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0
020화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사무현의 눈빛에 뭘 더 바라냐는 듯 퉁명스레 덧붙이는 천마.
이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멍하니 서 있던 사무현이,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천마에게 다가간다.
“……이런 미친 새끼가.”
“워워, 진정해라.”
“워워는 지랄. 내가 소냐? 이게 어디서 이 심각한 상황에 말장난을 쳐? 또 뒈지고 싶어서?”
“말장난이 무엇이냐? 너에게 죽을 본좌도 아니지만, 그런 시답지 않은 짓을 할 본좌는 더더욱 아니다.”
“아니면 뭔데? 설마, 정말 그것만 가지고 신병이라고 들이민다고? 단단하고, 무거운 거?”
“그럼, 거기서 더 무엇을 바랄 것이 있느냐?”
“……뭐?”
……이 새끼 이거 진심인가?
실로 당당한 천마의 반문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사무현.
그런 그를 향해, 어느새 다시 사뭇 진지한 어조로 천마가 말을 잇는다.
“모르는 것 같은데, 도(刀)는 그저 상대를 베기 위한 무기다.”
그 정도는 이제 나도 안다, 이 새끼야.
“무기의 좋고 나쁨은, 얼마나 그 목적에 최적화되어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렸다. 천마도가 신병이 될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아, 잠깐, 잠깐.”
한쪽 손을 휘저으며 혼을 실은 천마의 설명을 끊어 내는 사무현.
이에 천마의 미간이 슬며시 좁아진다.
“무엇이냐? 본좌가 설명하는데.”
“단단해서 좋다는 건 뭐…… 그러려니 하겠어. 아마도 좋은 철을 썼다는 의미겠지. 그런데, 무거워서 좋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이냐?”
“하하, 멍청하기는. 그걸 모르겠느냐?”
“…….”
“무기를 쥔 본인에게도 무거울 정도의 무게라면, 도를 휘둘렀을 때 받아 내는 상대는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아.
그것참, 너무 대단해서 상상하지도 못한 이점이네.
“야! 이…… 그럴 거면 그냥 만년한철 덩어리를 들고 다니지! 왜 신병이니 뭐니 하면서 도를 들고 다녀? 단단하고, 무겁고!”
“그래, 맞다. 만년한철.”
“……뭐?”
“극도로 순수한 만년한철 덩어리를 약 일만(一萬) 번 두드려 지금의 모양이 되었지. 그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만년한철 그 자체로 만들어진 도가 바로 천마도다.”
아하……. 그랬구나.
이제야 의아했던 모든 의문점이 풀린다.
왜 도신이 저렇게 크고 두꺼운지.
왜 손잡이는 저렇게 천으로만 휘휘 감아 놓은 것인지.
도신의 모양새는 어찌 저렇게 투박하기 그지없는지.
대체 어떤 장인이 어떤 생각으로 만든 것인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그 장인이 바로 저놈이었어?
“이런 젠장, 그럼 그렇지! 이거 네가 만든 도였냐!”
“당시 본교 최고의 장인이었던 오독수(烏篤手)의 작품이다. 본좌가 도신의 모양을 내는 것과 망치질은 좀 거들었지만…….”
“어차피 철에다 망치질만 해서 만든 거라며, 이 미친놈아!”
결국은 지가 거진 다 만들었다는 소리네!
에라, 그럼 그렇지.
저런 단순무식한 무기를 신병이라고 박박 우기며 싸고돌 때 알아봤어야 했다.
말은 또 그럴싸해서 설득당할 뻔했네.
“난 또 뭐 대단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고 좋아했네. 에이, 잠이나 자야지.”
“이, 이놈이? 지금 감히 본좌의 천마도를 무시한 것이냐?”
“무시? 이제야 본연의 가치를 직시했다고 봐야지.”
“본연의 가치? 하! 도(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무엇을 안다고……!”
“무, 무지렁이? 말 다 했냐?”
“다 하지 못했다! 자, 어서 잠들어라! 오늘은 네게, 도가 무엇인지 본좌가 제대로 가르쳐 줄 것인즉!”
“그렇게 말하면 쫄 것 같냐? 오늘 기필코 네 대가리에 칼침 꽂는다! 딱 기다려라!”
그러고는 부리나케 침소에 몸을 뉘어, 씩씩거리며 눈을 감는 사무현.
천마 역시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다 이내 허공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런데…… 나 뭔가 잊은 기분이…….’
……아!
탈출은……?
