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아.”
등장과 동시에 모든 이들의 움직임을 멎게 만든 장본인.
사무현의 얼굴을 바라보는 흑룡문주의 눈에 불신과 희망의 빛이 떠오른다.
“사…… 사천방주님……!”
“뭐, 뭐라고?”
“저자가…… 사천방주?”
흑룡문주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좌중이 웅성거린다.
흑룡문주와 흑룡문도들을 제외하면, 여기 있는 이들 중 사무현을 직접 본 이가 없다.
지금까지 그에 대한 무성한 소문만 들었을 뿐.
단 한 번도 그의 실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이도 없었다.
그랬던 이들이, 오늘 처음으로 소문의 주인인 사무현을 마주했다.
……꿀꺽.
‘조혈단주를 일격에……!’
평소라면 기습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전장.
언제 날아들지 모를 공격에 감각을 끌어 올리고 있었을 그가, 변변한 저항도 못 하고 당했다는 것은 그들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그들이 잠시 동안 멍하니 사무현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끄…… 끄으으윽…… 크윽……!”
“아……!”
폭발의 여파로 인한 먼지가 걷히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조혈단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격전을 치른 흑룡문주와 비교해도 별반 나을 것이 없는 모습.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도를 움켜쥔 조혈단주가, 비틀거리며 경악 어린 얼굴로 사무현을 바라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뭐야, 깨어 있었어?”
놀랐다는 듯 두 눈썹을 추켜올리며 조혈단주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사무현.
살아있다는 건 예상했지만 그가 다시 일어날 줄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받아 낸 건 알고 있었는데…… 여태껏 조용하길래 기절한 줄 알았네.”
거기까지 말한 사무현이 조혈단주에게로 발걸음을 내딛자,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더니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가…… 가까이 오지……!”
저벅.
스륵.
조혈단주가 물러나려 하자, 그의 뒤쪽에 서 있던 귀창문주와 구호단주가 앞으로 나선다.
당장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스럽긴 했지만, 여기서 기세가 죽는다면 전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까닭이다.
“정신 차리시오, 조혈단주.”
“그래봐야 상대는 하나 아니오?”
나름대로 이성을 유지하는 이들과는 달리 조혈단주의 눈동자는 초조함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무…… 무슨 소리를……! 저, 저건 괴물…….”
쿵!
“……큽!”
“크헉……!”
“컥……!”
조혈단주가 횡설수설하며 계속해서 물러나던 그때, 사무현을 중심으로 거암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와 주위의 모든 이들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털썩.
풀썩.
무사 중 대다수가 사무현의 기세를 이겨 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조혈단주 역시,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끄급……!”
“큽……!”
그런 이들과는 달리 입술을 꽉 깨물며 필사적으로 버티고 서 있는 구호단주와 귀창문주.
하지만 말 그대로 버티고 있는 것뿐. 지금 사무현의 기세를 마주한 순간 그들은 자신들에게 승산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적어채주에게서도 느껴 보지 못한…… 아니, 태어나서부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위압감.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괴물을 상대로, 이미 기세를 빼앗긴 그들에게 승산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지금 버티고 있는 것은,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죽는다는 본능이 만들어 낸 최소한의 저항일 뿐이다.
그렇게 바짝 굳어 무기만 움켜쥐고 있는 그들을 향해 사무현이 가까이 다가온 그 순간.
저벅저벅.
우뚝.
“……야.”
“……크윽!”
“비켜.”
오싹.
털썩.
풀썩.
무심한 사무현의 경고에, 순간 온몸의 힘이 풀린 귀창문주와 구호단주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러고는 혹여나 사무현의 기세에 거스를세라 바닥을 기듯이 다급히 그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그리고 이런 기가 막힌 상황을, 조혈단주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뭐하냐?”
“…….”
“무기 안 들어?”
완벽하게 전의를 상실한 조혈단주를 내리깔아 보며 천마도의 도 끝을 겨누는 사무현.
이에 벌벌 몸을 떨던 조혈단주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호소한다.
“아…… 아니…… 살…… 살려…….”
“아, 살려 달라고?”
친절하게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해서 읊어 주는 사무현.
