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사문회주가 보낸 장인들은 매일같이 사무현의 장원을 찾아왔다.
흑룡문의 무사들이 필요한 자재들을 공수해 주었기 때문에, 사도관도들은 장인들의 진두지휘하에 편하게(?) 힘을 쓰는 일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섬세한 손이 가야 하는 일들은 장인들이, 힘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은 사도관도들이 도맡아 하니 장원의 보수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애초에 몇 사람 몫은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무인들이 수십 명이나 달라붙었으니 속도가 나지 않으려 해도 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장원은 이윽고 제대로 된 형체를 갖추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막바지에 단계에 다다르고, 사무현은 마지막 중대한 결정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형님.”
“흐으음…….”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얼굴로 백지를 내려다보는 사무현.
그의 얼굴에는 고뇌와 번뇌, 갈등과 짜증의 복합적인 감정이 어우러져 있었다.
“……어렵네.”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한 마디가 사무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아……. 이럴 때는 누구한테 물어봐야……. 선배, 적월 선배 생각은 어때요?”
사무현이 고개를 돌리며 묻자 적월이 빙긋 미소를 머금는다.
“그런 것은 대표가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휴, 그럼 그렇지. 선배들한테 뭘 기대해, 나보다 못 했으면 못 했지 나을 턱이 없는데.”
“뭐, 뭐라! 당장 그 말 취소해라!”
한탄에 가까운 사무현의 중얼거림에 분개했는지 나혼수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앞으로 걸어 나온다.
“힘쓰는 것이라면 몰라도 머리를 쓰는 일 정도는……!”
“오, 그러면 나혼수 선배가 의견 한번 내 봐요. 그 좋은 머리로.”
“그…… 그거야 어렵지 않지!”
“오오!”
그의 대답에 사무현을 포함한 모두가 두 눈을 반짝이며 나혼수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에 최대한 자신 있게 백지 앞에 선 나혼수가, 붓 끝에 먹을 묻혀 백지 위로 가져간다.
쓰윽.
……꿀꺽.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나혼수의 붓으로 시선을 집중하는 이들.
하지만 당당했던 시작과는 달리, 백지에 점 하나를 찍은 나혼수는 석상처럼 굳은 채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후우.”
쓰윽.
결국 무엇 한 자 쓰지 못한 나혼수가, 천천히 붓을 들어 옆에 내려놓더니 사무현에게 고개를 돌린다.
“역시 이런 건 대표가…….”
“에라이!”
쾅!
쐐애액!
쿠당탕탕탕.
“……어우.”
사무현의 발에 걷어차인 나혼수가 호쾌하게 방문을 부수며 나가떨어지자, 몇몇 사도관도들이 그를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아니, 하필이면 문 쪽으로 날아가시네.”
“그냥 벽에 부딪히시지.”
“기껏 지어 놨더니…… 만드는 사람 따로, 망가뜨리는 사람 따로 있네.”
어…… 뭐지?
애들이 요 보름 사이에 많이 과격해진 것 같은 기분이…….
아니, 지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런 젠장.”
털썩.
나름대로 사도관 내에서는 머리 깨나 쓴다고 자부하던 나혼수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다시금 자리에 주저앉은 사무현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하아……. 이름 하나 짓는 게 이렇게 어려워서야.”
그렇다.
완벽하게 지어진 장원으로 보금자리는 마련되었고, 이제 사무현이 생각해 두었던 ‘사업’을 시작할 일만 남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
장원의 현판에 내걸, 그들 모두를 대표하는 이 집단의 이름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와 버린 것이었다.
“으으……. 다들 뭐 없냐? 의견 하나씩들 내 봐!”
“그렇게 말하셔도…… 글을 아는 놈도 얼마 없는데 어떻게 의견을 냅니까?”
“그냥 편하게 사도관이라고 하면 안 됩니까?”
“아니면 흑룡문은 있으니까, 흑호문은 어떻습니까? 광호채처럼.”
막휘의 뒤를 이어 손익패, 마우평이 한 마디씩 던지자 사무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는다.
‘글러 먹었네.’
글도 모르는 놈들이랑 문파를 대표할 이름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니.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깊은 한탄을 한 사무현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돌린다.
“야, 살암. 너는 글 알지?”
