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저 도법은?’
아직 어설프긴 하지만 분명 눈에 익은 도초.
그 적어채주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사용하던 도법과 분명 같은 갈래의 것이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오직 속도와 힘에 집중해 상대를 몰아붙이는 전형적인 패도형(敗刀形) 도법.
아직은 적어채주에 비해 여러모로 모자라 보이긴 하지만, 사무현이 중원에 나와서 본 도초 중에서는 꽤나 쓸만하다고 할만한 일도였다.
“크읍……!”
풀썩.
조혈단주가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조금 전까지 그가 쥐고 있던 도는 저 멀리 날아가 맨바닥에 박혀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조혈단주.
그런 그를 무심히 바라보던 흑룡문주가 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잘 가게.”
“흐, 흑룡문주! 잠깐……!”
스걱!
……털썩.
흑룡문주의 일도에 의해 목과 몸이 분리된 조혈단주의 시신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계에 가까운 몸으로 조혈단주를 꺾는 데 성공한 흑룡문주가 긴 숨을 한번 내쉬고는 귀창문주와 구호단주 쪽을 바라본다.
스윽.
움찔.
흑룡문주의 시선을 마주하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시선을 회피하는 이들.
특히나 구호단주는,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을 짐작했는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실착이다!’
두 달 전, 흑룡문주의 제안을 터무니없다고 욕하며 거절한 자신이 사무치게 원망스럽다.
정보만은 남경제일이라 할 수 있는 사문회가 저들의 편에 섰을 때, 자신은 왜 그 선택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던가?
눈에 무엇이 씌어 버렸는지 어째서 그들의 행동을 어리석다고 비웃기만 바빴는가?
그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저 흑풍도를 직접 만나본 후 의사를 결정했을 것을……!
귀창문주 역시 구호단주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 어깨에 힘을 빼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이제 두 분은 어쩌실 것이오?”
“……음?”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자신들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흑룡문주.
당장 자신들을 포박하거나 목을 베리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구호단주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요.”
“…….”
“이 일의 흉수였던 조혈단주는 내 손으로 베었소. 그러니, 이제 그대들은 어찌할 것이냐는 말이외다.”
흑룡문주의 말에 구호단주와 귀창문주의 두 눈이 빠르게 흔들렸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가 그런 몸 상태로 왜 조혈단주를 직접 쓰러뜨리려 했는지.
이전보다 더 강한 우두머리가 나타나면, 새로운 우두머리를 인정하고 쫓는 사파의 습성.
지금 흑룡문주는 서로가 협의한 일대일 대결에서 조혈단주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지금, 조혈단주를 그들 모두의 우두머리로 상징화 시켜 말하고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우리를 이끌겠다는 말인가.’
흑풍도에게 맡겨둔다면 그들 모두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흑룡문이 당장의 위기는 넘길 수 있을 지언정 그들의 세력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 없다고 판단했겠지.
그러니 이제 남은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흑룡문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저들의 아래로 들어가거나, 그도 아니면 조혈단주의 뒤를 이어 장렬하게 산화하거나.
‘……아마도 흑룡문과 영영 동등한 위치에 설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그것은 적어채의 편에 서도 마찬가지다.
그들 각각의 전력으로는 적어채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위평문을 누를 수 없으니까.
오히려 처음 흑룡문의 제안을 거절하고도, 다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행이라 말해야 하리라.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구호단주가 순순히 바닥에 엎드리며 항복을 선언한다.
“……조혈단주가 죽었으니, 구호단은 더 이상 흑룡문, 사천방과의 마찰을 원하지 않습니다. 항복을 받아주신다면 앞으로 마땅히 저희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귀창문의 뜻도 구호단과 같습니다.”
구호단주가 낮은 자세로 항복을 선언하자 귀창문도 별수 없이 그와 함께 바닥에 엎드린다.
그렇게 두 수장이 무너지자, 흑룡문 무사들을 포위하고 있던 구호단, 귀창문 무사들도 무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꿇어앉는다.
어쨌거나 사파에 속한 이들답게,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목숨을 구명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 우리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합니까? 조장.”
