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어? 수련 중이었냐? 나중에 다시 올까?”
“……됐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이미 그 형언하기 어려웠던 오묘한 집중력은 흐트러졌다.
이대로 돌려보내 봐야 ‘대체 왜 온 것일까?’에 대한 의문만 머릿속에 떠오를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새 가부좌를 푼 막휘가 사무현에게 한쪽 자리를 권한다.
“여기 앉으시…….”
털썩.
“……지요.”
막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닥에 앉은 사무현이 막휘를 바라보며 말을 꺼낸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다. 상의할 게 있어서.”
“상의요?”
사무현의 말에 막휘가 두 눈썹을 추켜올린다.
언제 그가 자신에게 ‘상의’라는 것을 했던가?
질문을 제외하면 항상 통보만을 던져 오던 사무현이었기에, 어느새 막휘의 눈에는 호기심과 흥미의 기색이 반짝였다.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 한 달 뒤에 개문식을 하기로 했거든.”
“개문식을요?”
흑룡문주와 사문회주와 만나는 자리는 사무현이 단독으로 가졌기에, 아직까지 개문식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막휘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파가 그런 것도 합니까?”
“사파면 뭐? 어차피 돈 벌어서 먹고 사는 건 똑같은데, 홍보하려면 못 할 것도 없지.”
“뭐…… 그럴 수도 있겠군요.”
사무현의 말에 납득을 했는지 막휘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무현이 어떤 사업을 하려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어 보진 못했지만, 시작할 때 인지도를 쌓아 두어 나쁠 것은 없으니까.
“아무튼 그 개문식을 흑룡문주랑 사문회주가 도와주기로 했어. 홍보도 해 주고, 자리도 만들어 주고.”
“그렇게나 도와줍니까? 그러면 저희는 뭘 하면 됩니까?”
“안 해도 돼, 아무것도.”
“……예?”
생각지도 못한 사무현의 대답에,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던 막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원래의 얼굴로 돌아온다.
“……아니, 이번엔 대체 얼마나 패신 겁니까?”
“패긴 누가 패? 그쪽에서 알아서 해 주겠다고 한 건데. 아무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퉁명스런 막휘의 눈빛에 한손을 흔들어 보인 사무현이, 이내 의미심장한 얼굴로 묻는다.
“너, 장강수로십팔채 알지?”
“왜 모르겠습니까? 그 망할 놈들……. 가만, 설마 형님. 장강수로채도 모르십니까?”
“알아, 알아. 장강에서 설치는 수적들이라며.”
“……맞는 말씀이긴 한데.”
녹림과 함께 사파에서 가장 큰 세력이라거나, 구파일방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거나 하는 수식어들이 모조리 생략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튼. 장강수로채가 어쨌다는 말입니까?”
“그놈들이 남경 사파 놈들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하더라고.”
“수로채가 말입니까? 으음…….”
사무현의 말에 잠시 턱 끝을 매만지던 막휘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뭐……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습니다. 그러니 적어채주 정도 되는 녀석이 고작 호위 두 명만 데리고 남경 한복판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물론 그 호위가 보통 호위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적어채주 정도 되는 거물이라면 원한을 가진 이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남경 인근에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수적 떼의 수괴이니까.
그런 그가 남경 한복판을 그토록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은 이곳을 자신의 영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그 얘기는 왜 하십니까? 설마 장강수로채랑 싸워서, 남경의 사파 세력들에 대한 지배권이라도 가져오시려고요?”
“에이, 그건 아니지. 걔들이 우리한테 직접 덤빈 것도 아닌데 어떻게 걔들이랑 싸워? 그것도 장강에 떠다닌다는 애들이랑.”
“그럼요?”
“흑룡문주랑 사문회주가 우리를 위해 그렇게 노력하는데, 우리도 그 사람들 기는 죽이지 말아야 할 거 아냐?”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쪽으로 빠지는 사무현의 말에 막휘가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가로 기울인다.
그런 그를 향해, 사무현이 이윽고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녹림의 아들 막휘야.”
“……녹림왕의 아들입니다.”
“아무튼! 내가 듣기로는 녹림이랑 장강이랑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라며?”
“엎치락뒤치락이라니요! 누가 감히 녹림을 장강수로채 따위와 비교한다는 말입니까!”
