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그 모든 것이 사실이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앉아 있는 흑룡문주와, 그만큼은 아니지만 무복 안쪽에 붕대를 감고 그와 대면하고 있는 사문회주.
평소 같지 않게 수하들마저 모조리 물린 둘만의 독대였다.
“개문식에서 그들 모두의 항복을 받아 냈다는 것이…….”
“단순한 항복이 아닙니다. 남경의 굵직한 상인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말 그대로 굴복을 했습니다. 저희가 처음 계획했을 때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사문회주의 음성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럴 수밖에.
이번 개문식을 제안했던 것은, 사천방의 힘을 은연중에 드러내며 모두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꾸어 보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남경의 사파들이 사천방과 적대적 관계를 고집하지 않고, 적어채와의 힘 싸움이 끝날 때까지 중립을 유지하는 정도만 되어도 대성공이라고 내다보고 있었다.
“조혈단주를 쓰러뜨리고 그 휘하의 세력을 흡수한 것만 해도 더할 나위 없는 쾌거였는데…… 적어채주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위평문주를 굴복시킨 데 이어 그들을 따르던 네 개 문파를 함께 복속시켰으니, 이것으로 남경의 세력도는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사천방을 제외하고 남경의 크고 작은 세력을 도합하면 사문회와 흑룡문을 포함해 열다섯이다.
조혈단은 무너져 흑룡문으로 흡수됐으니 남은 세력은 열넷, 그중 구호단과 귀창문은 그들의 동료가 되었고 다섯 문파는 사천방의 아래에 복종을 맹세했다.
즉, 열네 세력 중 여덟 세력이 사천방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면 남은 적대 세력들은 흑검문을 중심으로 모이는 수밖에 없겠군.”
“예, 하지만 그 정도는 위협이라 할 수도 없지요. 사천방을 제외하더라도 저희의 전력에 미치지 못합니다.”
“……과연.”
사문회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흑룡문주가, 문득 떠오른 듯 다른 화제로 질문을 던진다.
“그러고 보니 이번 개문식에 녹림왕도 오셨다고 했지?”
“어디 녹림왕뿐이겠습니까? 파마불제에 이어 천무신녀까지 나타났습니다. 천무신녀의 경우는 사천방주와의 친분으로 온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남경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면 그것만으로도 상인들과 양민들의 마음은 빼앗아 온 것과 다름없다 할 수 있겠군.”
안도하는 흑룡문주의 얼굴에 이윽고 편안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하면…… 이것으로 우리의 역할은 다한 셈이 되었군. 얼마 되지 않은 적대 세력은 결국 대세를 따르게 될 터이고, 하면 기반을 잃은 적어채주도 사천방에 싸움을 걸어올 수 없을 테니.”
“예, 결국은 그리될 것입니다.”
흑룡문주와 함께 밝은 미소를 머금는 사문회주.
결국 그들이 사천방을 따르기로 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나 이제부터는 우리도 내부적인 준비를 해야 하네. 당장은 그럴 일이 없겠지만, 언젠가 사천방과 함께 싸워야 할 일이 온다면 우리의 적은 지금까지 와는 완전히 다를 테니 말일세.”
“당연한 말씀입니다, 사천방의 뒤를 따르려면 이쪽도 응당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겠지요.”
흑룡문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던 그때,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사문회주가 돌연 심각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부에 대한 이야기 나왔으니 말인데…… 잘된 것과는 별개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간자(間者)가 있습니다.”
“……!”
“처음에는 저들의 정보력이 생각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제가 흑룡문주님과 독대를 마치고 돌아가던 시간을 정확히 잡아낸 것도 그렇고, 이번 개문식에서 제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계속해보게.”
“그들은 심지어 흑룡문주께서 사천방을 데리러 가는 것도 예측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해도 사천방으로 향하는 길목마저 예측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확실히.”
사문회주의 말에 흑룡문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있던 장원에서 사천방까지 가는 길은 최소 세 갈림길 이상이다.
그런데 평소 그들이 자주 오가던 길목을 알고 매복을 준비했으니, 이는 분명 흑룡문의 평소 움직임을 꽤나 자세히 알고 있는 자의 정보다.
“간자를 잡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지금 잡아내야 합니다.”
“맞는 말일세.”