뒤늦게 본래의 목적이 떠올랐으나, 천마는 사라졌고 오늘은 이미 글렀다.
‘……일단 한 방 먹이고 나서, 그다음에 고민하자.’
분노는 두려움을 이겨 낸다고 했던가?
어느새 현 상황에 대한 초조함은 말끔히 뒤로 넘겨 버린 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잠을 청하는 사무현이었다.
***
“……아.”
“계속 덤벼 보겠느냐?”
입가에 특유의 오만방자한 미소를 머금고는, 느긋하게 좌수도의 끝을 겨누는 천마.
한편 만신창이나 다름없게 두들겨 맞은 사무현은, 바닥에 드러누워 대(大)자로 뻗어 있다.
“망할……. 정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하하, 말하지 않았느냐? 정파 놈들이 그토록 떠들어 대는 정(正) 또한 힘을 기반으로 세워지는 것. 결국 힘을 가진 자의 뜻이 곧 정의가 되는 법이다.”
……결국은 지가 정의라는 말이네.
그게 천마신교의 대마두로서 할 소리냐?
“끄응……. 저런 악(惡)을 상대로 자기 뜻 하나 관철하지 못하다니. 새삼 우울해지네.”
결국 더 이상 덤비는 것을 포기한 사무현이 항복의 의미로 도를 내려놓으며 상반신을 일으키자, 천마도 겨누고 있던 도를 회수하며 피식 실소를 흘린다.
“너무 그럴 것 없다. 본좌를 상대로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킬 수 있는 인물은, 무림의 역사를 뒤져도 그리 많지 않을 테니.”
“결국은 또 지 자랑.”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를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만드는 길이다.”
“아예, 어련하실까요.”
승자의 조롱과도 같이 들리는 천마의 말을 한쪽 귀를 후비며 흘려 버린 사무현이 그를 올려다보며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자, 그럼 뭐, 정의인지 뭔지는 네가 하는 거로 하고.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음?”
“네 말대로 천마도가 신병인지 뭔지라 치자고. 그 무기가 있으면 탈출이 가능하다며?”
“……흘려듣지는 않았구나.”
사무현의 바뀐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천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말대로 천마도가 있다면 탈출은 가능하다. 물론 이후에 닥칠 여러 가지 변수에도 모두 대응할 수 있다는 확신은 할 수 없다만…… 그 부분은, 네가 얼마나 해낼 수 있느냐에 달렸겠지.”
“뭐, 어떤 계획인 건데?”
“계획은 내일 직접 행동하며 설명하는 것으로 하고……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확인?”
“도를 들고 일어나 봐라.”
“……갑자기 뭔데?”
천마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 사무현이, 옆에 놓인 천마도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설마 또 대련이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것이지.”
“현실적?”
“그래. 그 도로, 내 목을 내려쳐 봐라.”
음……. 지금 뭐 잘못 들었나?
“지금…… 뭐라고?”
“내 목을 내려쳐 보라는 말이다. 그 도로.”
천마의 당당한 한마디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사무현.
그러나 이내, 피식 실소를 흘리며 도신을 어깨 위에 걸친다.
“지금 장난치는 거냐?”
“왜, 못 하겠느냐?”
“못 하는 게 아니라…….”
“네 도가 내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느냐?”
“…….”
“물론 수준의 차이도 극명하겠지. 하지만, 장담컨대 거기서 네 실력이 더 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네 심약한 마음이, 네 도를 너무도 정직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지.”
……심약하고, 정직하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사무현의 얼굴에, 천마가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말을 이었다.
“몰랐느냐? 네 도는 언제나 급소가 아닌 부위만을 노린다. 간혹 초식대로 급소를 노리는 공격을 하게 될 때면, 반사적으로 힘을 억제해 도를 무디게 만들지. 그것은 실전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아주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거야…… 네가 진짜로 죽어 버리면 탈출을 할 수가…….”
“이곳에서 너에게 베인들 난 소멸하지 않는다. 네가 들고 있는 도 또한, 결국 내 심상(心想)으로 만든 허상일 뿐이기 때문이지.”
“…….”
“알겠다면 한번 날 베어 봐라. 베어도 죽지 않는 나를 못 벨 정도라면, 탈출해서 너를 쫓아오는 이들을 벨 수 있겠느냐?”
그 말과 함께, 자신의 도는 바닥을 향해 늘어뜨리고 목선을 쭉 뽑아 드러내는 천마.
그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잊고 있던 사무현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어깨에 걸치고 있던 도를 내려 천마를 향해 겨누었다.