“당연한 말을…… 날 뭐로 보는 거냐?”
“그럼 네가 의견 좀 내 봐. 그래도 큰물에서 좀 놀았으니, 우리보다는 주워들은 게 많을 거 아니야?”
“그래도 되겠나?”
사무현의 물음에, 예상외로 반색을 하며 살암이 미소를 머금는다.
“하면 세상을 모두 피로 물들이겠다는 뜻으로 혈세문(血世門)이 어떻…….”
“거기까지, 넌 지금부터 입 열면 뒈진다.”
“……그러지.”
그렇게 살수 새끼의 입까지 틀어막아 버린 사무현이, 긴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상체를 기댄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 상황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고 있는 천마를 응시하는데.
“……뭐 없나?”
“설마 본좌에게 묻는 것이냐?”
“…….”
“흐음……. 본좌가 네 입장이었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천마도문(天魔刀門)으로…….”
“하아……. 관두자, 야! 현판 걸지 마! 다 때려치워!”
“알겠다.”
사무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청사.
난데없는 그의 행동에 사무현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는다.
“넌 갑자기 어디 가냐?”
“현판 떼러 간다.”
“…….”
“왜……?”
쾅!
쐐애애액.
쿠당탕탕탕!
“……쟨 왜 갈수록 멍청해지는 것 같지?”
먼저 나가 떨어졌던 나혼수의 위로 살포시 포개진 청사의 모습.
여기에 모두의 뜻을 대변하는 듯한 적사의 한 마디와 함께, 그들의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
풀썩.
“제엔장,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봉착할 줄이야.”
침소에 몸을 던지며 사무현이 투덜거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가 묘한 미소를 머금는다.
“정말 생각지 못했느냐?”
“뭐?”
“일전에 흑룡문주와 사문회주를 만나 연합까지 구축한 녀석이, 여태껏 이름 하나를 생각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으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냐?”
사무현이 미간을 좁히며 묻자 천마가 돌연 미소를 슥 지우며 말을 잇는다.
“여기까지 와서 시간 끌지 말라는 말이다.”
“…….”
“너를 따르는 놈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 때문에 흑룡문이니 사문회니 하는 하잘 것 없는 놈들과도 손을 잡은 것이겠지.”
“…….”
“아직도 네가 녀석들을 이끈다는 것에 막연한 겁을 집어먹고 있는 모양인데…… 너답지 않은 걱정은 집어치워라.”
……이 새끼.
가끔씩 느끼는 거지만 때때로 굉장히 예리해질 때가 있다.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그들의 대화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녀석의 통찰력은 사무현의 속마음 깊은 곳까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게 만든다.
결국 천마의 말에 정곡을 찔린 사무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새하얀 천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망설이긴 누가 망설인다고.”
“누가 뭐라고 해도, 저 녀석들을 한데로 모은 구심점은 너다.”
“…….”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중심이 흔들리면 결국 모든 것이 위태로워지는 법이다. 네가 진정으로 저놈들을 지키고 싶다면 네가 흔들려선 안 된다.”
“……알고 있어, 그 정도는.”
차마 반박할 수 없는 천마의 잔소리에, 결국 긴 한숨을 내쉰 사무현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처음 사도관을 나왔을 때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적룡채와의 싸움을 겪고, 적어채주라는 놈과도 싸우고 나니 이곳이 무림강호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체감되었다.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사무현의 선택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생각 하니, 선뜻 첫걸음을 떼는 것이 망설여졌던 것뿐이다.
“뭐, 어려울 것 있느냐? 그냥 뭐든 네가 내키는 대로 하거라. 하면 놈들이 알아서 따라올 것이니. 설령 그 결과가 나쁘다 해도 누구도 널 탓하지 않을 것이다.”
“…….”
“그것이 사파 아니겠느냐?”
천마가 히죽 웃으며 말하자 사무현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나아가지 않을 도리도 없다.
“……좋아.”
벌떡.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사무현이, 돌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긴다.
“아니, 갑자기 어디로 가는 거냐?”
“현판에 이름 쓰러.”
“뭐? 현판에 이름을? 네가 직접 말이냐?”
천마가 놀란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뜨자 사무현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래 봬도 난 소싯적에 글 좀 읽은 사람이거든.”
