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저놈이 흑강패도라고?’
흑강패도 귀하월(鬼河極).
장강의 지배자이자 사파제일인(邪波第一人)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수룡왕(水龍王) 귀하패(鬼河覇)의 동생이다.
삼십 년 전 장강수로채를 넘겨받기 위해 형에게 도전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그의 강함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룡왕에게 도전했다는 이야기는, 곧 그가 장강수로채의 이인자였음을 말해 주는 것과 같았으니까.
살암이 표정을 굳히며 흑강패도의 무위를 가늠하고 있는 사이, 적어채주가 짐짓 안타까운 어조로 사무현을 향해 말을 이어간다.
“이것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사천방주. 흑강패도께서 친히 널 먹잇감으로 정하셨으니, 아무래도 내 손으로 널 처리할 기회는 없을 것 같구나.”
“……얼씨구?”
적어채주의 한 마디에 사무현이 피식 실소를 흘린다.
“유언인가? 곧 뒈질 새끼가 아까부터 잘도 떠드네.”
“……보아하니 네놈은 흑강패도라는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예상외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사무현의 모습에 적어채주가 이를 악물었다.
“저분이 바로 수룡왕의……!”
쿵!
난데없이 적어채주의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기세.
어느새 얼굴에 웃음기를 싹 지운 사무현이, 지금까지 보인 적 없던 살기와 함께 새하얀 어금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말 귀를 영 못 알아먹네.”
“……!”
“헛소리 지껄일 시간에 유언이나 읊었어야지.”
쾅!
말을 마친 사무현의 신형이 섬광같이 적어채주를 향해 접근한다.
사무현의 기세에 눌려 있던 탓에, 적어채주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사무현의 도를 보고도 미처 반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적어채주의 죽음이 빠르게 가까워지던 그때……!
쩌저저정!
“……!”
다섯 자에 이르는 도강을 머금은 사무현의 일도를, 그 못지않게 거대한 태도가 적어채주 앞을 가로막았다.
“크흐흣…… 과연, 이거 상상도 못한 괴물인 모양이로구나.”
사무현의 도에서 느껴지는 힘을 가늠하며,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흑강패도.
잠시 후 그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큰 동작으로 사무현을 뒤로 밀어낸다.
부웅.
타닷.
“뒤로 비켜서라, 적어채주.”
“……!”
“방해 된다.”
언뜻 모욕적인 한 마디에 적어채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차마 그에게 무어라 항변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흑강패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 상대의 일도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뻔 했으니까.
그렇게 적어채주가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나자 흑강패도가 자신의 태도를 큰 동작으로 한 번 떨쳐내며 사무현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부웅.
쿵.
“그 나이에 그만한 도격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구나. 나 또한 네 나이대에 그만한 도격을 펼칠 수 없었으니, 네가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너도 유언이나 읊어두는 게 나을 텐데.”
자신의 도격을 받아낸 흑강패도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미소 짓는 사무현.
그 모습에 더더욱 짙은 미소를 머금은 흑강패도가 양 손으로 도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의미심장하게 읊조린다.
“하나…… 아무리 범이라 해도, 새끼 때에는 늑대에게 물려 죽을 수밖에 법.”
“네가 늑대다?”
“……오거라.”
희번덕이는 두 눈으로 사무현을 노려보던 흑강패도가, 슬쩍 눈동자를 굴려 청사 등에 업혀있는 적사에게로 향한다.
“네놈과 방해꾼을 모조리 베어내고…… 저 계집과 볼일을 마저 봐야할 것 같으니.”
“……아하.”
흑강패도의 말을 듣고 있던 사무현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맴돌았다.
그리고…….
스팟!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진 사무현의 신형이 흑강패도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진작 그 말부터 지껄이지 그랬냐?”
“이……!”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나타나 섬광같이 도를 휘두르는 사무현에 맞서, 당황한 흑강패도도 다급히 일도를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끄으으으읍……!”
사무현의 도격을 받아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흑강패도를 향해, 사무현이 무심하게 말을 잇는다.
“그랬으면 좀 더 빨리 베어 줬을 텐데.”
콰과광!
서걱.
“……!”
사무현의 일격을 버티지 못한 흑강패도의 태도가 산산조각이 남과 동시에, 사무현의 천마도가 그의 어깨부터 옆구리를 사선으로 베어 냈다.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지, 흑강패도가 더듬더듬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몸을 매만진다.
그리고.
촤아아악!
“……!”
풀썩.
일도에 육체가 반 토막나 버린 흑강패도의 시신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단 일도(一刀).
거침없이 상대의 숨통을 끊어 버린 사무현의 싸늘한 시선이, 이 모든 상황을 경악 어린 얼굴로 지켜보는 적어채주에게로 향한다.
“무…… 무슨…… 이, 이게 대체…….”
“이제 소원이루겠네?”
