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
002화
“……강림을 위해 준비한 새 육체는 마음에 드시는지요?”
사무현에게서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자 다시 한번 말을 걸어오는 태상장로.
하지만 공손한 어투와는 달리, 사무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분명 알 수 없는 섬뜩함이 자리하고 있다.
‘……아무래도 의심받고 있는 눈친데?’
만약 저들의 의식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들킨다면, 강림의 도구였던 자신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다.
이에 사무현이 무슨 말이라도 뱉어보려는 순간, 그의 옆에 서 있던 천마가 삐딱하게 고개를 가로 꺾으며 말을 꺼낸다.
“얼씨구? 그간 교의 기강이 형편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군. 감히 본좌에게 저따위를 예의라고 갖추다니……. 살아생전 같았다면 목을 쳐 버렸을 것이거늘.”
‘……저따위 예의?’
“하기야…… 금단의 술법에까지 의존할 정도라면, 본 교가 어느 정도까지 무너졌을지 짐작할 만도 하군.”
‘금단의 술법……?’
천마가 흘린 말들을 곱씹으며, 잠시 더 침묵을 지키는 사무현.
그런 그의 귓가로, 어쩐지 묘하게 느껴지는 태상장로의 음성이 이어졌다.
“……혹,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어처구니가 없군.”
“……예?”
난데없이 사무현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싸늘한 한마디에, 그를 바라보던 태상장로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
“금단의 술법이나 행할 정도라면 본 교의 현 상황은 익히 짐작되는 바이지만, 기강마저 이리 형편없이 무너졌을 줄은 몰랐군. 지금 그것을, 본좌에게 예라고 갖추는 것이냐?”
저들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무현의 음성.
난데없이 바뀐 그 태도에 당황한 것도 잠시.
곧이어, 사무현과 두 눈을 마주하고 있던 태상장로가 그대로 바닥에 부복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쿵.
“천마재림! 만마앙복! 본 교의 태상장로 고극혈(高極血)이, 칠 대 천마를 뵈옵니다!”
“칠 대 천마를 뵈옵니다!”
태상장로의 말에 복창하며 함께 바닥에 부복하는 이들.
그 순간, 석실 구석 쪽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사내,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하하, 이거 재미있구나. 설마 지금, 본좌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냐?”
“…….”
“흐음……. 과연. 강림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널 살려 둘 이유가 없다는 뜻이구나. 나쁘지 않은 기지다.”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박수까지 치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 천마.
저 모습을 보니 괜한 짓을 한 건가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생겨나지만, 이미 시작된 모험이다.
귀신한테 쪽은 좀 팔리지만, 살려면 더더욱 확실하게 지르는 수밖에.
“한심한 것들. 만일 살아생전의 본좌였다면, 이 자리에서 네놈들의 목을 쳐 버렸을 것이야!”
“하하, 잘한다, 잘해.”
“소, 송구합니다. 실은, 혹여나 의식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아닐지 우려되어…….”
“듣기 싫다! 대체 네놈들은 언제까지 본좌를 이런 곳에 있게 할 생각이냐!”
“죄, 죄송합니다. 뭣들 하는가! 당장 구속부터 풀어드리도록 하게! 어서!”
“예, 예!”
태상장로의 명에, 당황한 듯 헐레벌떡 움직여 사무현의 손발을 구속한 만년한철 족쇄를 풀어내는 이들.
한편 석실 구석에서 팔짱까지 끼고 있는 천마는, 흥미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사무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
“……천마께 사죄를 청합니다. 혹여나 의식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를 생각해, 부득이하게도 천마를 시험하는 대죄를 저질렀습니다.”
“음…….”
눈앞에 고개를 숙인 태상장로의 변명에, 무심한 얼굴로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무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어 태연함을 가장하긴 했지만, 사실 그의 속마음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말 한마디만 실수해도 목숨이 위험하다.’
저들과 현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만큼, 쓸데없는 대화가 이어지면 어설픈 연기의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
그 때문에 사무현은, 이 호화전각에 도착한 이후에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심기 불편한 기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되었으니 나가 보라. 한동안은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다.”
“존명.”
천마의 권위가 절대적인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처음과는 달리 아무런 의심 없이 포권하며 물러서는 태상장로.
그렇게 허리를 숙인 채 뒷걸음으로 물러나던 태상장로가, 문득 생각이 미쳤는지 사무현을 향해 고개를 들며 말을 꺼낸다.
“아, 혹여나 필요하신 것이 있으실지 모르니, 옆에서 모실 수하들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다. 한동안은 스스로 정리할 것들이 있으니, 귀찮게 하지 말고 모두 밖으로 데리고 나가도록.”
