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일직선으로 정직하게 뻗어 오는 막우의 주먹.
저 정직함이 곧 힘을 만든다.
어설픈 변화는 모조리 버리고, 오직 한 방향으로 모든 것을 쏟아 낸다.
저런 주먹은 지금의 막휘가 쳐내거나 막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흘려야 한다.’
무심코 떠오른 정답.
하지만 흘릴 수 있을까?
거우산악의 철퇴를 우습게 느껴지게 만드는 저 거력이 담긴 일권을?
‘흘린다는 건 저항 한다는 게 아니야.’
그 순간, 막휘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음성이 스쳐 지나간다.
사무현이 자신의 명상을 방해했던 그 날, 그와 나누었던 대화가 현실과 상관없이 빠르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뭐? 흘리는 걸 뭐라고 생각하냐고?’
‘예.’
‘아니, 체술을 한다는 놈이 아직도 그걸 몰라? 흘러가라고 그냥 두는 거잖아.’
‘아니……. 흘리는 게 그런 흘리는 걸 말씀드린 게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같은 말을 네가 혼자 구분 짓는 것뿐이지.’
‘……에?’
‘하아…….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흐르는 물을 힘으로 막아서면 어떻게 되겠냐? 물의 힘이 약해서 막는 데 성공하거나, 아니면 막는 쪽이 약해서 떠밀려가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렇지요.’
‘강물을 강제로 틀어막으려 하면 천근 토사(土沙)도 휩쓸려 내려갈 뿐이다. 하지만 정작 강물의 흐름 속에 서 있는 갈대는, 자신의 한 몸을 지탱할 힘만 있으면 버틸 수 있지.’
‘…….’
‘……이해가 좀 됐냐?’
‘어……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에라, 집어치워! 집어치우고 나와! 너도 나 같은 부류라, 머리로 생각해서는 못 알아먹어! 직접 몸으로 체득해야지!’
‘모, 몸으로요?’
‘맞고, 맞고, 또 맞다 보면 맞기 싫어서라도 하게 되어 있어. 원래 다 그렇게 배우는 거야.’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습니까? 누가 그렇게 무공을 익힙니까?’
‘내가 그렇게 익혔다! 내가! 잔말 말고 얼른 튀어나와!’
‘혀, 형님! 형……!’
……결국은 처 맞는 것으로 끝이 났던 좋지 못한 기억.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어쩐지 사무현이 했던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그 형체가 그려지는 듯하다.
‘흘린다는 것에…… 힘은 필요하지 않아.’
흘린다는 것.
이는 곧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
흐름과 하나가 되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
마치 세찬 물길 한가운데 서 있는 갈대처럼.
스스스.
막우의 주먹이 다가온다.
현실의 시간은 찰나와 같겠지만, 막휘의 의식은 완전히 별개의 시간 속에서 지나가고 있다.
‘흐름에 저항하지 않는 것……. 그래, 그것이 바로…….’
흘린다는 거다.
스륵.
어느새 자신의 코앞까지 접근한 막우의 주먹.
앞서 뻗은 반장으로 부드럽게 막우의 팔을 잡은 막휘가, 그의 몸을 안으로 잡아당기며 슬쩍 한걸음 물러난다.
정말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이는 지금까지의 막휘에게 없었던 부드러움이다.
‘……이것이 유(流).’
그렇게 막우의 주먹을 흘린 막휘가, 부드럽게 반대편 손으로 일장을 뻗어 텅 비어 있는 막우의 복부를 가격한다.
쩡!
스스스스.
주위로 은은한 바람이 일게 만드는 기파(氣派).
현기가 느껴지는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던 그때, 만족스러움이 느껴지는 막우의 음성이 막휘의 귓가에 들려온다.
“훌륭하구나.”
더없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막우의 얼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막휘가 옅은 미소를 머금는 그 순간.
쾅!
“……아?”
뒷머리가 뻐근해지고 세상이 새하얗게 변한다.
그제야 자신이 공격당했음을 깨달은 막휘가 불신 어린 얼굴로 막우를 올려다본다.
“아니……. 어떻게……?”
“승부는 마지막까지 방심해선 안 되는 법.”
“……아.”
“잘 새겨 두거라.”
생각지도 못한 막우의 기습에 억울한 눈빛으로 호소하는 것도 잠시.
어느새 의식을 잃은 막휘의 몸이 끈 풀린 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풀썩.
***
“……쯧.”
쓰윽.
막휘가 쓰러지고 나자, 짧게 혀를 찬 살암이 그대로 등을 돌린다.
쓰윽.
“반응을 보아하니, 암천막주의 마음에 드는 결말이 아니었던 모양이오?”
호법 장로 중 우측에 선 이가 호기심 어린 음성으로 묻자, 잠시 발걸음을 멈춘 살암이 무심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런 지도 비무나 보자고 기다린 것이 아니니까.”
“하면 무엇을 보고자 하셨소?”
살암의 대답에, 이번에는 좌측에 선호법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설마하니, 녹림왕의 진면목을 가늠이라도 하시려 했던 게요?”