막휘가 발끈하며 소리치자 사무현의 입가에 반가운 미소가 머금어진다.
“오, 너희들이 더 세?”
“물론이지요! 녹림은 칠십이 채! 수로채 놈들은 고작 십팔 채! 숫자만 봐도 상대도 안 되죠!”
……결국 자랑할 건 숫자밖에 없다는 소리 같은데.
뭐, 아무튼.
“크으…… 그럼 잘 됐네! 그것들이 적어인지 뭔지 하는 놈을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녹림에서 그만한 거물들로 모셔오면 되겠네!”
“그렇지요! 저희도 그만한 거물들을……. 예?”
그제야 사무현이 하려고 하는 말의 요지를 깨달은 막휘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뜬다.
“형님, 지금 그 말씀은 설마……?”
“개문식 초대장.”
“…….”
“세 장 준다.”
“…….”
“이 근처에서 명성 좀 떨치시는 적당한 분들…… 그런 분들로 세 분쯤만 모셔 보자.”
“아니……. 형님 이게…… 제가 아무리 소녹림왕이라도, 채주들을 남경까지 오라 가라 하는 건…….”
“어렵냐?”
“크흠……. 그…… 제 권한상 어렵다기보다는……. 녹림도 결국은 산적이지 않습니까?”
헛기침을 하며 멋쩍은 기색을 드러낸 막휘가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산적이 산을 떠나서 돌아다닌다는 건 대놓고 나 잡아 줍쇼, 하는 꼴인지라…….”
“수적들은 돌아다니는데?”
움찔.
“수, 수적들은 이곳이 제 놈들 영역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아하, 수적들 영역을 돌아다니는 게 무서워서 안 되겠다?”
움찔.
“무, 무섭다니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조금……!”
“쫄려서?”
“…….”
“수적 놈들하고 싸움이라도 날까 봐 겁먹어서?”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눈에 띄게 동요하는 막휘를 향해, 두 눈을 깜빡이며 노골적으로 도발을 던지는 사무현.
실로 빤하고 수준 낮은 그 도발에, 막휘가 피식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세 명이면 되겠습니까?”
“…….”
“어차피 기 죽이는 게 목표면 한 열 분쯤 부를까요?”
……세상에는 아무리 빤하더라도, 결코 받지 않을 수 없는 도발이 있기 마련이다.
***
구화산의 광호채.
앙숙 관계였던 적룡채와의 전투 이후, 평화가 계속되던 그들의 산채에 이른 아침부터 시끌한 소란이 벌어졌다.
그 이유인즉, 광호채를 들렀다 남경으로 떠난 소녹림왕이 그들 산채로 친히 서신을 보내온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 서신과 함께 도착한 것은, 다름 아닌 세 장의 초대장이었다.
“허어…….”
“무어라 쓰여 있습니까? 채주님.”
자신의 옆에 서 있던 부채주의 호기심 어린 물음에, 광호채주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서신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
“남경에서 사천방(思天房)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다음 달에 있을 개문식에 참여해 달라는 서신이구나.”
“예? 남경에서 열리는 개문식이요?”
생각지도 못한 서신의 내용에 부채주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소녹림왕께서 보내신 것이 맞습니까? 산적더러 어떻게 그 먼 곳의 개문식에…… 그것도 이 근방도 아닌, 강소의 남경이라는 생소한 곳을 돌아다녀야 하지 않습니까?”
“역시 무리라고 생각하느냐?”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곳에 녹림에 적개심을 품은 세력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는데, 산적이 산을 벗어나는 것은 금기 아닙니까? 소녹림왕께서 이를 모르실 리도 없을…….”
“남경에 수적 놈들이 판을 치고 있어 그렇다더구나.”
“가시지요, 채주님. 힘깨나 쓰는 애들부터 한번 싹 솎아내 볼까요?”
조금 전까지 만류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로채의 이름을 듣기 무섭게 부채주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의욕을 보인다.
새삼스레 녹림과 장강 사이의 감정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하며 광호채주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나 역시 가고 싶은 마음은 넘쳐난다. 저 간악한 수로채가 남경에 세력권을 펼치며 소녹림왕을 압박하고 있다면, 수하 된 입장에서 피의 보복이라도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나…….”
거기까지 말한 광호채주가 짧은 한숨을 내쉰다.
