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상상했던 이상입니다.”
진심이었다.
처음에는 저들이 남경 제일 세력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거의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스스로의 힘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지도자와 그런 지도자를 신뢰로 따르는 수십 명의 강자들.
지금 당장 저들이 남경제일문을 선언한다고 해도, 남경에 있는 모든 사파가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가로막을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에이, 너무 과하게 높이 평가하신 거 아닐까요?”
“만일 그렇다면 제 부족함일 뿐이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단순한 협력 관계를 넘어서 공자와 뜻을 함께하고 싶다는 것이 제 솔직한 입장입니다.”
“……음.”
사문회주의 직설적인 대답에 사무현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댄다.
사람을 과하게 고평가 하면서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이, 꼭 아룡상회의 전추를 떠올리게 만든다.
‘정보 상인도 상인이라서 그런가?’
그들이 사무현을 찾아왔을 때, 단순한 눈도장을 찍으러 온 것은 아닐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기에는 저들이 데리고 온 머릿수가 지나치게 많았으니까.
하지만, 초면에 이렇게까지 대놓고 뜻을 드러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어떻게 할까?’
남경에 대한 정보력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아직 집안도 정리가 덜 된 상황에서 다른 이들까지 끌어들일 단계는 아니다.
그렇게 거절 쪽에 가깝게 사무현의 마음이 기울려는 그때.
“만일 흑풍도께서 사문회의 뜻을 받아 주신다면, 공자께 가장 필요한 것들을 채워 드릴 수 있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들이요?”
“그렇습니다 가령…….”
“…….”
“……!”
생각지도 못한 사문회주의 전음에 사무현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갑작스레 일변한 사무현의 분위기에, 흑룡문주가 의아한 얼굴로 그들 사이의 눈치를 살피던 그때.
쿵!
“……크헙!”
난데없이 사문회주의 어깨를 찍어 누르는 압도적인 기세.
어느새 그를 바라보는 사무현의 눈빛은 싸늘하게 바뀌어 있고, 숨조차 쉬기 힘든 위압감이 그와 흑룡문주의 숨통을 조인다.
“컥…… 대…… 대인 가, 갑자기 왜…….”
“이야, 음지 출신들은 하나같이 정보력이 대단하네요.”
“예, 예?”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한 손을 들어 올린 사무현이, 느긋하게 자신의 등에 메인 천마도의 손잡이를 움켜쥔다.
스스슥.
“광호채를 떠나고 얼마나 됐다고……. 벌써 여기까지 사람을 보내왔네?”
“예? 아, 아닙니다! 고, 공자! 저는 결백합니다!”
“대…… 대인……. 가,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갑작스레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흑룡문주도 떨리는 음성으로 사무현을 만류한다.
하지만 그가 내뿜는 지독한 기세에 눌려 좀처럼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사무현이 든 천마도의 끝이 사문회주를 향해 겨누어진다.
쓰윽.
“고, 공자! 어, 어찌 오해를…….”
“자…… 두 팔만 잘라 드릴 테니…… 음지삼왕인지 뭔지 하는 것들한테 전하세요.”
“아…… 아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뒈지기 싫으면, 얌전히 자리에서 목이나 닦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거기까지 말을 마친 사무현이 천마도를 치켜들자, 입을 떡 벌린 사문회주가 절망 어린 얼굴로 말을 꺼낸다.
“사…… 살려……. 저는 결백……!”
“대…… 대인! 안 됩……!”
쐐애액!
탁.
당황한 흑룡문주가 다급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사무현의 일도가 섬광같이 사문회주를 향해 휘둘러진다.
스스로 죽음을 직감한 사문회주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뒤이어 그가 생각했던 끔찍한 고통이나 느낌은 전해지지 않았다.
“……아?”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깨달은 사문회주가 반신반의하게 눈을 뜨자, 어느덧 자신의 도를 아래로 늘어뜨린 사무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흐음…… 잘못 짚었나 보네.”
“예…… 예?”
“놀라셨으면 죄송해요. 최근에 그놈들이 풀어 놓은 인간을 하나 만났거든요. 혹시나 싶어서 시험을 좀 해 봤어요.”
“아…….”
그제야 사무현의 행동을 이해한 사문회주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지금 사무현의 행동은 초면에 분명한 무례(無禮)다.
