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저 녀석이 현 암천막주라 했느냐?”
“아……. 예. 그렇습니다.”
“흐음…….”
턱 끝을 매만지며 살암이 떠나간 빈자리를 바라보는 막우.
그가 뒤늦게 분노를 터트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막휘의 예상과는 달리 막우의 입가에는 흥미로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완전히 불에 타버린 줄 알았더니, 그 와중에도 씨앗은 살아 있었구나.”
“……!”
“……내일 인시에 출발할 것이니, 미리 채비를 해 두거라.”
저벅저벅.
어느새 살암에 대한 관심을 지웠는지, 미련 없이 등을 돌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막우.
그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금니를 꽉 깨문 막휘가 한쪽 다리를 들어 강하게 진각을 내디딘다.
쿵!
스스스스.
“……음?”
뒤쪽에서 느껴진 은은한 기파에 막우가 고개를 돌리자, 망설임을 지운 막휘가 결연한 눈으로 막우를 응시하고 있다.
반쯤 구부린 하체와 반장이 되어 앞으로 내뻗어진 좌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막우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다.
“지금 뭘 하자는 것이냐?”
“저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뭐라?”
“녹림왕의 자리를 계승하기 전까지, 소녹림왕의 신변은 자유롭게 하는 것이 녹림의 전통이지요.”
생각지도 못한 막휘의 말에 막우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것은 녹림왕의 자리를 잇기 전에 세상을 몸으로 배우라는 뜻에서 나온 관례다. 도망이나 다름없는 단순한 가출과 다르다.”
“도망이 아닙니다.”
“……뭐라?”
“물론 시작은 도망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느낀 거대한 벽에 대한 열등감과 스스로의 실망과 부끄러움으로 인해 도피했습니다.”
“…….”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거기까지 말한 막휘의 두 눈에 여태껏 없던 강한 의지가 끓어오른다.
“언젠가 아버지를 넘어서는 녹림왕이 되기 위해, 스스로 넘을 수 없다 여겼던 벽을 넘기 위해…… 저는 지금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이놈이……!”
“여기는 녹림이 아닙니다!”
“……!”
“여기는 사천방입니다.”
“…….”
“이곳에서 제 거취를 정하실 권리는 아버지께 없습니다. 그 권리는 오직 사천방주에게 있습니다.”
단호하기 그지없는 막휘의 한 마디에, 잠시 후 막우의 얼굴에 드물게 짙은 노기가 어린다.
“이놈이…… 지금 그것이 소녹림왕으로서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하느냐!”
“이곳에서의 저는 사천방도입니다. 못할 것도 없는 말이지요.”
“이……!”
분노로 주먹을 움켜쥐는 막우의 주위로, 미세하게 바닥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콰드드득.
“……네 녀석이 녹림을 떠나더니 정신을 놓은 모양이구나! 오냐, 정 그렇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이 아비 된 도리일 터!”
“후우……. 좋다 이겁니다!”
쿵!
해일처럼 솟구치는 막우의 기세를 이겨 내기 위해 대지를 굳건히 딛고 선 막휘가, 있는 힘껏 내력을 끌어 올리며 소리친다.
“저도 지금껏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 드리지요!”
“이놈이!”
쾅!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순식간에 대지를 박차고 달려드는 막우.
거대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쾌속하게 달려든 그가 순식간에 막휘의 앞으로 접근해 일권을 내뻗는다.
타고난 신력과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괴력과 순발력.
수년 전에는 결코 넘을 수 없었던 거대한 벽을 다시 마주한 막휘가 부드럽게 앞 손을 움직인다.
‘흘려낸다!’
거우산악의 철퇴도 방향을 트는 데 성공했던 자신이다.
아무리 강맹한 공격이라 하더라도, 힘의 방향반 바꾸어 놓는다면 충분히 흘려낼 수 있다!
그렇게 자신한 막휘가 앞으로 뻗어진 반장을 휘둘러 막우의 주먹을 흘리려 했다.
하지만…….
퉁!
“……!”
상상치도 못할 거력에 의해 튕겨 나간 것은 도리어 막휘의 앞 손이었다.
곧이어 자신의 안면으로 밀고 들어오는 주먹을, 막휘의 반대편 손이 반사적으로 가로막는다.
쩍!
쾅과과광!
휘리리리릭.
촤지지지직!
막우의 주먹을 가로막은 손이 도리어 막휘의 안면을 강타한다.
그렇게 우렁찬 폭음과 함께 다섯 장 가까이 나가떨어진 막휘의 신형이 담벼락에 부딪히며 멈춰 선다.
***
‘……시작됐군.’