“아쉽게도 내게는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채주가 산채를 이끌고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녹림왕의 허가가 떨어졌을 때뿐이다.”
“하면 녹림왕께 허가를 받으시면 되는 일 아닙니까?”
“뭐라? 녹림왕께 허가를?”
“예. 어쨌거나 타지에서 고생 중이신 소녹림왕이신데, 이리도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해 오는 것을 금하실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으음…….”
수하의 지적에 광호채주가 그럴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적룡채주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막휘는 남경에서 거운산악이라는 거물마저 쓰러뜨렸다.
현재의 녹림은 미래의 녹림왕이 될 막휘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상태!
이럴 때 그들의 성공적인 개문식을 도와 남경의 주도권을 가져오려한다고 하면, 녹림왕 측에서도 거절의 답변이 돌아올 리 만무하다.
“……좋아, 지필묵을 가져와라! 녹림왕께 서신을 보낼 것이다!”
“예, 채주님!”
헐레벌떡 어디론가 뛰어가는 수하들을 바라보던 광호채주가, 탁자 위에 놓인 막휘의 서신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머금는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구나.’
그들의 소녹림왕이라면, 그리고 그가 속한 단체를 이끄는 흑풍도 사무현이라면 머지않아 강호를 떠들썩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저들은 광호채를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적어채주의 팔을 자르고 그의 수하들까지 쓰러뜨리는 사건을 만들어 냈다.
비록 이것이 강호 전체로 놓고 보았을 때 그리 대단한 사건이라 볼 수는 없겠지만, 모든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법!
‘부디 성공적인 개문식이 되었으면 좋겠군.’
사천방이 강호를 향한 첫걸음을 순조롭게 디딜 수 있기를 바라며, 조용히 막휘의 서신을 정리하는 광호채주였다.
***
끼이익. 끼익.
사방에 짙게 낀 안개.
넘실거리는 장강의 느릿한 물살을 거스르며 그리 크지 않은 나룻배 한 척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끼익. 끼이익.
“아직 멀었는가?”
초조함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사내의 음성.
나룻배에 탄 사내의 물음에, 양손으로 노를 저어 가고 있던 노인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거의 다 왔소.”
“거의 다 왔다니? 아무것도 안 보이지 않는가?”
“기다리시오. 곧 오실 거요.”
“곧 오시다니 무슨…….”
촤아아악. 촤아아악.
“……!”
갑작스럽게 안개 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물 가르는 소리.
한데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그 소리가 한 방향에서만 들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촤아악. 촤아아악.
“……아!”
어느새 사내의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배.
천천히 그 배의 돛을 확인하던 그때, 사내. 위평문주 조응(調鷹)의 눈이 불신으로 물든다.
“자네…… 분명 적어채주께서 날 찾으셨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셨소.”
“한데…… 저게 무엇인가?”
떨리는 위평문주의 손끝이 배의 돛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적어채와는 달리 푸른 물결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청수채(靑水釵)!”
장강수로십팔채 중에서는 세력이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는 청수채.
적어채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대체 왜 그들이 나타난 것인지, 위평문주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촤아악. 촤아악.
‘한 대 더 있다고?’
그 순간 자신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에 위평문주가 몸을 돌리자, 청수채만큼 가까이 다가온 거대한 또 한 척의 배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건!”
이번에는 적어채가 온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적어채를 상징하는 붉은 기가 아니었다.
“흑곤채(黑困砦)……!”
장강의 바람에 나부끼는 검은 깃발을 바라보며 위평문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청수채와 흑곤채.
양쪽 모두 그와 인연이 있는 배들이 아니다.
그렇게 위평문주가 긴장에 질린 얼굴로 입술을 깨물던 그때.
촤아아아악.
또 한 척의 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온다.
이쯤 했으면 됐지, 뭐가 더 남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위평문주가 고개를 돌리자, 지금껏 그가 찾고 있던 붉은 깃발이 눈에 들어온다.
‘……적어채!’
그를 이곳으로 부른 이가 도착했다는 사실에 위평문주가 환한 미소를 머금자, 잠시 후 적어채의 갑판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벅저벅.
우뚝.
강바람을 맞으며, 이전보다 조금 더 긴 듯한 머리를 휘날리고 서 있는 외팔의 사내.
그 어느 때보다도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적어채주의 등장에 위평문주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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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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