“……네가 나를 너무 무르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
“난 내 목숨을 노리는 것들도 베지 못할 만큼 나약한 사람은 아니야. 베어도 죽지 않을 너를 못 벨 사람도 절대 아니고. 알아?”
“좋은 마음가짐이구나. 하면 베어 봐라. 연습 삼아.”
“……못 할 것도 없지.”
스윽.
천마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사무현.
천마는 얼마든지 베어 보라는 듯, 여전히 처음과 같은 자세로 사무현을 기다리고 있다.
그 모습을 잠시 동안 지켜보고 있던 사무현이 입술을 꽉 깨물며 그를 향해 내달렸다.
타다다닷.
“으라앗!”
부웅!
그야말로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천마의 목선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사무현의 일 도(一刀).
이에 천천히 고개를 내린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사무현을 응시한다.
그리고…….
촤좍!
“……어?”
풀썩.
한순간, 한 줄기의 섬광이 사무현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고는 그대로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린 사무현.
어느새 자신의 도를 치켜들고 있는 천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무현은 깨달았다.
지금, 그는 천마에게 베인 것이다.
“너…… 갑자기…….”
“삼 촌.”
“…….”
“거기서 삼 촌을 더 나아가야만, 제대로 상대의 목숨을 끊을 수 있다.”
“……아.”
“그러지 못하면 네가 죽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그 말과 함께, 냉담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사무현을 내려다보는 천마.
이에 한순간 압도당한 사무현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시선을 회피한다.
“네가 눈을 뜨고 난 후…… 내일부터 탈출 계획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지금부터 깨어날 때까지 남은 시간은, 스스로의 각오를 다지는 데 쓰도록. 실전에서는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저벅저벅.
그 말과 함께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겨 사라져 버리는 천마.
이후 한참 동안이나 사무현은,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어두운 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아.”
빛이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햇빛.
조금 전까지 이공간 속에서 끝없는 질문과 상념을 되풀이하던 사무현이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음을 자각했다.
‘……아침인가.’
아니, 어쩌면 이미 낮일지도.
평소보다 길게 들어온 햇빛으로 보아 충분히 신빙성은 있는 추측이다.
“후…….”
그렇게 짧은 숨을 내쉰 사무현이 몸을 일으키는데, 그의 옆에 평소와 다름없는 천마가 태연하게 앉아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인에게 긴 잠은 사치거늘. 이제 일어난 것이냐?”
……그게 내 잠을 강제로 없애버린 놈이 할 말이냐?
어처구니가 없어 잠시 천마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어느새 침소에서 빠져나온 사무현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창가로 향한다.
흐음……. 햇빛 좋고, 공기 좋고.
‘……풍경도 좋고.’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 천마신교 놈들의 근거지가 되기에는 꽤나 아름다운 절경이다.
이제 천마의 계획대로라면, 이렇게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되리라.
“각오는 된 것이냐?”
“……조용히 좀 해 봐라, 쫌.”
자식이, 마지막 날인데 분위기도 못 잡게 하네.
‘아무튼…… 어떤 의미로든 마지막이라는 말이지.’
살아서 탈출하건, 탈출하다 실패해서 목숨이 날아가건.
이곳에 납치당해 온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꿈꾸었던 순간이지만, 솔직히 사람인데 가슴 한구석이 쫄깃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마 저놈이 없었다면 더했을 테고.’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 천마라는 놈이 갖고 있는 끝없는 오만함과 여유는 함께 있는 사무현에게마저 전파돼 불안감을 잊게 만든다.
저런 괴물 같은 놈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
새삼스러운 눈빛을 담아 자신을 바라보는 사무현의 모습에,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아침부터 영 못 볼 것을 보는군. 본좌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차라리 욕을 하거라.”
역시…… 든든하기는 하지만 좋아할 수는 없는 놈이다.
저 새끼를 성불시키기 위해서라도 내가 꼭 탈출해야지, 아암.
“칠 대 천마이시여,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오, 식사 좋지. 어서 들이거라.”
“……오늘의 탈출 계획은 포기한 것이냐?”
별다른 대꾸 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사무현의 모습에,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는 천마.
이에 피식 실소를 흘린 사무현이 천마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미리 말해 두는데, 밥 먹을 때 시끄럽게 하지 마라.”
“하…… 뭐라?”
“여기서 하는 마지막 식사니까.”
사무현의 대답에 실린 진심을 느꼈는지, 못마땅해져 있던 천마의 미간이 풀어지며 한쪽 입꼬리가 흡족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렇게 하지.”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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