사실 이번 일이 꼬일 뻔했던 것도 그들의 정보가 저들에게 새어 나갔기 때문이다.
당장 사문회주가 습격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사천방으로 가는 길목을 저들이 미리 알고 있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위태롭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군……. 내부 결속을 다져야 할 이 시국에 오히려 간자를 잡아내야 한다니.”
“여러모로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할 일입니다. 자칫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신속해야 합니다.”
“알고 있네……. 흑룡문은 내가 내부적으로 확인해 볼 것이니, 사문회는 그대에게 부탁하겠네.”
“그리고 귀창문주와 구호단주는 무언가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제 그들도 한배를 타게 되었으니, 접촉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또한 참고하도록 하지.”
흑룡문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문회주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하면 쉬시지요.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괜찮겠나? 또 누군가의 습격이라도 받는다면…….”
“염려 마십시오. 지난번의 일도 있고 하여, 사문회의 무사들을 십여 명 정도 데리고 다니고 있습니다.”
“음…….”
“흑룡문주께서도 그리하십시오. 자칫 저희가 사천방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 내 유념하겠네.”
“예, 하면.
저벅저벅.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흑룡문주의 방을 빠져나가는 사문회주.
그가 나가고 나자, 흑룡문주가 조용히 턱 끝을 쓰다듬으며 상념에 잠긴다.
‘……간자라.’
사실 찾으려 한다면 그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자신과 사문회주의 움직임을 그렇게까지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이는 흑룡문 내에 그리 많지 않으니까.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증거를 잡지 못한다면 괜한 의심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천천히 지켜보며 잡아내면 될 일이겠지.’
어차피 전체적인 대세가 그들에게 넘어온 이상, 간자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흑룡문주의 얼굴에 잠시나마 깃들었던 수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
달칵.
“하아…….”
신불이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 별채를 나서며 막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개문식은 잘 마무리되었다고는 하지만, 정말이지 오랜만에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였다.
‘설마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와 버릴 줄이야.’
사실 사무현이 그간 맺어 온 인맥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애초에 사도관에 들어온 이들 자체가 강호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인데, 그들을 모두 아래에 둔 것도 모자라 천무신녀나 파마불제 같은 거물과도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으니까.
‘물론…… 고문님은 좀 애매하긴 하지만.’
아무튼, 오늘 이후로 남경 전역은 사천방의 개문식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할 것이다.
한 문파의 개문식에 천무신녀와 파마불제, 거기에 사파의 녹림왕까지 한자리에 나타났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일 테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사박.
“……!”
자신의 앞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막휘가 고개를 들었다.
“……아?”
“오랜만이구나.”
“…….”
“잘 지냈느냐?”
월광을 듬뿍 받으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근육질의 거한.
너무도 익숙하면서도 그리웠던 그 모습에,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던 막휘가 이윽고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지.”
막휘의 인사와 함께, 침묵 속에 이어지는 짧은 대치.
그 끝에서 이윽고 녹림왕 막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철모르고 가출을 한 줄 알았더니, 가기 싫다던 연무학관에 가 있더구나.”
“예, 그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녹림이 아닌 사천방에 속해 있고.”
“…….”
“녹림의 후계자가 되는 것은 포기한 것이냐?”
무덤덤한 듯하면서도 묘한 노여움이 느껴지는 막우의 음성.
이에 막휘가 당황한 듯 다급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럴 리가요? 절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면 어째서 녹림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 사천방에 있는 길을 택한 것이냐?”
“……제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함?”
“예, 사천방주와 함께하며 제 부족함을 조금씩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녹림을 잇는 것은, 그 부족함을 모두 채운 다음의…….”
“허튼소리!”
쩌렁쩌렁한 호통으로 막휘의 말을 끊어 낸 녹림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잇는다.
“네 부족함은 녹림에서도 얼마든 채울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구태여 이곳에 붙어 있으려는 것은, 그저 네가 짊어져야 할 짐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냐!”
“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내가 이곳 개문식에 왜 와 있는지 알고 있느냐?”
막우의 물음에 막휘의 눈이 커진다.
그저 그가 속한 사천방의 개문식을 축하해 주고, 자신의 얼굴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난 녹림왕이다. 아무리 자식이 보고 싶다고는 하나, 사적인 감정과 용무로 움직이는 이가 아니다.”
“…….”
“너와는 다르게 말이다.”