“알겠습니다. 하오면 전각 밖으로, 최소한의 경계를 위한 수하들만 배치해 두겠습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불러 쓰도록 하소서.”
“그러도록 하라.”
“예. 하면 저는 이만…….”
그렇게 사무현을 향해 한 차례 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가는 태상장로.
잠시 후 그와 그의 수하들로 판단되는 인기척이 처소에서 멀어지자, 숨죽여 안도의 한숨을 쉰 사무현이 고개를 돌려 침상을 응시한다.
호화로운 적색 비단으로 장식된 널찍한 침상 위에는, 조금 전 석실 구석에 서 있던 천마가 천하태평한 자세로 드러누워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볼일은 모두 마쳤느냐?”
……저게 진짜 천마라고?
중원 무림을 대표한다는 고수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마도천하인지 뭔지까지 이룩했다는 전설적인 괴물 천마?
“……너 진짜 천마 맞냐?”
“하하, 물론이다. 본좌가 뭐 하러 네게 거짓을 말하겠느냐?”
“네가 이백 년 전에 무림을 지배했다는 그 천마라는 말이지?”
“흐음……. 본좌가 죽고 이백 년의 시간이 흘렀느냐? 뭐, 시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중원 무림을 피로 물들였던 과거는 분명히 본좌의 것이다. 물론 본좌 외에도 그런 일을 벌인 천마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만…….”
스스로에 대한 넘치는 자부심을 말해 주는 듯한 오만한 미소.
저런 것을 보면 또 저놈이 그 천마가 맞는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확실한 것은, 저놈이 진짜 천마라면 어떻게든 저놈을 이용해야만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다.
‘어떻게 저놈의 협조를 받을지가 문제라면 문제지만…….’
사무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천마가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그를 향해 말을 꺼낸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본좌에게 그따위 시건방진 말투를 사용할 테냐? 본좌의 후손이라면 마땅히 본좌에게 그만한 예를 갖추어야 할 터.”
아하, 그렇지.
내가 살아야 된다는 생각만 하느라 그걸 생각 못 했네.
저 천마인지 뭔지 하는 분이, 저 빌어먹을 마교 놈들의 조상님 중 하나셨지?
“거…… 천마라고 말을 좀 막하는 경향이 있네?”
“음……?”
“네 그 잘난 후손들한테 영문도 모르고 납치당해서 삼 년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바로 얼마 전까지는 누구의 영혼을 받아 내는 그릇으로 이 한 많은 생을 마감할 뻔했는데, 그런 사람한테 예의? 예으이? 이게 귀신이라고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어금니까지 뿌드득 갈며 살벌하게 노려보는 사무현의 기세에 눌렸는지, 천마가 머쓱한 미소를 머금으며 슬쩍 그의 시선을 회피한다.
“뭐…… 말투 같은 것은 아무려면 어떻겠느냐?”
“한 번만 더 같지도 않은 소리 지껄여 봐. 확 그냥 천도재를 지내 버릴라니까.”
“천도재? 안되었지만 그런 것으로 승천하기에 본좌는…….”
“뭐? 계속 말해 봐.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죽은 것도 서러운데 너무하네, 정말. 이라고 중얼거리는 천마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사무현은 과감히 무시하며 탁자 옆에 놓인 의자에 자리했다.
“후우……. 자, 아무튼 이제 둘만 남았으니 이 상황을 좀 정리해 보자. 거기 맞은편에 앉아 봐.”
“아니, 본좌는 이쪽이 더…….”
“앞에 앉으라면 앉으시라고요. 침상에 반쯤 드러누운 상대랑 대화하는 내 기분은 생각도 안 하시나? 본인이 그러니 후손들이 금단의 술법이나 행한다고 엄한 사람이나 납치하지!”
“끄응…….”
맺힌 게 많았는지 반쯤 이성을 잃은 사무현의 눈빛에, 결국 마지못한 듯 앓는 소리를 낸 천마가 몸을 일으켜 그의 맞은편에 자리한다.
망가져 버린 자존심 때문인지, 못마땅한 얼굴로 한마디를 덧붙이긴 했지만.
“……살아생전의 본좌였다면, 네놈은 내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야.”
“아, 물론 그랬겠지. 그런데 지금은 죽었잖아?”
“…….”
“자, 그럼 시작해 보자.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냉정하기 그지없는 말로 천마의 투덜거림을 막아 버린 후, 두 눈을 번뜩이며 천마를 응시하는 사무현.
이에 반쯤 삐딱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천마의 입가에도, 어쩐지 묘한 서늘함이 느껴지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
“하아…….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어느새 지끈거려 오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사무현이 말을 이었다.
