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길량(吉量)!”
“예, 문주님!”
흑룡문주의 부름에, 입구를 지키던 이들 중 가장 큰 덩치를 가진 무사가 고개를 숙이며 답한다.
“부르셨습니까?”
“장원 안에 대기 중인 무사들을 모조리 소집해라. 지금 당장 사천방으로 갈 것이다.”
“사천방에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기를 관리할 인원이…….”
“너를 포함해 다섯 정도가 어떻게든 버텨 보거라. 지금은 사천방을 이곳으로 안전하게 안내하는 것이 더욱 급하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타다다닷.
흑룡문주의 음성에서 심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인 길량이 장원의 무사들을 소집하러 재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괜찮겠지……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노력했지만 흑룡문주는 알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작정하고 사문회주를 건드렸다면, 자신이 직접 사천방으로 가는 그림을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어차피 외길이다!’
만일 장애물이 있다면 뚫고 가 버리면 그뿐!
다행히 개문식을 위해 준비한 이곳 장원은, 사천방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다.
결단 어린 눈으로 사천방이 위치한 산 쪽을 바라보며, 흑룡문주는 허리춤에 매어진 자신의 애도를 움켜쥐었다.
***
벌컥.
“후우우…….”
낡은 방문이 열리고, 약재 냄새를 훅 풍기며 초로의 노인이 방문 밖으로 걸어 나온다.
남경에서 삼십오 년째 의원 일을 해 오고 있는 허삼(許滲).
이제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의 얼굴 곳곳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미타불……. 환자의 상태는 좀 어떻소?”
방문 밖에서 서성이며 그를 기다리고 있던 승려의 물음.
아무리 승려복을 입지 않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 손에 쥔 염주도 그렇고 습관적으로 흘러나오는 불호도 그렇고 그의 정체를 스님이라 추측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스님이…… 술을 마시나?’
그를 기다리는 동안 목이라도 축이고 있었는지, 염불을 쥐지 않은 한쪽 손에는 마개가 따진 술병이 반쯤 기울어진 채 들려 있었다.
“아……. 예, 우선 위급한 상황은 넘겼고, 할 수 있는 조치도 다 취했습니다. 이제 의식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당혹스러움을 숨기고 최대한 덤덤하게 대답하는 허삼.
그의 대답에, 술병을 든 승려가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다행이로구려. 급소는 빗겨 나갔다지만 가벼운 상처는 아니라 걱정을 했는데…….”
“무공을 익히신 분인지, 일반 사람에 비해 육체의 회복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크게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알겠소, 하면 그리 알고 이것을 맡기리다.”
쩔그렁.
그러고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허삼에게 건네는 승려.
그것이 돈주머니라는 것을 깨달은 허삼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것을 받아 든다.
쓰윽.
“이것이 무엇입니까?”
“저기 쓰러진 이가 지니고 있던 것이오. 진료비는 거기서 알아서 챙겨 가시구려. 그리고 혹시 그가 깨어난다면, 목숨을 살려 준 이가 부처님께 공양을 좀 올렸으니, 돈이 좀 비어도 그러려니 하라고 전해 주시오.”
“아…… 예.”
……부처님께 공양?
그럼 저 술병이 설마……?
“크흠……. 하면 본승은 볼 일이 있어 가 보리다. 그리고 거기 쓰러진 환자에게 원한이 있는 이들이 찾아올지 모르니,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다른 환자들을 받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외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아미타불……. 그럼 본승은 이만…….”
그렇게 허삼을 향해 정중하게 합장을 해 보인 승려가, 그대로 몸을 돌려 정문을 나선다.
곧이어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빈자리를 바라보며 허삼이 중얼거린다.
“고승(高僧)인지 파계승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확실한 것은, 저만한 무인을 전투 중에 구출해 왔다는 것부터가 평범한 이는 아니라는 것.
그가 떠나며 남긴 경고를 떠올린 허삼이 재빠르게 그가 나선 대문을 걸어 잠근다.
혹여나 저 환자를 찾아다닐 이들이 이 대문을 넘지 못하도록…….
***
타다다닷.
문 밖에서 들려오는 분주한 발소리.