아무리 의심이 간다고 해도 어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고 따질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너무도 완벽하게 기세를 제압당한 탓에, 사문회주는 감히 불만을 가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도리어 상대의 입장을 생각지 않고 너무 경솔한 말을 던졌다는 자책만을 하고 있을 뿐.
“혹시나 싶어서 부탁드리는데…… 저희에 대한 정보를 음지 쪽으로는 안 넘기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사문회주님만 입을 다무신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무,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리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적어도 같은 편한테 뒤통수를 맞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 말과 함께 천천히 들고 있던 죽엽청을 입으로 가져가는 사무현.
그의 목젖이 시원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던 사문회주가, 그제야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두 눈을 부릅뜬다.
벌떡.
“가, 감사! 감사합니다, 공자!”
“감사는요, 무슨. 앞으로 도움받을 일은 아무리 봐도 제가 더 많을 것 같은데.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격하게 포권을 해 보이는 사문회주를 향해, 술병을 놓고 마주 일어나 포권을 해 보이는 사무현.
이에 감격한 사문회주가 환한 미소를 머금는 그때,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들을 번갈아 보던 흑룡문주가 돌연 함께 몸을 일으킨다.
벌떡!
“대, 대인! 흑룡문 또한, 대인과 뜻을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예? 거기는 또 왜요?”
“장차 남경의 질서가 대인의 아래에 세워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대업의 길을, 흑룡문이 닦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허어…….”
사실 흑룡문주가 그를 찾아온 목적은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청하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뿐.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허공을 바라보던 사무현이, 이윽고 흑룡문주와 사문회주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흑룡문주님께, 그리고 사문회주님께도 한 가지 확실히 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아…… 예!”
“말씀하십시오.”
“저희와 함께하시려면 언제 어떤 세력과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될지 몰라요. 저희가 생각보다 적이 많거든요.”
“…….”
“어설프게 정치적으로 얽힌 관계는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 어떤 위기의 상황이 와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돕겠다 약속하실 수 있으신가요? 저희보다 강한 세력과 전쟁이 벌어져도?”
사무현의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키며 서로를 돌아보는 사문회주와 흑룡문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둘 다 뜻을 하나로 모은 상태다.
어차피 사무현의 세력과 함께하기로 한 이상, 훗날 복수의 칼날을 갈고 돌아올 적어채와, 그리고 그들의 편에 설 남경의 사파들과 칼을 맞댈 상황이 오고야 말테니까.
“이미 대인께서 구해 주신 흑룡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대인을 져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
“본래 시작을 함께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지요. 사문회도, 대인이 가시는 길에 명운을 걸고 동참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런 각오시라면.”
흑룡문주와 사문회주의 답을 들은 사무현의 입에 이윽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머금어진다.
“앞으로 잘해 보시지요.”
그렇게, 남경에 사무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연합 세력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
사문회주가 데리고 온 삼십여 명의 장인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솜씨를 지닌 이들이었다.
단순히 힘을 쓰는 행위들은 사도관도들이 도왔고, 필요한 공구와 자재들을 사 나르는 일은 흑룡문의 무사들이 도왔다.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들로 하나하나 일을 진행하니 장원은 금세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풀썩.
“아아…….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곳 같네.”
고작 하루 만에 부서진 장원의 담벽과 본당 내부의 벽까지 보수를 마쳐 버리다니.
아직 석회가 온전히 마르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처음 사도관도들을 데리고 보수를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결과다.
‘내심 걱정하던 부분도 해결되었고.’
이제는 음지삼왕이라 불리고 있는 과거 암천막의 사천살들.
그들이 살암을 처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항상 사무현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남경 제일의 정보 단체라는 곳과 손을 잡아 버렸으니, 앞으로는 그들이 알아서 음지의 움직임을 살펴 줄 것이다.
그렇게 새로 산 침소에 대자로 누워 상념에 잠겨 있는 사무현의 귓가로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오늘 보니 꽤나 제법인 구석이 있더구나.”
난데없이 흥미로운 음성으로 말을 거는 천마.
이에 사무현이 고개를 돌리자, 묘한 미소를 머금은 천마가 그를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뭐가 제법이야?”
“기세로 저들을 누른 것 말이다.”
“…….”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느냐?”
정확하게 정곡을 짚는 천마의 물음에 사무현이 멋쩍은 헛기침을 흘린다.