“……!”
“네 차례다.”
거기까지 말한 사무현이 적어채주에게로 천마도를 겨누는 그때였다.
쓰윽.
“잠깐.”
“……뭐야?”
“저건…… 내가 맡도록 하지.”
“……뭐?”
생각지도 못한 살암의 방해에 사무현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진다.
“뭐라는 거야? 넌 그냥 나가서 밖에 애들이나…….”
“저 녀석과의 볼일은 암천막의 몫이다.”
“…….”
“암천막을 건드린 대가는 내가 직접 받아 낸다. 너는 이만 나가서 네 할 일을 해라.”
“……할 일?”
“사천방을 지키는 것…… 그게 네 할 일이 아니었나?”
살암의 한 마디에, 잠시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는 사무현.
그와 적어채주를 번갈아 보던 사무현이 이윽고 짧은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서 등을 돌린다.
쓰윽.
“……조심해라, 한 팔은 잘렸지만 만만히 볼 놈은 아니다.”
“그건 해 보면 알 일이지.”
“……망할 놈.”
적어채주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은 살암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주한 상대의 기도조차 읽어 내지 못할 만큼 어수룩한 녀석이 절대 아니니까.
아마 지금의 살암이라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르는 상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홀로 상대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 이 상황에 맹렬히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내가 처리하면 평생 원망이나 받겠지.’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살암의 말이 맞다.
적어채주는 살암이 전력을 다한다면 어떻게든 승부를 볼 수 있는 상대.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들어오느라 밖에 내버려 둔 사천방도들은, 자신들보다 몇 배는 많은 적들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청사, 너는 적사만 신경 써라.”
“……알겠다.”
“내 뒤에 붙어서 떨어지지 말고.”
“그러지.”
사무현의 말에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청사.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사무현이 슬쩍 살암 쪽을 한 번 더 돌아보며 경고한다.
“혹시나 사지 하나 잘려서 오는 날에는, 남은 멀쩡한 사지도 내가 잘라 줄 테니 그렇게 알아라.”
“…….”
“간다.”
파밧!
“조심하십시오, 막주님.”
“밖에서 뵙겠습니다, 막주님.”
타닷!
사무현이 문밖으로 뛰쳐나가자, 적사를 등에 업은 채 재빠르게 뒤따르는 청사.
잠시 후 방 안에는 살암과 적어채주, 단 둘만이 적막 속에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쓰윽.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살암이 검 끝을 겨누자, 어느새 여유를 되찾은 적어채주가 자신의 도를 고쳐 쥐며 자세를 취한다.
“이거 아쉽게 되었구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사천방주라는 놈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좌수도(左手刀)였는데…… 고작 너 같은 음지의 애송이를 상대로 쓰게 되었으니…….”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적어채주의 말에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살암이 그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디며 자세를 낮춘다.
“한번 부딪쳐 봤으면…… 하다못해 팔까지 하나 잃었으면, 뭐 하나라도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배우는 것?”
“우선 분명하게 말해 두지만, 네놈은 저 녀석의 상대가 못 된다.”
“…….”
“그리고 둘째로…… 언젠가 저 녀석을 쓰러뜨릴 이가 있다면 그건 네가 아니라 나다.”
“이, 이놈이……!”
“그리고 세 번째.”
거기까지 말한 살암의 전신에서, 거짓말처럼 넘실거리던 모든 살기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해할 수 없는 서늘한 냉기가 대체하며 적어채주의 전신을 옭아매기 시작한다.
“암천막을 건드린 대가는 죽음뿐이다.”
“하하…… 그래? 네놈의 죽음을 말하는 모양이구나!”
파밧!
팟!
쩌저저정!
살암과 적어채주, 둘 중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몸을 날린 그들이 정중앙에서 각자의 도와 검을 휘두르며 충돌했다.
적어채주의 좌수도가 살암의 검을 금방이라도 부러뜨릴 듯 밀어붙이며 살기 어린 두 눈을 희번덕인다.
“도륙을 내 주마……! 음지의 애송아!”
스륵.
적어채주와의 정면 대결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판단했는지, 가늘게 떨리는 검신을 바라보던 살암이 부드럽게 몸을 회전하며 적어채주의 도를 흘린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역방향으로 고쳐 쥐어 그의 복부를 찌르려 하자, 적어채주도 크게 몸을 회전시키며 다시 한번 살암의 머리 위로 도를 내려친다.
스걱!
촤좍!
방어는 무시한 채 서로가 서로를 향해 동귀어진식의 공격을 펼치는 이들.
하지만 양쪽 다 이런 전개에 익숙한 듯, 자신의 공격을 이어가면서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려낸다.
어깨와 흉부에 붉은 실선이 점점 더 붉게 물들어 갔지만 이들은 도리어 맹렬하게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이놈!”
“쯧……!”
쩌저저저정!