뼈가 있는 막우의 한 마디에 막휘가 입술을 깨문다.
“하면…… 어째서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데려가기 위해서다.”
“……예?”
“어찌 되묻느냐? 너를 다시 녹림으로 데려가야겠다고 말했느니라.”
청천벽력 같은 막우의 한 마디에 막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녹림으로 데려간다니?
아무리 그가 충동적으로 집을 나왔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뜻을 모두 듣고도 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 하지만,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아직…….”
“말했느니라, 부족함은 녹림에서 채우면 그뿐이라고. 설마 소녹림왕씩이나 되는 녀석이, 제 한 몸의 안위를 가볍게 여길 셈이냐?”
“…….”
“날이 밝는 대로 너를 데리고 황룡채로 돌아갈 것이니, 채비를 하고 있거라.”
그러고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등을 돌리는 막우.
칼같이 단호한 그 모습에 막휘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린다.
‘……안 돼!’
그는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
아니,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시작해 보지 못했다!
이제야 사무현과 함께 큰 세상에 뛰어들었는데, 이대로 녹림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다시 과거의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돌아갈 뿐이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아버지를 설득할 것인가?
무엇으로 녹림왕을 설득할 것인가?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태산 같은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선뜻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그가 멍하니 한쪽 손만 뻗고 있던 그때.
“쯧……. 도저히 한심해서 봐 주고 있을 수가 없군.”
“……음?”
어둠 속에서 들려온 중얼거림에, 발걸음을 멈춘 막우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잠시 후, 어둠 속에 서 있던 살암이 발걸음을 옮겨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이름 없는 후기지수가 끼어들 자리는 아니네만.”
“이름 없는 후기지수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만 들어주기에 썩 유쾌한 말은 아니군요.”
특유의 오묘한 조소를 머금은 채 앞으로 나서는 살암을 바라보던 막우가, 한쪽 눈썹을 꿈틀하며 주먹을 움켜쥔다.
“선을 지키는 게 좋을 걸세. 이곳이 녹림이었다면 자네는 이 자리에서 머리통이 부수어졌을 것이니.”
“하하, 명분보다 체면이라……. 인망이 그리 높다는 녹림왕께서도, 다른 사파의 머리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군요.”
“내 앞에서 그런 시건방진 태도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명분은 이미 차고 넘치지.”
말을 이어 가는 막우의 몸에서 서서히 녹림왕 특유의 위압감이 풍기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행동은 내 아들과 사천방주의 얼굴을 봐서 넘어가 주겠다. 하지만, 그 이상 한 마디만 더 지껄인다면 이 자리에서 머리를 부수어 주지.”
“흐음…….”
진심 어린 막우의 눈빛에 살암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진다.
그리고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막우의 전신을 훑어본다.
마치 지금의 자신이 막우를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이라도 하듯이.
그러던 그때, 살암과 막우의 사이를 막휘의 몸이 가로막았다.
쓰윽.
“아버지께 무례를 범하지 마라. 내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니.”
“무례라……. 내가?”
막휘의 말에 피식 실소를 흘린 살암이, 이윽고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워낸다.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난 현 암천막주다.”
“…….”
“무림의 선배로서 어느 정도 예의는 지켜야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일방적인 협박을 당하고 그냥 넘어갈 입장도 아니지.”
“이런 빌어먹을……. 나를 봐서라도 한 번 정도는 넘어가 달라는 말이다!”
막휘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자 두 눈을 가늘게 뜬 살암이 잠시 동안 그의 얼굴을 응시한다.
그러다 이내,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막우를 향해 짧은 포권을 해 보인다.
쓰윽.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 보도록 하지요.”
“겁을 먹은 겐가?”
“그럴 리가요? 부자간의 상봉을 방해했으니, 한발 정도는 물러나 드리는 게 도리겠다 싶었을 뿐입니다.”
거기까지 말을 마친 살암이, 미련 없이 막우에게 등을 돌리며 막휘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입장 똑바로 해라.”
“……뭐?”
“이곳은 사천방이다.”
“……!”
“뭐……. 입으로만 자립을 떠드는 거라면, 이쯤에서 못 이기는 척 끌려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착한 아이라면 말이야, 응?”
저벅저벅.
그러고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살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막휘의 귓가로, 막우의 음성이 들려온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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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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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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