“당연한 것을 묻는군. 하면, 내가 이 빤한 경극을 왜 지켜봤다고 생각하지?”
“…….”
“피차 빤히 알고 있던 상황에 괜히 발목 잡지 말지. 아, 혹시 나와 싸워 보고 싶은 수작인가? 그런 거라면 긴말할 것 없이 덤벼도 좋다.”
“…….”
“……아닌 것 같군.”
저벅저벅.
그렇게 호법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 버리는 살암.
잠시 후 그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녹림의 두 호법이 서로를 마주보며 탄사를 흘린다.
“……거참,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지?”
“소녹림왕께서도 고생깨나 하시겠군. 동시대에 저런 녀석이 공존한다면…….”
“그래도 사천방주와 비교할 수는 없지 않나?”
“그쪽은 당연히 논외로 쳐야……. 흐어업!”
“무슨 이야기들을 그리 하고 있나?”
어느새 두 호법의 곁으로 다가와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는 녹림왕 막우.
이에 당황한 호법들이 헛기침을 하며 예를 갖춘다.
“크흠흠……. 오셨습니까? 왕이시어.”
“쯧……. 낯간지럽게 그러지 마라. 우리밖에 없는데.”
막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리자, 좌호법이 이내 씩 미소를 머금으며 막우를 올려다본다.
“만족은 좀 하셨습니까?”
“무엇을?”
“아, 왜 또 시치미를 뚝 떼십니까? 주먹질 한 번 한 번에 부자지간의 정이 아주 듬뿍듬뿍 담겨 있던데요. 여기까지 온 김에 얼마나 늘었는지 보고 싶으셨던 거 아닙니까?”
“그냥 오랜만에 실력 좀 보자고 솔직하게 말하시면 될 걸, 녹림으로 돌아가자느니, 뭐니 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만 하시고…….”
“크흠흠……!”
정곡을 찌르는 두 호법(?)의 말에 막우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헛기침을 흘린다.
“거…… 헛소리들 그만하고, 슬슬 내려갈 준비나 해 둬라.”
“예? 벌써요?”
“애들도 지금쯤 한창 놀고 있을 텐데, 내일 날 밝고 천천히 가시지요?”
“아, 내일 날이 밝으면 저 녀석이 깨어날 것 아니냐?”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 막우의 시선이, 저 아래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막휘에게로 향한다.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는 것도 알았고…… 밖에서 쓸데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있지는 않다는 건 알았으니, 이만 돌아가야지. 괜히 깨어나서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낯부끄럽지 않느냐?”
“그게 아니라 그냥 형님 발이 안 떨어지실 것 같아서 그러는 거 아닙……”
쾅!
“끄아아악!”
말을 이어가던 좌호법의 머리 위로 떨어진 막우의 주먹.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충격에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좌호법이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형님! 아우 죽는 꼴 보시려고 그러오! 어디서 그런 흉기를 함부로……!”
“시끄럽다! 아무튼 이제 갈 것이니 그리 알고 준비해라!”
“끄으응…….”
“거…… 형님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참…….”
눈치 없이 떠들다가 한두 번 얻어맞는 것도 아니면서, 왜 반백이 다 되어가도록 학습 능력이 없다는 말인가?
혀를 끌끌 차며 우호법이 고개를 가로젓는 사이, 어느덧 아래로 내려간 막우는 쓰러진 막휘를 안아 들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서.
***
“거…… 참 보기 좋은 모습이네.”
“……그렇네요.”
장원 내의 한바탕 소란을 한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장원 내에 가장 큰 본당 건물의 지붕 위.
조금 전까지 신불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단아란과 사무현이, 그 지붕 위에 걸터앉아 장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전 막태 오라버니를 그대로 빼다 박았네.”
“막태? 그 사람은 또 누군데요?”
“전전전대 녹림왕.”
“그럼 뭐, 산적이네요.”
“어렸을 때부터 나랑 친했던, 우리 오라버니의 오른팔이기도 했던 오라버니야.”
“……산적왕이시네요.”
괜스레 어색한 침묵 끝에, 헛기침을 한 번 한 사무현이 언제 그랬냐는 듯 퉁명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던진다.
“그나저나, 하실 말씀이 뭐예요?”
“뭐 그렇게 급해? 밤바람도 좋은데.”
“밤바람은 무슨……. 생각지도 못한 구경거리도 끝났는데, 대충 할 말만 빨리 하고 들어가죠. 솔직히 저희가 정답게 마주 앉아 이야기나 할 사이는 아니잖아요?”
“…….”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긴 한데.”
“…….”
“……날도 좀 춥고요.”
결국 슬그머니 아래로 눈을 깔며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사무현의 모습에, 두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바라보던 단아란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린다.
“……신기하단 말이야.”
“……뭐가요?”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두어 번만 두들겨 패 놔도 찍소리 못하는데, 너는 작정하고 십수 번을 반쯤 죽여 놨는데도 한결같으니 말이야.”
아……. 그러니까 그게 작정하고 반쯤 죽여 놓은 거였어?
난 또 수련이라도 시키는 줄 알았지.
내가 오해했네! 오해!