구호단과 귀창문과는 달리, 우두머리를 잃어버린 조혈단 무사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대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들도 곧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무기를 내려놓고 꿇어앉는다.
털썩. 털썩.
챙그랑.
“저, 저희도 항복하겠습니다.”
“후우…….”
흑룡문주의 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상황이 일단락되어가던 그때.
두두두두.
“……음?”
대지가 울리는 진동에 사무현이 고개를 돌리자, 저 위쪽에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내려오는 한 무리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형니이임! 거기 계십니까아아!”
“야 이……! 빨리빨리 안 다닐래! 뭐하다 이제 와 이것들아!”
가까워진 막휘의 외침에 두 눈썹을 추켜 올리며 소리치는 사무현.
그리고 잠시 후, 풀숲을 헤치고 한 인형이 쏜살같이 그들의 앞으로 몸을 날려온다.
파밧.
타닷!
“감히 어디……! 어? 벌써 상황 끝난 겁니까?”
“그럼, 그렇게 굼뜨게 오는 동안 아직도 상황 정리를 못했을 까봐?”
“아니, 어딘지 말은 해주고 가셔야죠! 저희가 형님이 어디로 향하신 줄 알고 그렇게 빨리 따라갑니까!”
“살암 애들이랑 선배들은 따라붙었던데?”
“저, 저쪽은 소수잖습니까! 저희도 저랑 익패 정도는 따라붙을 수 있었습니다!”
막휘가 목소리를 높이며 항변하는 사이, 그의 뒤를 따라 수십여 명의 사천방도들도 이내 그의 뒤에 합류하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움직이기는 했는지 그들 대부분의 호흡이 미세하게 가빠져 있었다.
“끄응…… 거 천천히 좀 하시지 않고.”
흑룡문주와 흑룡문의 무사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하나같이 바닥에 꿇어앉아 있자, 막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오랜만에 한바탕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늦게 오면 다 처리하실까 봐 죽기 살기로 뛰어왔는데.”
어느새 막휘의 옆에 선 손익패도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사이, 사천방도들은 혹시나 놓친 놈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몸이 근질거린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꿇어앉은 이들이 필사적으로 그들의 시선을 회피한다.
‘……엄청난 집단이군.’
그러는 사이에도 구호단주는 냉정하게 그들의 기세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오십은 넘어 보이는 숫자.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가 일류, 혹은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선 사내에게서는 그로서 감당하기조차 버거운 거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심지어…….
‘저들 여섯의 존재는 대체…….’
수십 명의 무리들이 도착하기 전, 사천방주의 뒤를 따라 도착한 여섯 명의 무인들.
그들 모두에게서, 저 선두에 선 사내 못지않은 날카로운 기도가 전해진다.
즉 저들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규모의 문파를 이끌기에 충분한 수준의 고수들이라는 뜻.
일개 사도세력이 저 정도의 고수들을 저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장차 사파의 세력 판도가 뒤흔들릴 것을 예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앞으로의 남경은 저들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군.’
아니, 아마도 강소 전체가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호단주가 과거 흑룡문주가 했던 생각을 고스란히 되밟고 있던 그때, 흑룡문주가 모두를 빙 둘러보고는 사무현을 향해 말을 꺼낸다.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저들은 적어채의 명을 거부할 수 없어 함께한 자들이니, 투항을 받아주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흐음…… 글쎄요 뭐, 저한테 잘못한 건 없으니 당장 상관은 없는데…….”
구호단주와 귀창문주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가던 사무현이, 슬쩍 고개를 돌려 흑룡문 무사들을 바라본다.
“……괜찮으시겠어요? 수하들 중에도 피해가 있을 것 같은데.”
“뼈아픈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이들까지 벨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된다면 그 또한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겠지요.”
“음…….”
“적어채주의 명을 거부하면 자신의 문파를 지켜낼 수 없으니, 별수 없이 소모성 무기가 된 것 뿐입니다. 칼을 쥔 이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칼 자체에 책임을 물어서야 되겠습니까?”