이에 조혈단주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사무현의 입가에 차가운 냉소가 머금어진다.
“싫은데?”
“……아.”
“이 새끼. 이거, 생각보다 더 뻔뻔한 놈이었네?”
말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사무현의 입에서 숨길 수 없는 실소가 흘러나온다.
“너 그 말을, 조금 전에 흑룡문주가 너한테 했으면 뭐라고 했을 건데?”
사무현의 물음에 할 말을 잃은 조혈단주가 마른침을 삼킨다.
그 상황에서 그가 무어라 했을지는 굳이 생각할 것도 없으니까.
애초에 죽이려 습격한 상대를, 그것도 같은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를 상대를 살려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대로라면 죽는다.’
그것도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조혈단주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오른손 아래 떨어져 있던 도를 움켜쥐었다.
혹여나 상대에게 걸릴세라,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뭐 하냐? 잡았으면 안 휘두르고.”
“……!”
“쯧쯧……. 그렇게 느려 터져서야, 눈 감고 속아 주려고 해도 못 속아 주겠네.”
한심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무현의 눈빛에, 조혈단주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술만 깨무는 순간이었다.
“자, 잠시만 멈춰 주십시오!”
난데없이 울려 퍼진 흑룡문주의 외침에, 사무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돌린다.
“몸이나 좀 추스르고 계시지, 무슨 일이세요?”
“저……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다급히 사무현의 앞으로 걸어 나와 그를 향해 포권을 해 보이는 흑룡문주.
그런 그를 향해 사무현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예? 기회요?”
“……예.”
포권을 풀고 고개를 끄덕이는 흑룡문주의 눈에는, 사무현을 향한 더 없는 존경과 감사가 가득했다.
‘나조차 완전히 잘못 판단하고 있었구나……!’
남경의 다른 사파들은 사무현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적어채주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사무현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적어채주 정도는 문제가 아니다!’
무기 한번 휘두르지 않고, 오직 기세만으로 세 명의 절정급 고수들과 수십 명의 무사들을 제압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가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고수일 리 만무(萬無).
아직 제대로 증명할 기회가 없어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의 무위는 어쩌면 저 음지 삼왕이라 불리는 이들과도 견줄 수준에 올라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흑룡문주가 사무현을 따르겠다 한 선택은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 남경을 넘어서, 사천방이 강소 제일 세력이 될 가능성을 본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어느새 사무현에게서 시선을 떼어 낸 흑룡문주가, 이 상황을 의아한 듯 지켜보는 조혈단주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저 녀석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예?”
“제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확신 어린 흑룡문주의 음성.
물론 사무현의 무위로 저들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니, 사실상 이미 제압한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사무현이 아닌, 사천방이 진정한 남경의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래선 안 된다.
“……일어나라, 조혈단주.”
“이…… 이놈……!”
“끝장을 보자.”
쓰윽.
말을 마친 흑룡문주가 방어 자세를 취하자, 입술을 꾹 깨문 조혈단주가 슬쩍 사무현의 눈치를 살핀다.
마치, 자신이 그를 쓰러뜨리면 살려 주겠냐는 듯이.
이에 갈등하던 사무현이 마지못한 듯 비켜서자, 조혈단주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몸을 일으킨다.
쓰윽.
“……후우.”
사무현이 기세를 풀자, 그제야 위압감에서 벗어난 조혈단주가 긴 호흡을 내뱉는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소 섞인 눈빛으로 흑룡문주를 바라보며 말을 꺼낸다.
“이거 감사하기 이를 데 없군.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도 날 살려 주시겠다?”
“누가 널 살려 주겠다 했지?”
“하하, 하면? 그 엉망이 된 꼴로 나를 쓰러뜨려 보겠다고?”
조혈단주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다.
조금 전 예상치 못한 기습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언뜻 보기에는 흑룡문주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의 부상.
하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체력적으로 이미 한계를 넘어선 흑룡문주와는 달리, 그는 운신이 조금 불편하다는 것 외에 큰 불리함이 없다.
‘피를 그만큼이나 흘리고도 싸울 의지를 내비친 것은 대단하다만.’
하지만 그건 자신을 너무 얕잡아 본 결과다.