“……소싯적에 글 읽은 것과 이름 쓰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반쯤 꺾은 천마가 흥미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묻는다.
“이름을 정하긴 한 것이냐?”
“어려울 게 뭐 있어?”
“뭐라고 정했느냐? 쓰기 전에 본좌에게 말이나 해 보거라.”
혹여나 얼토당토않은 이름을 생각했을까 걱정되었는지 천마가 은근한 어조로 사무현을 부추긴다.
하지만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사무현은 목제 사다리 하나를 들고 정문에 걸린 현판 앞에 섰다.
턱.
사다리를 고정시켜 현판에 손이 닿는 곳까지 올라선 사무현이, 챙겨온 커다란 붓으로 큼직하게 글자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쓱, 쓰윽, 쓱.
잠시 후, 명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법 그럴싸한 글자가 새하얀 현판에 적혔다.
곧이어 거기에 쓰인 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천마의 눈이 크게 떠졌다.
***
째짹, 짹.
“오늘은 왜 다 이곳에 집합한 겁니까?”
“그냥 평소처럼 장원 안에서 하시지 않고.”
오늘 새벽 수련은 장원 앞에서 하겠다는 사무현의 말에, 사도관도들은 준비된 훈련 도구(?)들을 챙겨 장원의 입구에 모였다.
아직 어둑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풀고 있던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손익패가 현판 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어? 그런데 저건 뭡니까?”
“음……?”
손익패의 손가락질에 고개를 돌리자, 현판을 덮고 있는 커다란 천 하나가 모두의 눈에 들어온다.
“아니, 저런 게 왜 저기 있어? 재수 없게.”
아무리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현판이라지만, 명색에 그들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곳이 천에 가려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천을 치우기 위해 막휘가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장원의 문이 열리며 사무현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저벅저벅.
“오셨습니까! 형님!”
“어, 좋은 아침이다.”
한 손을 들어 보이며 모두의 인사를 받은 사무현이, 현판 앞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막휘를 발견하곤 눈썹을 추켜올린다.
“넌 거기서 뭐하냐?”
“예? 아……. 현판에 이상한 게 걸려 있어서요.”
“아, 그거 내가 걸어 둔 거야.”
“예? 형님이요?”
“어, 이제 됐으니까 치워.”
“아……. 예.”
사무현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 막휘가 한쪽에 놓인 사다리를 세워 현판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잠시 후 현판을 덮고 있던 천을 치워 버리자, 어제까지만 해도 깨끗하기 그지없던 현판에 쓰인 글자가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어……? 형님……. 이건?”
“글자도 모르는 녀석들을 위해서, 대표답게 내가 직접 읽어 주마.”
현판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는 모두를 빙 둘러보며, 사무현이 낮지만 힘이 실린 음성으로 말을 잇는다.
“사천방(思天房).”
“…….”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를 대표할 이름이다.”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사도관도들을 둘러보며, 사무현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이견은 받지 않는다.”
“…….”
“이상.”
“와아아아아!”
사무현의 말이 끝나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우렁찬 환호가 터져 나온다.
“사천방! 사천방!”
“야! 그럼 이제 대표 형님이 문주님이냐?”
“임마! 문주님이 뭐냐? 방주님이지!”
“크으……! 우리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웃고 떠들고 환호하며, 순식간에 흥분해 왁자지껄해진 사도관도들.
그때 어느새 다가온 살암이 사무현을 향해 미소를 머금으며 묻는다.
“한자(漢字)를 잘못 쓴 것이 아니냐?”
“응?”
“사천방(邪天房)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생각할 사가 아닌, 사파를 상징하는 사자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살암의 물음에 사무현이 피식 실소를 흘린다.
“뭐래? 지극히 의도한 건데.”
“음……?”
의아해 하는 살암의 시선에, 말없이 고개를 돌려 천마를 돌아보는 사무현.
한편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천마는 팔짱을 낀 채 그와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리 생각할 수밖에. 너와 나 이외에, 저 이름에 담긴 진짜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어디 있겠느냐?”
사무현과 천마에서 한 글자씩을 따 온 이름.
바꾸어 말하면 저 이름이 뜻하는 바는…….
‘네놈과 본좌의 방(房)이라는 뜻이구나.’
천마를 포함한 모두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지는 아침.
그렇게 사도관도들의, 아니 사천방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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