하.”
사문회주의 말뜻을 이해한 사무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오신 건가요?”
“비슷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팔기 위한 정보는 아닙니다.”
거기까지 말을 이어 간 사무회주가 날카롭게 눈을 번뜩인다.
“제가 속한 사문회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공자께 사문회라는 존재의 명운을 걸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정보이지요.”
“흐음……. 투자 가치라.”
사문회주의 말을 들으며 턱 끝을 긁적이던 사무현이, 돌연 궁금한 듯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막상 보니까 어떠신데요?”
사무현의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사문회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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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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