잠시 후 집무실에 앉아 있던 위평문주의 귓가에. 문 앞에 당도한 수하의 음성이 들려온다.
“문주님, 오명(誤銘)입니다.”
“음……. 들어오라.”
벌컥.
위평문주의 대답이 돌아오기 무섭게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가,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흑룡문주가 조금 전 막, 수하들을 이끌고 사천방으로 향했다는 보고입니다.”
“흠……. 그래? 다행이군. 미끼를 제대로 물었구나.”
계획했던 대로 순조롭게 일이 풀려가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위평문주가 이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질문을 이어 간다.
“하면 다른 문주들의 움직임은? 각자 준비를 잘하고 있느냐?”
“조혈단과 구호단, 귀창문은 반 시진 전에 매복 장소로 향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 다른 문파들도 이곳으로 합류하겠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잘 되었구나. 하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이려던 위평문주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다소 굳은 얼굴로 화제를 돌린다.
“흑검문 쪽의 소식은…… 어떻더냐?”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빌어먹을.”
오명의 보고에 위평문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욕지거리를 중얼거린다.
사문회주의 눈을 피해 은밀히 계획을 수립했고,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기 전에 가장 먼저 그의 신변을 처리했다.
그들을 감시할 눈을 잃어버린 흑룡문주가 직접 사천방으로 향하는 것까지, 모든 일은 그들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한데…….
‘일이 잘 진행되어 가는 와중에도 이런 알 수 없는 찝찝함이라니.’
계획대로 사문회주는 사라졌다.
하지만, 사문회주가 진짜로 죽었는지는 정작 그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다.
사문회주를 습격했던 흑검문주와 그의 수하들이, 무엇에 당한 것인지 뻣뻣하게 굳어 길가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한 것은 사문회주의 솜씨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문회주가 그 정도의 고수였다면 남경에서 그들의 입지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추측할 수 있는 결과는, 생각지도 못한 제삼의 인물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사문회마저도 사문회주의 신변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천방에게 알리기 위해 흑룡문주가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이겠지.
중간 과정에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큰 흐름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
‘더 망설일 것은 없다.’
해초는 자라나기 전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
저들에게 개문식은 부족한 입지를 조금이나마 확보할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겠지만, 그것이야 말로 스스로를 함정에 몰아넣은 최악의 수가 될 것이다.
“……오명.”
“예!”
“수하들을 집결시켜라. 개문식으로 갈 것이다.”
“존명!”
오명의 복명을 들으며 몸을 일으키는 위평문주.
어깨를 쫙 펴고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입가에는, 승자의 득의양양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
파바바밧!
샤샤샥!
산길을 빠르게 질주하는 삼십여 명의 무인들.
그들의 선두에서 내달리는 흑룡문주의 마음 한편에는 서서히 조급함이 번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사천방을 안전하게 데리러 가기 위해 너무 많은 무사들을 대동했다.
물론 여기서 인원을 더 줄인다면 전투가 벌어졌을 시 대응할 수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막상 산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니 저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을 개문식이 걱정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제발 상식을 넘는 행위는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하지만 문제는, 사문회주를 습격했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이 작정하고 선전포고를 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개문식을 물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개문회마저 수포로 돌아간다면 사천방과 흑룡문, 그리고 사문회의 입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성공시켜야만 한다!’
저들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사천방을 데리고 내려올 수만 있다면 만회의 여지는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한 흑룡문주가 수하들을 독려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 더욱 속도를 높여라!”
“예!”
흑룡문주의 명에 우렁차게 대답한 그들이 다 같이 속도를 높이던 그때……!
쐐애애액!
“……아니!”
갑자기 그를 향해 날아드는 섬뜩한 기세에, 놀란 흑룡문주가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추며 허리춤의 도를 뽑아 휘둘렀다.
콰과광!
“……크윽!”
촤지지직.
도신을 통해 전해진 묵직한 충격에, 허공을 붕 떠서 석 장 정도 밀려난 흑룡문주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잠시 후, 약 십여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낯익은 얼굴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야, 역시 제법이시구려, 흑룡문주. 설마 그렇게까지 깔끔하게 받아 낼 줄은 몰랐소이다.”
“……조혈단주!”