막휘와 막우의 전투가 한 눈에 보이는 별채의 지붕 위에서,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선 살암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그러잖아도 영원히 넘을 수 없는 벽이라도 만난 것처럼, 답지 않게 고분고분한 강아지처럼 구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차였다.
하지만 다행히 태생이 늑대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녀석은 이내 시퍼런 이를 드러냈다.
‘아니…… 이를 드러낸 것보다는 꼬리를 치켜세운 것에 가까운가?’
하지만 뭐, 저건 저것대로 나쁘지 않다.
무릇 벽을 넘기 위한 모든 시작은 스스로 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에서 시작하니까.
그렇게 흥미로운 눈으로 막휘와 막우의 전투를 지켜보던 그때.
스슥. 탓.
“……그냥 계속 저 위에 있지, 굳이 여기까지 내려왔나?”
뒤쪽에서 들려온 미세한 인기척에 살암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퉁명스레 묻는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녹림의 두 호법 장로 중 하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그렇게 대놓고 움직이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더 힘들지 않겠나?”
“크흠흠…….”
살암의 말이 멋쩍었는지 헛기침을 해 보인 호법이, 이내 막휘와 막우의 전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거…… 생각보다 빨리 승부가 난 모양이군.”
“거참……. 그렇게 붙고 싶어 하셨으면서, 적당히 좀 하시지.”
“……큭, 적당히?”
호법들의 대화에 피식 비웃음을 흘리는 살암.
이에 그들 중 좌측에 서 있던 이가 한쪽 눈썹을 꿈틀하자, 살암이 깊은 탄식을 담은 음성으로 말을 잇는다.
“녹림왕도 갑갑하겠군……. 호법이라는 자들이 저리도 보는 눈이 없어서야…….”
“뭐라!”
“무슨……!”
달그락.
“……어?”
난데없는 인기척에 두 호법이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부서진 담벼락의 파편을 밟고 몸을 일으키는 막휘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입가에 고인 핏물을 뱉어 내는 그 모습은, 생각보다 그리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이지 않았다.
“저…… 저런? 어떻게?”
“분명 왕께 정통으로 맞았는데…….”
녹림왕 막우의 주먹은 내력을 싣지 않아도 철과 바위를 부순다.
아무리 한 손으로 가로막아 충격을 분산했다 해도, 정통으로 맞아 놓고 저리도 멀쩡히 일어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경악하는 두 장로와는 달리, 살암은 흥미로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까지 겪어온 것들이 있는데…… 저 정도에는 당하고 싶어도 당할 수가 없지.”
“그,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설명해 봐야 이해할 수 없을 테니, 그냥 지켜봐라.”
“…….”
“그 ‘괴물’의 공격에 비하면…… 아주 자상하기 그지없는 주먹이었으니.”
그 말을 끝으로 살암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어느새 그들의 시선은 막우와 막휘의 대립으로 집중되었다.
***
다시 일어서 그의 앞에 선 막휘를 바라보는 막우의 얼굴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놀라움이 번지고 있었다.
주먹의 끝에 제대로 된 타격감이 전해지지 않았다.
반대편 손으로 그의 주먹을 저지한 찰나의 순간, 고개를 비틀 시간을 벌어 충격을 최소화한 것이다.
심지어.
욱신.
밀려나는 와중에도 반격을 가했는지 그의 한쪽 옆구리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리 대단한 타격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도전했던 마지막 기억을 떠올린다면 괄목상대라는 말이 우스울 정도의 성취다.
“……아무래도.”
이윽고 굳게 닫혀 있던 막우의 입이 열리며, 막휘를 향한 눈빛에 묘한 이채가 머금어진다.
“마냥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나보구나.”
“……아버지께서도 늙지는 않으셨네요.”
진심이었다.
그래봐야 거우산악의 철퇴보다 더하겠느냐 싶었는데, 그런 것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주먹을 받아 낸 손바닥과 얼굴 전체에서 심상치 않은 통증이 뒤따른다.
어설프게나마 앞 손으로 힘의 방향을 흐트러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고개를 비틀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지금의 일격으로 승부가 결착 지어질 뻔했다.
다만…….
‘……형님의 주먹도 이보다 못하진 않아.’
지난 일 년간 그의 주먹질에 익숙해졌는데, 이 정도에서 무너진다면 그간의 시간들을 날려 먹은 것과 다름이 없다.
“흐음…….”
칭찬을 도리어 맞받아치는 막휘의 모습에, 막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안 본 사이 제법 머리가 컸구나.”
“약관이 넘은지 오래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하냐.”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눈을 감는 막우.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그가, 천천히 자세를 낮추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는다.
“하면 어디…… 그만큼 실력도 늘었는지 보자꾸나!”
쾅!
다시 한번 바닥을 박차고 순식간에 접근하는 막우.