다소 억지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을 찾기도 마땅찮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력을 중시하겠다는 흑룡문주의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에, 사무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리 생각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방주님.”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해둬야 할 것 같은데…… 전 누가 제 식구들 건드리는 거 용납 못하거든요.”
“물론 그러시겠지요.”
“사천방 뿐 아니라, 사천방과 한배를 탄 모든 사람들도 포함이에요.”
사무현의 말에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는 흑룡문주.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낸 사무현이, 귀창문주와 구호단주를 바라보며 서서히 기세를 흩뿌린다.
“만에 하나라도…… 이 선택으로 인해 제 식구들이 피해를 본다면…….”
드드드.
사무현이 서 있는 땅을 중심으로 미세한 균열이 일어난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위압감에 조혈단주와 귀창문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장담컨대, 상대가 누구이건 뒤에 누가 있건 상관없이 모가지를 따버릴 거에요.”
“…….”
“이 점만 명심하신다면 상관없어요.”
그 말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기세를 풀어 버리는 사무현.
그들을 억누르는 강압적인 기운은 사라졌지만, 구호단주와 귀창문주는 조금 전의 공포심과 전율에 차마 숨조차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약조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향한, 조금은 떨리는 흑룡문주의 물음.
그 순간,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구호단주가 사무현을 향해 이마를 땅에 박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쿵!
“맹세하겠습니다!”
“…….”
“지금 이 순간부터! 구호단은 사천방의 휘하로서, 사천방주의 뜻을 받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력으로 보필하겠습니다!”
“…….”
“저희를 사천방의 식구로 받아주십시오!”
쿵!
“귀창문의 뜻도 이와 같습니다!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구호단주와 같은 무언가를 직감 했는지, 피가 날 정도로 땅에 이마를 부딪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귀창문주.
그러자 지금껏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치를 살피던 조혈단의 무사들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바닥에 엎드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저희 조혈단도 받아주십시오!”
“받아 주십시오!”
“……흐음.”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는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얼굴을 하는 사무현.
이에 모든 이들이, 숨소리조차 죽이며 사무현의 대답과 결정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흑룡문주가 조용히 옅은 미소를 머금는다.
‘역시 이리되었구나.’
그가 본 사무현은, 아니, 그가 본 사천방은 반드시 남경의 지배자가 될 세력이었다.
처음부터 누가 보았더라도 이 생각에 이견을 낼 수 있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저들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사천방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직접 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앞으로도 이렇듯 사천방의 세력은 커질 것이고, 결국에는 그들 모두가 장강수로채로부터 독립해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흑룡문주가 조용히 상념에 잠겨 있던 그때.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난데없이 자신을 향한 사무현의 질문에, 흑룡문주가 상념을 멈추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저보다는 흑룡문주님이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요.”
“…….”
“받아주는 게 나을까요? 우리 식구에.”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에게 선택권을 넘기는 사무현의 모습에, 흑룡문주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상식적으로 사무현이 어떤 선택을 하건 자신이 반대할 수는 없다.
어차피 이 세력의 중심은 사천방이고 흑룡문은 장차 그들의 수족에 불과한 세력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식구라 말하며 그의 의견을 묻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모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흑룡문주가 가늘게 몸을 떨며 전율했다.
지금 사천방주는 말하고 있다.
흑룡문은 사천방의 식구라고.
단순한 상하관계나 명에 따른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고!
그리고 그들을 건드리는 그 어떤 세력도, 사천방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앞으로도 사천방과 함께하는 세력 모두 그리 될 것이다 말하는 것이리라.
한 마디의 질문에 담긴 수많은 뜻을 이해한 흑룡문주가, 붉어지는 눈시울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잇는다.
“……흑룡문은.”
“…….”
“저들이…… 사천방의 식구가 되길 바랍니다.”
“……좋네요.”
자신의 뜻을 이해한 흑룡문주의 대답에, 빙긋 미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일어나세요.”
“…….”
“밥이나 먹으러 가죠.”
모두의 날 선 관계를 무너뜨리는 사무현의 한 마디.
이 모든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는 천마의 입가에는 더없이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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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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