“흠……. 그거야, 뭐…….”
……천마의 말대로다.
저들이 사무현과 우호적 관계를 위해 찾아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 아직 서열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도관도들처럼 직접 싸워서 서열을 가리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간접적으로 힘을 보여 서열을 분명히 해 놓은 것이었다.
“뭐…… 어쨌거나 사파니까.”
변명처럼 내뱉은 사무현의 한 마디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잘한 것이다. 본좌였다면 그보다 조금 더 강한 공포심을 심어 주었겠지만…….”
“……공포씩이나?”
“그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해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마가 말을 이었다.
“네게는 네 방식이 있으니 굳이 본좌의 방식을 따를 것 없다. 맞지도 않는 방식을 억지로 흉내 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아…….”
천마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뜨는 사무현.
그런 그의 반응에 천마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왜, 본좌의 말에 감명이라도 받았느냐?”
“어……. 너도 상식적인 말을 할 수 있구나 싶어서.”
“…….”
사무현의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천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한다.
“누구의 방식이건, 결국 모두를 이끌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거기까지 말을 이어 가던 천마가 사무현을 돌아보며 스산한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그간 귀신 놈들과 싸운다고 밀려 있던 수련을, 오늘은 아주 제대로 해 보도록 하자꾸나.”
“…….”
“먼저 가서 기다리도록 하마.”
스륵.
대놓고 협박을 마치고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천마.
녀석이 사라지고 난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사무현이 이내 피식 실소를 머금는다.
‘저놈도 많이 변했네.’
과거의 천마라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무현의 행동에 혀를 끌끌 차며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자신의 방식과 생각에 대해 언제나 확신에 가득 차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런 녀석이 이렇게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은, 그와 함께 지내 온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사무현의 영향을 받아 왔다는 말일 것이다.
‘……내가 영향을 받은 것처럼.’
어쩐지 묘한 기분에 미소를 머금는 것도 잠시.
어느새 침소에 누운 사무현이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오랜만에 천마 놈과 마음껏 도를 휘두를 것을 기대하면서.
***
“본좌에게 각오를 단단히 하라며 자신만만하게 떠들던 놈은 어디에 갔느냐?”
“…….”
“쯧쯧……. 그간 하수들을 상대하는 것에 많이 익숙해진 모양이구나. 본좌를 상대하는 각오가 그리 말랑해서야…….”
혀를 끌끌 차며 한탄하듯 말하는 천마의 음성을 들으며, 바닥에 대자로 뻗은 사무현이 조용히 미소를 머금는다.
‘……빌어먹을 새끼.’
아닌 게 아니라, 근래 들어 강적다운 강적을 만나지 못했더니 꽤나 자신감이 붙은 것이 사실이었다.
일전에 적어채주인지 뭔지 하는 녀석과 맞붙었을 때도 전혀 위협을 받지 못했으니까.
이제 ‘벤다’라는 이치를 온전히 이해했으니, 누구와 맞붙더라도 쉽게 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다름 아닌 봉혼술의 영향을 받고 있는 본좌인데, 적어도 십초지적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해라.”
고작해야 팔 초.
발전한 자신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악물고 덤벼 보았지만, 꼭 팔 초를 넘기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더럽게 세네, 진짜.’
이제 사무현도 중원에서 나름 이름을 떨칠만한 강자의 반열에 올랐는데, 어떻게 정상적이지도 않은 천마를 상대로 십초지적이 되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쯤 되면 천 년 전에 저런 괴물을 쓰러뜨린 인간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렇게 계속 누워 있기만 할 것이냐?”
대놓고 도발을 해 오는 천마의 음성에, 입술을 깨문 사무현이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끄응……. 그럴 리가 있겠냐? 이 천마 새끼야.”
“오호? 아직 입은 살아 있구나.”
몸을 일으키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건성으로 도를 쥐고 있는 천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장난이라도 치는 듯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빈틈이 보이지 않는 자세!
태산과도 같이 거대해 보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무현이 새하얀 이를 드러낸다.
“밤이 얼마나 긴데, 이제부터 시작이지. 넌 오늘 뒈졌다, 이 천마 새끼야!”
파밧!
천마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몸을 날리는 사무현과, 그런 사무현을 향해 빈틈없는 일도를 휘두르는 천마.
서로를 베어 내기 위한 살벌한 도초를 전개하는 이들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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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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