“일단 너는 천마고, 네 후손들이 펼친 금지된 술법으로 내 몸에 강림했다?”
“그렇지.”
“그런데 내 몸에 봉혼술…… 그러니까 장군귀를 봉인하기 위해 도사들이 펼쳤던 그 봉혼술 때문에, 네가 내 몸을 빼앗는 데 실패하고 붙잡혀 버린 신세가 됐다?”
“그렇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말을 내가 이해했다는 사실이 기쁜 건지, 아니면 그냥 선천적으로 저런 놈인 건지.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의 모습.
정말 저놈이 중원에서 아직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된다는 그 천마라니…….
하지만 놈과의 대화 끝에도 몇 가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한데.”
“무엇이 말이냐?”
“너…… 분명 널 죽인 녀석하고 동귀어진…… 그러니까 함께 죽고 죽였다고 했지?”
“그래. 분명히 그것이 본좌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분명, 천마는 이백 년 전에 일대일 대결에서 패해 죽었다고 했거든.
물론, 산적 막내 노릇을 할 때 귀동냥으로 슬쩍 들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감히 누가 그따위 헛소문을 퍼뜨리느냐! 분명 그 승부에서 이긴 것은 본좌였다!”
“……좀 전에는 같이 죽었다며?”
“흥, 동귀어진이라 하더라도 다 같은 동귀어진이 아니지. 본좌는 놈과의 싸움 이전에 여섯 명의 화경급 고수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좌의 천마도가 먼저 놈의 심장을 꿰뚫었지. 본좌는 놈을 죽인 후, 소진된 진원진기와 과다한 출혈로 목숨이 끊어진 것이다.”
“아…… 그래?”
……결국 뒈진 놈이 허세는.
그래. 아무튼, 뭐 이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는데…….”
“무엇이냐?”
“지금 네가 내 몸의 봉혼술에 잡혀 있다고 말했지? 그러면 전까지 봉혼술에 잡혀 있던 장군귀는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봉혼술에 잡혀 있으면서 어떻게 내 눈에는 보이는 건데? 빙의는 안 되면서.”
이것이 가장 큰 의문점이다.
장군귀조차도 어쩌지 못했던 봉혼술 때문에 빙의도 실패했다면서, 대체 왜 이놈이 내 눈앞에 이렇게 얼쩡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다는 말인가?
다른 마교도 놈들이 이놈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혼령인 것이 분명하기는 한데. 아무튼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든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사무현의 의문점에, 천마는 기다렸다는 듯 팔짱을 끼며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머금는다.
“혼령에도 격이 있는 법이다. 빙의까지는 무리지만, 봉혼술의 힘을 억누르며 현신화하는 것 정도는 본좌에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약간의 피곤함은 감수해야 한다만…….”
“장군귀는 안 되지만, 너는 된다?”
“말하지 않았느냐? 혼의 힘은 살아생전 이룩한 자신의 업에 따라 그 격이 바뀌는 법. 살아생전 장군이었던 귀(鬼)라고 한들, 중원 전역을 피로 물들였던 본좌에 비할 수는 없지.”
……사람 많이 죽인 게 자랑이다, 이 새끼야.
“……그래? 그럼 장군귀랑 너랑 사이좋게 내 몸속에 공존하고 있는 거냐?”
“아, 그건 아니다. 지금 네 봉혼술에 잡혀 있는 것은 본좌 하나뿐이다.”
“뭐? 그럼 장군귀는?”
“소멸되었다. 감히 어찌 그런 잡귀가 본좌와 한 육체에 공존할 수 있겠느냐?”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사무현의 몸에 봉인된 귀는 그리 어설픈 잡귀가 아니다.
나름대로 인근에 고명하다는 도사들이 모여, 수일간의 노력 끝에 결국 봉혼술로 잠재운 장군귀.
오죽하면 도사들이 떠난 후에도, 언젠가 봉인에서 풀릴지 모를 장군귀를 걱정한 식구들이 사무현을 내버리기까지 했겠는가?
사실상 해결 방법이 없어 언제 도질지 모를 지병처럼 생각하던 장군귀가, 고작 저런 허술해 보이는 놈한테 소멸당했다니…….
“너한테 소멸되었다고? 장군귀가?”
“음…… 네 몸에 들어간 순간, 일수로 찢어 소멸시켜 버렸지.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손맛이었느니라.”
그 말과 함께, 마치 맛 좋은 음식이라도 회상하는 듯한 황홀한 미소를 머금는 천마.
그 모습에, 오싹 소름이 끼친 사무현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집어 삼켰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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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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