상대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 흑룡문주가 한쪽 눈썹을 꿈틀한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거리요!”
지금 자신을 향한 공격은 분명한 살초였다.
그 어떤 경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날아든 도기(刀氣).
상대의 의도가 훤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흑룡문주는 도무지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와 나 사이의 신의(信意)가 고작 이 정도였단 말이오!”
“쯧…… 뭘 그리 마음 아프게 말하는 거요? 흑룡문주. 누가 보면 우리가 처음부터 신의로 관계를 맺은 이들인 줄 알겠소이다.”
“이…… 이이……!”
“그렇지 않습니까? 구호단주.”
“맞는 말이군요. 어차피 우리의 관계는 결국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조혈단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구호단주.
그 모습을 본 흑룡문주의 두 눈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조혈단주 하나라면 모르지만, 구호단주까지 있다면 그 하나로 저들을 감당하는 것은 버겁다.
게다가 저들이 이끌고 온 수하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구호단주! 결국 당신마저 저들과……!”
“구호단주뿐만이 아니오.”
“……!”
흑룡문주의 외침에, 조혈단주를 중심으로 한 구호단주의 반대편에서 또 한 명의 사내가 걸어 나온다.
자신의 키보다도 훨씬 긴 화극(畵戟)을 치켜세우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흑룡문주가 낙담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귀창문주……!”
조혈단주와 구호단주, 귀창문주까지.
위평문주와 흑검문주를 제외하면, 현재 남경에서 가장 강한 축에 속한다는 이들 중 셋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다름 아닌 자신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에 흑룡문주가 입술을 깨물며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그들이 올 것을 알고 매복해 있던 수십여 명의 무사들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스슥. 쓱.
“이…… 이런……!”
“숫자가……!”
‘……빌어먹을!’
등 뒤에서 수하들의 동요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럴 수밖에.
언뜻 보기에도 매복을 했다 튀어나온 무사들의 수는 오십여 명을 훌쩍 넘는다.
흑룡문주가 이끌고 온 흑룡문도들의 두 배가 넘는 수였다.
‘더군다나…… 그 전력이 하필이면……!’
조혈단과 구호단, 귀창문.
과거 전성기의 힘을 보유했을 흑룡문이라도, 저 세 문파가 힘을 합했다면 승산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먼 거리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사천방에서 알아채고 도와주러 올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니, 결국 이대로 가면 결과는 너무도 빤하다.
꽈악.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도를 움켜쥐던 흑룡문주가, 이윽고 이성을 되찾고 그들을 향해 대화를 시도한다.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음?”
“위평문주만 이 자리에 없는 것으로 보아,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짐작할 수 있소. 적어채주가 위평문주에게 그대들을 통솔할 권한을 주었을 테고, 그대들은 저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순순히 이곳에 왔겠지. 그렇지 않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요?”
“세 문파에게 각각, 금자 이백 냥씩을 약속하겠소!”
흑룡문주의 외침에 조혈단주와 구호단주, 귀창문주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본다.
금자 이백 냥.
한 문파의 명운을 놓고 협상하기에는 애매한 액수지만, 전력의 손실 없이 가만히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이라 생각하면 상당한 액수다.
“우리를 그냥 못 본 척 보내 주시오! 우리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산을 올랐다 하면 저들도 더 추궁하진 못할 것이오!”
“……흐음, 이거 꽤나 재미있는 협상안이로구려. 다들 어찌 생각하시오?”
보란 듯이 명백한 조소를 머금으며 좌우를 돌아보는 조혈단주.
이에 귀창문주가 무덤덤한 얼굴로 흑룡문주를 향해 말을 꺼낸다.
“멍청한 시도는 안하는 것이 좋을 거요, 흑룡문주.”
“뭐…… 뭐라고?”
“아무리 발톱이 뽑혔다고는 하나 흑룡문은 아직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지. 그런 곳과 이렇게 대놓고 척을 지려 하는데, 우리가 그 정도 대가로 일을 벌였을 것 같소?”
귀창문주의 물음에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그들 셋을 바라보는 흑룡문주.
한순간 탐욕과 희열에 일렁이는 저들의 눈빛에, 대충 상황을 짐작한 흑룡문주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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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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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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