주르륵.
주륵.
눈앞에서 검강과 도강이 격돌하며, 만들어진 충격파에 서로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더더욱 상대를 밀어붙이는 데에만 집중할 뿐이다.
까드드득.
으드득.
서로의 이가 갈리는 소리마저 생생하게 들려오는 거리.
적어채주 특유의 지독한 살기가 사방을 짓누르자, 여태껏 완벽하게 감추어져 있던 살암의 살기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큭큭……. 역시, 잘 훈련된 사냥개인 척하더니 결국은 네놈도 들개인 모양이구나.”
“네놈 같은 잡종과 같은 종자로 묶지 마라. 기분이 더러우니.”
쩌쩌정!
촤좌좍!
촤악!
서로를 향한 증오 섞인 도발을 끝으로 격렬한 접전을 벌이는 적어채주와 살암.
뒤섞이는 지독한 살기에는 서로를 찢어 죽이기 위한 악의만이 넘쳐난다.
그 때문이었을까?
싸움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들의 몸은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
쾅! 퍼벅! 쩡!
“크아아악!”
“아아악!”
적어채의 갑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일방적인 학살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압도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사천방도들 이었다.
명색에 장강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이었지만, 배 위에서 벌어지는 집단전은 그들이 강이라는 이점을 거의 활용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뒈져라! 수적 새끼들아!”
“어디서 감히 적사 누님을!”
“죽어! 죽어! 죽어 버려!”
쾅! 쾅! 쾅!
신명 나게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적어채를 누비는 사천방도들.
누가 보아도 일방적 우위로 전투를 벌이고는 있었지만 이들의 낯빛은 썩 밝지만은 않았다.
각자 쓰러뜨린 적의 수만 어림잡아 열 명씩은 되는 것 같은데, 금방이라도 전멸할 것 같았던 저들은 어디선가 계속해서 인원을 충원하고 있었다.
그것도 사천방도들이 언제쯤 지치는지를 확인하겠다는 듯 야금야금 반복해서!
“최대한 체력을 아껴라! 장기전을 생각해야 한다!”
“예! 형님!”
“진형을 이탈하지 마라! 집단전에서 단독 행동은 곧 죽음이다!”
“예!”
전황을 살펴가며 싸우는 막휘의 지속적인 독려 덕분에 사천방도들은 다행히 아직까지 큰 부상자 없이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파밧!
퍼벅!
“크윽!”
적들과 뒤엉켜 싸우던 사천방도들 중 하나가, 배 옆면에 들러붙어 있던 수적이 던진 작살에 당하고 말았다.
슬슬 체력 안배를 신경 쓰고 있던 차에 불시의 기습 같은 상황.
다행히 작살이 허벅지에 꽂혀 큰 부상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겉으로나마 안정적으로 보이던 그들의 진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에 있었다.
그러던 그때.
부웅 부웅 부웅.
“모두 비켜라!”
“……저놈은!”
두꺼운 쇠사슬에 매달린 거대한 철퇴를 너무나도 가볍게 회전시키며 걸어 나오는 거구의 사내.
그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 막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거우산악!”
불과 한 달쯤 전 막휘와의 대결에서 패했던 적어채주의 수하!
하지만 당시 막휘와는 그야말로 한 끗 차의 승부를 벌였던 인물이다.
지금 이렇게 팽팽한 상황에 저만한 고수가 나타나 막휘의 손과 발을 묶어 놓는다면 사천방의 진형은 더욱 빠른 속도로 무너질 것이다.
“화살 부대! 공격해라!”
“예!”
쐐애애애액!
샤샤샥! 샤샥!
거우산악의 외침과 함께 그의 뒤에 서 있던 수적들이 일제히 화살을 하늘로 쏘아 올린다.
잠시 후 그 화살들이 어디로 향할지 떠올린 막휘가 다급한 음성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모, 모두 머리 위를 조심해라! 모두 조심해!”
샤샤샤샥!
퍼퍽! 퍽! 퍽!
“끄아아악!”
“아아악!”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은 화살 세례에 꿰뚫려 죽어 간 이들은 하나 같이 적어채의 수적들 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천방도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데는 충분했다.
이렇게 밀집된 대형에서 날아드는 화살 세례라면 계속해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비, 빌어먹을……!”
“화살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형님.”
“알고 있다……!”
까득.
마우평의 말에 어금니를 깨물며 주먹을 움켜쥐는 막휘.
어차피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저 거우산악을 쓰러뜨리고 화살 부대의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
“마우평! 손익패와 함께 진형을 지켜라!”
“알겠습니다, 형님!”
쾅!
파바바밧!
마우평에게 뒤를 맡긴 막휘가,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려 순식간에 거우산악이 위치한 곳까지 도약한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거우산악이 막휘를 향해 거대한 철퇴를 쏘아 냈다.
쐐애애액!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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