이 자리에서 흑룡문주를 제압하고 그의 목숨을 가지고 협상한다면, 그 하나 정도는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적어채주에게 이 사실을 고하고, 나도 수로채에 들어가면 그뿐이다!’
아무리 괴물 같은 상대라도 장강수로채에 먼저 싸움을 걸지는 못할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조혈단주가 그대로 흑룡문주에게 달려들며 거대한 태도를 휘두른다.
파밧!
쩌저저정!
“……큭!”
조혈단주의 도격을 받아 낸 흑룡문주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한 합 한 합을 받아 내는 것도 버거웠던 지금까지 와는 달리, 상대의 상태 또한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도의 무게감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정도라면 할 수 있다……!’
조혈단주는 모를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놈 정도는 데려가기 위해, 그가 지금껏 암암리에 힘을 아껴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회는 한 번뿐이다!’
자신은 상대의 상태를 알고 있지만 상대는 자신의 상태를 모른다.
신이 나서 공세를 이어 가는 조혈단주의 도격을 받아 내며, 흑룡문주는 침착하게 방어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
“이게 무슨 일이냐?”
“어, 왔어?”
뒤쪽에서 들려오는 살암의 음성에 사무현이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그의 뒤로 적사와 청사, 그리고 적월을 위시한 나혼수와 만패까지 뒤따라 도착하고 있었다.
“멀리서 느껴지던 기세로 보아, 네가 저들을 제압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왜 저 둘이 싸우고 있는 거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살암의 물음에 사무현이 어깨를 으쓱한다.
“난들 알겠냐? 갑자기 자기가 해야 한다고 꿋꿋이 나서더니 저러고 있는데.”
“흐음…….”
사무현의 말에 두 눈을 가늘게 뜬 살암이 저들의 전투를 지켜본다.
언뜻 호각지세를 다투는 듯하지만 분명 흑룡문주가 수세에 몰린 모양새다.
“딱히…… 직접 나설 만한 실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만.”
“뭐…….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
살암의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잠시 후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다 계획이 있겠지.”
“흐음……?”
마치 저들 사이의 무언가를 읽어 낸 듯한 사무현의 반응.
그러던 그때, 팽팽하게 이어지던 저들의 대결에 미세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
쩡!
“크흐흣, 생각보다 제법 버티는구나!”
호기롭게 소리치며 공세의 끈을 늦추지 않는 조혈단주.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좀처럼 뚫리지 않는 상대의 방어에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감한 공세를 펼치면 펼칠수록, 상대의 방어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자신의 도격 한 번 한 번을 받아넘길 때마다 잔뜩 일그러지는 흑룡문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금만 더 몰아치면 승부를 결착 지을 수 있을 듯했다.
‘속전속결로 끝낸다!’
사실 계속해서 무리한 공세를 이어 가느라 그 역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이 정도 공세를 이어 간 정도로 문제가 생길 리 없겠지만, 아무래도 조금 전 사무현의 기습을 받아 내는 과정에서 내상(內傷)이 생긴 모양이었다.
정상적이라면 내상을 감안해 내공의 수발을 줄이고 장기전으로 돌입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이만한 기회를 잡았는데 끝을 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하아아앗!”
파밧!
우렁찬 기합과 함께 흑룡문주의 머리 위로 솟구치는 조혈단주의 신형.
있는 대로 내력을 끌어 올린 그의 도신에서 넉 자에 이르는 시퍼런 도강이 뿜어져 나온다.
최후의 일격을 펼치려는 듯한 그의 기세에, 여태껏 수세에만 열중하던 흑룡문주도 천천히 자세를 바꾸어 선다.
쓰윽.
‘이 한 합이다!’
싸움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불리하다.
상대가 승부를 건 지금 여기서, 자신도 승부를 걸어야 한다.
마음을 다잡은 흑룡문주의 도신에도 푸른 도강이 쑥하고 뿜어져 나온다.
“이야아아앗!”
“으라아아앗!”
쩌저저저저정!
휘리리릭.
전장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폭발음.
그리고 잠시 후, 누구의 것인지 모를 도 한 자루가 허공을 날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무현의 눈에 짧은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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