“그런 성격으로 용케 오라버니한테서 살아남았네? 우리 오라버니가 손속이 그렇게 말랑한 분이 아닌…….”
“……그냥 본론만 말하시지요.”
옛날 생각을 하니 또 울컥하려 그러니까.
“뭐……. 그래. 네가 원한다면야…….”
사무현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 단아란이, 슬쩍 저 멀리 보이는 남경의 야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꺼낸다.
“너…… 오라버니랑 같이 십만대산에서 지냈지?”
“이미 대충 다 눈치채셨으면서 뭘 물어보세요?”
“……부정하면 말이 길어질 줄 알았는데, 인정하니 말하기는 쉽겠네.”
피식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 단아란이, 이윽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사무현을 응시한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무림맹의 특급 기밀이다.”
“……기밀요?”
생각지도 못한 단아란의 한마디에 사무현의 귀가 쫑긋한다.
“무슨 기밀…….”
“오라버니가 사라지셨다.”
“…….”
“……연화 언니도 같이.”
생각지도 못한 단아란의 한 마디에 사무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십만대산의 괴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선자님이…… 사라지셨다고?
“대체…… 어떤…….”
“뭐, 그렇다고 신변에 이상이 생기시고 그런 건 아니고.”
“아, 역시.”
그럼 그렇지, 그 괴물 같은 인간이 옆에 딱 붙어 있는데 무슨 일이 있을 수가 없지.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무현을 향해, 단아란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서신을 보내 경고하셨다. 모두가 힘을 합쳐 마(魔)를 대비하라고.”
“…….”
“혹시…… 뭐 아는 거 있냐?”
단아란의 날카로운 눈빛이 사무현을 꿰뚫어 보듯 날아와 박혔다.
“……어.”
생각지도 못한 단아란의 물음에 사무현이 두 눈을 끔뻑인다.
마를 대비하라고 전했다고?
그 괴물이?
‘화상 장로도 손짓 한 번으로 날려 버린 인간인데……?’
사무현도 그곳에서 수년간 지내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마교가 중원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괴물 한 명의 힘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물론 마교 전체가 들고일어나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 하나를 잡고 교가 전멸해 버린다면 무슨 득이 있겠는가?
아무튼 결론적으로 그 괴물…… 무신이 건재하다면 마교는 중원에 나오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그런 괴물이 마를 대비하라고 했다면 그 뜻은 곧…….’
더 이상 그의 힘으로 마교를 억누를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마교의 강해진 힘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단순히 더 이상 십만대산에 머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뭐, 짐작 가는 거 있구나?”
단아란의 날카로운 물음에 사무현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단아란의 눈을 응시한다.
그리고 긴 침묵 끝에, 그녀를 향해 말을 꺼낸다.
“이유는…… 아무래도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뭔데?”
“……은퇴요.”
“……뭐?”
“그런 거 아니에요? 고문님보다도 나이가 많으시면 슬슬 오늘 내일 하실 때가 된 건데, 뼈마디도 여기저기 쑤셔 오실……. 어어? 잠깐만, 왜 그러세요?”
어느새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에게 다가오는 단아란의 모습에, 사무현이 화들짝 놀라 경계하며 뒷걸음질을 친다.
“하아……. 그렇지. 내가 잠깐이나마 너하고 진지한 대화를 하려 했다니……. 내가 참 멍청했구나.”
“아니, 잠깐. 잠깐만요. 진짜 그 괴물…… 아니, 무신 님이 평소에도 은퇴 생각이 있어 보이셨다니까요?”
“그래,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리와 봐.”
어느새 한 걸음씩 다가오며 스산한 기세를 흩뿌리는 단아란의 모습에, 창백하게 질린 사무현이 뒷걸음질을 치며 본능적으로 천마도를 움켜쥔다.
‘이런 젠장, 눈빛이 정상이 아닌데?’
경험상 저런 눈빛일 때 얻어맞으면 최소 보름은 뼈마디가 쑤셨었다.
어떻게든 위기를 넘겨야…….
쓰윽.
“……안 오면 내가 가고.”
“……이런 염병할.”
부웅.
콰과과과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기 무섭게, 사무현의 천마도가 휘둘러지며 복잡한 변화를 담은 수없이 많은 강기가 단아란을 향해 날아들었다.
천마도법의 절기 만마참풍.
단순히 도풍으로만 적을 공격하던 이전과는 달리, 화경의 경지에 오르며 수많은 예리한 강기가 도풍과 함께 뒤섞여 단아란을 뒤덮었다.
하지만…….
콰과광!
우렁찬 폭음과 함께, 한순간에 만마참풍이 소멸되며 거대한 푸른 용이 사무현을 향해 쇄도한다.
“이런 제엔자앙! 왜 여기까지 와서 난리야, 이 미친 여자가!”
“미친 여자? 오냐! 어디 미친 여자한테 오늘 한번 뒈져 봐라!”
“자, 잠깐만! 이거 진짜 강기잖……. 으아아악!”
……그 어느 때보다 부쩍 시끌벅적한 사천방의 밤이 지나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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