그러고는 또 다시 거권에 내력을 실어 막휘를 향해 내뻗는다.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안면으로 날아든 거우산악의 철퇴를 쳐냈을 때?
아니, 그 정도의 각오로는 안 된다.
지금 그를 향해 날아드는 저 주먹은……!
‘형님의 주먹이다!’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을 머릿속에서 떠올린 막휘가, 옆구리에 붙이고 있던 우수를 힘껏 휘둘러 막우의 주먹을 밀쳐 낸다.
쩌저정!
‘흘렸다!’
일격필살을 목적으로 하는 뒷손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는 데서 그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오른팔 전체에 바위라도 두드린 듯한 찌릿한 충격이 전해진다.
이에 어금니를 아득 문 막휘가, 그대로 몸을 날려 막우의 턱을 무릎으로 쳐올렸다.
쾅!
“큽……!”
막휘의 무릎이 턱 끝에 꼽히자, 한순간 고개가 뒤로 젖혀진 막우의 움직임이 멎는다.
뒤이어 허공에 뜬 막휘의 두 번째 일격이 막우의 얼굴 옆면을 강타한다.
쩡!
‘됐다!’
발끝에서 전해진 묵직한 무게감에 막휘가 미소를 머금는 그 순간.
턱.
비틀거리며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던 막휘의 예상과는 달리, 쓰러지지 않고 버텨 선 막우가 한 손으로 막휘의 다리를 움켜잡는다.
“……움직임이 제법 좋아지긴 했다만.”
막휘의 움직임을 봉쇄한 막우의 눈이 서늘하게 빛난다.
“이 정도가 전부라면 더 볼 것도 없겠구나.”
부웅.
그 말과 함께, 막휘의 발목을 움켜쥐고 그의 몸을 크게 휘두르는 막우.
자신에게 닥쳐올 충격을 예감한 막휘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온몸의 내력을 끌어 올린다.
쩌정!
“큽……!”
과거에 사무현에게 당했던, 몸속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아찔한 충격이 찾아든다.
한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 했지만 막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반대편 발로 막우의 복사뼈를 걷어찼다.
쿵!
“흠……!”
막휘의 대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텨 낸 막우.
그 순간 바닥을 짚은 막휘가 팽이처럼 스스로의 몸을 회전시키자, 붙잡혀 있던 막휘의 발목이 매끄럽게 막우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휘릭.
타닷.
막휘가 바닥을 짚으며 도약해 자리에 안착하자, 믿기 힘들다는 듯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막우가 헛웃음을 흘린다.
“이걸 이리 쉽게 빠져나갔다고?”
“허억……! 허억……! 쿨럭!”
놀라고 있는 막우와는 달리, 막휘의 입에서는 기침과 함께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르륵.
‘……강하다.’
딱히 큰 내력을 실은 것 같지도 않은데, 자신이 전력으로 휘두른 공격보다도 더한 위력이 전달된다.
막우가 전력을 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육체의 차이가 현격하다는 의미다.
‘단련이 부족했나……!’
그 순간, 오래전 사무현이 모두에게 했던 이야기가 그의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뎌라! 내가 나 좋자고 하냐? 다 너희 잘되라고 하는 거지. 강호 나가서 나보다 센 놈 만났을 때, 그때 가서 좀 열심히 할 걸 하고 후회할래? 지금은 좀 고생스러워도, 나중엔 다 이 시간을 감사하게 될 거다.’
……망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던 말들이 이렇게 피부로 와닿는 순간 올 줄이야.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지금 이 순간까지 그의 아버지가 어떤 시간을 보내 왔을지.
막휘에게는 하루하루 지옥과도 같았던 지난 시간들을, 막우는 지난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빠짐없이 행해 왔을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노력이 보상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거기까지인 모양이구나.”
“후우…… 후우…….”
“뭐…… 그만하면 잘했다. 육체도 강해졌고, 전투에도 능숙해졌구나. 그 정도면 나도 납득할 만…….”
쓰윽.
“……음?”
막우가 말을 이어 가던 그때, 호흡을 고르며 다시 기본 자세를 취하는 막휘.
앞으로 뻗어 나온 반장과 옆구리에 붙여진 주먹.
이것이 뜻하는 바를 이해한 막우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간다.
“계속할 셈이구나.”
“…….”
대답할 힘은 없다.
아니, 잘못 입을 열면 그만하겠다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올 것만 같다.
스스로 입술을 깨물며 말문을 막아 버리는 막휘의 모습, 이를 본 막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낮춘다.
“잘 알겠다.”
쓰윽.
“……이제 편하게 해 주마.”
쾅!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박찬 막우가 또다시 순식간에 막휘에게 쇄도한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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